반대편 사람 주의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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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다. 30년을 쓰신 작가님인데.... 이로써 필력이 훌륭하신 작가님을 또 한 분 알게 되었다.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 전체적인 성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만 놓고 본다면 은근히 마음이 힘든 작품이었다. 평범한 듯 잔인한 이야기라고 할까, 일상의 잔인함이라고 할까. 칼부림하고 욕하고 싸우고 그래서 그런게 아니다. 큰 사건은 없는 편이고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 고요와 평안이 아닌 커다란 불안과 우울함이 진득하게 자리한다. 도저히 치울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거움. 그게 일상 속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 바로 평범한 잔인함이 아니고 뭐겠는가. 주인공들이 별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 일상의 일부가 나에게도 깃들어 있지 않은가 흠칫하게 되는 작품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라는 점에 이 책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곱 편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나왔던 인물이 또 나오기도 하고 서로 연관되기도 하니 연작의 성격을 띤다. 반복해서 나오는 인물과 상황의 특징이 있다. 일단 주인공들 중 다수가 대학교수다. ‘교수님’이라고 불리지만 연구실은 없는. 말하자면 일명 보따리 장사라 불리는 강사들이다. 익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갑갑하고 막막했다. 최고학력 최저시급 알바라고 할까. 많은 세월과 노력을 (돈도) 공부에 쏟아부었는데 내 자리는 없고 바늘구멍 같은 자리는 이미 임자가 다 있고, 되돌아가기엔 나이가 이미 중년이고, 강의만으로 생활이 안되고.... 그래서 그들은 투잡을 안할 수가 없다. 배우자가 잘 벌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면 좀 낫겠지만 여기의 주인공들은 다 비혼이고, 부모도 돈이 없다. [검은 개 흰 말], [빗방울 하나 마른 잎을 두드리네]에 나오는 서양지는 부잣집 사람들이 장기 출타를 할 때 집을 관리해주는 알바를 하고, [그들], [빗방울 하나 마른 잎을 두드리네], [절차]에 나오는 이종소는 친구가 개업한 주막에서 주방일을 한다.

공통적 상황 두 번째는 나이든 비혼 자녀 + 고령의 부모 조합이다. 고령이기만 할 뿐만 아니라 몸과 정신의 건강도 모두 나쁘다. 고령만으로도 힘든데.... 나도 노인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 아니 그래서 더 그런 건지 요즘엔 길에서 심하게 늙으신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좋지가 않다. 천벌 받을 소리 같지만 ‘저 나이까지는 안 살고 싶은데....’ 이런 마음이다.ㅠ 보기만 해도 괴로운 지경까지 늙은 분들을 보면 1차로 나의 부모님들(시부모님 포함), 2차로 나와 배우자가 걱정되기 마련이다. 그 걱정의 현실이 이 책에 담겨있다. 처참한 지경까지는 아닌데도, ‘부모님이 가셔야 당신의 삶을 살겠군요’ 라는 마음이 드는 상황이 슬프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 자체가 고통인 그 관계. 죽어야만 끝나는 그 고통을 뭐라 말해야 할까. 이 책은 그 현실을 과장도 미화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게 앞에서 말한 평범한 잔인함의 일부라 하겠다.

작품마다 누군가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암시도 매우 힘든 공통점이다. 마지막에 배치된 [절차]라는 작품에는 실제로 두 건의 죽음이 나온다. 이 작품에 나오는 교수는 이종소인데,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 한명이 자살을 했다. 유서에 이종소 교수를 언급하고. 원한이 아니라 좋았다는 언급이었지만 그것도 그에게는 위협이었고 그래서 방어적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보니 안그랬어도 되는 거였지만, 난 그 방어가 너무 이해가 간다. 책임져야 할 대상이 분명한 경우도 있지만 모호할 때, 그걸 어떻게 해야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끝낼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조심스러운 이야기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순수하게 추모하고 슬퍼하며 내가 그에게 더 해줄 수 있었는데 못 해준 것을 미안해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가 물어뜯을 공격 대상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게 내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걸 감내하고 선택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몰아세우기에 집착하는 사회에서는 자기방어가 최우선인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본능적인 공포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공포의 꺼풀이 벗겨져야 남에 대한 진심이 나오는 것이다. 나 다음에 남인 것은 평범한 인간의 당연한 순서이니까.

하나같이 사실적인 허무감과 우울감이 감도는 작품들이었는데 작중 관계들 중 그나마 보기 괜찮았던 건 세 번째 작품 [일러두기]의 미용과 재서였다. 다른 작품과 분위기는 비슷하고 처지가 깝깝하기도 마찬가지였지만 뭔가 서로에게 발견해 주는 느낌이라서. 그나마 희망이 들어있었달까.

읽기에 앞서 단편들의 제목을 쭉 보면서 표제작을 찾아보았는데 없었다. 그럼 <반대편 사람 주의>라는 제목은 어디서 왔을까, 무슨 뜻일까 생각하면서 읽었다. 나는 일단 ‘주의’가 조심이라는 뜻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표현처럼 관심이나 배려 쪽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수록작 [그들]에 그 문구가 나왔다.
“반대편사람주의
문뒤에누가있을수있습니다” (205쪽)
모종의 사건 후 까페 화장실에 붙은 안내문이다. 조심이라는 뜻도 있는 거였어. 물론 확대하면 배려라는 뜻도 있지만. 어쩌면 둘은 상당 부분 의미가 겹치는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을 제목으로 삼은 작가님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앞표지와 뒤표지에 각각 남녀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반대편 사람’이 되겠다. 우리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많은 생각과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받고 밀려나며 종국에는 노쇠해질 우리. 이 책의 색조보다는 조금은 더 밝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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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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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고는 하나 500쪽이 넘으니 내게는 벽돌책이나 다름없는데...? 그치만 시간도 있으니 읽어보자 하고 도전했다. 가독성이 좋았지만 그래도 하루에 끝내긴 어려웠고 다음날까지 넘겨서 겨우 완독했다. 어쩌면 간단할 수 있는 주제를 위해 동원된 서사는 엄청났다. 가성비추구인인 나는 '작가님 엄청 고생하셨겠는데?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셨담.' 이라는 생각에 조금 갸웃하기까지....^^;;; 하지만 인정한다. 이 책의 차별성은 그래서 생겨났다는 걸.

그 서사의 줄기는 크게 세 갈래다. 시대별로 놓고 보면 이렇다.
(1) 18세기후반~19세기초반 스페인 왕가와 귀족가의 이야기
(2) 1990년대 후반 프랑스로 유학 갔던 한국 젊은이 세 명의 이야기
(3)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화자와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
이 굵직한 시공간에서 집중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개. 비숑프리제라는 귀한 혈통의 개.

화자인 이시습은 20대 초반의 청년이다. 제목의 '이시봉'은 그집 막내...라고 하지만 사람이 아니고 개다. 몇년 전 아버지가 데려왔던. 타이어공장에서 묵묵히 일하시던 아버지는 어느날 한계가 왔는지 퇴직을 선언하고 피자집을 차렸다. 그러다 바로 가게 앞에서 불의의 고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 달려나간 이시봉을 쫓아가다 그리 되셨다고 한다. 이시봉은 여전히 해맑지만 엄마는 더이상 개의 눈을 보지 못한다. 지금은 외할머니 간호차 집을 떠나 있다. 고3인 여동생 시현이는 무섭게 공부에 몰두하고, 결국 이시봉은 이시습의 차지다. 이시습은 독자가 볼 때 약간 안타까울 정도로 백수 폐인 상태이다. 밤중과 새벽의 경계인 시간에 이시봉을 산책시키고, 그때 혼자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온다. 매일 그리 마시니 알콜중독이라 할 수도.

느리고 가라앉은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갈 무렵, 이시봉을 찾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웃의 리다 누나가 sns에 릴스 하나를 올렸는데 그걸 보고 연락해온 것이다. 그들은 '앙시앙 하우스'라는 곳에서 나온 브리더들이며 대표는 정채민이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시봉은 비숑 중에서도 '후에스카르' 계열의 매우 희귀한 순종 혈통이며, 그래서 대표가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한다.

90년대말 프랑스에는 가난한 유학생 김상우, 박유정 커플이 있었다. 대책없이 떠난 그들에게 파리는 공부보다도 힘든 알바를 하는 곳이었다. 그러던 중 부유한 유학생 정채민을 만난다. 바로 위에서 말한 그 대표다. 그는 두사람과 우연히 엮이게 되었는데 그들이 맡은 순종 비숑 두마리를 잠시 봐주게 되면서였다. 그때 처음 알게된 개에 대한 마음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는다. 두사람을 먼저 보낸 그도 뒤이어 귀국하고 보니 두 사람과 두마리 개는 자취가 없었다. 앙시앙하우스를 운영하면서도 그는 과거의 그 아이들을(그 혈통의 후손을) 늘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 초반 서사를 무심코 다 믿고 읽었다가 나중 반전에 기막힘;;;)
이 정채민이라는 사람이 의문의 결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곧 책의 진행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만 봐도 복잡하고, 보통 소설의 분량인 300여 쪽은 넉근히 나올 것 같은데 작가는 더 옛날 유럽의 이야기를 직조에 추가했다. 나폴레옹도 나오고 카를로스 4세, 그의 왕비, 마누엘 고도이라는 총리, 알마 공작부인 등등... 책 앞장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 강아지, 고양이,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라고 분명히 되어있기는 하지만 검색해보니 인물 자체는 실존했던 인물들이 아닌가. 왕비가 남성편력이 심했고 특히 고도이를 좋아해서 그에게 권력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고, 고야라는 화가가 알마 공작부인의 초상화를 그린 것도, 그 초상화들 중 한 점에는 하얀 애완견이 예쁘게 단장하고 함께 그려져 있다는 것도.... 참, 이런 걸 자신의 이야기 속에 허구와 적당히 섞어서 직조하는 작가님의 스케일과 능청스러움에 감탄한다. 아마도 착상의 발단은 바로 그 하얀 개가 나온 초상화 아니었을까? 그리고 작가 본인이 키우신다는 비숑 이시봉.... 그것들이 스파크 파바박!! 그리하여 이렇게 벽돌 소설책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 보았다.

결국 등장인물들의 실체와 사연들은 어떠한지, 이시봉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남겨두고 끝내야 할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중에 다시 볼 구절은 메모장에 쪽수를 적어놓는 습관이 있는데, 다 읽고 보니 의외로 초반부의 쪽수가 적혀 있었다. (후반부는 반전에 휘말려서 적지도 못하고 마구 읽은 탓도 있음)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라고 보고 싶다. 시습 시현 남매의 대화 장면인데, 엄청 똑소리나는 시현이 한 말들이 거의 진리 수준이었다.

"이건 비단 오빠 개인만의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오빠는 그만큼 이시봉이라는 타자를 오빠라는 자아의 시선으로만 보고 있다는 증거야. 이시봉은 오빠라는 자아한테 먹힌 타자인 거지. 그건 이시봉을 이해하거나 위하는 일이 아니거든. 오빠는 사실 오빠를 위로하고 있는 거지. 그럴수록 이시봉은 더욱 더 소외되는 거고." (188쪽)

다음 말은 더욱 더 똑부러진다.
"이론적으론 인간과 동물은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어. 어쩌면 동물들은 인간을 그렇게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인간은 아니라는 거지. 인간은 자기에게 이로운 존재나 친근한 동물들에게 더 높은 계층을 부여하고, 그 친구들에게만 복지를 부여하려고 애쓴다는 거야. 그게 점점 더 심해지고 심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고.....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 그런 게 그 증거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인간이 동물을 바라본다는 증거." (189쪽)

다음 말은 결정적 한방이다.
"인간은 자꾸 동물을 인간화시키려고 해. 그것도 자기와 친한 동물들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동물화는 참지 못하는 게 또 인간이야." (189쪽)

이시봉 자신에게는 혈통이 무슨 의미일까. 나폴레옹 시대 때부터 관리해서 지켜온 혈통이든 아니든 지금은 폐인같은 주인 곁을 나른하게 지키고 있는 시고르자브종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정채민 쪽 인력인 수의사가 한 말이 그의 의도(순수한 의도는 아녔음)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에 남았다.
"좋은 보호자 아래서 개들도 행복한 거예요" (109 쪽)
주인이 세상의 전부이도록 반려동물들을 만들어놓고, 주인이 불행하거나 악하면 걔네들은 어떻게 되는 거겠어... 사람들도 동물들도 좀더 행복한 세상이 오면 좋겠으나.... 일단 기본 방향이 잘 잡혀있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다. 그나마 그것을 뻘처럼 붙잡고 있는 것은 시습의 친구들처럼 내가 힘들 때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 외로워죽을 사람 옆에 무심히 버티고 있는 어떤 존재(그게 개라도).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할 이유는 이렇게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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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포차 심심 사건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10
홍선주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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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던 시간들 동안 소설을 거의 안 읽다가 이제 시간이 있으니 조금씩 읽어보고 있는데, 도서관의 800번대 앞에 서면 막막하다. 세상에 작가는 얼마나 많고 그들이 써낸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인가. 여기에 없는 책들도 많은데 말이다. 이중에 오호 잘 읽었다 하는 책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오늘은 이 책을 골라잡아 보았는데, 요즘 식당이니 빵집이니 까페니 라면집이니 분식집이니 과자점이니 등등의 설정을 가진 힐링물들이 워낙 많아서 조금 다른 얘기였으면 했다. 그 바람은 맞아들어갔다. 확실히 다른 이야기이긴 했다. 반전이 아주 제대로였다. 그래서 이 책은 리뷰를 아주 짧게 써야 하겠다. 나도 내용을 전혀 모르고 책을 읽었고 그래서 재밌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내용을 말 안하고 뭘 써야 하지.^^;;;

화자는 젊은 여성 전문직(프로그래머)이다. 배경이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전혀 그 반대다. 다섯 살에 보육원에 버려졌고 그 이전 기억은 전혀 없으며 오드아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가졌고 그것 때문에 괴물이라고 놀림 받으며 철저히 배척당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가 오드아이라는 핸디캡과 함께 특출한 머리를 물려준 덕분에 다른 보육원 친구들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자립했다. 하지만 뭔가 품고 있는 내면의 사연은 많을 것이다. 그런 화자가 한밤중 퇴근길에 ‘심심포차’를 발견한다.

그 식당의 출현은 시작부터 시한부였다. 1주일 후에 문 닫는다고 붙어있었다. 한 번 들어갔던 화자는 마음이 끌려 그 시한부 기간 동안 여러번 찾아가게 된다. 바 형태의 그 식당은 다른 손님들의 대화가 잘 들렸고, 주인장은 그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건들이어서 저도모르게 솔깃하여 듣게 되었다. 듣다보니 알게 된 사실인즉, 그 음식솜씨 좋고 품 넓은 여자주인장이 전직 검사였다는.... (‘서프로’라고 불린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삶의 이유도 딱히 없어 삶의 마감을 생각하던 화자가 남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그 공간에서 따스함과 충족감을 느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그 중심에는 서프로가 있다. 포차의 마지막날 서프로는 화자에게 이런 고백을 한다.
“자꾸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인 것 같아. 근데 그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 해. 내가 그걸 막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겠어. 나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175쪽)

생각지 못한 반전의 결말이 씁쓸했으나 도라지나 더덕 같은 몸에 좋은 씁쓸함이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마음에 들었다. 당장은 가혹해도 결국 좋은 결말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나 교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걸 할 수 없게 만든, 다르게 말해서 무책임을 종용하는 사회는 문제가 아닐까. 기승전무엇이라고, 나는 또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네. 어쨌든 소설은 흥미로웠다.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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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쓰기 -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나민애 지음 / 서울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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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쓰기'는 내가 시간이 있을 때 주로 하는 일이다. 별다른 재주나 취미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10여년 전부터는 읽은 책을 적어놓기 시작했고 증발을 막기 위해 온라인 공간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사적인 공간은 페북이고(친구공개), 공개된 공간은 알라딘 서재이다. 고맙게도 알라딘에선 계정만 있으면 바로 개인 서재가 만들어져서 독서기록을 축적할 수 있었다. 어느덧 1000편이 훌쩍 넘었다. 1년에 100편 정도 쓴 셈이다.

그렇게 써온 글들을 무엇이라 규정할까 궁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흔히 서평이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바, 내가 쓰는 독서기록은 엄격히 말하면 서평이 아니다. 사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전혀 감추지 않고 쓰기 때문이다. 구성을 따지면서 쓰지도 않고 퇴고도 전혀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마음 가는대로 펜 가는대로 쓰는 독서기록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독후감'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근데 그렇게만 말하기엔 추천 이유라든가 대상, 내용 분석 등 서평적인 내용도 들어가긴 한다. 한마디로 양다리를 걸친 글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 두 개념을 포괄한 '리뷰' 라는 용어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이 책을 발견하고 골라들었다.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이제 나도 좀 서평다운 서평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ㅎㅎ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나의 경우엔 굳이 '서평'을 쓰겠다고 나의 글을 뜯어고칠 필요는 없어보인다. 내가 잘 쓰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문체나 글버릇도 성격이나 말버릇과 같아서 어지간해선 안 고쳐진다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서평만 가치있는 글인 건 아니기도 하고. 독후감이면 어떻고 짬뽕이면 어때. 독서 기록을 위한 글이라면 어찌 했든 독서기록을 했으면 된 것이니까. 단, 서평이벤트에 응모를 했다거나, (그럴 일은 없지만) 의뢰받은 서평이 있다면 그동안의 자유로움에서 벗어나 형식과 내용을 다듬어 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주 안 입더라도 정장 한 벌은 가지고 있어야 하듯이. 그 정장을 갖추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1부 [서평 체급 정하기]에서는 먼저 서평의 분량을 기준으로 단형, 중형, 장형 서평으로 나누었다. 단형서평은 100자평 같은 것들. 중형서평은 A4 1~2장, 장형서평은 3장 이상이라고 한다. 내가 주로 쓰는 분량은 중형서평에 해당하는 것 같고, 가끔 단편소설집을 읽고 수록작품을 한편씩 다 언급하거나 교육서적을 읽고 생각을 풀다보면 장형까지 분량이 넘어가기도 한다.

이어서 저자는 서평의 개념을 규정하는데 바로 '책을 평가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평가를 위한 분석과 판단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34쪽)
이를 위해서는 독서법도 따로 있다. 1단계 독서가 '감상의 독서'라면 2단계는 '비판의 독서' 3단계는 '학문의 독서' 라고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서평이 가능한 셈이다. 그동안 내 독서기록이 독후감 쪽에 가까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2부 [서평러의 기초체력 키우기]에서는 위에 분류한 각 서평을 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내가 주로 쓰는 중형 서평을 이 장에선 '블로그 서평'이라고 명명했다. 제목 짓기, 서지사항 밝히기, 내용 요약, 인용과 핵심포착 등 저자의 경륜에 따른 팁들이 가득하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좀 위안이 되었던 것은 내가 요약에 있어서는 틀에 박히지 않은 유연한 요약에 좀 자신감이 있고(이건 절대 누구한테 배운게 아니다. 1000편을 쓰다보니 스스로 터득한 듯) 저자가 알려주신 인용의 팁도 이미 하고 있던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 얘기를 늘어놓는 것만 봐도 이미 서평에서 멀어지고 있다ㅋ) 이 부분은 저자가 블로그라는 온라인 공간을 감안해서 팁을 제시해 주신 부분이 많은데,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은 그런 팁도 도움이 많이 되겠다.

장형 서평(아카데믹한 학술서평)이야말로 저자에게 배울 점이 많은 분야이다. 진짜로 공식적이고 정형화된 버전의 서평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전체 구성 나누기와 각 부분에 합당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이 조언들 중에 나에게 인상적인 문장들이 있었다.
"꼭 이성적인 판단과 감성적 독해 사이에 위치하길 바란다." (136) 라는 지침이었다. 서평에서 제일 어려운 점이 바로 이 점이고, 서평을 서평이게 하는 점도 바로 이 점이라고 하셨다. 동의한다. 근데 이게 말하자면 고난이도의 줄타기이지 않은가? 감성 쪽에 치우치면 개인 독후감이 되어버리고 이성 쪽에 치우치면 재미가 없다. 서평이란 백퍼 남 읽으라고 쓰는 글인데 읽기를 거부당한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개인적 감상을 지양하면서도 독자들이 관심있게 끝까지 읽게 하는 서평. 무척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맥락에서 "자기 혼자만의 경험과 결부해서 쓰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142쪽), "일기나 사소설처럼 글을 시작하지 말라." (145쪽)는 조언도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인들과 나누려고 쓰는 블로그형 서평까지는 어느정도 용납이 되겠지만 진짜 찐 서평을 쓰고자 하는 경우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1,2부 뒤에는 부록으로 [서평 쓰기 실전 활용 꿀팁]이 6가지 들어있다. 그중 '좋은 점수를 받는 서평의 사례'에는 저자가 지도하신 대학생 서평의 모범사례도 들어있다.

이 책은 저자의 대학 강의를 지면으로 옮긴 성격이 강한데, 그만큼 대학생들이나 그보다 조금 앞단계인 고등학생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 같다. 나처럼 나이먹은 사람에게도 참고가 되었다. 나이 먹었어도 이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블로그나 서재를 개설하시고 당장 읽는 책부터 기록을 시작하시라고 강추하고 싶다. 이 책을 옆에 끼고 하시면 든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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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 낯설게 보는 인류사 ㅣ 천개의 지식 35
옥이샘 지음, 이정모 감수 / 천개의바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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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이샘의 만화가 점점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감정툰, 진로툰에서 환경툰으로 영역을 확장하더니 이제는 인류사툰? 놀라운 확장력이다. 환경툰에 서평을 쓸 때 작가님이 참 많은 책을 읽으셨겠다고 했었는데 이 책은 ‘말해뭐해’이다. 우리가 A4 한 장의 자료를 만든다고 할 때 입에서 나오는대로 주워섬기는 게 아니라면 그 안에 들어간 노력은 그저 종이 한 장이 아닌 것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니 이 책에 들어간 사전작업은 그저 책 한 권이 아닌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노력이 가장 보람있는 직업이 바로 교사라고 생각한다. 뭐든 배우고 알면 다 써먹을 데가 있어요~ 작가님은 교사이기도 하시니 가장 보람있는 작업을 하셨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인류사를 제대로 서술하자고 들면 1000 페이지인들 넉넉하랴? 그런데 이 책은 고작 150여 쪽. 게다가 만화. 게다가 직접 서술이 아닌 상상과 실제를 오가는 구성. 에계계. 그럼 내용이 얼마나 되려고? 그런 걱정은 굳이 안해도 되겠다. 책은 많고 각자의 역할을 하는 법이니. 이 책은 ‘쉽고 재미있고 말랑한 개관’의 역할을 한다. 입문서로 가장 적당하다는 뜻이다. 4,5학년 정도에 가장 알맞아 보이고, 6학년도 유치하진 않다. 관심만 있다면 저학년도 읽기는 가능하겠다. 부모가 함께 읽거나 교사가 자료로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은 어떤 가정에서 출발한다. 바로 제목이 그것이다.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공룡은 어린이들이 매우 선호하는 소재다. 멸종된 동물이 왜 그리 어린이들에게 인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인의 아들은 어린 나이에 나도 모르는 길~다란 공룡의 이름들을 줄줄 외우고 특징을 살려 그림까지 그려내곤 했었다. 이 책에 보니 데일 러셀이라는 고생물학자는 “만약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인간처럼 지능이 뛰어난 공룡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라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의 설정은 바로 이 말을 상상으로 펼쳐낸 것이다.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매우 적절한 아이디어이다. 게다가 옥이샘은 만화가이기도 하잖아. 그의 독특한 그림체는 이제 널리 알려진 바, 그가 그린 공룡은 어떨까? 역시나 특징이 잘 살아있으면서 웃기고 친근하다.

공룡 중에서 어떤 종류가 직립보행을 하고 손이 자유로워지며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들에게 ‘똑똑이 공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이 곳곳에 퍼져나가는 데까지가 1장. 2장은 [농사와 가축, 변화를 일으키다]로 정착생활의 단계를 다룬다. 이로써 농사를 짓고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빈부차이와 계급이 생기고 감염병도 생겨났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인류 발전의 각 단계에서 장단점을, 다르게 말하면 명암을 균형있게 설명한다.

3장은 [거대한 나라로 뭉치다], 4장은 [과학으로 세상을 보다], 5장은 [산업혁명, 놀라운 세상을 만들다]이다. 증기기관을 시작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빠르고 편리해진 생활이 가능해진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여기서도 역시 “세상은 크게 발전했지만, 대신 어떤 댓가를 치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제시한다. 뒤이어 나올 환경 문제의 시작을 짚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만큼, 그 결과를 책임 있게 다루는 법도 함께 배워야 한단다.” (101쪽)
이 문장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6장부터는 벌써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인공지능, 빛과 그림자를 가져오다]에서는 ‘빛과 그림자’라는 소제목에서 말해주듯 우려되는 점에 대해서도 짚어주고 있다. 그중 특히 “인공지능이 오히려 주인이 될 수 있어”(114쪽) 라는 내용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는데, 독자들마다 각기 이런 부분이 있을 테고, 그게 다음 독서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현대까지 다 왔는데 아직도 두 개의 장이 남아있다. 7장은 [기후위기를 맞닥뜨리다]이다. 환경툰을 저술하신 작가님이니 이 내용을 한 개의 장으로 따로 다루신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여기에서도 눈에 꽂히는 문장들이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똑똑이 공룡이 사는 사회가 돈과 성장이라는 약속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야.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쓰는 일이 좋다고 믿는 사회 말이야. 이 믿음이 기후 위기를 키운 면도 있어.” (128쪽)
“중요한 건 모두가 함께 믿고 행동할 수 있는 약속을 만드는 거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약속을 모든 똑똑이 공룡이 다 같이 믿기 시작한다면, 다시 한번 세상을 바꿀 수 있어.” (129쪽)
이 약속과 믿음이 가능할까? 꼭 그래야만 하는데....

마지막 8장의 제목은 무엇일까? 이 책이 문학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서사가 있고 구성의 독창성이 있으니 마지막 장 소개는 덮어두는 것으로 스포를 방지하려고 한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 까마득한 옛날 인류의 시작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독서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공룡책이면서 역사책이고 과학책이면서 미래책입니다.”라는 이정모 관장님의 추천사가 아주 딱이다. 옥이샘의 다음 툰은 무엇일지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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