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의 여름 방학 - 2000년 프랑스 크로노 상, 트리올로 상, 발렝시엔 상, 피티비에 상 수상작, 2026 행복한아침독서 추천, 2025 학교도서관저널 추천, 2026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
야엘 아쌍 지음, 박재연 옮김 / 불광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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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야엘 아쌍의 이 동화는 20년 전에 국내에서 <수레국화마을의 어린왕자 모모> 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된 적이 있다고 한다. 최근 재출간한 이 책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작가의 이름이 낯설지는 않아 검색해보니 2007년 <색깔 전쟁>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났다. 이 책은 <색깔 전쟁>이 보여준 강렬하고 무거운 메시지와는 또 다른 결의 따뜻한 감동을 준다. '어린왕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한 이전의 제목도, 평이하게 작품의 배경을 담아낸 이번 제목도 모두 괜찮은 것 같다. 모모라는 소년이 겪은 초등 시절 마지막 여름을 그려내고 있다. 매우 중요한 만남이 있었다. 첫째는 책, 둘째는 사람.

그 사람이 또래가 아닌 어른이라는 점, 그리고 모모네 부모님이 모모를 살뜰히 보살필 여력이 없어 주로 외로운 시간을 혼자 보내고 있다는 점, 형은 다소 심술궂고 누나가 모모를 감싸준다는 점 등에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떠올랐다. 제제와 모모. 어딘가 비슷하고도 다르다.

이주민 노동자용 공동주택에 사는 모모에게 학교에 가지 않는 여름방학은 자유가 아닌 무료함과 쓸쓸함의 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모의 가능성을 알아본 교장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독서 목록을 건넨다. 모모는 처음으로 마을의 도서관에 등록하고 대출카드를 받는다. 책과의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실제로 우리의 삶의 질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갈수록 좋아지는 공간과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는 딱 한정되어 있다. 특히 젊거나 어린 사람들을 보기 힘든 점이 가장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모모의 도서관 등록은 환영할 일이고 소외된 아이가 세상과 연결되는 의미있는 출발점이다.

교장 선생님이 추천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야생의 삶>, 그리고 이동도서관 직원 수아드가 선물한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모두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들이다. 이처럼 '책 속의 책'을 활용하는 구도는 서사의 입체감을 더해준다.

첫 번째 책 <어린 왕자>는 에드와르 할아버지와의 만남과 나란히 진행되는 서사로서 의미있다. 두 사람은 모모가 책을 읽는 장소, 언덕 위의 벤치에서 만났다. 할아버지는 모모가 읽은 책의 목록을 듣고는 크게 기뻐한다. 자신을 은퇴 교사라고 소개한 할아버지는 "어린왕자와 너를 동일시했니?" 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모모는 머리 색깔부터 다르다며 손을 내젓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모모도 충분히 왕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모모를 왕자로 모시겠다고 한다. '수레국화마을의 어린왕자'로. 국내 초판본의 제목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주는 할아버지는 알고보니 근처 요양원에 살고 계시며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분이었다. 하지만 모모는 할아버지와 진심으로 대화하고 안보이면 걱정하며 끝까지 진정한 친구로 여긴다. 이 대목이 가장 놀라웠다. 12살 아이가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끝까지 가져간다는 것이.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모모는 할아버지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자기를 방어할 가시가 네 개밖에 없는 장미에 대해 어린 왕자가 책임감을 느낀 것처럼요." (113쪽)
조금만 부담되는 관계가 될라치면 미리 손절하라는 충고가 만연한 세상에서 어린 모모의 이런 책임감은 참 별스럽고도 숭고하다. 저절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와같이 원작의 텍스트가 인물의 상황에 맞게 유기적으로 변주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두번째 책 <방드르디, 야생의 삶>은 "무인도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지요." 정도로 잠깐 언급되고 지나가긴 했지만 작가가 굳이 고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작가는 로빈슨 크루소를 재해석한 이 작품의 메시지를 모모의 이야기 속에도 넣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주류 인간들이 '우월한 문명'이라 착각하는 것들에 대한 허상. 다르게 말하면 편견으로 타자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담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세번째 책 <자기 앞의 삶>은 어린왕자 못지않게 모모와의 '동일시'가 이루어지는 책이 아닐까 짐작한다. 일단 주인공 이름부터 같다. 게다가 이민자라는 배경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맹 가리는 결국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 사실은 모모의 꿈과 지향점을 보여준다.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심해져 언덕 위에서의 만남도 어려워진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마음을 쓰는 모모를 보며 할아버지의 마지막은 그래도 괜찮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식이나 친구들이 많아도 철저히 외롭게 떠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세대를 훌쩍 넘은 두 사람의 우정이 정말 흔치 않고 소중하다. 할아버지가 남긴 책 선물을 받은 모모, 국어시간에 '우정'이라는 글을 쓰는 모모를 보며 독자들은 편견을 넘어선 또다른 작가의 탄생을 예감한다.

130쪽 정도의 짧은 책이지만 그렇게 빨리 읽히지는 않는다. '책 속의 책'들이 어린이용 책들은 아니어서, 고학년은 되어야 권해줄 만하겠다. 청소년이나 어른이 읽어도 좋을 만한 책이다. 텍스트에 내포된 수많은 상징과 메시지를 세세히 파악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우정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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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고모부
윤여림 지음, 소복이 그림 / 사과잼롱롱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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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들도 많고 그 이름들도 다채롭다. '사과잼롱롱'은 또 어떤 출판사인가 하고 보니 이 책이 첫 책인 신생브랜드이다. 활발하게 책을 내고 있는 '우리학교' 출판사 내의 그림책주력 출판 브랜드인 것 같다. 사과잼롱롱. 흔히 지어낼 수 없는 이름이지만 뭔가 재미나고 신기한 것들이 나올 느낌이기도 하다. 딸기잼롱롱이면 이상했을 것 같은데 사과잼롱롱은 왜 어울리지?ㅎㅎ 출판사이름에 주목하는 일은 드문데 오늘은 그 이야기로 시작해 보았다.^^

윤여림 작가님이 소복이 작가님이랑 만났다! 이 조합 찬성일세 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다. 이 조합이 계속되길 바라는 독자들도.

윤여림 작가님의 이번 글은 판타지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혼재된 특별하고 새로운 느낌이고, 이제 눈에 익은 소복이 작가님의 그림은 익숙한 곳에서 어서 와 앉으라 손을 내미는 느낌이다.

코끼리 고모부. 고모부가 주인공이거나 제목인 적이 있었던가? 내가 읽어본 책들 중엔 없는 것 같다. 화자인 '하나'네는 외국 생활을 하다 귀국하며 잠시 고모댁에 머무른다. 근처로 집을 구해 이사를 한 후에도 고모 댁에 갈 일이 많다. 바쁘시다는 고모부는 가끔씩 볼 수 있었는데, 하나가 본 고모부는 코끼리였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지만 새학교 친구 기찬기만은 믿는다. 그에 더해 멋지다는 감탄까지.
"코끼리가 네 고모부라고? 멋지다." (14쪽)
이래서 진정한 판타지는 어린이들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하나는 고모네 갔다가 가족들이 모두 자기 일로 나가버린 빈집에서 코끼리 고모부와 시간을 보낸다. 고모부는 배가 아픈 것 같았고, 나비가 되길 원했던 어린시절의 얘기를 들려준다.

다음 계절에 하나는 병원에 입원한 고모부의 문병을 가고, 다음 해에 고모부는 집으로 온다. 의식을 잃은 채로. 가족들은 슬픔과 걱정에 잠긴 채로 고모부의 발을 주무른다. 말이 없던 고모부는 힘든 상황을 혼자 해결하려 하셨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많았고, 자신을 챙길 여유가 없었던 고모부의 사정을 그가 쓰러지고 나서야 사람들이 알게됐다.

슬픈 결말이다. 하지만 하나는 차가운 밤길을 밝히는 목련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코끼리였던 고모부가 나비로 변하여 날아간 모습을. 아주 환하고 평화로웠던 모습을. 고모부는 이제 더이상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은 걸까.

평생 호들갑 한번 없이 묵묵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도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멍은 있는 법이다. 그걸 하나가 알아보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간직한다. 그것은 죽음이 허무와 절망만은 아니던 아득한 기억으로 남았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는 우리는 누군가의 진짜 마음을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다 지나고 나서야 "아이고 그랬더래" 하지만, 그것마저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특히 코끼리 고모부처럼 견고해 보이는 사람들일수록, 안은 더 여리고 보드라울 수도 있다.

그분이 그렇게 환하고 가볍게 가셨다니 다행이다. 아직도 두려운 것을 보면 나의 믿음이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죽음은 작가님에게나 나에게나 더 오래 생각해야 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80쪽에 글밥도 꽤 되어서, 유아용 그림책이라기보단 전 연령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책이란 원래 전 연령 용이지만 이 책은 특히) '하나'가 되어 누군가를 떠올리는 사람, 코끼리 고모부가 되어 위로받는 사람, 자녀들이 되어 떠나보낸 기억에 새삼 눈물짓는 사람.... 다양한 감정을 불러올 수 있는 책이다. 혼자 읽어도 좋지만 책모임에서 함께 읽으면 공감 속에서 더 깊이 감상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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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ㅣ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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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의 최근 유명작들은 도서관에서 내 차례가 오기 어려워 이 책을 먼저 읽어보았다. 이 책 한권으로 작가의 작품세계를 알아보긴 힘들겠다. 비교적 소품 같은 책이었다. 이 책 바로 전에 뉴베리상 수상작인 어떤 동화책을 읽다 진도가 안 나가 겨우 끝냈는데, 이 책은 그 책의 반의 반도 안 걸려 다 읽었다. 무척 평이한 소재여서이기도 할 것이고 작품 길이도 150쪽 정도로 짧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매우 섬세하고도 무거웠다.

두 명의 주인공이 두 번 교차 서술한 이야기다. 기하와 재하. 이들은 여덟살 차이나는 재혼가정의 형제다. 배다른 이런거 아니고 각각의 가정에서 남으로 살다 재혼이라는 부모의 결정 때문에 가족으로 묶여버린 사이다. 둘이 친근하게 지내며 새 가정을 화목하게 묶었다면 좋았겠지만 감정이란 게 무척이나 복잡하고 미묘하여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참 슬펐던 것은 그 새 가족 4명 모두가 너무 이해갔다는 점이다. 결국 행복할 수 없었던, 그들의 상황과 감정과 순간의 결정과 행동들이 모두 이해되었다. 그러니 행복한 결말이란 엄청난 행운인가, 아니면 뼈를 깎는 노력인가, 그 합의 산물인가.

먼저 서술하는 기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형이다. 어릴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새로운 가족을 바란 적 없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새엄마와 어린 동생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들에게 딱히 적의는 없다. 그들이 애쓰고 노력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말랑해지지 않는다. 새어머니를 저기요, 그쪽, 이렇게밖에 부르지 못하고 간절하게 다가오면 이렇게까지 하지 마시라며 더 멀리 달아난다. 새 모자와는 달리 새 부자가 친근해지는 모습을 보며 나이차가 많은 동생임에도 질투심과 반발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곧 대학에 갔고 기숙사에 들어가며 가족에서 빠져나왔다. 군대에 가면서는 완전히 멀어졌다.

재하네 친아버지는 폭군이고, 사별이 아니었기에 화근을 늘 안고있는 셈이었다. 이것부터가 엄청 기우는 조건이라 새엄마와 재하는 늘 눈치를 살피며 노력한다. 엄마는 기하에게 하나라도 더 잘해주려 애를 쓰지만 그 시도는 늘 튕겨나오고, 재하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재하는 심한 아토피라는 약점까지 있었다. 눈치보며 약이나 바르고 있던 모자를 크게 꾸짖고 아버지가 재하를 대학병원에 다니게 한다. 일에 바쁜 부모 대신에 기하가 병원길을 동행한다. 화를 내거나 나쁜말을 하지도 않지만 딱히 가까워지지도 않으며 그 시간들이 지나간다. 그들이 치료 후 대학로에서 늘 함께 먹었던 중국냉면이 겨우 둘의 한조각 따스함의 추억이 되었달까. 땅콩소스를 좋아하지만 버벅대는 재하의 그릇을 가져가 잘 섞어주고, 자신의 땅콩소스를 얹어준 기하. 환하게 미소지은 재하. 순간 미세하게 보인듯도 했던 기하의 미소.

하지만 '이후로 둘은 다정한 형제가 되었습니다'는 되지 않았고 다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이 상황까지도 이해가 되었다. 미안해하고 눈치보는 재하와 엄마도, 마음이 도저히 안 열리는 기하도 이해된다. 이 가정을 지키려고 애쓰는 아버지도 참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재하에게 좋은 것으로 주려 애썼고 내탓이라 자책하는 엄마에게 늘 단호한 태도로 자신의 의지를 알렸다.

기하는 성인이 되었으니 제갈길 가고 이렇게 가정이 안정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기간은 4년이 끝이었다. 새엄마가 군에 있는 기하에게 전화해서 냉장고에 니가 좋아하는 콩잎짠지를 담가 놓았다고 말한 것은 이별 인사였다. 기하는 그것도 모르고 뜨악하고 짜증스럽게 받았을 것 같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다시 세우려 했던 두번째 가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기하와 재하의 두번째 서술들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이다. 먼저 기하. 그는 그동안 그 4년의 기억을 깨끗이 잊었을까. 아닌 것 같다.
"헤어진 이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었다.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한번쯤은 더 만나도 좋을 사람. 내 삶에서 재하와 재하어머니는 언제나 전자였다가, 언제는 후자가 되곤 했다." (98쪽)
이런 말도 있다.
"그들과 함께 살았던 날들을 떠올리면 불안하고 미숙했던 내가 재하 모자에게 안겨주었던 자잘한 상처만이 선명히 상기되었다." (97쪽)
어느날 우연히 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알게 된 기하는 그곳에 가본다. 그때와는 마음도 달라졌고 나이도 먹었지만 여전히 서툰 처신을 느끼며 돌아온다.
"재하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또 어떤 말을 나누게 될까.
이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132쪽)

기하가 왔던 날 하필 가게를 접는 모습을 보여줬던 재하의 마지막 서술이 이어진다. 그는 일본 고베에서 정착해 혼자 하루하루 일하며 단순하게 살아간다.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의 불안과 염오는 옅어져가는 채로, 남는 시간에는 그옛날 새아버지가 주셨던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그리고 지난 사진을 함께 보던 주인집 여자의 권유로, 아마도 받을 수 없는 편지를 형에게 부친다.

그들이 가족으로 묶였던 4년은 행복하기 어려웠지만 불행하지도 않았고, 좋은 기억이었다고 쉽게 말하긴 어렵지만 나쁜 기억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아쉬웠던 기억. 더 잘했었더라면 싶지만 다시 돌아가도 딱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과거. 미안함이 옅은 흉터처럼 남은 과거. 상대가 잘 지내길 바라지만 그걸 내가 해줄 수는 없어서 그저 빌어줄 수밖에 없는 관계. 이런 관계와 감정이 은은하지만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들이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행복을 빌며 아쉬운 기억 속의 추억 한조각을 아름답게 여기며 살면 좋겠다. 재하의 이야기 속에 어머니가 "재하야, 니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 라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재하는 형과 먹던 중국냉면이 떠올랐지만 "저는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대답을 듣지 못했어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무지근해졌다고 했다.(88쪽) 행복의 조각을 딱 맞추기는 어떤 이들에게 이토록 어렵다. 그래도 이들이 서로를 원망하지 않아서 난 다행스러웠다. 그것만으로도 나보다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성해나 작가의 작품세계 한쪽을 잘 느껴보았으니 다른 책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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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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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리뷰가 아니고 약간의 푸념 (불평) 같은 게 될거란 느낌이다. 20년이 넘은 이 유명한 책을 난 안읽어봤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나는 철저히 실용적인 독서를 했다. 소설이란 건 휴가때나 읽었다. 이제 좀 시간이 자유로워져 이것저것 찾아읽다보니 과거 유명작들을 뒤늦게 읽어보게 된다. 이 책은 최근작인 <아코디언>을 읽으려다가 능가하기 어려운 전작이 있다고 하길래 찾아 읽어봤다. 호불호가 강할 것 같은 작품이었다. 그중에 나는 불호였다.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500쪽이 넘는 분량을 한호흡...까진 아니고 두 호흡 정도에 다 읽었다. 문제는 잔뜩 인상을 쓰면서 읽었다는 것이다.ㅎㅎ 불편한 게 너무 많은 나의 한계다. 영화나 소설에 나올때 내가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보는 소재는 단연 '신체절단'이다. 여기선 그게 두번이나 나온다. 특히 '칼자루'라는 남자가 연상의 여인에게 사랑의 맹세로 수시로 손가락을 잘라 바칠 때 진짜 욕지거리가 나왔다. 내가 허구와 현실을 구분 못해서 그런걸까? 그러고보면 이 책은 한편에 리얼리티를 담고 있으면서도 다른 편에는 판타지를 담고 있다. 아름답고 달달한 판타지와는 대척점에 있는 '잔혹 판타지'다. 그런 점에서 민담과 비슷한 점이 있다.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하는 호랑이한테 팔다리 한개씩 턱턱 떼어주던 그 느낌에 대입하면 될까? 그러나 이 책은 엄연히 현대소설이기에 난 그게 잘 안되어서 계속 인상을 찡그리며 읽었다.

신체절단까진 아니어도 내게 불편한 소재는 어마어마한 식탐과 폭식, 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한 초고도비만이다. 나도 날씬하지 않으면서 뚱뚱한 사람 욕하면 되겠냐? 그정도가 아니고 일상생활도 못할 병적인 비만은 보기 힘들다. 먹는 행위에 대한 혐오가 느껴진다. 내가 먹방 유튜버들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런 혐오에 뿌리가 있는 것 같다. 이 혐오는 나의 문제이기도 한데 아직 극복을 못했다. 여기서 '걱정'이라는 거구의 남자가 말년에 이런 꼴이 되었는데 500kg가 되었다가 종국에는 1톤에 이르렀다는 대목에서 참나, 하고 실소가 나왔다. 이 대목도 '잔혹 판타지'에 해당되겠다.

남자 둘을 먼저 언급했지만 이 책의 주 서사는 세 명의 여인이 이끌어간다. 노파 - 금복 - 춘희. 이들의 정체성이 육체에 치중해있는 것도 읽기 불편한 이유 중 하나였다. 모욕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인간이 이런 존재이지만은 않지 않나? 아니 결국은 그런 존재라는 건가?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건가? 노파는 너무너무 못생겨서 그가 돌보던 반편이라는 부잣집 아들과 성적인 사단이 나고, 금복은 너무 예쁘고 성적매력이 출중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남자와 사단이 난다. 그리고 그 상대 남자를 죽이거나 죽게 한다. 갈구하고 탐욕하며 복수한다. 본인도 파멸하며 '잔혹 판타지'를 거세게 몰아간다.

금복의 딸인 춘희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그도 거구라는 육체적 정체성에 갇혀 살았고 지적 장애에 벙어리였지만 유일한 친구였던 코끼리와의 소통으로 훨씬 더 깊은 정신세계를 가진 느낌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표현을 못한다. 그래서 말없이 모든 저주와 고통을 다 감당하며 살아간다. 슬픈데 슬픔을 모르고 외로운데 외로움을 모른 채로.

이 거대하고 거침없는 잔혹극에서 가끔 신나는 장면은 생산성이었다. 주로 금복이 이걸 담당한다. 우연과 행운이 겹쳐 횡재가 찾아오자 금복은 엄청난 스케일로 각종 사업을 벌여나간다. 그중 벽돌공장에는 무모할 정도의 투자를 한다. 금복의 수많은 남자 중 한명이었던 문이라는 이가 거듭된 연구와 실패 끝에 탁월한 벽돌을 개발하고, 그게 생산되어 신나게 팔려나갈 때 독자의 기분도 좀 좋아진다. 전화위복과 전복위화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몰락의 위기와 생산성의 희열이 번갈아 찾아와 독자를 들었다놨다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종말은.....

폐허 속에 춘희가 다시 등장한다. 상황 이해도 잘 못하는 춘희가 그 폐허 속에서 일구고 얻고 그리고 잃고 상해가는 장면들은 앞의 두 여자의 느낌과 왠지 다르다. 그리고 벽돌.... 그가 세상과의 소통도 없는 상태에서 집념처럼 구워내는 벽돌. 그 생산성에서는 어떤 경건함마저도 느껴진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야 앞의 혐오감이 좀 씻어진다. 알라딘 리뷰에서 '재미는 있었지만 오물에서 뒹굴다 나온 느낌' 이라는 한줄평을 읽고 공감했다. 하지만 춘희의 벽돌은 우리에게 발이라도 씻게 해주는 느낌이다.

나는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가 엄청난 이야기꾼인 것은 알겠는데, 그걸 다 즐기지는 못한 느낌이다. 새로운 경험의 독서이긴 했다. 유쾌했건 아니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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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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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튜브에서 소설책 소개 쇼츠영상이 자주 뜬다. 내가 검색해본 적은 없는데, 언젠가 우연히 뜬 것을 내가 눌러봤을 테고, 그 이후부터는 알고리즘으로 계속 뜨는 것 같다. 그러다 한 영상에서 감동적인 우리나라 소설 몇권을 소개하는데 이 책이 제일 먼저 나온 것을 보았다. 짧은 영상이라 내용까지 소개해주진 않았고 제목과 표지에 ‘잔잔한 로맨스 소설’ 정도로만 소개했다. 소설을 많이 안 읽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책이었다. 검색해보니 어머나! 엄청나게 팔린 책이네. 지금 팔리는 건 개정판이고 처음 나온 때는 2004년, 초판부터 합치면 100쇄를 넘게 찍었다나? 20년 넘은 로맨스 소설이 아직도 먹히나? 나도 한번 읽어보자 하고 집어들었다.

로맨스 세포가 다 죽을 나이라 엄청난 감흥은 없었으나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다. 유명 작가가 쓴 소설들을 읽을 때도 과제 같은 느낌으로 읽을 때가 있다. 부분적으로 지루하거나 어렵거나 읽기 힘들어서. 하지만 이 책은 드라마 보는 정도의 난이도였다. 5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드라마 제작 말이 오락가락 했었다고 하던데 왜 안 만들어졌까? 주인공들의 직업도, 감정선들도 드라마로 딱이었을 것 같은데?

로맨스치고는 현실적이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나 싶다. 재벌 3세 본부장님 그런 남자 나오지 않고, 출생의 비밀도 없고, 질투하고 대립하는 연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아주 살짝은 있는데 귀여운 수준) 한마디로 막장 요소는 없다. 신데렐라 스토리도 아니고 타임슬립, 영혼체인지, 귀신 서사 그런 것들도 나오지 않는다. 사랑이 너무 격렬하여 모든 것을 휩쓸어가지도 않고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며 ‘이게 현실이야’ 라고 말해서 독자들을 우울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현실적이면서도 최대한 달달한, 적당한 설렘을 가진 로맨스라고 하겠다. 작가님이 그런 전략을 세우신 것 같지는 않지만 본의아니게 매우 좋은 전략이었던 셈이다.

나는 남녀가 만나는 방식이 ‘함께 일하다 정드는 방식’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게 좋은 점은 두 가지다. 일단 그 사람의 포장 안한 생활모습과 삶의 방식 등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직장에 있으면 직장 가기가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ㅎㅎ 이 책의 직장은 라디오 방송국이다. 공진솔은 작가고 이건은 PD이다. 음... 이 직업도 약간 클리셰 같긴 한데 작가 약력을 보니 라디오 구성작가였다고 한다. 본인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직업군을 고른 셈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현장감이 넘쳤다. 뭔가 조사하고 글쓰고 하는 작업을 좋아하는 나는 젊을 때로 돌아가면 저런 일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치열하면서도 안정감은 부족한 일이니까. 쉬운 직업이란 없다.

둘이 그렇게 일로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특히 공진솔 작가는 말과 표현이 적은 매우 조용한 사람인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보고 싶어 먼저 고백한다. 소설 속의 사랑에 난관이 없을 수는 없는 법. 그 난관은 이건 PD의 오랜 친구 커플에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주된 서사는 이건-공진솔, 선우-애리 두 커플이 이끌어간다. 선우-애리 커플의 인사동 카페에서 넷이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넷은 각각 꽤 괜찮은 성품들을 가졌고 서로를 존중하며 편하고 즐겁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뇌관이 있다. 이걸 치워야 한다. 그것 때문에 조심스럽고, 그것 때문에 아프게 바라보며, 어느날 터져버린 바람에 모든 것은 엉망이 된다.

내 수준에선 그게 극복할 수 없는 사건 같았는데, 생각하기에 따라선 그정도로 끝장은 아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고.... 어쨌든 둘이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수없이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회피하지 않으며 천천히 나아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확실히 요즘 연애랑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두 커플 다 마찬가지다.

작가 소개를 보니 눈에 익은 제목도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 책이야말로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이네. 그걸 한 번 볼까. 파괴적이거나 참혹하지 않은 것도 가끔은 보고 싶거든. 이런 건 딱 명절연휴 때 전 부쳐놓고 잡으면 기분 느긋하고 좋을 것 같아. 지금 나는 연휴가 따로 없으니까 아무 때나 한번 봐볼까 싶다. 살찌니까 전은 생략하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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