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그린이에게
유순희 지음, 오승민 그림 / 반달서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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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희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는데, 오늘 도서관에서 비교적 신간(작년에 나옴)을 발견했다. 표지가(책등이) 어둡고 책이 얇아서 눈에 안띌 뻔했다. 펼쳐보니 <우주호텔>과 비슷한 판형과 두께이고, 그림도 같은 작가님(유승민)이 그리셔서 상당히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또야?라는 느낌이 아니고 '아 나 이거 그리웠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내용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느낌과 비슷한 느낌이 동시에 들어있다.

샛별빌라 3층에 엄마와 그린이 단둘이 이사왔다. 1층 세차장 소음 때문에 월세가 싸서 들어온 거라 하니 그럴 사정이 있을거다. 돈도 없고 딱히 능력도 없고 주변에 든든한 사람도 없는 연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쓰시는 작가님이 바라는 세상을 나도 같이 바란다.

그날따라 늦는 엄마를 기다리다 그린이는 혼자 울고 있는 엄마를 발견한다. 엄마는 오늘 처음 나간 식당 청소 일에서 잘렸다. 게으르거나 꾀를 부리는 사람도 아닌데 엄마는 늘 이런 식이다. 딸을 지켜야 하는 사람인데 작고 허약하다. 하지만 작가님은 이 상황을 절망으로 끌고가지 않았다.

엄마는 막막하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묻는 그린이애게 '아주 크다는 거'라고 대답했다.
"어떤 게 엄마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너무너무 커서 넘어갈 자신이 없어."
하지만 그린이는 숲에게 "네가 숲보다 크지." 라는 말을 듣는다. 그린이의 가까이에 숲이 있는 건 너무나 다행이다. 그린이는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숲이 있었기에 다시 채워지고 회복되었다. 그린이 또한 조용하고 작은 아이다. 하지만 엄마를 세울 수 있었다. 두 존재는 서로 기댄다. 그래도 된다. (한쪽만 너무 오래 그러는 건 좋지 않지만)

엄마를 가로막은 '큰 것'이 그린이라고 없었을까. 유독 그린이를 괴롭히는 아름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크기'는 어느새 달라보이기도 한다. 엄마도 그럴 수 있을 거다.

새로운 희망은 숲을 그린 그린이의 그림에서 솟아나온다. 겁보 청설모를 그린 처음 그림부터, 교실 어항의 사라진 물고기들이 솟구치는 그림, 그리고....

엄마는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 그 직업을 보는 순간 이게 실제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닌데도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구청 소속의 거리 정원사. 출퇴근길에 잘 조성된 공영 화단을을 보면 누가 이렇게 잘 가꾸시는 걸까 생각하곤 했는데, 그린이 엄마가 그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작은 이들이 힘을 내는 이야기가 내 마음을 채워주는 건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빛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은 극히 소수다. 빛나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것 뿐이다. 세상에 작은 이들이(나포함) 자책하지 말고 막막한 길을 한걸음씩 잘 걸어갔으면 한다.

숲과 아이, 그리고 그림
세 개의 키워드가 엮어낸 이야기다. 제목을 다시 읽어본다. 여러가지 의미가 담겼다.
숲을 그린이에게.

이 책 또한 그림이 큰 역할을 한다. 유승민 작가님의 그림은 삽화 이상이다. 다른 그림으로는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큰 역할이다. 짧지만 큰 이야기와 거칠고도 따뜻한 그림이 결합, 우주호텔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밝음과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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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여름방학 보름달문고 97
이퐁 지음, 오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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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누구나 환상적인 생각의 조각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음...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르겠다. 우리 때는 그랬던 것 같다. 문제는 그것이 있다가 스스르 녹아 없어졌느냐, 용케 남아서 조각들이 튼튼하게 연결되어 구성되었느냐의 차이 아닐까. 작가님들은 후자이겠다. 나는 당연히 전자고. 그래서 나같은 독자들은 이런 책을 읽으면 아련한 추억같은... (마치 전생의 기억 같기도 한) 느낌을 갖게된다. 생각이 날듯말듯한 오래된 꿈 같기도 한.

다섯 편의 단편 중 두 번째 [왼쪽 세상에 가본 적 있어]가 특히 그랬다. 이 이야기는 ‘크라메싫어’ 라는 닉네임의 작성자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이야기와 그 댓글들로 구성된다. 게시판 분류를 보니 [살다보면>이것좀봐줘]로 되어있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이것좀봐줘’ 라는 게시판의 익명 독자들에게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왼쪽 세상과 오른쪽 세상 모두를 볼 수 있었다. 남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게 부모님을 매우 걱정시켰다는 것도. 아이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고(그곳이 왼쪽 세상에는 크라메라는 식인물고기가 우글우글한 강이었다) 그래서 유치원도 다니지 못하며 혼자 컸지만, 왼쪽 세상 덕에 혼자가 아니었다. 특히 거기서 만난 특별한 친구 덕분에. 하지만 지금 아이는 왼쪽 세상을 보지 못한다고 썼다. 왼쪽 눈에 사시 같은 증상 때문에 부모님 걱정이 컸는데, 그걸 교정하는 안경을 쓰자 왼쪽 세상도 사라졌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련하다.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다일까? 그걸 어떻게 확신하겠는가?

첫 번째 작품 [인터스텔라 여름방학]이 표제작이다. 우주여행을 하는 진짜 SF이면서 예상 외의 황당한 줄거리인 점이 마음에 든다. 명왕성 여행이 가능해진 미래인데, 자식을 최고 클라스로 만들려고 최고급 과외를 시키는 것은 여전하다고? 그것도 명왕성 행 우주선에서? 하지만 엄마는 속았다. 그 우주선은 명왕성으로 향하지 않았고, 루하에겐 지구를 변호해야 할 책임이 난데없이 주어진다. 과연 루하는 그걸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세 번째 [돔돔세 견문록]은 내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화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부터. ‘쳇2153’이라는 이 지적존재는 고유의 신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대신 어떤 로봇에든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는 OP404라는, 오퍼튜니티의 후손 격인 구식 로봇의 몸에 들어가 임무수행을 하다가 어느 외딴돔에 도착하게 되는데... 여기 사는 로봇들의 이름에서 유머와 편안함이 느껴진다. 빙고, 옥산나, 유남생, 옥토팔 등. (이들은 번호로 부르지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망각의 전자기폭풍이 휩쓸어 방대한 데이터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고, 넝마같이 남아있는 데이터로 이런저런 유추를 하며 살아가는 시대였던 것이다. 하긴 그렇네. 우린 왜 데이터는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나. 이런 시대에 결정적인 진실의 조각은 낡은 공책에 남겨진 손편지 한 장.... 이 미래의 미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을 보면 작가는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따뜻하다고? 어쨌든 다정하니 좋다.

[그날, 사비가 물었어]는 잘 뜯어보면 정말 슬픈 이야긴데.... 세상 막다른 곳에 몰린 아이가 초공간 차원 이동 파견 여행자에게 발견되어 함께 떠나는 이야기다. 지구 기준으로 말한다면 참혹한 결말이지만 ‘초공간 차원 이동 수기 공모전’에 낼 이 글을 쓰고 있는 아이는 전혀 불행하지 않다. 그 수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다만 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어휴. 그래,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근데 그래도 되나.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내가 뭘 알겠어. 다만 이렇게 막다른 곳에 몰리는 아이들을 지구인들도 발견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로맨스로 마무리? 제목은 [한여름의 랑데부]다. 여름이와 산이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다. 근데 뭐, 이런 말이 있잖아. 사랑이 별거냐. 호르몬의 작용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여기서는 그게 몽에뚜와르들의 동족 상봉을 위한 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난 그렇게 해석해서 너무 웃겼는데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호르몬 어쩌구 하는 것보다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문학적이냐. 그들의 랑데부를 그들은 개인사라고 생각했겠지만 몽에뚜와르들 입장에선 역사적 장면이었다니. 뭐 어떻게 생각하든 어떠랴. 인간의 눈에 안보이는 것은 얼마나 많으며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야기들이 요즘 다 그게 그거 같다고 느끼는, 권태기(?)에 들어선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겠다. 색다른 느낌과 상상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익숙하고 편안한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색달라서 ‘??’와 ‘ㅋㅋ’의 느낌으로 보게 되는 작품들도 가끔 읽어주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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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모두 귀여워 작은 스푼
아시하라 가모 지음, 나카다 이쿠미 그림, 김윤수 옮김 / 스푼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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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쓴 작품들을 보면서도 놀라지만 이렇게 사소한 일상을 가지고 쓴 작품들도 못지않게 놀랍다. 이런 걸 보면 ‘이런 일도 책이 돼? 그럼 나도 쓰겠네’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런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일상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순간을 특별하게 포착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으니까. 일상을 특별하게. 이게 진짜 대단한 능력인 것 같다.

처음 보는 일본 작가의 책이다. (국내에 이 책만 번역되어 있음)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의 세 가지 사건을 엮어 한 권의 동화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아야라는 여학생이다. 수줍어하고 소극적인 면도 있지만 속으로는 잘해보고 싶어하는 의욕이 충만하기도 하다. 첫 번째 이야기, [평소와 다른 특별한 나]에서는 연극 발표회, 두 번째 [병아리가 되지는 못하지만]에서는 모둠별 춤 발표회를 한다. 아야가 잘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망설일 때, 그 마음을 알아본 친구들이 추천하고 응원해주어 아야는 열심히 연습한다. 위에서 내가 사소한 일상이라고 했는데, 사실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야도, 아야네 반 아이들도 어떻게 보면 평범하지 않다. 평범하다기에는 너무 좋은 성품들을 갖고 있다. 일단 주어진 학급의 행사에 시큰둥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배역을 정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시기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고 친구들을 격려하거나 축하해 준다.(이게 특별히 인상 깊었다. 교사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서) 그리고 맡은 일을 잘해내려고 스스로 찾아보며 기본 이상의 노력을 한다.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을 찾아본다든가, 집에 가서 영상을 찾아본다든가 등등 시킨 일 이상으로 스스로의 정성을 더 들인다.

첫 이야기의 주요 소재는 율무열매인데, 아야는 실수로 그걸 귓구멍에 넣어버렸다. 걱정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특별한 일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표시로 생각한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귓구멍에 들어있는 율무열매 때문인가 생각하는 아야가 허당 같으면서 귀엽다. 아이들의 책임만은 아니겠지만 요즘은 해맑은 아이들보다 어둡거나 꼬였거나 예민하거나 거칠거나 퉁명스럽거나 부정적이거나 하는 아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이런 아이, 이런 교실이 오랜 추억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너무 완벽하면 아이들이 아닌 것, 세 번째 이야기 [어떤 딸기도 모두 귀여워]에서는 남학생 두 명과 아야가 빈 미술실 구멍난 천장 속에 기어들어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ㅎㅎ 그리고 이 편에선 아야가 ‘딸기 경연 대회’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경연 대회가 뭔가 했더니 그냥 혼자서 딸기 한 팩을 놓고 어떤 딸기가 예쁜가 뽑는 일이었다.ㅎㅎ 나도 어렸을 때 딸기는 아니었지만 이런 비슷한 걸 혼자 하면서 놀기도 했었는데, 요즘 이러면서 노는 아이가 있으려나? 아야도 어릴 때 이후 아주 오랜만에 해보았다. 응? 그런데 어릴 때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챔피언을 뽑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 딸기는 이래서 예쁘고, 저 딸기는 저래서 예쁘고. 결국 아야는 새로운 생각 하나를 갖게 되었다. 이럴 때 아야는 자기만의 공책을 꺼내서 적어놓는다.
딸기는 모두 모양이 달라.
그래서 모두 귀여워.
그래서 모두 맛있어.
-괴테
(괴테가 왜 나와? 이건 아야의 귀여운 무식과 허당력을 보여줌^^)

이렇게 사소한 일로 이런저런 궁리와 상상을 하고 그걸 글로든 뭐든 표현하는 게 내가 느끼는 이 아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건 큰 장점이자 역량이기도 하지 않을까? 난 교실에서 이런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또하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아야의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아야와 친구들을 마주치자 장난을 걸었다. 아야가 무반응이자 “에이, 아야는 상상력이 없구나.” 라고 하셨는데, 아야는 내심 이 말씀이 속상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부모님이 웃으며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 아이에게 일러주었다. 그 말을 듣고 오해를 풀며 선생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아야. 몬스터 부모는 일본이 원조이니 일본에도 “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다니, 정서 학대 아닌가요?” 하면서 화를 내는 부모들이 있지 않을까? 고의적 잘못이나 치명적 실수가 아니라면 서로 이해할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말이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장면인데 나는 부러움을 느끼며 읽었다.

이 책은 빵으로 치면 그냥 식빵 뜯어먹는 맛이라고 할까. 누군가는 참 밋밋한 이야기네, 이게 재밌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오랜 기간 읽다보니 이제 나의 취향이 보여. 충격적 반전이나 스펙터클한 사건도 좋지만 평범하고도 살짝 별나고 기특한 이런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이야기들이 좋아. 수없이 많은 작품 중에 이 작품을 출간하려고 번역하신 이유도 그래서일까? 덕분에 잔잔하고 평화로운 동화를 한 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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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상상하고 해석하며 다시 생각하기
데니스 수마라 지음, 오윤주 옮김 / 노르웨이숲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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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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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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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자전거 여행 4 - 세상 끝으로 창비아동문고
김남중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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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이 작년에 나왔었구나. 모르고 있다가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발견하고 빌려왔다. 1권에서 2권이 나오기까진 10년이 걸렸는데, 이후로는 주기가 짧아진다. 4권은 약 1년만에 나온 것 같다. 부제가 ‘세상 끝으로’ 여서 이번 권이 완결편인가 생각하며 읽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마지막에 호진이가 새로운 자전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을 보니 5권에서는 호진이가 이끄는 여정이 되겠구나 짐작해보았다. 짐작이야 틀려도 되는 거니까...^^;;;

앞에서 부제 이야길 했는데 ‘세상 끝으로’라니, 이게 무슨 일일까?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였다. 나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얘기는 많이 들어봤다. 호진이의 할머니가 간절히 원하셔서 시작하게 된 여정. 엄마와 호진이가 동행한다.

호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자전거로 최대의 성취감을 맛보았던 6학년 시절은 그저 한때의 기억일 뿐이었다. 공부도 못하고 특별한 재능도 없는 호진이는 붕 떴던 발이 땅에 닿은 듯이 갑갑한 현실과 마주한다. 조금 아쉽긴 했다. 그정도 체험을 통해 성장했으면 공부를 못하더라도 뭔가 멋지게 살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하지만 이게 보통 현실이다. 그리고 이번 네 번째 여정에서 호진이는 앞선 세 번의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이 자전거 시리즈의 매력은 작가님의 경험이 배어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작가님이 자전거 매니아이고, 이 시리즈에 나온 코스 또한 모두 직접 다녀오신 것이라 머리로만은 쓸 수 없는 현장감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번 권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마찬가지로 직접 다녀오셨다고 한다. 그것도 사춘기 아들이랑 말이다. “둘째는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고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순간순간 부딪쳤다.” 작가의 말에 있는 이 내용이 너무나 상상이 간다. 나도 사실 도전의식이나 호기심이 평균보다 부족한 인간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나보다도 더하니까.... 이렇게 작가님의 경험을 배경으로 했지만, 호진이는 어른들에게 툴툴대며 다닐 상황이 못되었다. 항상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밀어붙여지는 호진이. 물론 그래야 독자들이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가 될 테지만....^^

자전거 여행 시리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걷는' 여행이다. 음 그런데 자전거라는 제목을 붙여도 되나?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후반부에는 자전거를 타야 하는 상황이 닥쳐올 뿐 아니라 이 먼 곳에서 여자친구(전편들에 등장하는 '여행하는 자전거 친구') 멤버들의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한다. 읽는 내가 다 고맙고 반가웠다.

할머니가 이 여행을 고집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평생 일만 하시느라 여행 한 번 못해보신 분이 국내도 아니고 스페인까지 웬 고집인가 싶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었다. 나라면 마지막 아니라 마지막 할아버지라도 그런 일은 벌이지 않을 것 같지만... 왜냐하면 어떤 불상사가 닥칠지 모르고, 그러면 딸과 손자에게 너무 미안한 일일 거라서. 하지만 할머니의 의지(내 관점에선 고집)는 강했고, 여정은 점점 극한으로 향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해냈다. 할머니가 그렇게 가보고 싶어한 ‘세상의 끝’ 까지.

사람은 가끔씩 만나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들 한다. 너무 붙어있으면 좋은 면만 보여주기 어려우니. 그래서 여행을 해봐야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던가. 3대는 이번 여행 중 자주 싸웠다. 특히 할머니와 엄마가 그랬다. 호진이가 알지 못했던 젊은 시절 엄마의 꿈, 상처, 할머니의 슬픔 등이 여행 중에 다 터져나왔다. 상처가 터졌으니 아물기도 했고 화해도 있었다.

내 기준 너무 무모했던 여정에 도움이 손길이 있었던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을 값없이 도와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 참혹하다는 소설이나 영화에 반기를 들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도 인간이고 이런 모습도 인간이니, 인간은 참 규정하기 어려운 연구 대상이다.

그 힘든 여정 중에 몇 번의 미사가 있었는데, 매주 습관적으로 참석하는 예배와는 다른 신성함이 느껴졌다. 인간은 그래서 안주하면 썩는 존재인 건가... (그래도 안주하고 싶다ㅠ) 여행자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그 기도는 또 얼마나 진실한지. 그 길을 걷는다고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나는 그렇게 멀리까지 갈 생각이 없지만, 그래도 그 길을 걸으며 주변 풍경도, 걷는 사람들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인상적인 장면이 매우 많았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이 장면을 꼽고 싶다.

돌아온 호진이는 피할 수 없는 슬픔을 겪어냈고, 앞에서 언급했던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이 시리즈의 다음 권 줄기가 어떨지 짐작되는 결말이다. 그리고 앞에서 내가 호진이를 보며 약간 실망했던 부분은 마지막에 채워져 있었다. 그 부분을 적으면서 마치겠다.

“지금까지 인생은 자전거 여행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전거에서 내리면 나는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자전거에서 내리더라도, 인생은 걸어서라도 어떻게든 계속 가야 하는 순례였다. 어디를 가든, 어떻게 가든 과정이 더 중요한 여행. 과정이 아름다우면 결과가 어떻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꽃밭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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