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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자전거 여행 4 - 세상 끝으로 ㅣ 창비아동문고
김남중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4권이 작년에 나왔었구나. 모르고 있다가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발견하고 빌려왔다. 1권에서 2권이 나오기까진 10년이 걸렸는데, 이후로는 주기가 짧아진다. 4권은 약 1년만에 나온 것 같다. 부제가 ‘세상 끝으로’ 여서 이번 권이 완결편인가 생각하며 읽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마지막에 호진이가 새로운 자전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을 보니 5권에서는 호진이가 이끄는 여정이 되겠구나 짐작해보았다. 짐작이야 틀려도 되는 거니까...^^;;;
앞에서 부제 이야길 했는데 ‘세상 끝으로’라니, 이게 무슨 일일까?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였다. 나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얘기는 많이 들어봤다. 호진이의 할머니가 간절히 원하셔서 시작하게 된 여정. 엄마와 호진이가 동행한다.
호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자전거로 최대의 성취감을 맛보았던 6학년 시절은 그저 한때의 기억일 뿐이었다. 공부도 못하고 특별한 재능도 없는 호진이는 붕 떴던 발이 땅에 닿은 듯이 갑갑한 현실과 마주한다. 조금 아쉽긴 했다. 그정도 체험을 통해 성장했으면 공부를 못하더라도 뭔가 멋지게 살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하지만 이게 보통 현실이다. 그리고 이번 네 번째 여정에서 호진이는 앞선 세 번의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이 자전거 시리즈의 매력은 작가님의 경험이 배어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작가님이 자전거 매니아이고, 이 시리즈에 나온 코스 또한 모두 직접 다녀오신 것이라 머리로만은 쓸 수 없는 현장감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번 권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마찬가지로 직접 다녀오셨다고 한다. 그것도 사춘기 아들이랑 말이다. “둘째는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고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순간순간 부딪쳤다.” 작가의 말에 있는 이 내용이 너무나 상상이 간다. 나도 사실 도전의식이나 호기심이 평균보다 부족한 인간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나보다도 더하니까.... 이렇게 작가님의 경험을 배경으로 했지만, 호진이는 어른들에게 툴툴대며 다닐 상황이 못되었다. 항상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밀어붙여지는 호진이. 물론 그래야 독자들이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가 될 테지만....^^
자전거 여행 시리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걷는' 여행이다. 음 그런데 자전거라는 제목을 붙여도 되나?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후반부에는 자전거를 타야 하는 상황이 닥쳐올 뿐 아니라 이 먼 곳에서 여자친구(전편들에 등장하는 '여행하는 자전거 친구') 멤버들의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한다. 읽는 내가 다 고맙고 반가웠다.
할머니가 이 여행을 고집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평생 일만 하시느라 여행 한 번 못해보신 분이 국내도 아니고 스페인까지 웬 고집인가 싶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었다. 나라면 마지막 아니라 마지막 할아버지라도 그런 일은 벌이지 않을 것 같지만... 왜냐하면 어떤 불상사가 닥칠지 모르고, 그러면 딸과 손자에게 너무 미안한 일일 거라서. 하지만 할머니의 의지(내 관점에선 고집)는 강했고, 여정은 점점 극한으로 향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해냈다. 할머니가 그렇게 가보고 싶어한 ‘세상의 끝’ 까지.
사람은 가끔씩 만나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들 한다. 너무 붙어있으면 좋은 면만 보여주기 어려우니. 그래서 여행을 해봐야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던가. 3대는 이번 여행 중 자주 싸웠다. 특히 할머니와 엄마가 그랬다. 호진이가 알지 못했던 젊은 시절 엄마의 꿈, 상처, 할머니의 슬픔 등이 여행 중에 다 터져나왔다. 상처가 터졌으니 아물기도 했고 화해도 있었다.
내 기준 너무 무모했던 여정에 도움이 손길이 있었던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을 값없이 도와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 참혹하다는 소설이나 영화에 반기를 들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도 인간이고 이런 모습도 인간이니, 인간은 참 규정하기 어려운 연구 대상이다.
그 힘든 여정 중에 몇 번의 미사가 있었는데, 매주 습관적으로 참석하는 예배와는 다른 신성함이 느껴졌다. 인간은 그래서 안주하면 썩는 존재인 건가... (그래도 안주하고 싶다ㅠ) 여행자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그 기도는 또 얼마나 진실한지. 그 길을 걷는다고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나는 그렇게 멀리까지 갈 생각이 없지만, 그래도 그 길을 걸으며 주변 풍경도, 걷는 사람들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인상적인 장면이 매우 많았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이 장면을 꼽고 싶다.
돌아온 호진이는 피할 수 없는 슬픔을 겪어냈고, 앞에서 언급했던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이 시리즈의 다음 권 줄기가 어떨지 짐작되는 결말이다. 그리고 앞에서 내가 호진이를 보며 약간 실망했던 부분은 마지막에 채워져 있었다. 그 부분을 적으면서 마치겠다.
“지금까지 인생은 자전거 여행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전거에서 내리면 나는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자전거에서 내리더라도, 인생은 걸어서라도 어떻게든 계속 가야 하는 순례였다. 어디를 가든, 어떻게 가든 과정이 더 중요한 여행. 과정이 아름다우면 결과가 어떻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꽃밭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