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줄리아 와니에 지음, 성미경 옮김 / 분홍고래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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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의 색감이 참 좋은 그림책이다. 들쥐는 빨강, 산토끼는 하양, 여우원숭이는 노랑. 그리고 주변의 땅이나 나무 색깔들도 수채화가 줄 수 있는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색과 붓터치만으로도 좋은 느낌을 주는 책.

게다가 중심 소재인 '열쇠'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열쇠는 말 그대로 잠긴 것을 '여는' 물건이다. 갇힌 데서 뛰어나올 수 있게, 속박에서 풀려나게 해주는 물건 열쇠. 그게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들쥐, 산토끼, 여우원숭이가 사이좋게 길을 간다. 어디엔가 도착한 그들은 땅에 묻힌 열쇠를 발견하고 힘을 합해 꺼낸다. 그리고 문을 발견하는대로 열쇠를 꽂아 돌려본다. 문을 열자 새들이 날아오르고, 얼룩말과 거북이가 몰려나온다. 호랑이도! 그곳은 바로 동물원이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날듯이 달려 정원 문을 뛰어넘어가는 호랑이의 날렵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 친구가 마지막으로 연 문에는.... 누가 있었을까?^^ 열쇠를 제자리에 돌려 놓으며 이책은 끝난다.

동물원에 대하여 의문을 던지는 책임을 책장을 몇장 넘기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동물원 논란. 이제 꽤 확산된 것 같다. 6학년 국어교과서 토론 단원에도 아예 도입 논제로 나와있을 정도다. 그때 활동했던 패들렛에 다시 들어가보니 아이들이 이런 의견들을 남겼다.

"동물원은 자유를 구속하는 것도 있지만 동물을 보호해 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멸종위기종 이런 동물들은 특별히 보호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물원이 없다면 아이들에게 실제 동물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교육을 완벽하게 할 수 없습니다." (찬성측 의견)

"원래 넓은 초원에서 살던 동물들이 사람들을 위해서 그 좁은 우리에 갇히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동물원에 가서 행복해 하고 실제 동물도 구경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것보다 동물들의 건강과 행복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반대측 의견)

토론을 시켜 보면 동물원 반대 쪽의 근거가 좀더 설득력 있다는 느낌을 늘 받는다. 인간의 필요보다 앞서는 것이 생명체의 권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동물원의 순기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동물권을 지켜 주는 동물원'을 모색해 보는 것이 필요할까?

가능만 하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명체의 자유와 본능을 극도로 제한하고 인간의 볼거리를 위해서만 살아가게 하는 동물원은 없애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렸을 때 동물원에 가봤고 내 자식들을 데리고도 가봤지만, 굳이 그렇게 동물을 보지 않아도 괜찮다.

이 그림책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며 세상은 좀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인간의 편의가 최우선되는 세상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세상으로. 뒷면지에 도약하는 호랑이의 뒷모습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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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혼나는 기술 그래 책이야 38
박현숙 지음, 조히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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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숙 작가님 책 리뷰 쓸때마다 하는 말인데 대형 국수기계인가.... 무슨 이야기가 끊임없이 초스피드로 좔좔좔 뽑아져 나오는지.... 나오는대로 다 읽진 못하지만 가끔 한권씩 읽어보면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재미는 다 보장한다. 이 책도 그러했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궁금했다. 어느정도 예상 가능은 했지만....^^

그건 바로 '진정성'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가치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까. 물론 '잘 혼나는 기술'이 있는 건 사실이다.ㅎㅎ 나도 그 기술을 구사해 봤던거 같고 교사로 살면서는 그 기술에 많이 당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3학년 오도룡은 늘 억울하다. 자기만 많이 혼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도룡이에게 조언을 해준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 친구였다. 도룡이보다 혼날 짓을 더 많이 하는 수용이. 그런 주제에 "내가 볼 때 오도룡 너는 문제가 많아." "너는 혼날 때 '나 좀 더 혼내 주세요, 혼내 주세요.' 이런다는 말이야." 하고 충고를 한다. 결국 '잘 혼나는 기술'을 전수해준다.

여우짓이긴 해도, 현실에서 볼 때 이거라도 갖추었으면 싶은 아이들이 있긴 하다. 수용이가 전수한 그 기술인즉 첫째 세상에서 가장 반성하는 표정 짓기, 둘째 귀 틀어막기(상대방 말에 발끈하지 않는단 뜻), 셋째 1분에 한번씩 죄송합니다 말하기. 일리가 없진 않다. 적반하장인 태도에 상대방은 더 화가 나기 마련이니까. 이 단계까지만 가도 중간은 간다. 적반하장 곰일바엔 여우가 낫다.

하지만 사람은 마음이 전달되는 존재. 기술이 다는 아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태도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상대방의 마음까지 움직일 순 없다. 진정성의 힘이 있어 세상은 조금이라도 공평해지는 것이다. 도룡이의 뜻하지 않은(?) 진정성에 엄마의 시야도 넓어지고, 무서운 교감선생님과도 특별히 가까워지게 됐다.

이왕이면 그 '기술'도 어느정도는 장착하면 좋다. 그 기술이란 게 별게 아니고 '눈치'다. 눈치만 발달한 사람 참 별로지만 눈치가 너무 없어도 곤란해!ㅎㅎ

어른인 내게는 '잘 혼내는 기술' 책이 필요할 것 같다. 이미 숱하게 나와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쪽 책은 잘 안 읽어서.... 혼내고 혼나는 거 어쩔 수 없는 일상인 바, 뒤끝없고 성장의 기회로 이어지는 게 가장 아름다운 길 아닐까. '혼나기'. 생각해보니 참 중요한 소재라는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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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채무 관계 노란 잠수함 10
김선정 지음, 우지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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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정 작가님의 책을 모두 읽었는데 이 책에서 처음으로 송언 선생님 책에서 나던 느낌이 언뜻 났다. 완전히 같은 느낌은 아니고, 교실의 일상이 소재가 되었다는 점과 교사 아니면 할 수 없는 디테일의 묘사가 너무 웃기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재가 어찌보면 너무 사소한, 붙잡지 않았더라면 계속 밀려드는 일상에 묻혀 잊혀져버렸을 것 같은 사건이라는 점도 비슷했다. 그 사건 하나가 이렇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한 권의 동화책이 되는 걸 보면 교사들은 모두 소재의 풍년 속에 사는 셈이다. 그러나 그럼 뭐해.... 그걸 포착하고 써내는 능력은 작가만이 가진 것! 퇴직 후 송언 선생님의 교실 이야기는 좀 뜸해진 느낌인데, 김선정 선생님의 교실이야기는 더 자주 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80쪽 정도의 많지 않은 분량에, 그림작가 우지현 님의 삽화도 재미에 한몫을 하는데다가 가끔씩 이야깃속 상황이 네컷 만화로도 그려져 있어 권해주기에 아주 말랑하다. 긴 줄글책을 읽기 어려워하는 아이들, 특히 만화만 읽으려 하는 남자아이들에게 권해도 투덜거리지 않고 읽어낼 것 같다. 중학년 초보단계 동화로 강추.

초보단계라는 표현이 실례가 될까 살짝 걱정. 읽기 단계상 그렇다는 뜻이고 내용면에서 보자면 고학년과 함께 읽을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사건이 '채무관계'이기 때문이다.ㅎㅎ

3학년 구찬수는 같은반 이시원에게 3천원을 빌려줬다. 그리고 3천5백원을 받기로 했다. 말하자면 이자를 붙여 받기로 한 건데, 이자 제안은 시원이가 한 거다. 리코더 살 돈에서 2천원을 남겨 고무딱지를 살 생각에 흐뭇해 있던 찬수를 "주말에 삼촌이 오시면 2만원이 생기니 5백원 더 붙여서 갚겠다."고 부추겨 홀랑 빌려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 약속한 월요일, 돈을 달라고 하자 시원이는 "니 사물함에 넣어놨어." 하는게 아닌가. 뒤죽박죽 사물함의 묘사는 경험자가 아니면 절대 못할 디테일의 묘미.ㅋㅋ 어쨌거나 그 안에 돈은 없었다. 시원이한테 말해봤자 분명히 넣었다며 화를 낼 뿐, 덩치크고 말빨세고 기도 센 시원이에게 찬수는 당하지 못한다.....

문제는 '학급다모임' 시간에 수면으로 떠오른다. 그동안 안건이 없어 선생님 전용 시간이던 다모임 시간이 본격 회의 시간이 된 날. 아이들의 다양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해결책이 논의된다. 이 과정에 눈여겨볼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작가 후기에도 강조하셨듯이 아이들은 스스로의 문제에 대하여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법을 찾아갈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지 않고 처음에는 좌충우돌하지만.

둘째는 교사의 역할이다. 3학년이다보니 회의 진행을 선생님이 하셨는데, 고학년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초등 교실에서 교사가 완전히 배제된 상황은 없고,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교사의 역할은 엉킨 실을 푸는 것, 현재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는 것, 막연한 의견을 명료화하는 것,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해주는 것, 선택지를 정리해 제시해주는 것 등이다. 이 책의 평범한 아줌마 선생님(아마도 작가 본인)은 그 일들을 서툰듯 훌륭하게 해내셨다. 아이들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 변화했다. 스스로의 변화에 만족했을 것 같다. 이것이 교육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다.

마지막에 선생님이 시원이한테 하신 말씀. 요 말투는 작가님이나 나처럼 연식이 좀 되어야만 나올 수 있는 능구렁이 말투. 모처럼 작가님과 동질감을 느끼며 하하하 웃어봤다. 쥐도 구멍을 남겨두고 쫓아야 하는 법.
"한번 잘 생각해보고 착각한 것 같거나 꿈에서 놔둔 것 같으면 찬수한테 삼천원 주면 돼요. 알, 겠, 지, 요?"

아이들의 현실 캐릭터도 웃음(혹은 공감) 포인트였다. 넉넉하지 못한데도 인심쓰기 좋아하는 구찬수 캐릭터. 급식에 인기반찬 나오면 자기도 먹고 싶으면서도 " 이거 먹을 사람?"하고 외치는 그 심리. 나도 "급식으로 인심쓰려 하지 마세요!" 하며 금지했던 그 기억이 새롭다. (작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원천봉쇄된 행위지만 그 전엔 해마다 있었다. 이런 캐릭터.)
친구들 요구를 거절 못하고 그 문제가 우주만큼 무거운 소심이 공주리 캐릭터. 말 중간중간 들어간 '....'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한 그 캐릭터. 이처럼 아는 사람은 웃을 수 있는 그 공감 포인트들이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돈문제 잘못 얽히면 가족 간에도 못볼 사이 되는 법이니 이에 대한 원칙은 잘 세워두는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이들한테도 해당된다는 걸 나는 왜 생각하지 못했던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재미로 권해줘도 좋겠고, 혹시라도 유사한 문제의 냄새가 살짝이라도 풍긴다면 작정하고 함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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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마왕 신나는 책읽기 59
정연철 지음, 홍그림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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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주제의 냄새를 팍팍 풍기고 표지까지 거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을 말랑하게 읽을 수 있을까? 그건 기우였다. 본문을 펼치자마자 초은이가 눈앞에서 왔다갔다했다. 주제를 표현하도록 만들어진 인물이란 느낌은 없고 그냥 가까이에 있는 한 아이 같은. 아니 어쩌면 나같은.

화자의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인지 책장이 휙휙 넘어가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게 된다. 초은이의 평생(?) 친구이자 라이벌은 아라였다. 아라는 이모의 딸, 그러니까 사촌이기도 했다. 주변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기보단 처음부터 끝까지 아라와의 관계로 이야기가 쭉 펼쳐진다. (결들이로 엄마와 이모의 관계도) 하지만 굳이 여러 인물이 등장할 필요 없이 충분했다.

초은이는 아라가 얄미울 때가 많다. 그게 바로 초은이 마음 속 비교마왕이 하는 짓이다. 하지만 가만 보면 아라가 얄밉게 군다. 근데 시종일관 그러면 초은이도 독자도 줄기차게 미워하면 될텐데 그렇지가 않다. 눈치없고 허당이면서 악의없고 꽤나 착하기도 하단 말이다. 비교마왕이 날뛸 때는 미워서 부르르 하다가도 차마 계속 그럴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냐고... 그냥 줄창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다. 실제로 현실에는 주변에 이런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 차라리 못돼라! 실컷 미워라도 하게!

나는 여기저기 눈알 돌리는 다관심파가 아니면서도 옛날부터 부러운 건 참 많았다. 특히 잘하는게 많은 팔방미인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능력이 많으면? 인생이 편하다. 당연하잖아. 컴도 사양이 높아야 버벅대지 않고 속도도 나는 것처럼. 또, 능력 많으면 인생이 즐겁기도 하다. 나를 볼작시면 수영을 못하니 물을 즐길수가 있나, 운전을 못하니 드라이브를 즐길 수가 있나, 몸치니 춤을 즐길 수가 있나, 음치까진 아니지만 기능이 없으니 음악을 즐길 수가 있나..... 그냥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 클리어하는데 만족하면서 산다. 크게 망할 일은 없지만 얼마나 재미없는 인생이냐구? 나도 아름다움을 즐기며 표현하며 행복을 발산하며 살고 싶었다구.

근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게, 나보다 능력 많으신 분들이 오히려 나보다 힘들게 사시는 경우도 많긴 하다. 할줄 모르면 심신이 편하다는 말도 있듯이.... 하지만 할 줄 몰라 편한 인생은 그저 '좋겠네~' 한마디로 퉁칠 수 있지만 팔방미인들은 여전히 부럽다. 부러움은 때로 괴로움이 되기도 한다. 바로 비교마왕이 활약할 때다.

초은이는 아라랑 가까이 살며 사촌자매로, 동갑내기 친구로 크면서 자연스럽게 비교됐다. 허리띠 졸라매고 근근히 살아야되는 초은이네에 비해 아라네는 부유하고, 아라는 공부도 운동도 다 초은이보다 잘한다. 한가지 초은이가 앞서는 건 바로 피아노였다. 하지만 엄마는 초은이가 그토록 원하는 피아노도 사주지 못하고.... 그러다 드디어 초은이를 빛나게 해줄 시간이 왔다. 피아노 콩쿨 대회.

유일하게 초은이가 훨씬 우위에 있는 피아노에서조차 실패한다면 진짜 책 집어던지고 싶지 않겠는가? 왜이렇게 짜증나는 스토리.....가 아니라, 그럼에도 웃게되는 스토리였다. 뭔가 흐뭇하고 따뜻하고, 응원하게 되면서 미련이 남지 않는. 가만보면 초은이가 얻은건 하나도 없는데, 실망스럽지 않다. 아니다. 과연 초은이가 얻은 게 없을까?

자존감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찾는다면 이 책이 매우 적절한 이야기가 될거 같다. 몇년 전 일이다. 내평생 가장 힘든 반 아이들이 서로 물어뜯고 몸부림치는데 기저에 '자존감 결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때 '친구사랑주간'이었나 뭔가 학교에서 정한 주간이 있어서 이왕이면 형식적으로 끝내지 않으려 신경써서 진행해 보았다. 서로가 모두에게 칭찬선물을 하고 내가 받은 칭찬쪽지를 모아서 꾸미면서, 아이들은 전에 없이 진지하고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들은 내것보다 남의 것을 보고 싶어했다. 그 아이들이 하는 건 바로 '비교'였다. "아~ 나는 이런 칭찬도 없어." 그때의 씁쓸함이 기억난다. 내것보다 남의것에 더 관심이 많던 아이들. 그때 이 책이 있었다면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깨달았을까.

나도 평생을 비교마왕에 붙잡혀 살지 않으려면 곁눈질하지 말고 나의 길을 가야지. 모임샘들과 얘기하다가 우리보다 훨씬 부유하고 여유있게 살면서도 우울에 빠진 지인 얘길 들었다. 더 잘사는 사람들과 비교하느라고. 난 내 월급에 감사하고 다른 데 눈 안돌리니 그나마 이정도 행복할 수 있는 거라고 할까.

그러나 모든게 보는 데서 난다고, 페북이니 뭐니 보고 있으면 남의 자랑(아닌 자랑)들이 보이고, 그것들을 갖고 있지 않은 내가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세상모르고 게으름에 침잠해가려는 나에게 채찍질이기도 한 바, 비교마왕을 없애버리겠다는 결기보다는 어찌어찌 구슬러서 잘 데리고 살겠다는 타협이 더 나을 것 같다. 이 그림처럼 귀여운 수준으로.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남의 것은 작작 보고 너 자신을 더 많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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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 대마왕 내책꽂이
수지 모건스턴 지음, 클로틸드 들라클루아 그림, 김영신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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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책으로 오랫동안 너무나 유명한 작가 수지 모건스턴은 지금도 활발히 책을 쓰시나보다. 이 책은 작년에 나왔다. 내용에 대한 정보가 없었지만 작가 이름을 보고 골라들었다.


마침 어제 수업했던 근면이라는 주제의 도덕수업이 생각났다. 시간이 부족해 준비를 많이 하지 못했고 두 편의 교과서 예화와 한 편의 동영상을 가지고 줌에서 수업을 했다. 내용파악 후에는 패들렛에 이런저런 질문들을 올리고 답변을 달게 했더니 아이들의 답변이 주루루룩 올라왔다. 그 답변들을 함께 살펴보는 게 교과서 예화를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공부가 되었다. 공부는 이렇게 서로서로 배우는 거라고, 선생님도 많이 배웠다며 고맙다는 인사로 수업을 마쳤다.

수업은 무난하게 흘러가고 마쳤지만 사실 피상적인 질문들이 많았고 아이들도 대충 당위에 대한 눈치는 있으니 거기에 의거해 답변한 경우가 많았다.ㅎㅎ 이 책을 읽고 보니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아이들과 깊이 있게 읽는다면 이 주제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이 가능하겠다.

제목을 보자. 심심해 대마왕! 표지에는 주인공 소년 헥토르가 세상 지루한 표정을 하고 소파에 늘어져 있다. 이 아이의 입버릇은 심심해.”이다. 모든 게 지루하고 재미없다. 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은 상상 속에만 있다.


우리반 아이들과 수업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얘들아, 너희들도 심심하다는 말 많이 하니?”

코로나 1년을 보낸 아이들이니 당연히 그렇다고 하지 않을까.

선생님도 어릴 때는 심심한 적이 많았어.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심심할 새가 없었으니까. 매일 피곤할 정도로 일이 많으니까. 어쩌다 한가한 시간이 나면 그건 심심한 게 아니라 달콤하고 행복한 거였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책의 내용이 내 생각이랑 너무 비슷한 거였다!ㅎㅎ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심드렁하고 매사 귀찮기만 하던 헥토르의 귀에 어느 날 선생님의 한마디가 깊이 박힌다. “여러분은 지금 오직 한 번뿐인 아홉 살 인생을 살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날, 헥토르에게 또 한명의 지루한 존재인 이모할머니에게 다락방에 보관하던 오래된 바이올린을 선물로 받는다. 이 바이올린이 헥토르 인생의 전환점이랄까? 비로소 헥토르의 시간들이 채워지기 시작하고 그것들이 색채를 갖기 시작한다.

바이올린이 헥토르 맘에 들어서 다행이다. 예술을 즐긴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을 갖는 것인가. 그런데 공짜는 없기 때문에 그게 그냥 되지는 않는다. 숙달을 위한 노력과 투자와 인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헥토르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마도 숨겨진 재능이 있었던 듯. 이것을 발견하고 제안해주는 것도 부모의 큰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장의 제목은 바쁘다 바빠이다. 왜 일들은 몰려다니는 걸까. 흘려버렸던 지나간 시간을 아까워하게 말이다. 헥토르가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자마자 헥토르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도 생기고, 도와드려야 할 이웃도 생기고, 학교에서의 역할도 생긴다. 그리고 아빠한테 이끌려서 다니던 축구교실은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헥토로의 일상은 채워지고 정돈된다. 그러다 토요일을 맞았다. 할 일도 없고 친구들도 없는 완벽한 혼자였다.

하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이었다.^^


사람에게는, 특히 아이들에게는 텅 빈, 뒹굴뒹굴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널브러진 시간들 속에 방치되다보면 사람은 자존감을 잃게 된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너무 빡빡한 일상도 좋지 않다. 적당히 근면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과제, 그리고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함께 필요하다. 이것은 약간의 교사의 역할과 지대한 양육자의 역할이 요구되는 일이다. 헥토르의 선생님이 동기부여를 해주고, 이모할머니가 바이올린을 선물하고, 아빠가 축구교실 그만두는 걸 허용하고, 엄마가 미술관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것처럼 말이다.

어제 미술시간에는 그림책 다다다 다른별 학교을 읽어주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그림책의 한 장면을 그리는 활동을 했다. 남학생 절반이 나는 게임별에서 왔어.” “나는 핸드폰별에서 왔어.”라는 작품을 제출한 것을 보고 잠시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내가 의욕을 잃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힘을 내야 할 일이다. 오죽하면 그렇겠는가?


아이들에게 나를 성장시키는 유익한 취미를 찾게 하고 그것을 위한 연습의 시간을 매일 조금씩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은 날마다 읽은 책과 쪽수와 간단한 감상을 쓰는 독서일기를 쓰고 있는데, 스스로가 정한 종목의 과제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디 아이들이 우울한 시간의 늪에서 부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짝 바쁜 듯한 평일, 쉼이 있는 주말을 통해서 자신의 성장을 느끼며 만족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치우쳐지기 쉬운 일이며 황금비율을 찾아야 하는 일이며 개인마다 다른 일이다. 쉽다면 누구나 했겠지.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내 하루를 보람되게 채우는 근면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실 나 자신도 삶의 밀도를 높였다면 지금보다 더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내구성이 달라서, 더 높였다가는 터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난 지금 심심하지 않아. 심심할 새가 어딨어. 그럼 나 자신의 근면성에 대해서는 그리 회의하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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