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채무 관계 노란 잠수함 10
김선정 지음, 우지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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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정 작가님의 책을 모두 읽었는데 이 책에서 처음으로 송언 선생님 책에서 나던 느낌이 언뜻 났다. 완전히 같은 느낌은 아니고, 교실의 일상이 소재가 되었다는 점과 교사 아니면 할 수 없는 디테일의 묘사가 너무 웃기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재가 어찌보면 너무 사소한, 붙잡지 않았더라면 계속 밀려드는 일상에 묻혀 잊혀져버렸을 것 같은 사건이라는 점도 비슷했다. 그 사건 하나가 이렇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한 권의 동화책이 되는 걸 보면 교사들은 모두 소재의 풍년 속에 사는 셈이다. 그러나 그럼 뭐해.... 그걸 포착하고 써내는 능력은 작가만이 가진 것! 퇴직 후 송언 선생님의 교실 이야기는 좀 뜸해진 느낌인데, 김선정 선생님의 교실이야기는 더 자주 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80쪽 정도의 많지 않은 분량에, 그림작가 우지현 님의 삽화도 재미에 한몫을 하는데다가 가끔씩 이야깃속 상황이 네컷 만화로도 그려져 있어 권해주기에 아주 말랑하다. 긴 줄글책을 읽기 어려워하는 아이들, 특히 만화만 읽으려 하는 남자아이들에게 권해도 투덜거리지 않고 읽어낼 것 같다. 중학년 초보단계 동화로 강추.

초보단계라는 표현이 실례가 될까 살짝 걱정. 읽기 단계상 그렇다는 뜻이고 내용면에서 보자면 고학년과 함께 읽을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사건이 '채무관계'이기 때문이다.ㅎㅎ

3학년 구찬수는 같은반 이시원에게 3천원을 빌려줬다. 그리고 3천5백원을 받기로 했다. 말하자면 이자를 붙여 받기로 한 건데, 이자 제안은 시원이가 한 거다. 리코더 살 돈에서 2천원을 남겨 고무딱지를 살 생각에 흐뭇해 있던 찬수를 "주말에 삼촌이 오시면 2만원이 생기니 5백원 더 붙여서 갚겠다."고 부추겨 홀랑 빌려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 약속한 월요일, 돈을 달라고 하자 시원이는 "니 사물함에 넣어놨어." 하는게 아닌가. 뒤죽박죽 사물함의 묘사는 경험자가 아니면 절대 못할 디테일의 묘미.ㅋㅋ 어쨌거나 그 안에 돈은 없었다. 시원이한테 말해봤자 분명히 넣었다며 화를 낼 뿐, 덩치크고 말빨세고 기도 센 시원이에게 찬수는 당하지 못한다.....

문제는 '학급다모임' 시간에 수면으로 떠오른다. 그동안 안건이 없어 선생님 전용 시간이던 다모임 시간이 본격 회의 시간이 된 날. 아이들의 다양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해결책이 논의된다. 이 과정에 눈여겨볼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작가 후기에도 강조하셨듯이 아이들은 스스로의 문제에 대하여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법을 찾아갈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지 않고 처음에는 좌충우돌하지만.

둘째는 교사의 역할이다. 3학년이다보니 회의 진행을 선생님이 하셨는데, 고학년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초등 교실에서 교사가 완전히 배제된 상황은 없고,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교사의 역할은 엉킨 실을 푸는 것, 현재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는 것, 막연한 의견을 명료화하는 것,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해주는 것, 선택지를 정리해 제시해주는 것 등이다. 이 책의 평범한 아줌마 선생님(아마도 작가 본인)은 그 일들을 서툰듯 훌륭하게 해내셨다. 아이들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 변화했다. 스스로의 변화에 만족했을 것 같다. 이것이 교육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다.

마지막에 선생님이 시원이한테 하신 말씀. 요 말투는 작가님이나 나처럼 연식이 좀 되어야만 나올 수 있는 능구렁이 말투. 모처럼 작가님과 동질감을 느끼며 하하하 웃어봤다. 쥐도 구멍을 남겨두고 쫓아야 하는 법.
"한번 잘 생각해보고 착각한 것 같거나 꿈에서 놔둔 것 같으면 찬수한테 삼천원 주면 돼요. 알, 겠, 지, 요?"

아이들의 현실 캐릭터도 웃음(혹은 공감) 포인트였다. 넉넉하지 못한데도 인심쓰기 좋아하는 구찬수 캐릭터. 급식에 인기반찬 나오면 자기도 먹고 싶으면서도 " 이거 먹을 사람?"하고 외치는 그 심리. 나도 "급식으로 인심쓰려 하지 마세요!" 하며 금지했던 그 기억이 새롭다. (작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원천봉쇄된 행위지만 그 전엔 해마다 있었다. 이런 캐릭터.)
친구들 요구를 거절 못하고 그 문제가 우주만큼 무거운 소심이 공주리 캐릭터. 말 중간중간 들어간 '....'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한 그 캐릭터. 이처럼 아는 사람은 웃을 수 있는 그 공감 포인트들이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돈문제 잘못 얽히면 가족 간에도 못볼 사이 되는 법이니 이에 대한 원칙은 잘 세워두는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이들한테도 해당된다는 걸 나는 왜 생각하지 못했던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재미로 권해줘도 좋겠고, 혹시라도 유사한 문제의 냄새가 살짝이라도 풍긴다면 작정하고 함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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