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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마왕 ㅣ 신나는 책읽기 59
정연철 지음, 홍그림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제목에서 주제의 냄새를 팍팍 풍기고 표지까지 거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을 말랑하게 읽을 수 있을까? 그건 기우였다. 본문을 펼치자마자 초은이가 눈앞에서 왔다갔다했다. 주제를 표현하도록 만들어진 인물이란 느낌은 없고 그냥 가까이에 있는 한 아이 같은. 아니 어쩌면 나같은.
화자의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인지 책장이 휙휙 넘어가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게 된다. 초은이의 평생(?) 친구이자 라이벌은 아라였다. 아라는 이모의 딸, 그러니까 사촌이기도 했다. 주변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기보단 처음부터 끝까지 아라와의 관계로 이야기가 쭉 펼쳐진다. (결들이로 엄마와 이모의 관계도) 하지만 굳이 여러 인물이 등장할 필요 없이 충분했다.
초은이는 아라가 얄미울 때가 많다. 그게 바로 초은이 마음 속 비교마왕이 하는 짓이다. 하지만 가만 보면 아라가 얄밉게 군다. 근데 시종일관 그러면 초은이도 독자도 줄기차게 미워하면 될텐데 그렇지가 않다. 눈치없고 허당이면서 악의없고 꽤나 착하기도 하단 말이다. 비교마왕이 날뛸 때는 미워서 부르르 하다가도 차마 계속 그럴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냐고... 그냥 줄창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다. 실제로 현실에는 주변에 이런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 차라리 못돼라! 실컷 미워라도 하게!
나는 여기저기 눈알 돌리는 다관심파가 아니면서도 옛날부터 부러운 건 참 많았다. 특히 잘하는게 많은 팔방미인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능력이 많으면? 인생이 편하다. 당연하잖아. 컴도 사양이 높아야 버벅대지 않고 속도도 나는 것처럼. 또, 능력 많으면 인생이 즐겁기도 하다. 나를 볼작시면 수영을 못하니 물을 즐길수가 있나, 운전을 못하니 드라이브를 즐길 수가 있나, 몸치니 춤을 즐길 수가 있나, 음치까진 아니지만 기능이 없으니 음악을 즐길 수가 있나..... 그냥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 클리어하는데 만족하면서 산다. 크게 망할 일은 없지만 얼마나 재미없는 인생이냐구? 나도 아름다움을 즐기며 표현하며 행복을 발산하며 살고 싶었다구.
근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게, 나보다 능력 많으신 분들이 오히려 나보다 힘들게 사시는 경우도 많긴 하다. 할줄 모르면 심신이 편하다는 말도 있듯이.... 하지만 할 줄 몰라 편한 인생은 그저 '좋겠네~' 한마디로 퉁칠 수 있지만 팔방미인들은 여전히 부럽다. 부러움은 때로 괴로움이 되기도 한다. 바로 비교마왕이 활약할 때다.
초은이는 아라랑 가까이 살며 사촌자매로, 동갑내기 친구로 크면서 자연스럽게 비교됐다. 허리띠 졸라매고 근근히 살아야되는 초은이네에 비해 아라네는 부유하고, 아라는 공부도 운동도 다 초은이보다 잘한다. 한가지 초은이가 앞서는 건 바로 피아노였다. 하지만 엄마는 초은이가 그토록 원하는 피아노도 사주지 못하고.... 그러다 드디어 초은이를 빛나게 해줄 시간이 왔다. 피아노 콩쿨 대회.
유일하게 초은이가 훨씬 우위에 있는 피아노에서조차 실패한다면 진짜 책 집어던지고 싶지 않겠는가? 왜이렇게 짜증나는 스토리.....가 아니라, 그럼에도 웃게되는 스토리였다. 뭔가 흐뭇하고 따뜻하고, 응원하게 되면서 미련이 남지 않는. 가만보면 초은이가 얻은건 하나도 없는데, 실망스럽지 않다. 아니다. 과연 초은이가 얻은 게 없을까?
자존감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찾는다면 이 책이 매우 적절한 이야기가 될거 같다. 몇년 전 일이다. 내평생 가장 힘든 반 아이들이 서로 물어뜯고 몸부림치는데 기저에 '자존감 결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때 '친구사랑주간'이었나 뭔가 학교에서 정한 주간이 있어서 이왕이면 형식적으로 끝내지 않으려 신경써서 진행해 보았다. 서로가 모두에게 칭찬선물을 하고 내가 받은 칭찬쪽지를 모아서 꾸미면서, 아이들은 전에 없이 진지하고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들은 내것보다 남의 것을 보고 싶어했다. 그 아이들이 하는 건 바로 '비교'였다. "아~ 나는 이런 칭찬도 없어." 그때의 씁쓸함이 기억난다. 내것보다 남의것에 더 관심이 많던 아이들. 그때 이 책이 있었다면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깨달았을까.
나도 평생을 비교마왕에 붙잡혀 살지 않으려면 곁눈질하지 말고 나의 길을 가야지. 모임샘들과 얘기하다가 우리보다 훨씬 부유하고 여유있게 살면서도 우울에 빠진 지인 얘길 들었다. 더 잘사는 사람들과 비교하느라고. 난 내 월급에 감사하고 다른 데 눈 안돌리니 그나마 이정도 행복할 수 있는 거라고 할까.
그러나 모든게 보는 데서 난다고, 페북이니 뭐니 보고 있으면 남의 자랑(아닌 자랑)들이 보이고, 그것들을 갖고 있지 않은 내가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세상모르고 게으름에 침잠해가려는 나에게 채찍질이기도 한 바, 비교마왕을 없애버리겠다는 결기보다는 어찌어찌 구슬러서 잘 데리고 살겠다는 타협이 더 나을 것 같다. 이 그림처럼 귀여운 수준으로.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남의 것은 작작 보고 너 자신을 더 많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