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불편한 플라스틱 이토록 불편한 3
임정은 지음, 홍성지 그림, 홍수열 감수 / 그레이트BOOKS(그레이트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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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불편한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 책이 세 번째 권이다. 1이토록 불편한 바이러스2이토록 불편한 고기도 궁금하다. 4번째는 불편한 무엇을 다룰까? 궁금하기도 하고.

 

2권 고기와 3권 플라스틱의 내용에는 공통점이 많을 것 같다. ‘이토록 불편한이라는 공통 제목이 말하는 바는,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 원하는데, 이렇게 끊기 힘든데 그걸 끊어내야만 살 수 있는 인류의 절박한 상황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고기, 얼마나 맛있어. 플라스틱, 얼마나 편리해. 고기 없는 세상, 먹는 낙이 없잖아. 플라스틱 없는 세상,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

 

생각하기 싫지만 생각해야 하기에, ‘불편한이라는 제목을 달고 이렇게 나왔다. 플라스틱을 다룬 책들이 이미 많다. 그중에서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접근성인 것 같다. 100쪽 분량이면 적지는 않은데, 마치 그림책 읽듯이 술술 넘기며 금방 읽게 된다. 재미있는 구성과 멋진 색감의 그림들 때문이다. 마치 책은 체험카페, 독자들은 초대장을 받아 방문한 체험학생들인 것처럼 설정해 놓았다. 체험카페는 역사관, 과학관, 메타버스관, 해양관, 종합상황실, 명예의 전당으로 구성되어 있어 5개의 장을 이룬다. 각 방의 이름을 보면 내용도 어느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역사관에서는 플라스틱의 발견과 역사, 과학관에서는 과학적 원리, 해양관에서는 바다쓰레기 등의 문제를 다루겠구나 하고. 짐작대로 이 책에서는 이렇게 재미있는 구성으로 플라스틱의 전반을 다룬다.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내용수준이 낮지 않다. 중학년 정도를 대상으로 썼다고 생각되는데 저학년도 읽을 수는 있고, 고학년이라면 더 땡큐일지도 모른다. 고학년이라고 다 두꺼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오산... 고학년도 그림 많은 책 좋아해.^^;;;;

 

플라스틱 문제를 프로젝트 주제로 깊게 다룬다면 이 책을 학급 인원수만큼 준비해서 수업 중에 함께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용이 문제인데, 동학년이 여러 반이라면 한반치 준비해서 돌려가며 활용하면 가성비가 그렇게 나쁘진 않다. 근데 듣자하니 학교 예산 이런저런거 많이 깎았다던데 그럼 뭐 못하는거고) 이 책을 주교재로 하고 책 뒷장의 참고도서들을 준비해주어 각 모둠에서 심화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적절한 동영상들을 찾아 두었다가 함께 활용하면 효과가 더 좋을 것이다. 색감 좋고 선명하며 내용을 잘 담은 그림들은 학생들의 표현활동에도 의욕과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역사관에서 플라스틱의 탄생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워서 좋았고, 과학관에서 플라스틱의 화학구조를 쉽게 설명해주어 좋았다. 다양한 분자구조가 있어서 그만큼 분리와 재활용이 힘들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플라스틱 제품 마크도 여기저기서 많이 봤지만 이 책에서 본 설명이 가장 확실히 기억에 남았다. 쓰레기섬이나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한 문제도 실감나게 알려주고 있다.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와 그 한계, 실효성 없는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워 장사를 하는 기업의 문제(그린워싱)까지 언급하고 있으니 꽤 깊이 다루는 셈이다.

 

이 모든 설명들을 지나, 결국 남는 것은 실천의 문제이다. 이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앞의 모든 과정은 쓸데없는 종이낭비, 시간낭비일 뿐이니까. 수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전 과정까지 가르치는 건 얼마든지 하겠지만 이 실천 앞에서 난감해지게 된다. 이 책도 실천의 문제를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다. 뭔가 손에 딱 잡히는 건 없고 다 아는건데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바로 그게 실천의 특징이다. 알면서도 못하는 것! 한 번 알아서 안되면 두 번 알아야겠지. 그리고 아는 사람들이 모여야 뭔가 느린 움직임이라도 일어난다. 이런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희망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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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와 아레스 - 제17회 '마해송 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66
신현 지음, 조원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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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나왔을 당시에 놓치고 이제야 읽어봤다. 제목이 신화의 주인공들이어서 그랬나, 판타지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체험 삶의 현장 급의 현실동화였다.

 

그 체험 삶의 현장은 경마장과 그와 관련된 목장이었다.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표지의 말들은 그 목장에서 태어난 말들이다. 경주마로 길러질 말들. 그 길로 가야 성공이 보장되는 말들.

 

작가님이 이쪽 현장을 잘 알고 손에 잡힐 듯 표현하고 계셔서 놀랐다. 원래 가까이 접하신 건지 취재에 의한 건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경험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덕분에 한 번도 본 적 없고 관심도 없었던 세상 한 켠을 알게 되었다.

 

사실 경마에 대한 이미지는 막연히 좋지 않았었다. 도박성(?)도 있지 않나...? 매사 시큰둥한 내 성격은 이런 데에 잘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평소에 생각하는 편이었다. 왜 그런 데에 빠지지? 그게 그렇게도 재밌나? 뭐 그런 생각.... 모르지, 한번도 안 봤으니, 봤으면 빠져들었을지도.... 이 책을 읽으니 경기 자체는 어떨지 몰라도 말의 매력, 멋짐에는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주인공 가족은 완전 말 가족이다. 엄마랑 아빠는 모두 기수. 할아버지는 마의사. 그리고 쌍둥이 자매 새나와 루나가 있다. 새나는 부모님 같은 멋진 기수가 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루나는 반대로 절대 그 길로 가지 않겠다며 공부에 열중한다. 나라면 루나와 같았을 것이다. 경마 자체에 의미를 못느끼기도 하고, 잘나갈 때는 좋지만 부상의 큰 위험이 언제나 함께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경주 같은 것도 그렇고, 잘못하면 최소 중상인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완전 나랑 다른 종류의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이 재미있는 거지만.

 

승승장구하는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승부에서는 좀 밀리는 편이다. 페어플레이상은 여러번 받았다고 한다. 그런 엄마가 분신과도 같은 말 백두산과 함께 경기중 넘어졌다. 당연히 큰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즈음 목장에서는 아테나와 아레스가 태어났다. 아테나는 혈통 좋은 백마, 아레스는 평범한 갈색 말이었다. 아테나가 얼마나 멋지게 생겼는지, 새나가 유니콘을 연상했을 정도였다. 목장 가족들은 두 말을 훌륭한 경주마로 키우기 위해 애쓴다.

 

아테나는 무리없이 촉망받는 경주마로 자란다. 타고난 역량도 휼륭했고 순조롭게 훈련에 따랐다. 하지만 아레스는 말썽이었다. 결국 마주를 찾는 경매에서 아테나는 비싼 값에 팔렸지만(1억이 넘어! 처음 알았음) 아레스는 아무도 골라주지 않아 결국 헐값에 도축장으로 팔려갔다. 그 아레스를 다시 찾아오기 위한 세나의 절규는 처절했다. 독자들도 같이 마음 졸일 장면이다. 경주마를 거부한다면 남은 길은 도축 뿐? 선택의 길이 없는 상황에서 새나는 아레스를 길들이기 위해 애쓴다.

 

첫 출전부터 우승을 거머쥐며 단연 돋보이는 아테나, 내키지 않는 길을 새나와 함께 한발 한발 가고 있는 아레스. 이야기는 이렇게 두 말이 훌륭한 경주마의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리나 했다.... 그 무렵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아 영화였다면 이 대목에서 내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을 것 같다. 세상에 아테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어? 왜 힘들다고 진작 말하지 않았어? 아니지, 말할 수가 없게 했겠지.ㅠㅠ

 

아레스는 길들여졌을까? 경주마의 길을 갔을까? 경주마가 아니면 죽음밖에 없었을까? 아니면 다른 길이 있었을까? 딱 요정도만 남겨놓고 스포를 안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남겨본다.

 

아테나, 아레스, 새나와 루나, 경마라는 환경 등등 현실상황에 딱딱 대입할 소재들이 많다. 하지만 그 대입이 도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서사의 힘 때문인 것 같다. 이야기가 너무 실감나고 재미있었다. 우리 사회에 행복한 아테나, 불행한 아테나, 행복한 아레스, 불행한 아레스 모두 섞여 있을 것이다. , 불행은 운명적 요소도 있으니 행복의 판만 깔아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경마로 상징되는 길, 그 길 외에도 선택지가 얼마든지 있는 사회라면 좋겠다. 멋지게 트랙을 달리고 싶은 말은 그런 말대로, 다른 곳에서 다르게 달리고 싶은 말은 그런 말대로. 채찍은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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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마음이 자라고 있어 큰곰자리 63
무라나카 리에 지음, 이시카와 에리코 그림, 윤수정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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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이 일본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런 느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느낌이라는 게 찾는다고 어디에 딱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우연히 고른 이 책이 너무 반갑고 작은 행운을 받은 기분이었다. 작은 행운. 조금 다른 어감이지만 작은 행복도 좋겠다.

 

그 행복에 색을 칠하라면 초록색으로 칠하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지만, 실제 나의 삶은 회색에 머물러있다. 초록이 삶으로 들어오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이지. 나는 몸을 잘 쓸 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이 초록이긴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을 읽을 때 뭔가 그립고도 흐뭇한 마음이 되곤 한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또 있다. 두 친구의 편지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이다. 편지가 구구절절 길거나 설명을 굳이 하지 않는데도 이 안에 서사가 충분히 있다. 시골 학교로 전학간 에리, 도시 학교에 남아있는 에미, 두 소녀가 주고받는 편지를 보며 요즘 아이들은 낯설겠지? 그냥 카톡이면 되는데 말이다. 종이에 쓴 우편 편지를 주고받던 때가 대체 언제였지.... 지금은 문자도 귀찮아하는 나지만 어릴 때는 편지쓰기를 좋아했다. 이것 또한 아련한 추억을 소환.

 

시골로 이사간 에리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까다롭지 않고 일단 도전해보는 에리의 성격이 새로운 환경에 제격이었다. 나랑 비슷한 사람도 있었으니 에리의 엄마. 엄마는 무조건 안한다고 한다. 귀찮다고 하고. 벌레 끔찍하게 싫어하고. (나중에는 엄마도 그럭저럭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 있게 된 단짝 두 아이는 각자 갖고있는 새로움에다 함께 공유한 기억들이 더해져 할 말이 끊이지 않는다. 그 편지가 200쪽이 넘는 훌륭한 이야기책이 된다. 글씨가 크고 그림도 있어서 읽기 부담은 없다. 그림도 참 좋다. 컬러가 아니지만 다채롭고 풍성하다.

 

아마 작가님도 농사를 지어보신 분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식물과 아주 가깝게 지내시는 분은 확실하다. 그게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각 생물들에 빗대어 표현하셨는데 그게 정말 심오하고 멋지다. 내가 이 작품에 감탄한 이유다.

 

그런데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어. 사실 잡초 근성 같은 건 없대.

잡초는 말이다. 한 번은 밟혀도 다시 일어나지만 또 한 번 밟히면, 한동안 가만히 상황을 본 단다. 그러다 여기서는 도저히 살 수 없겠다 싶으면 슬금슬금 뿌리를 뻗어 가서는 다른 데서 싹을 틔운단다.”

정말 대단하지 않니? 밟히거나 상처를 입으면, 굳이 그곳에서 잘해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대. 한동안 상황을 살피다가 마땅치 않으면 다른 곳에 가서 지내도 괜찮대.(15~16)

 

잡초 근성 같은 게 없다는 말은 나도 이 책에서 처음 들었다. 그런데 볼수록 맞는 말 아닌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처럼, 뿌리내릴 자리를 잘 보고 내려야지. 안될 곳이라면 너무 힘 빼지 말고. 물론 지레 포기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이 말이 왜 나오나 봤더니 세 번째 주인공 겐지와 관계가 있었다. 두 친구의 편지에 계속 나오는 이름, 겐지. 소꿉친구인 이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학교 아이들에게 심한 놀림과 괴롭힘을 당해 은둔형 외토리가 되어 있었다. 두 친구는 그것에 마음에 빚이 있고, 안타까워한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위기를 이겨 낸 식물은 그 종이 과거에 지녔던 강한 생명력을 되찾기도 한대. 사람은 누군가에게 당하면 되갚아 주거나 풀이 꺾여 버리는데, 식물은 그 일을 계기로 진짜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거지.(50~51)

이건 뜯겨나간 후 새로 올라온 소송채 줄기가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것을 보고 쓴 편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진짜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말....

 

거미 말이야, 날마다 여기저기에 부지런히 거미줄을 치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 것 같은 날에는 거미줄이 엄청 엉성한 거야.

(중략) .... 그러니까 기껏 거미줄을 쳐도 태풍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날에는 힘을 아끼느라 대충 하는 거겠지?

모든 일에 온 힘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생각을 했더니 어쩐지 안심이 됐어.(78~79)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에리가 쓴 편지. 여기에 대해 에미가 쓴 편지에도 통찰이 넘친다.

 

이건 내 생각인데, 들어 봐.

태풍이 오는 날에 거미줄이 엉성한 건 힘을 아끼려는 게 아니라, 너희 할아버지 생각이랑 같은 거 아닐까?

무슨 말이냐 하면, 거미도 바람이 지나갈 길을 만든 거라고.

안 그러면 거미줄이 바람을 맞아서 원반처럼 빙글빙글 날아가 버릴 테니까.(85~86)

 

두 생각 다 좋다. 그래. 모든 일에 온 힘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태풍이 오면 바람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인생의 지혜다. 이런 지혜를 자연에서 발견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을 준다. 책도 읽어야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님은 이렇게 명백하다. 인간은 자연에서 몸을 쓰며 지혜를 얻어야 한다. 나도 모르고 내 다음 세대는 더더욱 모르는 진리. 그걸 알고 계신 작가의 글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 외에도 자연에서 얻은 통찰들이 이 책에 가득 들어있다.

 

서사는 복잡하지 않다. 문제 해결은 겐지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스스로를 방에 가둬버린 겐지를 엄마가 밖에서 조용히 기다린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요즘에 부모들이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나라가 아니니 뭐라 판단을 못하겠다. 엄마는 겐지가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찾아간 친구들을 극진히 맞아 주었다. 이사간 에리는 직접 가지 못했지만 에미는 겐지가 밀어내는데도 여러 번 찾아가고 그 이야기를 에리에게 전해주었다. 마침내 에리의 땀방울이 들어간 농작물들도 겐지에게 전달되는데.... 겐지는 문을 열고 나와 친구들과 마주할 수 있을까?

 

괴롭힘(말하자면 학교폭력)이라는 소재가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져 상큼하게 그려진 작품이 또 있었던가? 어떻게 보면 상큼함이라는 느낌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 자연은 니가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상큼한 게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난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우리가 지나쳐 온 것들, 너무 빠르게 지나와 버린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서툰 솜씨로 감자나 딸기를 키웠다. 그런데 자란 것은 감자만이 아니었다.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볼까?

, 마음이 자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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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트리스의 예언 비룡소 걸작선 63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소피 블랙올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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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윈딕시』가 내 가슴에 확 들어온 그해, 2004년, 그러니까 내가 케이트 디카밀로의 팬이 된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네. 왕성하게 작품을 쏟아놓는 작가라면 수십 권도 나왔을 세월이지만 이 작가의 작품은 한참 기다려야 한 권씩 나온다. 아 그런데, 내가 뭐하느라 한 계절을 지나쳐 이 책을 발견했단 말인가? 지난 가을에 나온 작품을 겨울에야 발견하고 부리나케 읽어보았다.

이 책을 끝장까지 넘긴 동력은 기대감이었다. 케이트 디카밀로가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어떤 신비로운 서사를 펼쳤을까? 확신이 있는 기대감이었기에 끊김 없이 결말까지 읽게 되었다. 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재미 자체는 약간 덜한 느낌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제 이야기에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 나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이야기에 빠뜨리는 작가의 신비로운 문체는 여전했다. 번역도 꾸준히 같은 분이 하고 계서서 일관된 느낌을 더 받는 것일수도 있겠다. 『생쥐 기사 데스페로』를 5학년 아이들과 학급에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활동 중 하나로 ‘좋은 문장 찾아 적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작가의 문장은 아름답고 표현이 남다르다.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이라는 점에서 정말 배우고 싶은 문장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문장은 배우는 게 아니고 타고나는 거겠지. 한 문장 예를 든다면 이런 것들.
“비어트리스는 대답할 수가 없었어. 갑자기 커다란 검은 허공이 아이 안에서 하품을 했어.”

어둡고 험하며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작은 존재들의 연약한 힘이 모여 어둠을 물리친다는 설정은 언제나 벅차고 흐뭇한 감동을 준다. 이런 서사가 이미 많이 나왔음에도 계속 나오는 이유는, 그리고 또 읽어도 만족스러운 이유는 이것이 동화의 본질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화는, 어쩌면 편애한다. 그들을. 그것이 동화의 방향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서 작가는 이야기의 의미, 더 근본적으로는 문자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때는 중세. 문자 권력이 일부에게만 주어졌던 시대에 비어트리스는 여자아이인데도 글을 배운다. 그 자체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임에도.
“언젠가 어린아이가 왕을 왕좌에서 내려오게 할 것이다. 그 아이는 여자아이이다. 여자아이는 왕을 왕좌에서 내려오게 하고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비어트리스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예언의 주인공이 된다. 글을 알고 이야기를 만들 줄 알지만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비어트리스. 그 아이가 피투성이인 채로 안스웰리카라는 염소의 품에 안겨 ‘슬픔의 연대기 수도원’ 헛간에서 깨어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위험한 존재인 줄 알면서도 아이를 보호해 준 수도사 에딕, 부모를 칼에 잃고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소년 잭 도리, 수도원에서 악마로 통하지만 비어트리스의 절대 보호자인 염소 안스웰리카, 숲에서 만난 의문의 방랑자 카녹, 이들이 힘을 합쳐 어둠의 심장부를 향해 나아가며 이야기는 점점 긴박감을 더해간다.

케이트 디카밀로의 전작들이 그렇듯, 피의 복수가 없어도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 때문이라고 작가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다. 사랑이라니? 그런 닳고 닳은 말이 하고 싶어?
음 그러나 그런 말에 반기를 들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가의 힘이다.
중요한 건 예언이 아니라고 한다. 예언 때문에 독자들은 숨을 죽였는데도.
“사랑, 그리고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어.”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외에도 서사 사이사이에 패스츄리처럼 켜켜이 넣어놓은 작가의 생각들이 많다는 말까지만 하고 몇 문장의 인용으로 내용소개는 마칠까 한다.
-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어떤 세상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해?”
- 잭 도리는 비어트리스의 손 밑에서 글자가 하나씩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았어. 그의 안에서 글자 하나하나가 열 수 있는 문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밝은 방이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졌지.
“세상은, 글자로 다 쓸 수 있어.”


문자는 인간 세상의 가장 큰 선물이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이 대단한 것 같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 이야기를 내가 무슨 수로 접할 수 있었겠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작가는 아니지만, 글의 소중함을 알고 기록을 남기는 건 누구에게나 귀하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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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고양이 킹의 엉뚱한 마법 작은 스푼
김혜온 지음, 이윤우 그림 / 스푼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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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동화계에서 트렌드가 되었다는 고양이의 등장. 하지만 아직 한참 더 나와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양이는 그 고양이고 이 고양이는 다르다. 킹은 유일한 고양이다! 고양이들 중에서 샐쭉함과 도도함은 좀 덜한 고양이라는 느낌이 들긴 했다. 그건 아마도 작가님이 키우시는 고양이가 개냥이라서?ㅎㅎ 겉으로 도도하려고는 하지만 따뜻한 마음과 도움의 행위 때문에 도도함은 밀린다. 그냥 ‘킹 없으면 어쩔 뻔했어?’ 이런 생각만 든다.

특수교사인 작가님이 만드신 ‘달지’의 캐릭터는 생생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여러 가지 수행에 서툴러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다. 장애다 비장애다 이런 구분도 점점 무의미해진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구분짓자면 달지는 장애학생이다. 도움반에서 공부하는 친구. 그런데 이 책에서 도움반 상황은 나오지 않는 걸 보니 달지는 도움반이 없는 학교에 다니나 보다. 장애가 중증이 아닌 경우에 그런 상황도 꽤 있다. 저학년용 짧은 동화에 도움반 상황까지 넣으면 복잡하니 그런 설정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달지의 학급 내 상황이 더 잘 보였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역할에 마음을 졸였다. 나를 보여주면 어떡하지....ㅠ 나랑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선생님이 나왔다.

친구들 캐릭터의 설정도 가장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못되다 못해 악하다고 말해야 할 아이들은 없고, 그렇지만 달지를 속상하게 하고 때론 괴롭히는 아이들은 있고, 반면에 달지를 감싸주고 달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친구도 두 명쯤 있는.... 대한민국 평균치 교실이라고 하겠다. (내가 평균치를 너무 높게 잡았나... 어떻게 저럴수가 있지 싶은 아이도 사실은 있다. 좀 도와줬으면 하고 기대할 아이가 없을 때도 있고.ㅠ)

가장 현실 같았던 건 달지의 말투. 작가님이 수없이 들어봤을,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왔을 그 말투.
“모, 못해. 나 어, 어차피 못해.”
“내가 해떠!”
“꼬꼬 숨어라, 머리카나 보이라.”
삽화가 없어도 달지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런데, 달지가 이책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어차피’ 였다. 실제로 그런 아이가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라는 말이 각인된 아이. 실패의 경험에 갇힌 아이.ㅠ

이렇게 현실을 담은 내용을 판타지로 만드는 마법의 주인공은 바로 학교 고양이 킹. ‘엉뚱한 마법’이라는 제목처럼 마법도 실수하는 엉뚱한 고양이 킹. 하지만 그 어설픈 마법사 때문에 달지에게 중요한 역할이 주어진다. 결국 가장 좋은 결말을 가져오는 그 엉뚱한 마법.^^

내 입장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선생님의 학급운영 방식. 달지를 걱정하고 챙겨주시고 나름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인데, 보상체계가 달지를 힘들게 하고 소외시킬 거라는 생각을 못하시다니? 이제 많은 선생님들이 보상체계의 굴레에서 벗어났는데, 아직도 머물러있는 분들이 계시긴 할 것이다. 나도 이전 학교에서 학교차원의 보상이 있었을 때, 일부를 차용할 수밖에 없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달지 같은 친구가 교실에 있을 때는 더욱 주의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세심한 것까지.

달지와 친구들이 앞으로도 계속 웃으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킹의 이런 말이 시사점을 준다.
“인간들은 다 달라, 못해도 멋질 수 있어.”
“꼭 도움이 돼야 해?”
찔린다. ‘도움이 되는 것’은 그동안 내가 인간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는데. 시각을 좀 바꿔봐야겠다. 우린 모두 존재만으로 빛날 수 있으니까. 남한테 나쁜 마음만 먹지 않는다면 함께 어울려 사는데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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