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선생님은 내 친구 + 선생님은 우리 친구 - 전2권 책콩 저학년
송언 지음, 김민우 그림 / 책과콩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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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 선생님은 몇년전 퇴직하시고는 특유의 교실이야기 동화를 딱 끊으시고 창작 옛이야기나 옛이야기 재화 등 다른 분야의 책들을 주로 쓰셨다. 선생님이 밝히신 적은 없지만 그렇게 마음먹으신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전 이 책이 나온걸 보았다. ! 다시 쓰시는 건가? 반가워 읽어보았다. 어디서 봤던 것 같다? 생각하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역시, 전에 쓰셨던 책(꼼지락 공주와 빗자루 선생님)이 절판되고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심정은 약간 복잡했다. 씁쓸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나는 내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변한 걸 느껴서 씁쓸했고, 더이상 이런 얘기가 재밌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난 송언 선생님 작품을 읽으며 동심에 공감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할아버지샘을 존경한다 생각했는데, 이제 다시 읽어보니 불편한 것 투성이에 짜증까지 살짝 나는 것이었다. 내가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한 건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둘 다겠지.ㅠㅠ

 

작가님의 전작들에 리뷰를 많이 써서 기억난다. 할아버지쌤은 인간적이고 품이 넓은 분이었지만 완벽하신 분은 아니다. 계획적이라기보단 즉흥적인 편에 가깝고 말이나 행동에 실수도 가끔 있는, 살짝 구멍이 있는 분이다. 아이들은 버릇이 없고 말썽쟁이고 교실은 시끌벅적, 법석도 많이 벌어진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선생님이 각잡고 훈육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느새 조금씩 철이 들고, 아이들 각자의 개성이 펄펄 살아 뛰는 상태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간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대로 만족한다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상태로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교직에 남아있는 나는, "저게 될까?" 라는 냉소가 나도 모르게 떠올라 흠칫 놀라고 있는 중이다. 일단은 제목부터가 말이 안된다고 느낀다. 교사는 친구가 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게 내 생각이다. 지들끼리 좋은 친구가 되도록 조력이나 잘해. 니가 왜 친구가 되겠다는 건데. 선생노릇이나 잘해라. 그러려면 너를 허물지 말아라. 한번 허물면 다시 못세운다. 나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려고 시도했던 적은 없지만 이 실패와 후회의 사례는 수도없이 보고 들었다. 각자의 역할과 지켜야 할 위치가 있는 법이다. 친구는 반대합니다.

 

주인공 송지율이를 비롯한 아이들의 버릇없음에 다시 한번 경고등이 켜졌다. 거기에 '친구처럼' 상대하시고 기껏해야 "!" 한마디로 혼내시는 선생님. 하지만 지율이는 선생님을 좋아하고, 그 진심이 점점 아이를 성장시킨다. 이런 경우도 물론 있다. 선생님은 현직에 계실 때 많이 겪어보셨으니 이야기로 쓰셨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임자'는 못만나보신 게 아닐까. 앞에서 말했듯이 선생님도 실수하시고 구멍이 있던데 그 구멍을 누가 잡아채고 달려들었다면? 아름다운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다. 그래서구나. 내가 더이상 선생님의 교실동화를 즐길 수 없는 이유가. 선생님의 교실이야기에는 엄격한 기준으로 따지고들면 트집잡힐 요소들이 가끔 들어있다. 예를들면 아이들을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중에는 신체적 특징으로 부르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김배불뚝이 등.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는 일이다. 곤욕을 치른다해도 쉴드도 쳐줄 수 없는.

 

게다가 요즘은 이뻐만 해주면 알아서 철드는.... 그럴거라 믿고 지켜만 봐서는 절대 안되는 힘든 아이들이 교실마다 기본적으로 있으며 한둘이 아닌 경우도 매우 많다. 그런 담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이렇게만 된다면' 하고 한숨을 쉬게 될 것 같다.

 

세상이 변한게 맞긴 맞구나. 인간적인 면이 많은걸 커버하던 시대는 지났다. 직업인은 그저 전문적이어야 할 뿐이다. 나 또한 인간적인 면이 꽤 되지만 난 나의 그런 면이 별로 좋지 않다. 전문적이길 추구하지만 능력이 좀 부족할 뿐.... 이렇게 송언 선생님의 동화는 '옛 이야기'가 되어가는가. 좀 슬프네.

 

생각해보니 송언 선생님의 작품 중에 <외아들 구출 소동>이라는 작품도 있다. 내용이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난다. 학교에서 온갖 횡포를 부리는 망나니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한번 형들한테 맞았던가 해서 화가 난 아빠가 쫓아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빠가 바로 진상 학부모, 다른 말로 몬스터 페어런츠였네. 검색해보니 무려 11년 전 작품이다. 그렇지, 작금의 상황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징조는 있었던 거지. 그리고 송언 선생님 또한 꽃밭에서 교직생활을 하신 것은 아니겠지....

 

할아버지 선생님의 힘 빼기와 여유, 그리고 나의 힘주기(긴장)와 조급함.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한다면 모두가 당연히 전자를 선택하리라. 하지만 이제 무방비는 언감생심이 되었기에 아무 효율도 없는 힘주기와 경계를 하며 헛심을 빼고 있다. 송언 선생님께서 이 시대에 맞는 이상 교실을 보여주신다면 눈물겨운 마음으로 읽을 것 같은데. 바닥에 닿았으니 치고 올라가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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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씩 빨라지는 째깍째깍 마을 한울림 별똥별 그림책
이사벨라 파글리아 지음, 프란체스카 아이엘로 그림, 라미파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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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문제의식도 그리 새롭지는 않았다. 이미 50년 전 <모모>에서 한 얘기가 여러 작품으로 계속 재화되는 느낌이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주제가 어디 있을까. 다른 인물, 다른 배경, 다른 사건, 다른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질 때 독자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그 주제를 받아들이면 충분히 좋은 것이다.

 

이 책은 나로서는 그다지 새로운 느낌을 받지 못했다. 뒷장이 뻔히 예상되었고 내용이나 표현이 약간 전형적이고 직접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태를 비판하고 경고하는 내용이지만 세태를 정확히 반영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내가 세상을 잘못 보고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바쁘게 일한답시고 여유를 잃고 소중한 것을 다 잊어버린 어른들이 나온다. 그리하여 행복한 삶을 유지할 것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남몰래 그것들을 지키고 키워온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설정에 대하여 회의가 든다. 어른들이 제정신이 아닌데 아이들만 초롱초롱하고 단단하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어른들이 미쳐 돌아가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미친 틈바구니에서 말라간다. 어른들이 주입한 병든 가치관을 가지고 한술 더뜨지 않으면 다행인 채로 새로운 행복을 상상하지 못하고 자라간다. 먼 곳은 모르겠고 지금 이곳은 그런 것 같다.

 

어른들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동안 사라진 것들은 이런 것이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고 책이 사라졌다. 공원의 꽃, 농장의 나무와 채소, 결국엔 먹을 것들도 없어졌다. 어른들이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절망적이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을 이끌었다. 거기엔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가꾸어간 초록동산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등장이 나에겐 반갑고 의미있었다. 세대간 연결과 소통이 있다면 이런 가능성도 있다.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가능성의 마지막 세대일 것만 같은데, 그 가능성도 점점 닫히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초록동산으로 이끌기 전, 어린 소녀가 어른들을 깨우친 말에 주제가 다 들어있다고 하겠는데, 그게 너무 노골적으로 작가의 육성이어서 좀 재미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동안 어른들은 시계만 쳐다보고,

시간에 쫓겨 다니면서 바쁘다고만 했잖아요.

시곗바늘 소리만 듣느라 가장 중요한 소리를 듣지 않았다고요!”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함께 어울려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요.

사람, , , 식물, 동물, 모두 다요!”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작품의 메시지에는 깊이 공감한다. 갈수록 바빠지고 그와 비례해 갈수록 불안해지는 우리의 모습. 이전보다 풍요롭고, 이전보다 편리한데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는 걸까? 앞만 보고 질주하느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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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따먹기 스콜라 창작 그림책 86
김지영 지음, 남형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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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특징 중 하나로 글과 그림의 보완적 서사를 꼽는다. 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빈 곳을 그림이 채워가며 함께 이야기를 해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글만 읽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이 책을 보며 그걸 실감했다. 글만 읽으면 반칙을 하지 말자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책이 아닌 것을 그림이 말해준다.

 

많고많은 놀이들 중에서 작가님이 땅따먹기를 고른 이유를 알 것 같고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땅따먹기. 어렸을 때도 놀이에 취약하던 내가 그나마 깍두기가 되지 않고 할 수 있는 놀이가 땅따먹기였기에 매우 반가웠다.^^;;;

 

처음 본 남형식 작가님의 그림은 아주 재밌으면서 귀여웠다. 아이 한 명이 놀자고 친구들을 부른다. 반달곰, 여우, 산양이 왔다. 넷은 커다란 네모를 그리고 각 귀퉁이에 자기 땅을 그렸다. 땅따먹기 시~! 그런데 아이가 자꾸만 반칙을 한다. 가위 바위 보를 늦게 내고, 친구의 돌멩이가 가는 데다 발을 대고, 돌멩이를 튕기려는 순간 친구를 웃기고, 온갖 반칙을 써서 땅을 독차지하곤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은 다 떠나고 혼자다. 아이가 차지한 땅은 더 이상 푸른 잔디밭이 아니고 딱딱하고 검은 땅이 되어있다.

 

아가들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이 책은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책의 한쪽 귀퉁이에는 동물들이 완전히 떠나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같이 놀자고 친구들을 애타게 부르는 아이에게 이제 반칙 안 할 거야?”라고 살며시 묻는다. 약속하고, 사과하고 함께 다시 놀이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딛고 선 땅은 다시 환하게 푸르다.

 

반칙을 하는 아이가 인간이라는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자연의 법칙을 지키며 사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만이 그 법칙을 멋대로 무시한다. 동물들은 반칙하는 인간들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들이 반칙하며 독차지한 영역은 저토록 검고 황폐한 땅이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땅따먹기를 좋아하는 인간, 반칙을 일삼는 인간, 손만 대면 망가뜨리는 인간. 귀여운 그림, 단순한 이야기 속에 인간의 속성이 섬뜩하게도 정확히 들어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아이와 동물들이 함께 하며 푸르름을 되찾은 해피엔딩이지만, 지구의 마지막 페이지가 어떨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이런 메시지가 우리의 마음을 부지런히 두드리면 달라질까. 이 책을 읽으며 놀이규칙을 잘 어기고 깽판 놓는 아가들이 내가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다 떠나는구나를 깨달아도 매우 좋은 일이다. 그것 한 겹만 들어있어도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구와 인간에 대한 주제가 한 겹 더 들어있으니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라고 하겠다.

 

땅따먹기. 내 어린시절부터의 오랜 놀이. 놀이로는 좋은데, 단지 놀이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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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는 수영장 사계절 1318 문고 147
김선정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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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추진하며 메일로 몇 번 연락하고 한번 만나뵈었을 뿐인데, 내마음대로 실친의 범주에 넣은 작가님이다. 실친의 새 책이 나왔다?! 보자마자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작가님의 청소년소설은 처음 읽는거라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많은 청소년소설이 그렇듯이, 굳이 청소년이라는 구분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내용이었다. 주인공의 연령대와 장소가 그런 것 뿐이지 내용은 청소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소설로 한정지어진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널리 읽히면 좋겠다.

 

책장을 정신없이 넘기면서, 나는 리뷰가 아주 짧아지더라도 이 책의 스포를 절대 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낱말 하나만 공개하면 바로 스포의 출발이 된다. 나는 보통 책 정보나 영화 정보를 어느정도 알고 보는 것을 좋아한다. 스포는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책 정보를 보지 않고 바로 읽었는데 엄청난 몰입감이 있었다. 책 정보를 다 읽고 읽었다면? 그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 스포를 싫어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런 분들은 이 리뷰도 그만 읽으시고 인터넷서점의 책 정보도 나중에 읽으시는 걸 추천한다. 책 소개에 너무 자세한 정보가 다 나와있었다. 그래서 리뷰자 한 명이 스포를 참아봤자일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편하게 쓰도록 하겠다.^^;;;

 

작가의 말이 맨 뒤에 나와있었지만 나는 그것부터 읽었다.

이 책의 초고는 책의 배경이 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썼습니다.”

비극적인 사건? 뭐지? 내 기억은 여러 가지 사고들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 책의 초고를 쓴 최초의 날짜를 찾아보니 대략 9년 전이었습니다.”

세월호 이야기인가.... 수영장이라는 소재는 그것과 관련이 있는가...ㅠㅠ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작가님이 마음속에 품고 오랫동안 고생했던 그 사건은 내 기억의 목록에는 없는 사건이었다. 그 끔찍한 대량 희생의 주인공들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들어본 기억은 난다. 끔찍하다... 라는 생각은 잠깐 했지만 바로 잊어버렸다. 상상력의 빈곤은 때로 축복이다. 옆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니기 때문에 잠시 눈살 찌푸리고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작가님을 찾아가 잊지 말고 세상에 내어놓아 줄 것을 오랫동안 요구했다.

오랜 시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야기들은 자신을 가둬놓고 내놓지 않은 주인에게 단단히 화가 나서 복수를 하려 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지 말고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한다는 설화지만 저는 다르게도 느껴집니다. 내놓지 않고 묻어버린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비집고 나오니 더 큰 화가 나기 전에 세상에 보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 일을 다룬 이 책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이 근본적인 물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더 현명한 방법을 찾고, 이미 희생된 생명들에게는 위로와 안도를,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경고를 주었으면 좋겠다. 얽혀있는 세상 일을 풀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이야기가 그걸 할 수 있나.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는 있다. 그러니 이 책이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이야기의 초반에, 서사의 주축이 되는 삼총사가 결성이 된다. 목현읍이라는 시골에 있는 오래된 고등학교의 비주류 학생 3, 각각 홀로 왕따였던 아이들 셋이 뭉치는 과정은 도입의 공식 같은 느낌이 살짝 있지만 그래도 흥미롭고 신선했다. 특히 웹소설가 지망생인 기현. 아직 대가의 자질이 보이는 건 아니고 자뻑에 가까운 실력이긴 하지만 주 서사와 나란히 가는 기현의 웹소설은 이 책의 흥미와 긴장을 높여주는 요소였다. 이 소설의 소재에 공감하면서 취재와 조사에 도움을 주는 진호와 영리가 합류한다. 물론 청소년답게 수익금 분배에 대한 계약을 하고서.^^

 

이 책의 제목. 목현고 체육관 뒤쪽에 방치되어 있으며, 학생들 대다수가 잘 알지도 못하는 수영장. 이제는 물 없는 수영장. 이 소재에 담긴 큰 사건은 대체 무얼까? 익사 사고인가? 무슨 비리라도 얽혀있나? 방치된 채 버려져 음습하고 기괴해진 이 공간은 독자들의 긴장감을 높인다. 웹소설 3총사는 이곳에 진입한다!

 

새로운 사건들이 계속 생기거나 밝혀지며 책의 몰입감은 계속 높아진다. 중반까지는 긴장감과 궁금함이 높아지고, 중반 이후에는 긴장감은 좀 해소된다. 무슨 사건인지 알게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사건의 전말에 대한 궁금함과 문제의식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덮고 나면 작가의 문제의식에 동승하게 된다.

 

!!! 요리조리 쓰다보니 여기까지 스포를 최대한 안 했다. 만세!!

웹소설 지망생 기현이의 아빠가 목사님이라는 사실은 꽤 의외였는데, 시골마을 목사님인 만큼 마을의 문제에 이래저래 마음쓰지 않을 수 없었던 바, 이 사건에 대한 추도문을 쓰셨다. 그 일부로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여기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을 착취하고 유린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 당장 이 죽음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을 좋은 곳, 귀한 곳, 아름다운 곳으로 다음 세대에게 이어 주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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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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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소설에 대한 편견이 있다. 훌륭한 작품은 원석처럼 묻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베스트셀러는 훌륭한 작품은 아닐 것이다.

이건 대중의 시각에 대한 무시라고 하겠지. 위와 같은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이 종합1위를 몇주간 하면서 많이 팔리고 읽혔던 것을 보면 대중의 안목을 믿고 책을 골라도 좋을 것 같다. 나처럼 소설을 많이 안 읽어본 사람은 말이다.

이 작가는 다작을 하는 분은 아니라고 한다. 가끔 나오는 작품 또한 분량 면에서 얄팍하다. 이 책도 작은 판형에 130쪽 정도. 덕분에 독서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나도 하루만에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와 소통한 역자의 의견을 읽어보니 작가는 매우 절제되고 밀도 높은 문장들을 쓰는 것 같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고 아일랜드의 부끄러운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이라고 불리는 그 일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일어났던 인권유린이었다. 미혼모, 고아 등을 수용했던 그 시설에선 수용자들이 가혹한 노동과 학대에 시달렸다. 사람들도 어렴풋이 알고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력의 보호를 받는 종교단체의 힘은 깊고 넓게 뻗은 뿌리처럼 견고했고, 어디에서부터 손을 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거기에 아주 작은 균열을 낸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빌 펄롱이었다. 1946년생으로 나오고 책의 배경은 1985년이다. 이 사람은 똑똑하고 자기주장과 의협심이 강한, 불의에 맞서는 이들이 흔히 갖고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매우 평범하고 자기 가족을 사랑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조심조심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인해 출신성분에 비해서는 꽤 많은 것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실업자가 넘쳐나는 불경기에 그래도 그가 운영하는 석탄·목재상은 잘 되고 있었으니까.

출신성분 얘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그의 어머니는 윌슨 부인의 집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열여섯 살에 그를 낳았다. 평생 그에게 누구도 아버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불쌍한 팔자라고도 할 수 있는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은 윌슨 부인이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살던 그는 어머니를 내치치 않고 거두어 주었고 출산을 도와주었고 그 집에서 자라도록 허락해 주었으며, 준 자식처럼 대해주었다. 그래서 그의 유년은 다소 불쌍했지만 크게 불쌍하진 않았다. 그는 바르게 장성하여 그의 일을 일구고 가정을 꾸리고 다섯 딸을 낳아 가장의 의무를 다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런 그가 권력과 결탁한 종교세력의 비리를 들춘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는 그런 생각을 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냥 그는, 마음이 시키는 한 가지 일을 했을 뿐이다. 그 영향과 결과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고 책이 끝난다. 열린 결말이라 독자의 상상의 몫일 텐데, 그는 그 일로 꽤나 곤경을 겪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대하게 뻗은 악의 뿌리를 캐내는 데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그가 자신의 행동에 그렇게까지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현타가 왔던 것은, 나는 그렇게 못할텐데 라는 자각이다. 나의 일상, 뭐 대단히 부유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그저그런 나의 일상. 여기에 돌을 던지는 일을 이젠 절대로 못하겠다는.... 이것이 기득권의 특징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나도 기득권이 된 것인가. 그리고 기득권의 또다른 특징은 선택의 순간에 비겁해지는 것이던가. 그렇게 본다면 펄롱은 대단히 용기있고 훌륭한 사람이다.

내 안의 비겁함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펄롱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에는 빚을 갚는 마음도 있잖아. 그 역시 미혼모의 아들이잖아. 윌슨 부인이 거두어주지 않았더라면 그와 그의 어머니 모두 그 수용소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든가 더 비참한 인생이었을 수 있잖아. 자신과 같은 입장을 보았을 때 자신이 받았던 은혜를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지.

음 그렇지만 알고 있다. 당연하지 않다. 은혜를 받았는데 돌려주지 않거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더 모질게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내가 어떤 쪽일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ㅠㅠ

내 리뷰가 얼기설기 써나간 줄거리와 소감은 작품의 깊고 유려함에 비해 너무 거칠고 볼품없다. 이 책에는 당연한 것, 인류 보편의 전통적인 주제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새롭고 깔끔하고 단단한 그릇에 담길 수 있구나. 읽어봐야 알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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