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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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소설에 대한 편견이 있다. 훌륭한 작품은 원석처럼 묻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베스트셀러는 훌륭한 작품은 아닐 것이다.

이건 대중의 시각에 대한 무시라고 하겠지. 위와 같은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이 종합1위를 몇주간 하면서 많이 팔리고 읽혔던 것을 보면 대중의 안목을 믿고 책을 골라도 좋을 것 같다. 나처럼 소설을 많이 안 읽어본 사람은 말이다.

이 작가는 다작을 하는 분은 아니라고 한다. 가끔 나오는 작품 또한 분량 면에서 얄팍하다. 이 책도 작은 판형에 130쪽 정도. 덕분에 독서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나도 하루만에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와 소통한 역자의 의견을 읽어보니 작가는 매우 절제되고 밀도 높은 문장들을 쓰는 것 같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고 아일랜드의 부끄러운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이라고 불리는 그 일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일어났던 인권유린이었다. 미혼모, 고아 등을 수용했던 그 시설에선 수용자들이 가혹한 노동과 학대에 시달렸다. 사람들도 어렴풋이 알고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력의 보호를 받는 종교단체의 힘은 깊고 넓게 뻗은 뿌리처럼 견고했고, 어디에서부터 손을 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거기에 아주 작은 균열을 낸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빌 펄롱이었다. 1946년생으로 나오고 책의 배경은 1985년이다. 이 사람은 똑똑하고 자기주장과 의협심이 강한, 불의에 맞서는 이들이 흔히 갖고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매우 평범하고 자기 가족을 사랑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조심조심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인해 출신성분에 비해서는 꽤 많은 것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실업자가 넘쳐나는 불경기에 그래도 그가 운영하는 석탄·목재상은 잘 되고 있었으니까.

출신성분 얘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그의 어머니는 윌슨 부인의 집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열여섯 살에 그를 낳았다. 평생 그에게 누구도 아버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불쌍한 팔자라고도 할 수 있는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은 윌슨 부인이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살던 그는 어머니를 내치치 않고 거두어 주었고 출산을 도와주었고 그 집에서 자라도록 허락해 주었으며, 준 자식처럼 대해주었다. 그래서 그의 유년은 다소 불쌍했지만 크게 불쌍하진 않았다. 그는 바르게 장성하여 그의 일을 일구고 가정을 꾸리고 다섯 딸을 낳아 가장의 의무를 다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런 그가 권력과 결탁한 종교세력의 비리를 들춘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는 그런 생각을 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냥 그는, 마음이 시키는 한 가지 일을 했을 뿐이다. 그 영향과 결과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고 책이 끝난다. 열린 결말이라 독자의 상상의 몫일 텐데, 그는 그 일로 꽤나 곤경을 겪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대하게 뻗은 악의 뿌리를 캐내는 데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그가 자신의 행동에 그렇게까지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현타가 왔던 것은, 나는 그렇게 못할텐데 라는 자각이다. 나의 일상, 뭐 대단히 부유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그저그런 나의 일상. 여기에 돌을 던지는 일을 이젠 절대로 못하겠다는.... 이것이 기득권의 특징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나도 기득권이 된 것인가. 그리고 기득권의 또다른 특징은 선택의 순간에 비겁해지는 것이던가. 그렇게 본다면 펄롱은 대단히 용기있고 훌륭한 사람이다.

내 안의 비겁함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펄롱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에는 빚을 갚는 마음도 있잖아. 그 역시 미혼모의 아들이잖아. 윌슨 부인이 거두어주지 않았더라면 그와 그의 어머니 모두 그 수용소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든가 더 비참한 인생이었을 수 있잖아. 자신과 같은 입장을 보았을 때 자신이 받았던 은혜를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지.

음 그렇지만 알고 있다. 당연하지 않다. 은혜를 받았는데 돌려주지 않거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더 모질게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내가 어떤 쪽일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ㅠㅠ

내 리뷰가 얼기설기 써나간 줄거리와 소감은 작품의 깊고 유려함에 비해 너무 거칠고 볼품없다. 이 책에는 당연한 것, 인류 보편의 전통적인 주제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새롭고 깔끔하고 단단한 그릇에 담길 수 있구나. 읽어봐야 알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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