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따먹기 스콜라 창작 그림책 86
김지영 지음, 남형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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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특징 중 하나로 글과 그림의 보완적 서사를 꼽는다. 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빈 곳을 그림이 채워가며 함께 이야기를 해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글만 읽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이 책을 보며 그걸 실감했다. 글만 읽으면 반칙을 하지 말자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책이 아닌 것을 그림이 말해준다.

 

많고많은 놀이들 중에서 작가님이 땅따먹기를 고른 이유를 알 것 같고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땅따먹기. 어렸을 때도 놀이에 취약하던 내가 그나마 깍두기가 되지 않고 할 수 있는 놀이가 땅따먹기였기에 매우 반가웠다.^^;;;

 

처음 본 남형식 작가님의 그림은 아주 재밌으면서 귀여웠다. 아이 한 명이 놀자고 친구들을 부른다. 반달곰, 여우, 산양이 왔다. 넷은 커다란 네모를 그리고 각 귀퉁이에 자기 땅을 그렸다. 땅따먹기 시~! 그런데 아이가 자꾸만 반칙을 한다. 가위 바위 보를 늦게 내고, 친구의 돌멩이가 가는 데다 발을 대고, 돌멩이를 튕기려는 순간 친구를 웃기고, 온갖 반칙을 써서 땅을 독차지하곤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은 다 떠나고 혼자다. 아이가 차지한 땅은 더 이상 푸른 잔디밭이 아니고 딱딱하고 검은 땅이 되어있다.

 

아가들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이 책은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책의 한쪽 귀퉁이에는 동물들이 완전히 떠나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같이 놀자고 친구들을 애타게 부르는 아이에게 이제 반칙 안 할 거야?”라고 살며시 묻는다. 약속하고, 사과하고 함께 다시 놀이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딛고 선 땅은 다시 환하게 푸르다.

 

반칙을 하는 아이가 인간이라는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자연의 법칙을 지키며 사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만이 그 법칙을 멋대로 무시한다. 동물들은 반칙하는 인간들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들이 반칙하며 독차지한 영역은 저토록 검고 황폐한 땅이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땅따먹기를 좋아하는 인간, 반칙을 일삼는 인간, 손만 대면 망가뜨리는 인간. 귀여운 그림, 단순한 이야기 속에 인간의 속성이 섬뜩하게도 정확히 들어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아이와 동물들이 함께 하며 푸르름을 되찾은 해피엔딩이지만, 지구의 마지막 페이지가 어떨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이런 메시지가 우리의 마음을 부지런히 두드리면 달라질까. 이 책을 읽으며 놀이규칙을 잘 어기고 깽판 놓는 아가들이 내가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다 떠나는구나를 깨달아도 매우 좋은 일이다. 그것 한 겹만 들어있어도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구와 인간에 대한 주제가 한 겹 더 들어있으니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라고 하겠다.

 

땅따먹기. 내 어린시절부터의 오랜 놀이. 놀이로는 좋은데, 단지 놀이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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