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을 깨우다 천개의 지식 22
강성은 지음, 민승지 그림, 이수종 감수 / 천개의바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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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책이 집에 분명히 있었는데 어디갔지? 조금 읽다가 말았는지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천개의지식' 시리즈 중 이 인물시리즈를 좋아해서 골고루 갖춰놓으려고 골랐다. 인물에 대해 새삼 알고 싶은 마음도 생겼고.

이 인물 시리즈의 특징은 간접적인 서술이다. 현실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옛 인물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알려주는 방식이다. '~~했다'가 아니고 "~~했다고 해' 식의 서술이다. 그 인물이 화제로 나온 배경이 있을테고, 그 설정 때문에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하니 직접적인 서술을 원하는 독자에겐 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책들이 있고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읽으면 되는 것이니 이 시리즈의 간접서술 방식이 다양성 면에서도 난 좋다고 본다.

그럼, 레이첼 카슨은 어떤 배경에서 화제로 나오게 되었을까? 부모님을 따라 바닷가 마을로 이사온 해림이가 화자다. 해림이 부모님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댁을 처분하는 대신 까페로 개업하게 되었고, 해림이는 학원을 전전하는 도시 학생에서 까페 일을 돕는 바닷가 소녀로 바뀌었다. 자주 드나들던 길고양이가 어느날 살충제를 뿌린 음식찌꺼기를 먹고 쓰러졌고, 놀라서 찾아간 동물병원의 수의사 선생님을 통해 레이첼 카슨의 인생에 대하여 듣는다.

왜 바닷가 까페가 나올까 했더니 레이첼 카슨이 바다에 대한 책을 연속해서 출간했구나. 나는 '침묵의 봄' 밖에 몰랐는데 그 책들이 궁금해졌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 등. 과학자이며 동시에 시인의 눈을 가졌던 레이첼 카슨의 책이 어떤 모습일지 꼭 확인해 봐야겠다.

레이첼 카슨이 바다를 사랑했던 이유는 그가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던 이유와 통한다. 바로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생명들의 연결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그는 살충제의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했고, 생물들을 천천히, 자세히 살펴보고 기록하여 글을 썼다. 그의 일생에 대하여 이야기 나눈 수의사 선생님과 해림이는 바다를 깨끗하게 하고 자연을 괴롭히지 않는 삶을 위해 작은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빠르고 편리하게 살려는 인간의 욕심은 순식간에 자연을 망가뜨려서, 어버버하는 동안 거의 구제불능의 수준까지 치달았다. 조금 더 먼저 깨달은 이런 인물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보다는 좀 나았겠지.ㅠ

가장 지속가능한 방법은 레이첼 카슨이나 이 책의 해림, 수의사 선생님처럼 생명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을 회복하는 것. 사랑하면 아끼게 된다. 이걸 교육으로 실천하시는 선생님들도 주변에 계신데, 가장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나는 이런 면이 부족해서...ㅠ

이 책으로 레이첼 카슨의 삶을 대략 알게 되었고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내겐 참 좋은 책이었다고 하겠다. '티나의 종이집' 그림 작가님이 그리신 삽화도 아기자기 예뻐서 맘에 든다. 이 시리즈 인물책이 계속 나와서 아이들마다 맞춤형으로 권해주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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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문제집 그래 책이야 54
선시야 지음, 김수영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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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소재라 호기심에 끝까지 단번에 읽었다. 도입부의 기세에 비해서 뒷부분의 힘은 그냥 평범한 정도라고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의 '무서운 문제집'은 판타지로 가는 소재다. 밝고 신비로운 판타지가 아니고 무섭고 우울한 판타지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판타지이므로 현실 또한 잘 그려내야 하는데, 어떤 면은 매우 그렇고 어떤 면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살면서 한 번도 보기 힘든 수학 천재들이 한 학급에 줄줄이 등장하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적 조정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개연성을 갖출 어떤 장치도 없이 나오는 것이 좀 맥빠졌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말투나 행동에 비해 작품에서 설정한 연령이 너무 어린 느낌이 들어 약간 이질감이 들었다. 3학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 책이 중학년 권장 도서임을 감안해도 한 학년이라도 올리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4학년이면 그래도 좀 나을 것 같은데.

하지만 우리 사회가 천재를 대하는 방식, 또 겸손하고 성찰하는 태도의 중요성 등을 보여주는 대목은 아주 좋았다. 주인공 한영재가 자기소개를 하며 바로 시작하는 부분부터 확 흥미를 끌었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수학 천재다. 두 살 때 구구단을 외웠다. 다섯 살 때 연립방정식을 풀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번 수학시험도 백 점을 맞았다.”

저런 천재가 평범한 교육과정을 대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래서 느린 학습자들에 대한 대책 만큼이나 영재학생에 대한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소질 있는 정도에도 마구 갖다 붙이는 영재 말고 진짜 일반 수준을 훨씬 넘는 천재들 말이다. 그런 학생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그런 프로그램은 좀 유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들이 모든 수업시간을 꼭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부터 버려야 한다고 할까? (이건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일)

친구들이 배우고 있는 내용이 너무 쉽고 시시한 것은 한영재에게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제는 영재가 그걸 너무 티낸다는 것. “너무 시시해요.” “고작 6학년 선행 풀면서 낑낑대냐?” 따위의 말들을 여과없이 내뱉으니 친구들이 재수없어 할 수밖에. 그래서 영재 옆에는 친구들이 없다. 본인도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영재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무서운 문제집. 표지에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위한 수학 문제집’이라는 제목과 함께 묘한 표정의 남자아이 한 명이 그려져 있다. ‘문제집’이라고 하지만 문제가 줄줄이 빼곡한 게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만 등장, 그리고 매우 쉬워보이나 절대 풀리지 않음, 주인공을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감, 찢거나 버려도 다시 나타남.... 등의 설정은 등골이 서늘한 느낌을 준다. 교만한 천재에게 닥친 이 악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초반의 느낌과는 달리 이야기는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난 그런 게 좋음^^;;;) 그 과정에서 영재는 천재성을 거의 잃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데.... 난 이 천재성에 대해서 좀 궁금해졌다. 내가 어릴 때 엄청 유명한 천재가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 그를 조명한 기사를 읽어보니 지금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어린 학생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고,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내지 못한다고 들었다. 천재성은 어떻게 발현되는 것이고, 그걸 잘 유지하려면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걸 꼭 유지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일까?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기 위해선 주변에서 신경을 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든다. 근데 한편으론 천재로 사는 느낌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도 한 부분에서라도 좀 특출한 능력을 갖고 싶은 마음이 예전부터 있었거든... 다들 비슷한 마음일까?^^

특출하거나 평범하거나.... 그 모든 걸 개성으로 여기고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만하지도 말고 위축되지도 말고... 특히 ‘점수’라는 그 숫자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부모들도 그 틀을 벗어나 자녀들을 바라볼 수 있고. 작가님도 그런 생각에서 이 작품을 쓰시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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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줄넘기 - 2022 문학나눔 선정도서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랑 놀래 4
신원미 지음, 홍그림 그림 / 마루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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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에 딱 좋고 권해주기에도 좋은 동화책을 오랜만에 발견했다. 저학년 담임이면 바로 읽어주려고 가방에 챙길 것 같은 책. 캐릭터도 사랑스럽고 읽는 맛도 아주 좋다. 담긴 의미도 자연스럽게 잘 다가온다.

작가님 이름이 낯설지 않네. 내가 읽은 작품이 있던가? 하고 봤더니 <하늘이 딱딱했대?>가 있구나. 그책 참 좋게 읽었어서 신뢰감을 갖고 이 책도 읽었다. 오르간을 전공한 동화작가님이라.... 작가님들의 이력도 참 다채롭구나. 이 책을 읽다보면 다양한 동식물들을 등장시키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은 것 같다고 느껴진다. <하늘이 딱딱했대?>도 그렇게 나왔던 게 아닐까? 혼자 짐작해본다.

귀엽고 정이 가는 우리의 주인공은 토끼다. (이름은 따로 없음) 시끌벅적한 소리에 나와봤다가 줄넘기대회를 보게 된다. 토끼는 별 관심이 없었다. 잘 뛰는 자신에게 줄넘기 정도는 시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캥거루가 장미 트로피를 받는걸 보자 너무 부러워서 생각이 바뀐다. 다음 대회에선 내가 1등해야지!

첫번째 과제는 적당한 줄을 찾는 것이다. 그 과정이 꽤 걸린다. 그리고 차례에 아주 감각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향기로운 줄넘기
달콤 달달한 줄넘기
무시무시한 줄넘기
끈적끈적한 줄넘기
반짝반짝 줄넘기

여러 줄을 찾고 시도하다 실패하는 과정이 재밌고 귀엽다. 그러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해보지도 않고 '시시하다'고 했던 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줄넘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캥거루가 땀흘려 이루었던 걸 단번에 해낼거라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던 거다. 줄을 갱신해가는 과정에서 토끼는 여러 대상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점점 생각이 자라난다.

마지막 줄은 인자한 거미할머니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지난한 연습의 과정에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존재는 접시꽃에서 점프 연습을 하는 개구리였고. 온갖 감각적 표현들이 넘실대는 마지막장에서 토끼는 즐거운 얼굴로 줄넘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이 책이 저학년 아이들의 특성에 맞는 이유를 두 가지 말해보자면, 첫째는 줄넘기라는 소재다. 보통 1,2학년에서 줄넘기의 기본이 완성된다. 처음에는 못하는 아이들이 꽤 되지만 연습하는 도중 조금씩 단계를 뛰어넘고 결국에는 거의 다 하게 된다. 그게 꽤 오래 걸리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이 소재가 사무치게 다가올 것이다. 못하니까 하기 싫고, 하기 싫으니 뺀질거리며 안하다가 결국 학년 마칠 때까지도 못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런 아이들에게는 이 책이 아주 친절한 도전이 되겠다.

두번째는 저학년이 반복에 의한 기본기능을 닦는 학습방법이 필요한 단계라는 점이다. 그것을 확실한 이미지로 보여준 소재와 주인공이 바로 접시꽃과 개구리다. 지루해도 꾸준히 쌓은 기본학습 위에서 아이들의 창의성이 춤출 수 있다. 동화책을 훈계의 방편으로 써먹는 건 별로지만 격려와 동기유발 정도라면 훌륭하지 않을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볼 눈이 있는 아이들은 보겠지.^^

뭐 그렇다고 이 책이 열심히 공부해! 줄넘기도 못하냐! 연습해! 이런 책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끝까지 읽어낼 리가 없겠지. 그림처럼 뽀얗고 사랑스러운 토끼의 줄넘기 도전기 정도로 생각해도 좋겠다. 오리, 두더지, 개미, 개구리, 거미 등의 주변 캐릭터들도 착하고 매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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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무 무지개 택배 1 - 뒤바뀐 주소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박현숙 지음, 백대승 그림 / 우리학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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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숙 작가님의 책에 꽤 많은 리뷰를 썼지만 실상 그분의 책을 반도 못읽음... 그만큼 다작을 하신다는 건데, 어떤 작품을 읽든 평타 이상은 된다는 점이 다작보다 더 신기한 점이다. 이 책을 읽고는 그 느낌이 더 확고해져 버렸다. 세상에나 이런 작품이 끊기지도 않고 줄줄줄~~ 소금장수의 맷돌같은 이야기의 샘을 품고 계신건가? (내가 작가는 아니지만 부럽다...)

이 책은 발상부터 아주 참신하고 다음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흡인력도 상당하다. 어디서 봤는데 싶은 기시감도 거의 들지 않는다. 쏟아져나오는 동화들 속에서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이야기를 이리저리 꼬면서 독자들을 좀 정신없이 흔들어 놓았다가 마지막에 안전한 곳에 딱 내려주는 재미있는 놀이기구 같은 동화책이다.

평소에 안보이던 가게가 보였다가 사라진다는 설정은 자주 보지만, 이 책에선 그게 떡집도 아니고 과자점도 아니고 사탕 가게도 아니었다. 택배 회사였다. 무지개 택배. 그곳에 한 아이가 택배를 맡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이 고객의 물품만 받고 무료로 배달해주는 그 택배회사의 정체는 뭘까? 거기서 일하는 택배기사들도 뭔가 이상하다. 자기 방에서 대기하다가 벨이 울려야 맡겨진 일을 할 수 있다. 머무는 기간은 30일이며 그 안에 배달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그래야 주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주인'을 찾다니, 반려동물도 아니고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택배회사 왕 대장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꼭 이전에 살던 곳, 네 주인에게 돌아가기를 바란단다. 그래야 너도 네 주인도 행복할 수 있어. 둘이 떨어져 있으면 모두 불행하게 되지."
"곁에 있을 때는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다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거지."

택배원 깍지는 이 책의 시작에서 아이가 맡겼던 바로 그 택배를 받아 임무를 시작했다. 이 책의 부제처럼 뒤바뀐 주소 때문에 발신자 강도필, 수신자 담임선생님, 강도필의 쌍둥이 남매 강도영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상황을 점점 알아간다. 알고보면 큰일은 아니었지만 큰일이란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아이들에겐 지금 겪는 일이 바로 우주보다 큰 일인 것을. 그 와중에 독자들은 만나게 된다. 바로 그 '주인'들을. 무언가를 잃어버린 주인들. 그들이 잃은 것은 무엇일까?

'주인'들과 그들의 조각인 택배원들의 만남. 그 모습을 흐뭇하게 예고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떨어져 불안정했던 그들은 합쳐져서 그들의 본모습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완벽할 리는 없겠지.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니까. 하지만 우리의 조각들을 내던지진 말자. 그것들은 하나하나 다 소중하니까. 내가 내던진 조각들이 나를 찾아오는 길이 이렇게 험하다면, 내던지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지.

이 내용만으로도 완결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이 1권이고 시리즈라니 2권이 나온다는 말 아닌가? 얼마만에 나오는지 한번 세어볼까? 금방 나올겨~ 더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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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언덕 1 - 야리와 누리가 만났을 때 동화의 맛 5
이도일 지음, 강나래 그림 / 우주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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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 이유는 귀엽고 따뜻한 표지그림에 끌려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누리'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엥? 이 누렁개 이름이 누리구나. 우리집이랑 똑같네. 우리집 누리는 못말리는 천방지축 녀석인데 이 누리는 어떤 녀석이려나? 이런 마음에서 읽기 시작했다.

야리가 먼저 나온다. 야리는 바람언덕에 사는 고양이다. 너굴이가 이사 가고 겨우내 혼자 지냈던 야리는 그 집에 새 친구가 이사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어떤 친구일까?" 기대하며. 아니 그런데, "개만 아니면 괜찮아." 라고? 이런!!ㅎㅎ

드디어 새 친구가 수레를 끌며 언덕을 올라온다! 이럴수가! 개잖아! 절대 아니길 바랐던 일이 눈앞에... 야리는 크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고 도와주려 한다. 하지만 그때부터다. 둘이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를 알게되는 시간. 둘은 너무나 달랐다. 성격도 취향도 생각도.

보통 이런 경우에 나는 "모두와 잘 지낼 순 없으니 적당히 멀리 해." 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는게 맞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손절'을 한다. 나도 겉으로 드러나게는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매우 많은 벽을 친다. 바로바로 아주 쉽게.

예의를 잘 따지고 까칠한 야리에 비해서 누리는 가리는 게 없고 털털하다. 경계가 확실한 야리에 비해 누리는 그런 의식이 거의 없다. 첫 대면에서 누리는 야리한테 "어이, 야옹아!" 라고 불렀고, 기분 상한 야리는 외면했다. 하지만 둘의 장점이 있으니, 누리는 웬만해선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야리는 언제든 상대방이 손내밀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까는 네 이름을 몰랐잖아.
야리야, 수레 좀 밀어주지 않겠니?"
바로 수정한 누리의 말투에 야리도 "좋아. 기꺼이!"로 답했다. 손절이 빠른 이들이라면
"말 뽄새 좀 보소. 손절."
"까칠하기는. 손절."
이렇게 될텐데 말이다.

이사 온 후에도 그들은 서로 다른 존재임을 사사건건 느끼게 된다. 누리가 너무 맛있다며 잔뜩 가져온 막대과자는 야리에겐 딱딱하기만 하고 맛이 없었다. 누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하는데 야리는 느긋하게 늦잠 자는 것을 좋아해 짜증을 낸다. 야리는 격식에 맞는 걸 좋아하고 누리는 그런걸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일들을 함께 겪으며 드러난 것은 둘의 이런 차이만이 아니라고 난 느꼈다. 둘이는 비슷한 점도 있었다.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에게 선의를 베풀었다. 그리고 그 선의를 기쁘고 행복하게 받았다.

저녁놀을 함께 보다 쿨쿨 잠들어버린 누리를 놔두고 집에 온 야리는 도저히 맘이 편치 않아 담요를 가져나가 덮어주고 돌아온다. 이른 아침 땅땅거리며 누리가 만든 것은 야리를 위한 흔들의자였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고맙게 받았고, 흔들의자에 함께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친구가 되었다.

까칠하지만 은근히 마음이 약하고 상대방을 위할 줄 아는 야리, 세심하진 못하지만 쉽게 노여워하지 않고 고집부리지 않는 누리, 둘 다 예쁘다. 얘네들이 멈춘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가면 싸우고 미워하고 친구를 잃고 외로워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주변에 아주 널렸다.

관계에 인내심을 발휘할 줄 모르는, 아예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다. 아이들이 나보다는 나을 것 같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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