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문제집 그래 책이야 54
선시야 지음, 김수영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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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소재라 호기심에 끝까지 단번에 읽었다. 도입부의 기세에 비해서 뒷부분의 힘은 그냥 평범한 정도라고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의 '무서운 문제집'은 판타지로 가는 소재다. 밝고 신비로운 판타지가 아니고 무섭고 우울한 판타지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판타지이므로 현실 또한 잘 그려내야 하는데, 어떤 면은 매우 그렇고 어떤 면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살면서 한 번도 보기 힘든 수학 천재들이 한 학급에 줄줄이 등장하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적 조정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개연성을 갖출 어떤 장치도 없이 나오는 것이 좀 맥빠졌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말투나 행동에 비해 작품에서 설정한 연령이 너무 어린 느낌이 들어 약간 이질감이 들었다. 3학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 책이 중학년 권장 도서임을 감안해도 한 학년이라도 올리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4학년이면 그래도 좀 나을 것 같은데.

하지만 우리 사회가 천재를 대하는 방식, 또 겸손하고 성찰하는 태도의 중요성 등을 보여주는 대목은 아주 좋았다. 주인공 한영재가 자기소개를 하며 바로 시작하는 부분부터 확 흥미를 끌었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수학 천재다. 두 살 때 구구단을 외웠다. 다섯 살 때 연립방정식을 풀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번 수학시험도 백 점을 맞았다.”

저런 천재가 평범한 교육과정을 대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래서 느린 학습자들에 대한 대책 만큼이나 영재학생에 대한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소질 있는 정도에도 마구 갖다 붙이는 영재 말고 진짜 일반 수준을 훨씬 넘는 천재들 말이다. 그런 학생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그런 프로그램은 좀 유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들이 모든 수업시간을 꼭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부터 버려야 한다고 할까? (이건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일)

친구들이 배우고 있는 내용이 너무 쉽고 시시한 것은 한영재에게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제는 영재가 그걸 너무 티낸다는 것. “너무 시시해요.” “고작 6학년 선행 풀면서 낑낑대냐?” 따위의 말들을 여과없이 내뱉으니 친구들이 재수없어 할 수밖에. 그래서 영재 옆에는 친구들이 없다. 본인도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영재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무서운 문제집. 표지에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위한 수학 문제집’이라는 제목과 함께 묘한 표정의 남자아이 한 명이 그려져 있다. ‘문제집’이라고 하지만 문제가 줄줄이 빼곡한 게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만 등장, 그리고 매우 쉬워보이나 절대 풀리지 않음, 주인공을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감, 찢거나 버려도 다시 나타남.... 등의 설정은 등골이 서늘한 느낌을 준다. 교만한 천재에게 닥친 이 악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초반의 느낌과는 달리 이야기는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난 그런 게 좋음^^;;;) 그 과정에서 영재는 천재성을 거의 잃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데.... 난 이 천재성에 대해서 좀 궁금해졌다. 내가 어릴 때 엄청 유명한 천재가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 그를 조명한 기사를 읽어보니 지금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어린 학생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고,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내지 못한다고 들었다. 천재성은 어떻게 발현되는 것이고, 그걸 잘 유지하려면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걸 꼭 유지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일까?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기 위해선 주변에서 신경을 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든다. 근데 한편으론 천재로 사는 느낌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도 한 부분에서라도 좀 특출한 능력을 갖고 싶은 마음이 예전부터 있었거든... 다들 비슷한 마음일까?^^

특출하거나 평범하거나.... 그 모든 걸 개성으로 여기고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만하지도 말고 위축되지도 말고... 특히 ‘점수’라는 그 숫자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부모들도 그 틀을 벗어나 자녀들을 바라볼 수 있고. 작가님도 그런 생각에서 이 작품을 쓰시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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