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분식집 초등 읽기대장
박현숙 외 지음, 김도아 그림 / 한솔수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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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숙, 임지형, 정명섭, 최영희 4분의 쟁쟁한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 동화다. 테마는 분식집. 거기다 '기묘한'

표지 그림이나 제목체 등을 봤을때는 이 한여름 더위를 날려줄 납량특집 괴기물 같지만 의외로 무섭지 않다. 정명섭 작가님의 '마녀의 오뎅가게'와 최영희 작가님의 '내장도 주세요'가 그나마 조금 무섭다. 마녀나 요괴가 나오니까. 박현숙 작가님의 '신속한 AS를 기다립니다'에도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가 나오긴 하지만 무섭기보다는 따뜻하고, 임지형 작가님의 '떡볶이와 쿨피스'는 유쾌하기만 하다. 무섭겠다는 예상은 빗나갔지만 난 좋았다. 괴기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앤솔로지 책이니 당연히 작품간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선 '분식'이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맛있는 먹는 이야기가 나오면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더구나 분식! 분식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다이어트에는 강력한 적이지만.... 이 책을 읽고 뒷풀이 활동을 한다면 그건 무조건 분식 먹기다. 걍 저절로 그렇게 된다. 어찌나 먹고 싶어지는지.

'신속한 AS를 기다립니다'에서 분식집 할머니의 대표메뉴는 '빨간 계란과 빨간 튀김'이다. 좀 생소한 메뉴긴 하지만 '아는 맛'이다. (꿀꺽) '떡볶이와 쿨피스'에서는 제목 그대로다. 떡볶이는 맵고, 그 맛을 중화시켜주는 쿨피스는 달고 시원하다. 특히 쿨피스. 이것의 역할이 작품 중 매우 중요한데, 일반명사도 아닌 특정 상품명이 이렇게 강조되어도 되나? 완전 노골적인 PPL?ㅎㅎ 아무려나 여기서도 맛의 연상은 강력했다. '매운 떡볶이집에서 쿨피스를 제공하거나 파는 이유가 가장 저렴한 음료여서'라는 합당한 의심을 한다 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는 맛의 유혹.^^

'마녀의 오뎅 가게'에서는 오뎅과 꼬마김밥이다. 밀가루 범벅이 아닌 탱글한 오뎅의 식감, 따끈하고도 시원한 국물과 꼬마김밥의 조화가 또 '아는 맛'을 소환한다. '내장도 주세요'에는 뭐가 나오게? 당연히 순대! 와 이거 진짜 너무 강력했다. 내장 듬뿍 섞인 뜨끈한 순대 한접시가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뇌리를 맴돈다.

이렇게 '맛있는 이야기'면서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각 작품 고유의 인물과 서사들도 각각 흥미롭고 의미도 좋다. '신속한 AS를 기다립니다'에서 분식집 할머니와 할머니를 추적하는 할아버지의 정체는 뭘까? 그리고 그들의 역할은? 상상속의 초월적 존재지만 어느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 그들이 인간의 행복을 바라기에.

'떡볶이와 쿨피스'에서 떡볶이라면 자신만만하던 권이지가 동준이와의 대결에서 진 후 취했던 태도는 정말 혁신적이다. 와, 나도 닮고 싶다. '쿨피스 전략'으로 기억하자.^^

나머지 두 작품은 '기묘한'이라는 책 제목에 그중 걸맞다. 간을 빼먹을 수 있는 존재들이 그들의 본모습을 감추고 인간들 가까이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행히? 느낌만 강하게 내뿜을 뿐 참혹하게 끝나진 않는다. 추리문학과 SF를 주로 쓰시는 두 작가님의 내공이 녹아있어 소품이라도 꽤 쫀쫀하게 재미있다.

이 책은 길고 지루한 여름방학 집에서 뒹구는 (아, 요즘 애들은 방학에도 바쁜가?) 아이들을 데리고 뭐할까 고민하는 학부모님들한테 1차로 권하고 싶다. 살짝 납량특집 기능도 있고, 책은 가독성 매우 높고, 이어서 분식파티라는 이벤트와 연결하기도 딱이어서 말이다. 물론 학급문고로도 인기있겠다. 아이들의 손길을 부르는 제목과 표지로 접근성이 매우 높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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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부리 이야기 - 제1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황선애 지음, 간장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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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과 진실에 대한 책으로 일본작가(히야시 기린)의 『그 소문 들었어?』를 해마다 읽어주고 있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판 소문 이야기라고 하면 되겠다. 분위기가 전혀 다른 책이라 저마다의 느낌이 있으면서 주제는 한곳으로 모인다. 두 책 다 읽어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말이 많은 사람한테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 책에 바로 그 말에 착안한 내용이 나온다. 제목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오리 부리. 그렇다. 주인공은 바로 말 많은 오리다. 그것도 주로 남 말. 그날도 사냥꾼의 흉을 보고 도망가다 그렇게 되었다. 부리만 따로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이후로 오리 부리는 따로 돌아다닌다. 부리로만 충분했다. 왜냐면 그게 오리의 정체성이었으니까.

악의적인 헛소문의 피해자는 둘이다. 첫 번째는 들쥐. 토끼의 그림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찢었다는 의심을 받게 되고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자기변호의 기회조차 없게 되었다. 비슷한 일을 전에 겪었던 인물도 있다. 바로 호숫가 식당의 ‘앞치마 요리사’ 할머니. 할머니는 젊은 시절 유명한 식당을 운영했고 음식 솜씨도 뛰어났지만 음식이 ‘너무’ 맛있었던 것이 오히려 탈이 됐다. 몸에 안좋은 가루를 쓴다는 소문이 진실처럼 돌았고 할머니는 속수무책 당하고 눈물만 흘렸던 아픈 기억을 안고 산다.

이 책이 『그 소문 들었어?』와 반대인 점은 해피엔딩이다. 그소문..은 그냥 다 망하고 비극으로 끝나는데 이 책은 바로잡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진실을 밝히는 작지만 중요한 조연이 있다. 바로 무당벌레다. 무당벌레는 토끼 그림 사건의 진실을 봤다. 그리고 바로 오리 부리 속에 갇히게 되었다가 사냥꾼 덕분에 빠져나오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고민한다. 들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진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을 때 이 부분에서 멈추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

한편, 오리 부리는 풍선을 타고 날아다니다 사냥꾼 덕분에 호수로 떨어지게 된다. 과연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뜨’게 될까? 그건 밝히지 않을래.ㅎㅎ 하여간 오리 부리는 다시 오리랑 합체를 하게 되고, 이제 부리만 따로 돌아다니는 일은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몸통에 붙은 부리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는데, 누군가 무슨 말을 전하면 꼭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너 그거 확실한 말이니?”

『그 소문 들었어?』가 비극적 결말로 경종을 울린다면, 이 책은 거기에 웃음과 위로가 조금 추가되는 책이다. 헛소문의 가해자들에게는 부끄러움을, 피해자들에게는 괜찮다는 위로를 준다. 그리고 주변인들의 관심과 배려도 일깨울 수 있는 책이다. 들쥐와 할머니, 두 피해자가 나누는 대화에도 작가의 음성이 들어있다.
“확실하지 않은 말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단다.”
“누구나 살다보면 소문의 바람을 맞을 때가 있단다. 태풍처럼 큰 바람을 맞을 수도 있고, 그저 마음이 살짝 아플 정도의 살랑바람일 수도 있겠지.”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는 없단다. 하지만 이건 꼭 기억해야 해.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제멋대로 까부는 바람이 문제였다는 걸 말이다.”

인간은 말하는 존재다. 그래서겠지. 말로 인한 기쁨만큼 말로 인한 상처와 분노도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주제의 작품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겠지. 아이들의 말 또한 세심하게 보살피고 가르쳐야 하는 바, 이 책도 교사의 책꽂이에 꽂혀 있어야 할 책인 것 같다. 『그 소문 들었어?』 옆에다 같이 꽂아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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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두덕 씨 세트 - 전5권 명탐정 두덕 씨
김기정 지음, 허구 그림 / 미세기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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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와 탐정이 나오는 동화들이 나라마다 있지 않을까? 갑자기 생각하려니 '대도둑 호첸플로츠' 정도만 떠오르는데,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나라마다 대표작 한 편씩 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선 이 책을 내면 되겠다.^^

1권인 <멍청한 두덕 씨와 왕도둑>을 비롯한 3권까지가 10년 전에 나왔다고 한다. 그때 난 1권만 읽어봤었다.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개정판을 발견하여 살펴보니 4,5권을 이번에 추가로 쓰셔서 전5권을 새롭게 출간한 것 같다. 그중 2,4권을 빌려와 읽었다. 1,2,4권을 읽은셈이다. (3,5권은 대출중ㅠ) 완벽하게 읽진 못했지만 재미있었다. 각편에 연결성이 있어서 차례대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탐정의 캐릭터는 어떠해야 재미있을까? 천재 어린이? 천방지축 허당? 조용히 번득이는 캐릭터? 다양하다. 여기서는 두더지다. 동물들 사이에서 멍청이로 통하는, 땅바닥만 보고 혼자 다니고 말까지 더듬는 두덕 씨. "지도 좀 끼워 주시믄 안될까유?" 충청도 사투리 투에다 느릿느릿 어눌한 말투의 두덕 씨. 이런 캐릭터가 탐정이라고? 이야기의 맛은 반전에 있는 법. 멍청이로 통하던 두덕 씨에게 정교한 수학 능력과 번뜩이는 추리력이 있었다는 사실!

도둑의 캐릭터는 어떠한가? 마땅히 악당이어야 하겠지. 탐욕스러운 건 기본. 얼만큼 무시무시한지는 작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 책에선 꽤 무서운 편. 하지만 두덕 씨의 똑똑함이 반전이듯 도둑의 허당끼도 반전. (반전이라고는 하지만 이게 있어야 재미남^^)

1권에선 좀도둑이란 평에 분노하여 은행을 털겠다는 왕도둑. 그러나 그의 시도는 결국 그를 빠뜨리는 함정이 되는데.... 그 함정을 천연덕스럽게 판 주인공은 역시 우리의 탐정 두덕 씨.

2권에서는 두덕 씨가 드디어 탐정 사무소를 차리고, 왕도둑이 훔친 물건들이 보관된 보물창고를 찾아낸다. 그 해결 방법이 완전 색다르다. 재밌네.ㅎㅎ

3권은 빼먹었지만 왕도둑이 탈옥을 한 것 같고,

4권에선 보물섬을 향해 두덕 탐정단의 배와 왕도둑 일당의 배가 추격전을 벌인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소품. '동전'의 역할과 행방은? 마지막 5권은 어떻게 끝날까? 아마도 보물섬에서의 마지막 대결을 그릴 것 같다.

몇년 전 연수에서 뵈었던 김기정 작가님은 동화의 본질을 고민하던 분이었다. 진정한 동화는 어떤 것인가?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들은 어린이들의 동심에 부응하는 작품들이 많다고 느껴진다. 결이 좀 다르지만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추리물로서 허술하지 않으면서도 저학년 아이들에게 읽기 재미를 줄 수 있는 책이다.

다시 저학년을 맡으면 이 책들을 읽어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 금방 읽어줄 것 같다. 두덕 씨의 성대모사가 좀 어려울 것 같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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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꾼 일공일삼 45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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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넘은 아이』에서도 느꼈지만 이 작가님의 서사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처음 몇 장만 넘기면 그냥 빠져들어 마지막장까지 쭉 가게 된다. 아직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역사동화의 강자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긴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전개에도, 주인공들의 감정에도 푹 빠져들게 되는 힘이 있었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경성. 주인공 이름은 ‘노미’다. 언뜻 보면 예쁜 이름 같기도 한데, 이놈이, 저놈이 할 때의 그 ‘놈이’를 소리나는 대로 부른 것이다. 귀하게 자라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리 밑에 버려져 그 일대의 소매치기단에서 자란 아이다. 이 아이도 이제 일을(소매치기를) 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 솜씨가 미숙하기만 하다. 그리고 아이를 키워준 소매치기단의 누나 ‘벅수’의 반대도 심하다. 벅수 누나는 노미 몫까지 일한다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지만 노미한테는 절대로 소매치기를 시작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최악의 시대 배경에, 날 때부터 소매치기단이라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작가는 희망을 그린다. 그 구렁텅이에서 대체 뭐가 보일까? 거리에는 일본 순사들이 눈을 번득이며 돌아다니지, 다리 밑에서 거적을 깔고 사는 생활도 모자라 하나라도 있으면 대장한테 다 뺏겨야 하고, 당연히 그 대장은 비열하고 악독한 놈이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길 했나 학교를 다녀보길 했나.... 여기에서 어떻게 솟아오르란 말임?

무리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개연성 있는 서사를 짜 넣었다.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노미를 길러준 벅수 누나의 사랑, 그리고 공중변소 동지(?)인 고보 형, 그리고 이 이야기 중 가장 긴박한 상황에서 만난 쫓기는 남자... 이들과의 만남이 노미 안에 있는 선한 본능을 일깨웠다.

이 책에서 소매치기를 묘사한 장면들이 아주 실감나는데, 노미의 첫 수행은 예기치 않게도 쫓기는 남자를 구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은 독립운동과도 연결이 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삼았는데 빠져서는 안되는 설정일 것이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곤경에 빠진 여성들을 구해주는 장면은 아슬아슬하면서도 멋지고 흐뭇하다.

전작 『담을 넘은 아이』에서 작가는 ‘담을 넘다’ 라는 말로 주제를 표현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쓴다고 느꼈다. 그것은 ‘길을 간다’ 라는 표현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노미야, 너는 바른 길로 가야 해.”
“넌 찾을 수 있어. 노미 넌 너의 길을 찾아야 해.”

알려진 역사적 사건을 본격적으로 크게 다루진 않았지만 역사적 상상력을 통하여 그 시대의 고난과 고뇌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역사동화로 가치가 높다고 평하고 싶다. 특히 그 어려움 속에서도 옳은 길을 선택한 이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꼽고 싶다. 그게 크고 훌륭한 사람들 뿐 아니라 소매치기단에서 자란 노미에게도 가능했다는 사실. 이 점이 이 시대의 힘든 아이들에게도 큰 힘과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다.

노미의 그 인식 전환은 “너는 좋은 사람.” “넌 정말 조선 최고 꾼이라 할 만해.” 라고 자기긍정의 확신을 심어준 사람들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면에서 조금 마음이 찔린다. 요즘 인간의 악함 쪽에 마음이 기울고 있던 차여서.... 물론 그런 면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방향으로 균형을 잘 잡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까지는 어린이들을 상대하는 사람이니까.

일단은 재미있어서, 다음으로는 이런저런 의미도 깊어서 좋은 책이었다. 역사동화 목록이 이미 수십 권인데 아래 칸을 하나 더 추가해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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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감정 사전 - 상처받는 교사를 위한 마음 챙김 멘토링
김태승 지음 / 푸른칠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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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선생님과 페친인데, 격동하는 아이나 학부모와 차분히 대화하신 글을 가끔 보면 와 이거슨 성품인가 공부인가 감탄하게 된다. (공부라고 말해줘. 그래야 가능성이라도 있잖아.ㅠ) 상담쪽에 박사학위를 받으셨다니 공부 쪽이 강하다고 믿어도 무방하겠지? 그분이 쓰신 이 책에는 그런 공부가 들어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책을 샀다.

이 책의 제목과 개요를 처음 접했을 때 '와 이건 대박인데' 라는 생각을 했다. 딱 지금 시기에 말이다. 왜냐하면...ㅠ 교사들의 감정이 지금 말이 아니거든. 너덜너덜하다고 해야하나.... 대부분의 교사들이 심한 소진을 겪고 있는데 그건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들어가보면 감정 문제인 경우가 많다. 감정이 긍정적일 때 낼 수 있는 힘과 그 반대일 때는 차이가 많다. 더이상 힘을 낼 수 없는 상태는 대부분 감정에서 기인한다. 게다가 교사는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는 쪽에 주로 서야하다보니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일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런 교사들을 위한 책인 것 같다.

전문적 용어로 딱딱하고 어려운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토닥토닥 안아주는 말랑한 책도 아니다. 약간은 건조한 쪽에 속한다고 나는 보았다. 이정도 포지션이 내겐 맘에 들었다. 한달음에 읽어지는 책은 아니지만 객관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섯 종류로 감정을 분류해서 서술했다. 화, 슬픔, 두려움, 싫음, 행복. 마지막장을 빼고는 다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러고보니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주인공과 같은 분류다. 다섯 영역의 감정을 다시 두세가지로 세분했고 (예를들면 두려움 영역에는 공포와 불안) 각 감정에 대한 설명 뒤에 '선생님의 마음챙김' 코너가 있어 상담자와 내담자의 대화 형식으로 실제적인 조언을 해주고 있다.

쭉 읽어보고 나에게 가장 많이 깃들어 있는 감정은 '불안,걱정'이 아닐까 판단을 해보았다. 그건 나에게 있는 가장 큰 욕구가 '편안함, 안정됨'이기 때문에 그 대척점에 있는 감정에 많이 지배되는 것이리라. 읽어보니 교직을 처음 시작해 미숙한 교사를 떠올리며 설명하셨던데 나는 이미 후반부... 흑흑 나는 왜 아직도 불안한가.ㅠ 지금 나의 불안 포인트는 교육과정 운영이나 업무보다도 학생, 학부모 구성, 돌발상황에 있는 것 같다. 즉 '폭탄이 어디 있지? 그게 언제 터지지?'의 불안이다. 평화시에도 전시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게 괴롭다. 하긴 인생이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는데....

다음으로는 '시기, 질투' 장에 눈이 갔다. '열등감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세요' 라는 제목 때문이었는데, 젊은시절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이 큰 문제였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투심이 심하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시기, 질투와 열등감 간에는 연관이 많았다. 그리고 열등감이 보편적인 것처럼 시기, 질투도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감정이다. 나는 평소 남을 잘 부러워한다. 저자는 '부러움은 시기의 부드러운 버전이다' 라고 표현하셨다. 부러움이 시기로 넘어가지 않도록만 수위 조절을 잘하면 되겠다.

'짜증'도 내게 해당사항이 많을 것 같아 주의깊게 읽어보았다. "짜증은 무엇을 해서 발현된다기보다는 각자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 발현된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있다." 라는 문장에 완전 수긍했다. '못마땅'이라는 감정과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삼진아웃 까지는 못마땅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내적기준이 있어서 표현을 크게 안하는 편이지만 일단 아웃이 돼버리면 굳이 짜증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상대 입장에서는 난데없는 일이 될 수 있겠고, 내 상태에 따라 심화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특히, "생활습관 속에서도 짜증을 유발하는 인자를 키우는 경우가 있는데, 당류 섭취가 대표적이다."에서 허걱!! 요즘 주변인들이 식단관리 하시는 걸 곁눈질하던 중인데, 감정과도 관련이 있었다니. 나도 빨리 참여해야 될텐데.^^;;;

다섯 영역의 내용이 끝난 후에는 '내 감정과 마주하기' 장이 있다. 감정이 격동할 때, 그 감정을 터뜨리기에 앞서 꼭 점검해봐야 할 내용인 것 같다. 이렇게 교사 감정에 대하여 넓고 단단하게 두루 살피는 책이 나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도움 받으시겠다. 나도 다시 꺼내볼 책이 될 것 같다. 되도록 안그러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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