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점 백곰 큰곰자리 70
김유 지음, 최미란 그림 / 책읽는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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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보만보-무적말숙-백점백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 읽었다. 무적말숙의 리뷰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없다. 겁보만보는 있는데. 어쩐지.... 무적말숙은 구체적인 내용이 잘 생각이 안 난다. 이래서 적어놔야 해. 백점백곰은 적어두자.^^

 

만보가 떠났다 돌아온 그 길에서 말숙이가 서성거리며 끝났고, 몇 년 후 말숙이가 주인공인 무적말숙으로 돌아왔다. 무적말숙이 끝날 때쯤 백고미가 서성거렸고 또 얼마 후 백점백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시리즈는 아직 끝날 때가 되지 않았다. 이 책에도 마지막에 서성거리는 또다른 아이가 있기 때문이지. 그 아이의 이름은....^^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길을 떠나고, 다시 돌아온 그는 떠나기 전의 그가 아니다. 이 시리즈도 각 편마다 그 공식이 다양하게 적용된다. 만보는 이제 더이상 겁보가 아니고, 말숙이는 이제 더이상 막무가내 심술대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백고미의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거듭났을까? 궁금해진다. 어떻게보면 이러한 공식은 매우 식상하고 뻔한 교훈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것이 김유 작가님이 가진 이야기의 힘인 것 같다. 옛이야기들이 그렇듯이. 그리고 최미란 작가님의 그림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이제 이 시리즈와 뗄 수 없는,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저절로 연상되는 그림이 되었다.

 

겁보만보, 무적말숙, 제목에서 주인공들의 문제가 보인다. 그런데 백점백곰은 무슨 문제일까? 백점이 왜 문제지? 이것도 어느정도 추리는 가능하다. 백점만 추구하는 완벽주의자? 강박? 아니면 잘난척? 아니면 부모님의 압박?

 

이름은 백고미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백곰으로 통한다. 태몽도 백곰이었고 덩치 크고 느리고 하얀 것이 이미지도 비슷하다. 하지만 고미는 니는 덩치는 곰만 헌디 마음은 코딱지만 하다니께.” 라는 친구 영이의 말대로 잘 삐지고 속이 좁다. 공부만 잘하면 큰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며 친구들은 무시한 채 날마다 문제집만 들여다본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귀한 자식인 고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건 아닌데, 고미는 그렇게 친구들에게서 고립되어 혼자만 승부욕을 불태우며 살아간다. 그러다 고미가 쌓아온 백점의 성에 흠집이 나는 일이 생긴다. 고미는 좌절하다가, 자신을 위로해 줄 친구 한 명도 옆에 없다는 것까지 깨닫게 되어 더욱 슬퍼진다.

 

이제 고미도 그 길에 들어설 차례다. 그 길에서 고미는 누구를 만나고, 어떤 변화를 얻게 될까? 떡 만드는 꼬부랑 할머니(이젠 빵도 만드심)와 동굴에 들어갔지만 사람이 못된 호랑이를 만났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백고미.

 

그리고 마지막에 만난 것은.... 고미가 자기 자신과 마주했다고 할까. 속으로 조금 놀랐다. 평범한 듯 비범한 이야기는 이런 곳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난 작가가 아니지만 엄청 노력해서 작가가 되었다고 해도 이런 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아. 음 그러니까 작가는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ㅎㅎㅎ

겁보만보 때부터 이야기의 맛을 최고치로 살려주던 찰진 사투리는 여기서도 여전하다. 특히 고미네 할머니인 기여할머니. ‘기여라는 말 오랜만에 들어보네. 그 말을 고미도 이어받는다.

기여, 우린 인저 친구가 되었구먼.” (57)

 

이 책에서 한 문장만 고르라고 한다면 그건 좀 무리한 요구지만.... 꼭 그러라면 난 이 문장을 고르겠다.

세상에는 길이 많더라고유.” (79)

이걸 깨달았으니 고미는 이제 바라던 큰 사람이 될 수 있겠다. 개미 콧구멍 속 코딱지만하게 작았던 마음도 커지고, 더이상 외톨이도 아니고, 문제집만 들여다보며 조바심 내지도 않고 여유있고 의연한 백곰으로 말이다.

 

이제 그 고갯길 앞에는 다음 아이가 서 있다. 그 아이는 무엇 때문에 길을 떠날까 궁금하지만, 4권이 나올 때까지 참기로 하고. 살면서 그 고갯길을 한 번 이상은 넘어야 할 텐데. 우리 아이들이 그 고갯길로 갈 때 주저앉히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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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아이들 소원잼잼장르 4
전건우.정명섭.최영희 지음, 안경미 그림 / 소원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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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독서 추천도서들 중에서 동네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몇권 빌려와 봤다. 그중의 한 권인데, 처음 느낌은 에잉? 추천하기엔 너무 어둡고 무섭지 않나?’였다. 하지만 그 음울 사이에 희미하고 작은 빛을 찾아볼 수도 있고, ‘어두우면 어때, 밝은 전망만큼 어두운 전망도 있을 수 있는 거지. 어쩌면 이쪽이 더 가능성 있는 전망일 수도 있는걸.’ 하는 생각도 든다. SF나 공포문학 쪽으로 저자들의 명성을 믿고 선택한 면도 있다. 특히 최영희 작가님의 어린이, 청소년 문학들을 거의 읽어보았고 대부분 좋아한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밤(전건우), 정크봇(정명섭), 불을 지피는 악마들(최영희) 이 세 단편을 엮는 책의 제목은 <종말의 아이들>이다. 종말이라... 낱말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무섭다. 하나같이 환경과 인간성이 파괴된 무서운 미래를 그린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밤의 종말 원인은 소행성 충돌이다. 언제부터인가 보이기 시작한 소행성의 진행 방향은 정확히 지구를 향하고 있었고, 막을 방법은 없고, 이제 어둑어둑한 하늘에 붉은 소행성의 엄청난 크기는 종말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나사는 그 마지막 날을 측정해 알렸고, 이야기의 배경은 바로 그 전날이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날.

 

작가가 그린 종말의 인간성에 공감이 가면서도 혹시 아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함께 종말을 맞는 사람들의 인간성은 생각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작품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부인은 못하겠다.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못이겨 블러드 아이라는 괴물이 되었다. 어차피 죽을 거지만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서로 죽이고 도망친다. 그 안에 지하, 지호, 지유 세 남매가 있다. 부모마저도 블러드 아이가 되어, 장남 지하는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엄마를 밀어내야 했다. 세 남매는 막내 지유의 소원대로 초코파이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거리로 나선다. 내일이 지구의 마지막 날이자 지유의 생일이다.

하늘을 깨부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묘사가 너무 실감난다. 세 남매는 꼭 끌어안은 채 이 시간을 보낸다. 무섭지 않다는 아이들의 대화가 눈물겹다.

 

정크봇에서도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의 존재가 나온다. 바로 트리맨이다. 이들에게 상처를 입으면 고통을 당하다 같은 트리맨이 된다는 점이 좀비와 흡사하다. 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어찌하든 살아보려 애쓰지만 이미 식량과 의료를 비롯한 모든 환경이 너무 열악해졌고 인간의 수명은 40세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중에 한경이 엄마가 여기저기서 얻은 부품들을 조립하여 만들어낸 정크봇이 그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어주는데.... 이것을 지키는 것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도 산 존재는 그저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인가. 한경이와 친구들은 포기하지 않으며 다음을 이야기하면서 끝난다.

 

불을 지피는 악마들에서는 변종동물의 위협이 지구를 삼켰다. 무시무시한 변종 메뚜기의 묘사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든다. 으으윽.... 힘있고 가진 사람들은 지하도시를 설립해 피해 들어가고,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위험하고 거친 들판에서 하루하루 위험과 맞서며 살아가고 있다. 메뚜기를 당해낼 수 없으니 방법은 알집을 재빨리 불태우는 것뿐이다. 그래서 지하도시 사람들은 그들은 우코바크라고 부른다. 바로 이 작품의 제목인 불을 지피는 악마들이라는 뜻이다. 어처구니 없지만 몇 세대가 지나는 동안 이것은 전설로 굳어져서 두 집단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졌다. 작가는 여기에서 편견에 대한 설명을 꽤 정성껏 하고 있다고 느꼈다.

 

들판의 소녀 라다케와 지하도시의 굴뚝 청소부 소년 토미가 어른들에게 허락받지 못한 만남과 협력을 하게 되며 이야기가 펼쳐지니, 이 책은 그래도 세 작품 중 희망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고 할까. 하지만 미래의 전망으로 치자면 못지않게 어둡다.

 

생각해보면 인류가 지금처럼 편하게 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초기 인류의 삶은 생존이었을 것이고, 마지막도 어쩌면 그러하지 않을까. 근대 이후 짧은 편리를 누리고자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지금 우리나라의 큰 문제인 출산율의 극한 감소로 보여지는 것이 아닐지. 생각보다 두려움은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간다. 그 바퀴는 무심히 희생자들을 깔아뭉개고 굴러가기도 한다. 그 바퀴를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공포를 극대화하여 괴물이 되는 것이 맞을까. 소박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서로를 한번이라도 더 돌아보는 게 맞을까.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지금으로서는 겸손이 아닐까. 이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이다. 이 책을 내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고학년 어린이들이 읽어보겠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고 그들의 생각이 궁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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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고양이 서꽁치 문지아이들 170
이경혜 지음, 이은경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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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야기는 뭐, 이제 너무 흔해서 동화 중에 하나 건너 하나는 고양이가 나오는 것 같고, ‘책 읽는 ○○도 꽤 많으니 흔한 요소 두 개가 결합된 책이라 하겠다. 하지만 식상하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 캐릭터가 너무 생생하고 서사도 아주 새롭다. 이런 점이 이야기의 고마움이 아닐까. 써도 또 써도 샘솟는 이야기. 덕분에 작가님들은 또 그 이야기? 많으니까 안 써야지.” 이런 생각을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말에 보니 이 책은 오래된 된장이나 묵은지 저리가라 할 만큼 묵혔다가 나온 책이다. 그러고보니 고양이 스토리가 유행되기 전부터 쓰신 책이겠다. 아주 어릴 적 우리집에 있던 다이얼식 라디오는 주파수를 맞추기 쉽지 않았다. 작가님은 쓰는 작업을 주파수 맞추기에 비유하셨는데, 주파수가 딱 맞아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의 희열을 중독이라고 표현하실 정도다. 어떤 희열인지 희미하게 짐작만 간다.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희열.

 

흑묘도에서 태어난 꽁치라는 고양이가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꽁치 다섯 남매를 낳은 엄마고양이 자칭 서명월도 중요한 캐릭터다. 성질 급한 엄마는 새끼를 낳고 집주인이 선사한 싱싱한 꽁치를 맛있게 먹으면서 아이들 이름을 자 돌림으로 지어버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창 잘 크고 있을 때, “시끄러워 못살겠네. 너 새끼들 데리고 당장 나가 버려!”라고 주인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고 바로 도도하게 아이들을 이끌고 집을 나와 고생길로 들어가 버렸다.

 

어느날 엄마는 어디선가 책을 한 권 가져와 가문의 내력을 알려주었다. 자손들 중 하나가 책읽는 고양이가 되어 대를 이어가는 가문. 그리고 글 서()자를 보여주었는데 꽁치가 단박에 그 글자를 읽었다. 책읽는 운명을 받은 아이는 바로 꽁치였던 것! 그리고 그들의 성이 왜 서씨였는지도 알게 된다. 서생원의 서씨나 인간의 서씨와는 다른 서씨. 바로 글 서씨였다.

 

, 이제 그 운명을 받은 꽁치의 묘생이 어떻게 펼쳐질까?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진다. 맘씨좋은 선장님의 배 만선호를 얻어타고 도시에 간 꽁치는 서점이란 곳을 발견하고 책읽는 본능이 폭발한다. 이야기 속에서 꽁치가 읽는 책들은 다 실존하는 책들인데, 그걸 고르신 작가님의 센스가 만점! 이 서점에서 읽은 책은 장화 신은 고양이. 첫 책으로 가장 적당하지 않은가?^^ 이곳에서 운명의 쥐 할아버지도 만나게 된다. 그의 간절한 부탁으로 쥐 둔갑 타령을 읽어주고, 서점에 갇힐뻔한 위기에서 도움도 받는다.

 

다음에 읽은 책은 보물섬이었는데, 꽁치가 태어났던 마을의 그 집에서였다. 너무 재밌게 빠져들었다가 책 읽는 모습을 들키면 안된다는 엄마의 주의사항을 놓치고 말았다. 그집 누나한테 동영상이 찍히고 붙들려서 곤욕을.....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인심이 후하다. 이집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돈 앞에선 탐욕적으로 변하는 인간의 모습.... 현실적이라고 본다. 특별히 악한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러니까.

 

난생처음 묶임과 탈출을 겪은 꽁치는 이제 섬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양이를 무척 사랑하는 선장님의 배 사랑호를 타고. 섬을 떠나온 꽁치에게 편안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리 없었다. 큰 부상도 당해 보고, 고마운 가족들 집에서 집고양이로도 살아보았다. 그 집에서 읽은 책은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그 집에서 나올 때는 작별 인사라는 책을 현관 앞에 두고 온 우리의 책 읽는 고양이 서꽁치.

 

, 아직 안 나온 책이 무엇이 있을까!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바로 100만 번 산 고양이! 너무너무 재미있고 슬펐다. 그리고, 드디어 서꽁치의 묘생에도 봄바람이 불어온다. 로맨스의 시작.^^ 그런데 그것은 또다른 고난의 시작이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주인공은 길을 떠나고, 언젠가는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온 그곳이 아주 안전한 결말이라, 안도하는 독자도, 뭔가 아쉬워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그치만 지금까지 모험은 많이 했잖아!ㅎㅎ 그리고 다시 힘차게 달리기 시작하는 꽁치의 마지막 모습에서 희망을 느낀다면 좋겠지.

 

240쪽 정도의 얇지 않은 책이지만 중학년부터는 읽을 수 있겠고, 2,3학년 정도의 어린이들에게는 읽어주기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이거 연속극처럼 아슬아슬할 때쯤 끊으면 더 읽어달라고 막 조를 것 같은데....^^ 고양이를 함께 돌본다거나 등의 고양이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상태에서 함께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많은 작품을 집필하신 능숙한 작가님답게 필력이 느껴지는 재미있는 문장들이 많아 읽는 맛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읽을 책이 없어서 걱정이 아니야. 너무 많아서 걱정이지. 대체 이 많은 재미난 책들 중에서 뭘 고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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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 이윤엽 이야기 판화 그림책
이윤엽 지음 / 서유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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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산다면 세상은 다함께 행복할 것 같다.

우리의 터전인 땅에서 땅을 일구며 땅이 주는 것을 감사히 받으며 살아간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부터도 그렇지 못하다. 어릴 때부터 손에 흙 한번 묻혀보지 못했고

나이 들어버린 지금까지도 똑같다. 화분 하나 키우기도 겁난다.

기본적이며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소수고, 그마저도 늙어버렸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이 벌건 채 허상을 쫓아간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마음이 허하고 슬프다.

 

이 책을 읽으며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눈물겨웠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그 수많은 것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겹겹이 쌓인 그 많은 것들 중 하나씩 하나씩 버려야 한다면 결국에는 무엇이 남을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다지며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스스로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채.

 

화가 이윤엽 님의 작품들은 여러 동화들의 삽화로 접해서 낯익지만 익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전시회를 가보거나 특별히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어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작가님의 작품활동이 참 귀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시선은 세상 주변에서 힘들게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조용히 우리 땅과 물과 하늘을 지키고 있는 동식물들에게 향한다. 그들의 삶은 속도지향적이지 않다. 그래서인가. 이 책의 제목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이다. 비슷한 제목의 시가 들어있는데, 우리집 감나무의 감이 동네에서 젤 떫고 맛없다는 까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다. 지금은 그렇지만 서리가 내린 후에 먹어보면 우리 감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뭔 놈의 감이 그렇게 익는데 오래 걸리느냐고?

 

까치야,

감나무라고 다 똑같이 감이 익는 줄 아니?

우리 집 감나무처럼 익는데 오래오래 걸리는

감나무도 있는 거란다.

 

나도 우리집 감나무가

왜 그러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시간이 좀 걸리는. 130~131)

 

한동네 감나무들도 다 익는 때가 다른데, 빨리 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급했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 안하면 큰일 날 것처럼 동동거리고 몰아세우는 일들은 얼마나 흔한가. 속도에 연연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한결같은 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콩밭과 꼬부랑 할머니, 콩 심는 할머니시에 보면 아흔 아홉이나 되셔서 눈도 어둡고 귀도 안들리는 할머니가 하루종일 호미질을 하고 계신다. 구석에 웅크리고 계신 할머니와, 화면을 꽉 채운 콩싹들이 눈이 부시다. 그렇게 평생 땅을 일구고 살아오신 할머니.

 

호박에 깔린 사람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웃겼다. 판화도 웃기고. 이래저래 조금씩 도와줬던 이웃들이 고맙다고 가져온 호박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장면이다. 이 책에는 작은 생명들까지 서로 돕고 기대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서로서로라는 시의 마지막은 이렇다.

아 정말 추워.

사람도 춥고 새도 춥고 개도 춥고

나무도 춥고 산도 춥고 구름도 추워.

근데 서로서로 챙겨주니까

좀 안 추워.(63)

 

판화 그림책이라고 되어있지만 시화집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시와 판화로 이루어진. 판화가인 작가님은 어쩜 이렇게 시도 잘 쓰실까. 담담하고 친근하게 주변의 존재들에게 건네는 쉬운 말인데, 거기에서 풀어낼 생각들이 한보따리씩이다. 천천히 읽을 책. 남녀노소 많이 배운 사람 덜 배운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고 공감하거나 생각을 길어올릴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연로하신 부모님께도, 자라나는 자녀에게도 선물할 수 있다. 너무 바빠서 어려운 책의 진도가 안나가고 있는 독서모임이 있다면 일단 이 책으로 진행하시면 어떠실지 제안하고 싶다.

 

본문을 인용하는 것은 글이 너무 길어져서 안하고 싶지만 마지막으로 한 편만. 첫 번째 작품인데 여기에 희망이 담긴 것 같아서다. 제목은 신기한 아이.

병희는 신기한 아이야.

장래 꿈이 글쎄 농사짓는 사람이 되는 거래.

의사도 별로고 과학자도 별로고 대통령도 별로래.

무조건 할아버지처럼 농사를 짓고 싶대.

왜 농사를 짓고 싶으냐니까 모르겠대.

그냥 농사짓는 게 재미있대.

병희야, 농사지으면 자동차도 못 사.’ 하면

그러면 경운기 타면 되지.’ 그러고

병희야, 농사지으면 돈 못 벌어서 맛있는 것도 별로 못 먹어.’ 하면

밭에 가면 딸기도 있고 토마토도 있고 고구마도 있는데!’ 그러고

병희야, 농사지으면 만날만날 일하느라 놀러도 못 갈걸하면

괜찮아. 산에 가고 들에 가면 더 재미있어.’ 그러고

병희야,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너는 아직 어려서 모를걸하면

알아, 나도 다리에 알배고 손에 물집 잡힌 적 있어.

그런데 금방 괜찮아져.’ 하고. (후략)(8~9)

진짜로 이런 아이가 있을까? 작가님은 겪은 것을 시로 쓰셨으니 진짜겠지? 이런 아이들이 세상의 희망이 아닐까. 물론 의사도 과학자도 대통령도 다 필요하지만, 그래도 세상의 기본이 되는 일, 토대를 차곡차곡 다지는 일들을 모두가 안하겠다고 손놓아버리면 안되는 거니까. 아주 사소한 결심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나이 든 나도, 몸을 더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몸을 쓰는 일의 당위성과 소중함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도.

 

작가의 말에 보니 이 책은 작가의 의지로 기획된 게 아니고 작가가 여기저기 써놓은 작품들을 출판사에서 정성껏 엮으신 책인 것 같은데 쓰는 작업 버금가게 이 엮는 작업도 참 귀하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작업은 작가님에게도 새로운 동력을 준 것 같으니 새로운 창작의 씨앗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판화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자면, 판화로 이렇게 다양한 느낌의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목판화라는 분야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아주 오래 걸려 한 작품을 완성했던 기억이 있고, 고학년을 맡으면 목판화까진 못하고 고무판화를 3~4주 걸려 제대로 한 작품 완성하도록 지도했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에는 지우개판화 정도 약식으로 하고 넘어갔었다. 다시 제대로 판화를 해보고 싶다. (내가 제대로라고 해봤자 진짜 제대로는 아님^^;;;) 그때도 이 책을 보여주고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겠다. 글도 그림도 다 귀한 책. 이 책을 소장하게 되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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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3일만 파란 이야기 10
김정미 지음, 오이트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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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간단 소개만 보고 바로 신청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로테와 루이제>가 생각나서였다. 40년도 더 전에, 계몽사 전집 중의 한 권으로... 친구네 집에서 빌려서.... 그때는 제목이 <두 로테>였었지.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던 쌍둥이 소녀들이 우연히 만나 상황을 알게되고, 서로 집을 바꿔 들어가 깜찍한 작당을 하던, 너무너무 재미있었던 그 책. 설정이 너무나 똑같았다.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 옛날 그 책으로. 하지만 구할 수 없으니 시공주니어판 로테와 루이제로 읽어봐야겠다.

검색해보니 그 책은 1949년에 나왔다고 한다. 이 책과는 7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이 있구나. 상황적 소재는 같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현대판인 이 책에는 SNS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쌍둥이의 이름은 순우리말인 '라온'과 '제나'다. 서로의 존재를 아예 몰랐던 로테와 루이제와는 달리 이들은 어릴 때의 기억이 있다. 그러나 5년전 엄마아빠가 갈라서고 엄마는 도시에, 아빠는 땅끝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완전히 단절된다. 라온이는 도시의 엄마, 새아빠와 살며 SNS '럭셔리 맘'의 부유하고 예쁜 딸로 자신의 정체성에 적응한다. 반면 제나는 시골에서 좌충우돌하며 작은 의원을 하는 아빠랑 살아간다.

둘이 만난 것도 SNS를 통한 연락이었다. 아이돌이 꿈인 제나가 오디션을 위해 서울에 왔다가 일정이 지체되자 연락을 하게 된 것. 그리고 둘이는 3일 바꿔살기 작전을 세운다. 제나는 엄마집에 머물며 오디션을 보고, 라온이는 시골로 내려가 아빠를 만나고 제나의 학교생활괴 인간관계를 체험한다.

일란성 중에서도 너무나 똑같이 생긴 쌍둥이. 하지만 가까운 이들이 끝까지 몰라볼 수 있을까? 약속한 3일이 다 지나기도 전에, 그들의 정체는 결국 들통난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과거의 상처.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지금까지도 방황중인 엄마와 아빠의 연약한 둑이 터지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적응한 듯하지만 참고 참아온 라온과 제나의 상처에도 공감이 간다.

이미 나뉜 것을 다시 합칠 수 없고, 다시 돌아가는 것만이 좋은 결말은 아닐 터이다. 이 책에서도 결국 상황은 바뀌지 못하는데, 그래도 많은 것이 해소된 밝은 느낌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무엇보다 엄마자식, 아빠자식으로 단절되었던 쌍둥이가 서로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 것은 참 다행이다. 부모의 삶이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슬픔과 이별을 겪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슬픔이 자녀의 삶을 압도해 버리면 안되겠지. 쉽지는 않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삶에 솔직해야 한다는 점인 것 같다. 가식은 금물이다. 엄마가 한때 빠졌던 가식의 늪. 아이들 덕분에 빠져나오게 되어서 다행이다.

로테와 루이제처럼 이 책도 설정 자체가 흥미로워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고학년 아이들에게 권해줄 만하다. 여러 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된 로테와 루이제처럼 이 책도 리메이크 되면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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