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의 세계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양지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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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라는 생각이 들 땐 고개를 흔드는 게 좋다.
페북을 쭉 내려보다 보면 사연글들의 미끼제목이 보이는데 무심코 그걸 눌러서 얼마나 기막힌 사연인지 읽어볼 때가 있다. 어제 본 제목은 로또 당첨금 받은 대학생? 뭐 그런 제목이었다. 로또 1등의 말로가 좋은 적이 없다던데 어떤 사연일까 했더니 이 학생은 아주 규모있고 안전하게 쓰고 있어 앞날이 탄탄하고 행복하다는 얘기였다. 받은 당첨금이 20억이 넘었다고 한다. 자동적으로 '만약에'가 시작되었다. 일단 누구누구 얼마씩 주고, 이집 리모델링 하느니 조금 나은 집을 사서 이사가고....ㅋㅋ 이쯤에서 머리를 털어 '만약에'를 쫒아낸다.

'만약에'는 후회스러울 때도 나타난다. 학생때로 돌아간다면.... 시간을 더 알차게 쓸거야. 영어동화책을 통째로 한 권 외운 후에 체계적으로 영어공부를 하면서 더 많은 책을 읽어볼거야. 엄마를 졸라 피아노를 배울거야. 이것도 부질없어 곧 머리를 털어내야 한다.^^

그런데 여기, 요시타케 신스케는 '만약의 세계'를 상상하고 책으로 만들었다. 그는 상상력이 기가 막히게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손에 잡히지 않는 상상을 마치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질 듯 형상화해내는 데 천재인 것 같다. '만약의 세계'를 그려낸다니 그걸 이분 말고 누가 또 할 수 있을까.ㅎㅎ

주인공이 자고 있다. 머리맡에 놓인 존재(인형? 장난감? 무엇인진 중요하지 않고 하여간 어떤 존재)를 창문 넘어온 고양이가 물어가버린다. 이제 그 자리는 비었다. 잠에서 깨며 주인공은 뭔가를 감지한다. 돌아본 자리에 그는 없다.

만약 이것을 아껴주던 이와의 이별이라고 한다면 이 장면을 보며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많으리라.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렇지만 작가의 상징에는 수많은 경우의 대입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위의 경우를 상상해 보았다.

"나, 만약의 세계에 가게 됐어.
만약의 세계는
네가 살고 있는
매일의 세계가 아닌
네 마음 속에 있는 또다른 세계야."

"네가 아무리 해도 할 수 없었던 일,
늘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
변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그런 모든 것이
만약의 세계에 모여 있어.
나도 이제 그곳으로 가려고 해."


흑흑 너무 슬프다. 인간은 왜 변하는 것인가. 애틋한 마음을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너와 나는 이미 예전의 그들이 아닌 것을. 그 감정은 너무나 소중하지만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것을.

그렇게 소중한 존재는 '만약의 세계'로 가버리고, 홀로 남은 내게 그 존재는 말한다.
"어떤 물건도 어떤 일도
어떤 사람도 어떤 마음도
사라지거나 없어지지는 않아.
매일의 세계에서
만약의 세계로
있는 곳이, 머무는 곳이
바뀔 뿐이야."

"너의 미래가 될 뻔했던 모든 것이
거기에 있어."


그렇게 소중한 것을 '만약의 세계'로 보내버린 주인공은 아주 좁은 '매일의 세계'에 위태롭게 서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주 희망적인 메세지를 우리에게 준다. 매일의 세계는 다시 커질 거라고. 만약의 세계가 큰 사람일수록 매일의 세계도 커다랗게 만들 수 있다고.

만약의 세계로 보내버린 것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가버린 것들. 나의 후회이자 아쉬움이며 부러움이고 회한인 것들. 때론 소중함을 미처 몰라 놓쳐버렸던 것들. 그것들이 이루고 있는 나의 '만약의 세계'.

만약의 세계가 있기에 지금 발을 딛고선 매일의 세계도 있는 거겠지. 그러니 그 둘을 모두 소중히 잘 다루라는 작가의 조언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물론 "말이 쉽지."에 해당하는 것이라 해도.

나의 '만약의 세계'를 상상해보면 그리 크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 버릴 건 버려주고 싶은 마음.ㅎㅎ 아서라, 이미 그곳은 내가 손댈 수 없는 곳이야. 내가 손댈 수 있는 곳은 이곳 매일의 세계 뿐. 그런데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어 있는 두 세계의 그 미묘한 관련성이 알듯말듯하다. 작가의 철학적 상상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다음의 주제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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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힘
김현경 지음 / 엠앤키즈(M&Kids)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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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미술감상책을 아주 오랜만에 읽었다. 10여 년 전에는 꽤 여러 권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주헌 님의 <느낌 있는 그림 이야기>가 그 시작이었다. 이주헌 님은 그 책 이후로도 여러권의 어린이 대상의 미술감상책을 쓰셨는데, 그 책들을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뭘 하든지 글을 잘 써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ㅎㅎ 요즘엔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검색해보니 요즘은 어른책 위주로 쓰시는 듯.... 이후 장세현 님이나 우리 옛그림 쪽으로는 최석조 님 등의 책들을 흥미있게 봤다. 엊그제 같은데 꽤 지난 일이네.

나는 도서실 활용 수업에 관심이 있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꺼리가 있으면 시도해보는 편이다. 미술 감상수업도 그렇게 했었다. 미술관에 데려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도서실에는 위에서 얘기한 저 책들 외에도 탐스러운 책들이 잔뜩 있으니까. 사실 실물을 보는 걸 제외한다면 책보다 좋은 자료가 어디 있을까. 요즘 어린이책들이 얼마나 잘 만들어져 나오는데.

근데 슬프다. 올해는 코로나가 도서실까지 개점휴업 상황을 만들어놔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은.... 아쉽고 아깝다. 2학기엔 괜찮아지겠지 기대하며 2학기 미술 단원을 훑다가 이 책을 샀는데, 샀으니까 읽었는데, 그냥 나만 읽고 끝날수도 있겠다.ㅠㅠ 일단 읽었으니 기록은 해두자.

이 책은 외적인 면에서 그닥 눈을 사로잡는 구성이 아니다. 오히려 10년 전에 봤던 봤던 책들보다 더 오래된 책 같다.^^;;; 표지나 글씨체도 평범하고 줄간격 등도 가독성이 높지 않고 눈에 쏙쏙 들어오는 세련된 편집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높이 산 것은 내용의 구성이다. 저자의 필력이라고도 하겠고 신선한 관점, 흥미있는 설명이라고도 하겠다.

저자는 소설가라고 한다. 소설을 잘 안읽는 나는 저자의 이름도 처음 들었고 작품도 읽어본 게 없다. 그런데 흥미롭다. 애니어그램을 소재로 심리실용소설도 쓰셨다고 하고, 유튜버도 하시는 것 같고... 궁금해서 이분의 소설 한 권 읽어봐야 될 것 같다.^^ 새로운 시도에 거부감이 없는 성향(내 짐작)대로 문학인이지만 미술 감상에도 조예가 깊고, 나름대로의 자유로운 감상으로 이 책을 쓰신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자유롭기만 하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미술사의 기본적인 내용은 알려주되, 작품의 선정과 감상에는 작가의 주관이 들어갔다고 보면 되겠다.

목차는 종교화, 르네상스, 인물화, 풍경화, 상징주의, 인상주의... 등 종류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순서가 시대 흐름과도 대략 맞는다. 그런데 수록된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화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소개하는 감상책들과는 다르다. 철저히 저자의 눈과 마음에 '꽂힌' 작품들을 소개했고, 내용도 주관적인 감상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눈을 따라가다보니 나도 그 작품이 좋아지는 일도 생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반만 맞는 것 같다. 감상 전에 해설부터 주입하려는 어른들이 있다면, 저자는 그걸 적극 말리는 쪽이다. 제목 정도만 알면 충분하다고. 그리고 마음에 다가오는 작품을 천천히 깊이 감상한다. 그리고 애정이 생기면 그 화가와 배경 등을 알아보고 공부한다. 이 방법을 강추하는 것은 저자가 그런 방식으로 감상하며 이 분야의 소양을 쌓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실 '아는 만큼' 쪽이 더 강한 사람인데.... 그런데 아는 게 별로 없다....^^;;;; 저자의 감상법에 동의한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저자와의 감상 동행이었다. 흥미로웠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고 더 알아보고 싶은 화가를 한 명 정하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실제로 더 알아보는 거다. 그건 원격수업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활동이다. 그리고 그 화가의 작품 중에서 한 점씩을 골라서 올리고 설명을 해주는 거다.(이미지 다운받거나 캡처해서 업로드하는 정도는 아이들이 거뜬히 잘한다.) 친구들은 댓글을 달고... 좋은 감상수업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을 어떻게 읽힌다지? 난관이 많다. 고민을.....

개학을 앞두니 무슨 책을 읽어도 수업 생각이네. 이런저런 궁리를 할 수 있는 책을 읽어서 보람있었다. 그림을 마음으로 보는 법을 살짝 맛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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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그 자체 - 교육에 관한 열아홉 편의 에세이 함께 걷는 교육 4
권재원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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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평생 가장 길었던 한 학기를 마치고 힐링과 재충전을 위해 휴식하고 있는데 힐링은 커녕 우울증이 왔다.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으니 평상시 즐기던 책읽기와 리뷰 쓰기에 가장 좋은 조건인데, 입맛을 딱 잃은듯이 책들이 재미가 없다. 교육도서를 읽자니 읽어서 뭐하겠어 어차피 또 원격인데 하면서 부르르 진저리가 쳐진다. 이거 정말 큰일이다. 중증.ㅠㅠ

인기 높은 판타지동화와 이 책 중에서 저울질하다 이 책을 골랐다. 판타지가 날 더 우울하게 할 것 같았다. 그냥 건조한 책을 읽자.

읽다보니 이 책은 건조하다고 표현할 순 없는 책이었다. 끝까지 읽기 위해선 어쨌든 책을 따라가야 하는데 따라가다보면 의식의 흐름이 생겼다. 그게 때로는 위안도 되고 각성도 되고 도전도 주었다. 저자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학자이고 저술가이다. 이 책에도 저자가 정의한 개념들, 해석들, 견해들이 가득 담겨있었고, 500쪽이 넘는 책을 내가 끝까지 읽었다는 건 어쨌든 웬만큼은 이해할 만했단 뜻이다. 내게 각성을 준 개념이나 견해들을 몇 개 골라 적어본다. (요약이나 생략 등으로 본문과 완전히 같은 문장이 아닐 수 있음)

• 교육의 목표는 좋은 삶과 행복이며 이것은 자신의 가능성과 역량의 확장에서 온다. (46쪽)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 개선에 참여하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만 사람은 완전한 행복에 이르며 온전한 의미의 교육이 가능하다. (47쪽)
공론에 참여할 때 배울 수 있는 방법과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교육이란 사람을 민주시민으로 바꾸는 것이며, 민주시민이란 교육받은 사람이다. (48~49쪽)

• 팔방미인과 홈파인 공간에 대한 설명 (62~81쪽) :
교육은 가능성을 확대하고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기쁜 만남을 만들어 가려는 성향, 그리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은 반복 속에 차이를 새기는 존재다. 배움의 즐거움을 복원하는 것, 반복에서 차이를 생성하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을 되살려야 한다.(137쪽)

• 이 외부로부터의 재료가 바로 교양이다. 아동기까지 주어지는 외부자극의 양과 질, 그리고 청소년기의 교양이 이후 인성과 역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야말로 교양을 쌓을 결정적 시기이다. (202~203쪽)

• 창조성을 기르는 교육은 결국 민주시민 교육, 기본교육, 호기심을 북돋는 교육, 그리고 도덕교육이다. 창조적인 교사는 학생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며 학생이 호기심과 도덕심을 바탕으로 지루할 수 있는 인류의 지덕, 문화적 유산을 배우고 익히며, 이를 앞으로 마주치게 될 자신과 동료의 문제를 발견하는데 사용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는 교사다. (312쪽)

• 교육은 가치를 획득하는 방법을 보편화하고, 가치 자체를 다원화함으로써 사회가 전체적으로 평등해지는 데 기여한다. (517쪽)

아니, 이거 다 적고 있다간 너무 길어져서 안되겠다.ㅎㅎ 읽다가 메모해 놓은 부분을 보니 이런 생각들도 나를 지나갔었구나.

■ "믿고 맡겨두고 기다리면 아이들은 스스로 내면의 힘을 발휘하여 성장한다" 와 같은 착하디착한 성장의 교육관에 대한 지적. 나는 한참동안 이런 교육관을 갖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있었다. 나는 왜 아이들을 전적으로 믿지 못할까? 내게 존중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훌륭한 샘들은 아이들은 믿는대로 된다는데 왜 나는 20년을 넘게 해도 안 그런것 같을까?

이 책에서는 인간에게는 성장과 성숙 이상의 무엇이 있기에 교육이 소용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 무엇이란 바로 '발달'이다. 발달은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다. 여기에서 여러 교육학자들의 발달 이론들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해 주었다. 그동안의 저서들에서 그랬듯 쉽고 명료하게 설명해 주어서 정리가 잘 됐다. 확실치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는 '발달에는 의도적이고 사회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즉, 교육자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는 비고츠키의 이론과, 평생을 발달의 단계로 규정한 에릭슨의 이론에 비중을 둔 것 같다. 저자는 전작인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러하다. 매우 공감한다. 아, 이 대목에 오니 비로소 읽기에 탄력이 붙네. 아직 독서를 포기할 나이는 아닌 것이지. 나는 아직도 공부할 기회가 많이 남은 거지. 기회라기 보다는 필요성이.ㅎㅎ

■ 배움에 대해 정의하는 11장에서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다" 라는 문장과 진실성(verisimilitude)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온다. 내 친구 한 명이 "너의 경쟁력은 진정성이야."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 오~ 그럼 나는 배움의 중요 조건을 갖추고 있는거네? 보잘것 없는 삶이지만 나 자신과 연결해보려는 태도는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상당히 중요한거구나. 그걸로 어떤 열매를 맺은 바는 없지만 이게 장점이라니 다행이네.
"앎을 이야기로 진술할 수 있다는 것은 앎을 계속 삶 속에서 활용하여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뜻, 즉 진실하게 알고 그것을 진리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252쪽)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배운 것을 자꾸만 자기 이야기로 만들어보게 하는 시도가 필요하겠다.

이제 향후 약 10년 (되도록 정년까지는 가지 않을 생각임. 아니 내 역량으로는 갈 수도 없음) 남은 교직인생에서 내가 염두에 두고 추구할 것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내 나름대로 나의 교육활동에 적용할 바는 이렇다.
1. 깊이 생각하게 하는 교육
끈기있게 생각한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 나 자신이 끈기있게 생각하지 못한다. 골치아프면 일단 덮기.^^;;;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심하다. 일부 특출한 아이들을 빼고. 이 책을 보면 언뜻 생소하거나 성급한 연결 같아보이는 명제들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창조성 교육이란 곧 민주시민교육이다." 같은. 그런데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설득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의 끈기있는 사유와 그것을 차분히 펼친 전달력 덕분일 것이다. 교사들에게는 이런 면이 필요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으로 이끌고 사유할 시간을 주고 사유의 산물을 건져올리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진을 빼는 과정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그 산물이 쥐꼬리같을 때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크게 마음을 먹어야 이런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수업이 좀더 일상화되도록 잘 안되어도 계속, 던져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생각의 연습. 교사도 필요하고 학생도 필요하다.

2. 감성을 일깨우는 교육
삶의 재미를 알게 하는 교육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이런 교육을 할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다. 내가 삶의 재미를 다양한 곳에서 맛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험도 극히 제한되어 있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안내해주고 싶다. 언젠가 독서교육 연수에서 송승훈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 목표는 이거예요. 아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돈 안들이고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잊고 있었는데 이 책에도 비슷한 뜻의 내용이 나와서 기억이 났다. 소박한 행복거리는 도처에 많지만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감성은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특히 인간이 긴 역사를 통해 남긴 예술적 유산들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소양을 갖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도 나도.

긴 교직경력에도 불구하고 교육 그 자체에 대한 나의 인식은 교대 1학년 첫 교육학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나의 생각 확산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일단 아이들이 공부는 왜 해요? 라고 묻는다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해야지." 보다도
"너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서 하는거야.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이 확장될 때 행복해지는 존재거든." 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난 이 책이 교사들이 읽어야 하는 책인 줄로만 알았다. 왠지 안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교사로서의 삶이 아주 많이 남은 것이 아닌데다가 난 이제 가소성이 많이 떨어져서.... 읽은들 뭐하겠나 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꼭 교사로서만 읽게되진 않았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시민'으로 읽었다고 할까? 교육이라는 개념 하나로 이렇게 구석구석을 비출 줄은 몰랐다. 교육이 이렇게 크고 중요한 개념인 줄 교육자인 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민망함.... 동료샘들과 천천히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20대의 시민인 내 자식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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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황지영 지음, 백두리 그림 / 우리학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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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영 님도 이제 무조건 읽고보는 작가님이 됐다. 이 책을 읽고보니 더욱 그랬다. 전작 <우리 집에 왜 왔니> 리뷰에서 심리묘사와 긴장감을 장점으로 꼽았는데 이 책에서도 그 두 가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정말 큰 힘이다. 한 번도 끊지 않고 한 호흡에 끝까지 가게 만드는 힘.

차분한 색채의 표지와 제목은 초등용 동화라기보다는 청소년소설 정도 되는 느낌을 준다. '대나무숲'이라는 소재도 그렇다. 하지만 본문의 삽화에는 원색이 많이 사용됐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6학년 여학생들, 배경은 신도시의 신설 초등학교다.

세 아이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한다. 유나는 아이들말로 '인싸'라고 할까? 팔방미인에 성격도 좋다. 건희는 유나의 짝이다. 지난 학교에서 아픈 기억을 남기고 전학왔다. 일부러 이사 온 것이니 그정도의 어두운 사연이 있는 것.... 민설이는 유나의 5학년때 단짝이지만 지금은 옆반이다. 유나를 잊지 못해 쉬는시간마다 찾아온다. 말하자면 삼각관계인 셈. 그 삼각형은 매끈하진 못해도 어느정도 모양을 유지했지만, 보다못한 건희가 새 반에서도 친구를 사귀어야하지 않겠냐고 한마디 했다가 완전히 어그러져 버린다. 이 갈등을 발단으로 해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며 갈등은 심연으로 소용돌이쳐 들어간다.

등장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대표하여 보여준다. 쾌활하고 이해심 많은 아이가 사건에 휘말리며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거칠게 던지는 말습관 때문에 찬사를 받다가 어느 순간 학폭 가해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정신이 돌아온 아이도 있다. 그리고나서 보니 박수를 보내던 친구들은 모두 모른척 입을 씻고 있다. 물귀신처럼 붙들고 늘어져도 내꼴만 사나워질 뿐이다. 결국 포기하고 이사를 결심해 이곳으로 왔다. 새 학교에선 모든 걸 새롭게 하리라 결심하지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자신의 캐릭터에 낙담한다.
폭력적인 아빠와 이혼하고 엄마와 단둘이 신도시에 자리잡은 아이도 있다. 환경은 새로우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어렵고 내가 잘하고 싶은 것도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고 마음과 다르게 사고는 터지고 관계는 꼬이기만 한다.

이 세 주인공 외에도 생각없이 말 옮기는 증폭스피커들, 고립된 친구를 돕는다는 사명감에 심취하여 어느새 그 포지션을 즐기고 있는 아이, 동네 축구처럼 이리 몰려갔다 저리 몰려갔다 하는 아이들 등 수많은 아동 군상들을 볼 수 있다. 아니 꼭 아동이라 제한할 것도 없겠다. 인간군상이라 하면 되겠다. 그러면 어른 등장인물들도 포함시켜 볼까? 사면초가에 빠진 아이들에게 잠시의 휴식을 제공해주며 과하지 않은 조언도 해주는 보건선생님, 새로운 생활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모든걸 방어하려 하다가 결국 딸 때문에 용기를 낸 민설 엄마 등.

그러고보니 이 책에서 그려낸 어른들은 모두 평균 이상이구나. 그래서 이 책은 갈등의 토네이도가 잠잠해질 무렵 훈훈한 결말로 끝맺을 수 있게 된다. 초중반의 올라가는 피치에 비해서는 좀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일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긍정적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상처를 겪었다. '흉터'는 이 책의 키워드이며 중의를 띤 상징이기도 하다. 나는 상처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상처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미 난 상처라면 어떻게 봉하고 치료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몸에 난 상처는 의사선생님들이 워낙 잘해주시니 믿고 따르면 되지만 마음과 관계에 난 상처는.... 미련스럽게도 인간은 상처를 헤집고 나을만하면 또 헤집어 키우고 키워서 결국 회복불능으로 만들어 놓을 때가 많다. 그걸 옆에서 부추기고 같이 헤집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부모가 그러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정말 다행이다. 그 결말을 위해 평균 이상의 어른들이 등장한 것은 필연이다. 물론 그 일을 모두 어른들이 한 것은 아니다. 어른은 조연일 뿐이다. 아이들이 이 토네이도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제야 나는 하루 종일 흉터를 잊고 지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걸까?" (170쪽)

어른 독자로서의 나는 이 책의 보건선생님 정도의 어른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상처는 단시간에 낫지 않지만 나을 방법과 방향이 있다. 그걸 알고 간다면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좀 멀리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처를 내지 않는 것도 가르쳐야 하지만 났을 때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도 교육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일단 재미없어서 못 읽겠다는 아이는 없을 것 같고^^, 아이들끼리도 멍석만 깔아준다면 이야기를 꽤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대부분 '흉터'를 가지고 있을테고 어떤 아이는 현재 통증이 극심할 수도, 어떤 아이는 지나간 흉터를 매만지고 있을수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 책 속 친구들이 겪는 이야기는 참고가 되는 한편 위로도 된다.

좋은 고학년 장편이 무수히 많은데, 이 책도 끼어드네. 아 경쟁율이 넘 치열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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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 스파이 1 : 사라진 보물 키드 스파이 1
맥 바넷 지음, 마이크 로워리 그림, 이재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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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유명한 그림책을 많이 쓴 분인데, 제목만 들어보고 실제 읽어본 책이 거의 없네....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정도만 읽어봤다. 모자 시리즈를 쓰고 그린 존 클라셴 그림작가와 협업한 작품이 많구나. 이 책은 작가의 동화책으로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라고 한다.

그림책 작업을 많이 한 작가라서인지 동화책이라도 그림이 반... 좋다.ㅎㅎ 글자체도 일반적인 명조체가 아닌 조금 더 두껍고 네모진 폰트인데 읽기 편하고 눈에 잘 들어온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자신의 어린시절 실화라며 너스레를 떤다. 미국의 한 평범한 소년이 영국여왕의 전화를 받아 스파이의 임무를 띠고 프랑스를 거쳐 소련(지금이 아니고 작가의 어린 시절이라서)까지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

내가 좀 이해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유머코드에서도 그러한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런 유머다. 요즘 순위권에 올라있는 책이라 아이들의 선호 경향도 알아볼 겸 읽었는데 나한테는 재미가 없었다. 마치 모임에서 엄청 황당한 얘기로 너스레를 떠는데 나 혼자만 안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ㅎㅎ
마지막에 "그래서?"라고 세상 멍청한 얼굴로 질문을 해서 모임의 분위기를 깨는 일은 없도록 하자.^^;;;

어쨌든 맥은 어린 나이에 영국 여왕에 프랑스 대통령에 소련의 KGB 요원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이런 횡재가 있나. 물론 그걸로 얻게 된 건 영국여왕이 보내준 비스킷 선물 뿐이었지만. ("지난번에 먹은 그 맛이었다." 부분에서 한 번 풋, 하고 웃음)

어린이 탐정 이야기는 많지만 스파이 이야기는 처음인데, 결과적으로 맥은 임무를 달성했지만 본인의 역할이 무엇이었나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ㅎㅎ 그러니까 가슴 졸이는 추리물, 어린 주인공의 기지와 활약, 이런 걸 기대해서는 안되는 책이다. 하지만 마지막장에서 영국 여왕에게 또 전화를 받는 걸 보면 맥의 모험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걸 알 수 있다. 시리즈가 몇 권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맥은 점점 성장해 갈테고 맥의 활약 또한 더욱 흥미진진해겠지.^^

영국, 프랑스, 소련 같은 실제 국가들이 배경으로 나오고, 실제 인물이 아닌 주인공들도 나오지만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과 관련 사건들이 언급되기도 한다. 관심있는 아이들은 작가의 관점과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며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물론 그냥 사건만 따라가며 읽어도 되고. 머리에 쥐나지 않고 감정 소모도 없이 가볍게 읽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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