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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의 세계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양지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8월
평점 :
만약에.... 라는 생각이 들 땐 고개를 흔드는 게 좋다.
페북을 쭉 내려보다 보면 사연글들의 미끼제목이 보이는데 무심코 그걸 눌러서 얼마나 기막힌 사연인지 읽어볼 때가 있다. 어제 본 제목은 로또 당첨금 받은 대학생? 뭐 그런 제목이었다. 로또 1등의 말로가 좋은 적이 없다던데 어떤 사연일까 했더니 이 학생은 아주 규모있고 안전하게 쓰고 있어 앞날이 탄탄하고 행복하다는 얘기였다. 받은 당첨금이 20억이 넘었다고 한다. 자동적으로 '만약에'가 시작되었다. 일단 누구누구 얼마씩 주고, 이집 리모델링 하느니 조금 나은 집을 사서 이사가고....ㅋㅋ 이쯤에서 머리를 털어 '만약에'를 쫒아낸다.
'만약에'는 후회스러울 때도 나타난다. 학생때로 돌아간다면.... 시간을 더 알차게 쓸거야. 영어동화책을 통째로 한 권 외운 후에 체계적으로 영어공부를 하면서 더 많은 책을 읽어볼거야. 엄마를 졸라 피아노를 배울거야. 이것도 부질없어 곧 머리를 털어내야 한다.^^
그런데 여기, 요시타케 신스케는 '만약의 세계'를 상상하고 책으로 만들었다. 그는 상상력이 기가 막히게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손에 잡히지 않는 상상을 마치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질 듯 형상화해내는 데 천재인 것 같다. '만약의 세계'를 그려낸다니 그걸 이분 말고 누가 또 할 수 있을까.ㅎㅎ
주인공이 자고 있다. 머리맡에 놓인 존재(인형? 장난감? 무엇인진 중요하지 않고 하여간 어떤 존재)를 창문 넘어온 고양이가 물어가버린다. 이제 그 자리는 비었다. 잠에서 깨며 주인공은 뭔가를 감지한다. 돌아본 자리에 그는 없다.
만약 이것을 아껴주던 이와의 이별이라고 한다면 이 장면을 보며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많으리라.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렇지만 작가의 상징에는 수많은 경우의 대입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위의 경우를 상상해 보았다.
"나, 만약의 세계에 가게 됐어.
만약의 세계는
네가 살고 있는
매일의 세계가 아닌
네 마음 속에 있는 또다른 세계야."
"네가 아무리 해도 할 수 없었던 일,
늘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
변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그런 모든 것이
만약의 세계에 모여 있어.
나도 이제 그곳으로 가려고 해."
흑흑 너무 슬프다. 인간은 왜 변하는 것인가. 애틋한 마음을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너와 나는 이미 예전의 그들이 아닌 것을. 그 감정은 너무나 소중하지만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것을.
그렇게 소중한 존재는 '만약의 세계'로 가버리고, 홀로 남은 내게 그 존재는 말한다.
"어떤 물건도 어떤 일도
어떤 사람도 어떤 마음도
사라지거나 없어지지는 않아.
매일의 세계에서
만약의 세계로
있는 곳이, 머무는 곳이
바뀔 뿐이야."
"너의 미래가 될 뻔했던 모든 것이
거기에 있어."
그렇게 소중한 것을 '만약의 세계'로 보내버린 주인공은 아주 좁은 '매일의 세계'에 위태롭게 서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주 희망적인 메세지를 우리에게 준다. 매일의 세계는 다시 커질 거라고. 만약의 세계가 큰 사람일수록 매일의 세계도 커다랗게 만들 수 있다고.
만약의 세계로 보내버린 것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가버린 것들. 나의 후회이자 아쉬움이며 부러움이고 회한인 것들. 때론 소중함을 미처 몰라 놓쳐버렸던 것들. 그것들이 이루고 있는 나의 '만약의 세계'.
만약의 세계가 있기에 지금 발을 딛고선 매일의 세계도 있는 거겠지. 그러니 그 둘을 모두 소중히 잘 다루라는 작가의 조언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물론 "말이 쉽지."에 해당하는 것이라 해도.
나의 '만약의 세계'를 상상해보면 그리 크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 버릴 건 버려주고 싶은 마음.ㅎㅎ 아서라, 이미 그곳은 내가 손댈 수 없는 곳이야. 내가 손댈 수 있는 곳은 이곳 매일의 세계 뿐. 그런데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어 있는 두 세계의 그 미묘한 관련성이 알듯말듯하다. 작가의 철학적 상상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다음의 주제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