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황지영 지음, 백두리 그림 / 우리학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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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영 님도 이제 무조건 읽고보는 작가님이 됐다. 이 책을 읽고보니 더욱 그랬다. 전작 <우리 집에 왜 왔니> 리뷰에서 심리묘사와 긴장감을 장점으로 꼽았는데 이 책에서도 그 두 가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정말 큰 힘이다. 한 번도 끊지 않고 한 호흡에 끝까지 가게 만드는 힘.

차분한 색채의 표지와 제목은 초등용 동화라기보다는 청소년소설 정도 되는 느낌을 준다. '대나무숲'이라는 소재도 그렇다. 하지만 본문의 삽화에는 원색이 많이 사용됐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6학년 여학생들, 배경은 신도시의 신설 초등학교다.

세 아이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한다. 유나는 아이들말로 '인싸'라고 할까? 팔방미인에 성격도 좋다. 건희는 유나의 짝이다. 지난 학교에서 아픈 기억을 남기고 전학왔다. 일부러 이사 온 것이니 그정도의 어두운 사연이 있는 것.... 민설이는 유나의 5학년때 단짝이지만 지금은 옆반이다. 유나를 잊지 못해 쉬는시간마다 찾아온다. 말하자면 삼각관계인 셈. 그 삼각형은 매끈하진 못해도 어느정도 모양을 유지했지만, 보다못한 건희가 새 반에서도 친구를 사귀어야하지 않겠냐고 한마디 했다가 완전히 어그러져 버린다. 이 갈등을 발단으로 해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며 갈등은 심연으로 소용돌이쳐 들어간다.

등장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대표하여 보여준다. 쾌활하고 이해심 많은 아이가 사건에 휘말리며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거칠게 던지는 말습관 때문에 찬사를 받다가 어느 순간 학폭 가해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정신이 돌아온 아이도 있다. 그리고나서 보니 박수를 보내던 친구들은 모두 모른척 입을 씻고 있다. 물귀신처럼 붙들고 늘어져도 내꼴만 사나워질 뿐이다. 결국 포기하고 이사를 결심해 이곳으로 왔다. 새 학교에선 모든 걸 새롭게 하리라 결심하지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자신의 캐릭터에 낙담한다.
폭력적인 아빠와 이혼하고 엄마와 단둘이 신도시에 자리잡은 아이도 있다. 환경은 새로우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어렵고 내가 잘하고 싶은 것도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고 마음과 다르게 사고는 터지고 관계는 꼬이기만 한다.

이 세 주인공 외에도 생각없이 말 옮기는 증폭스피커들, 고립된 친구를 돕는다는 사명감에 심취하여 어느새 그 포지션을 즐기고 있는 아이, 동네 축구처럼 이리 몰려갔다 저리 몰려갔다 하는 아이들 등 수많은 아동 군상들을 볼 수 있다. 아니 꼭 아동이라 제한할 것도 없겠다. 인간군상이라 하면 되겠다. 그러면 어른 등장인물들도 포함시켜 볼까? 사면초가에 빠진 아이들에게 잠시의 휴식을 제공해주며 과하지 않은 조언도 해주는 보건선생님, 새로운 생활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모든걸 방어하려 하다가 결국 딸 때문에 용기를 낸 민설 엄마 등.

그러고보니 이 책에서 그려낸 어른들은 모두 평균 이상이구나. 그래서 이 책은 갈등의 토네이도가 잠잠해질 무렵 훈훈한 결말로 끝맺을 수 있게 된다. 초중반의 올라가는 피치에 비해서는 좀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일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긍정적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상처를 겪었다. '흉터'는 이 책의 키워드이며 중의를 띤 상징이기도 하다. 나는 상처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상처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미 난 상처라면 어떻게 봉하고 치료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몸에 난 상처는 의사선생님들이 워낙 잘해주시니 믿고 따르면 되지만 마음과 관계에 난 상처는.... 미련스럽게도 인간은 상처를 헤집고 나을만하면 또 헤집어 키우고 키워서 결국 회복불능으로 만들어 놓을 때가 많다. 그걸 옆에서 부추기고 같이 헤집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부모가 그러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정말 다행이다. 그 결말을 위해 평균 이상의 어른들이 등장한 것은 필연이다. 물론 그 일을 모두 어른들이 한 것은 아니다. 어른은 조연일 뿐이다. 아이들이 이 토네이도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제야 나는 하루 종일 흉터를 잊고 지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걸까?" (170쪽)

어른 독자로서의 나는 이 책의 보건선생님 정도의 어른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상처는 단시간에 낫지 않지만 나을 방법과 방향이 있다. 그걸 알고 간다면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좀 멀리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처를 내지 않는 것도 가르쳐야 하지만 났을 때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도 교육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일단 재미없어서 못 읽겠다는 아이는 없을 것 같고^^, 아이들끼리도 멍석만 깔아준다면 이야기를 꽤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대부분 '흉터'를 가지고 있을테고 어떤 아이는 현재 통증이 극심할 수도, 어떤 아이는 지나간 흉터를 매만지고 있을수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 책 속 친구들이 겪는 이야기는 참고가 되는 한편 위로도 된다.

좋은 고학년 장편이 무수히 많은데, 이 책도 끼어드네. 아 경쟁율이 넘 치열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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