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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는 수영장 ㅣ 사계절 1318 문고 147
김선정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평점 :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추진하며 메일로 몇 번 연락하고 한번 만나뵈었을 뿐인데, 내마음대로 실친의 범주에 넣은 작가님이다. 실친의 새 책이 나왔다?! 보자마자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작가님의 청소년소설은 처음 읽는거라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많은 청소년소설이 그렇듯이, 굳이 ‘청소년’이라는 구분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내용이었다. 주인공의 연령대와 장소가 그런 것 뿐이지 내용은 청소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소설로 한정지어진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널리 읽히면 좋겠다.
책장을 정신없이 넘기면서, 나는 리뷰가 아주 짧아지더라도 이 책의 스포를 절대 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낱말 하나만 공개하면 바로 스포의 출발이 된다. 나는 보통 책 정보나 영화 정보를 어느정도 알고 보는 것을 좋아한다. 스포는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책 정보를 보지 않고 바로 읽었는데 엄청난 몰입감이 있었다. 책 정보를 다 읽고 읽었다면? 그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 스포를 싫어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런 분들은 이 리뷰도 그만 읽으시고 인터넷서점의 책 정보도 나중에 읽으시는 걸 추천한다. 책 소개에 너무 자세한 정보가 다 나와있었다. 그래서 리뷰자 한 명이 스포를 참아봤자일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편하게 쓰도록 하겠다.^^;;;
‘작가의 말’이 맨 뒤에 나와있었지만 나는 그것부터 읽었다.
“이 책의 초고는 책의 배경이 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썼습니다.”
비극적인 사건? 뭐지? 내 기억은 여러 가지 사고들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 책의 초고를 쓴 최초의 날짜를 찾아보니 대략 9년 전이었습니다.”
세월호 이야기인가.... 수영장이라는 소재는 그것과 관련이 있는가...ㅠㅠ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작가님이 마음속에 품고 오랫동안 고생했던 그 사건은 내 기억의 목록에는 없는 사건이었다. 그 끔찍한 대량 희생의 주인공들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들어본 기억은 난다. 끔찍하다... 라는 생각은 잠깐 했지만 바로 잊어버렸다. 상상력의 빈곤은 때로 축복이다. 옆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니기 때문에 잠시 눈살 찌푸리고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작가님을 찾아가 잊지 말고 세상에 내어놓아 줄 것을 오랫동안 요구했다.
“오랜 시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야기’들은 자신을 가둬놓고 내놓지 않은 주인에게 단단히 화가 나서 복수를 하려 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지 말고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한다는 설화지만 저는 다르게도 느껴집니다. 내놓지 않고 묻어버린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비집고 나오니 더 큰 화가 나기 전에 세상에 보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 일을 다룬 이 책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이 근본적인 물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더 현명한 방법을 찾고, 이미 희생된 생명들에게는 위로와 안도를,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경고를 주었으면 좋겠다. 얽혀있는 세상 일을 풀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이야기’가 그걸 할 수 있나.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는 있다. 그러니 이 책이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이야기의 초반에, 서사의 주축이 되는 삼총사가 결성이 된다. 목현읍이라는 시골에 있는 오래된 고등학교의 비주류 학생 3명, 각각 홀로 왕따였던 아이들 셋이 뭉치는 과정은 도입의 공식 같은 느낌이 살짝 있지만 그래도 흥미롭고 신선했다. 특히 웹소설가 지망생인 기현. 아직 대가의 자질이 보이는 건 아니고 자뻑에 가까운 실력이긴 하지만 주 서사와 나란히 가는 기현의 웹소설은 이 책의 흥미와 긴장을 높여주는 요소였다. 이 소설의 소재에 공감하면서 취재와 조사에 도움을 주는 진호와 영리가 합류한다. 물론 청소년답게 수익금 분배에 대한 계약을 하고서.^^
이 책의 제목. 목현고 체육관 뒤쪽에 방치되어 있으며, 학생들 대다수가 잘 알지도 못하는 수영장. 이제는 물 없는 수영장. 이 소재에 담긴 큰 사건은 대체 무얼까? 익사 사고인가? 무슨 비리라도 얽혀있나? 방치된 채 버려져 음습하고 기괴해진 이 공간은 독자들의 긴장감을 높인다. 웹소설 3총사는 이곳에 진입한다!
새로운 사건들이 계속 생기거나 밝혀지며 책의 몰입감은 계속 높아진다. 중반까지는 긴장감과 궁금함이 높아지고, 중반 이후에는 긴장감은 좀 해소된다. 무슨 사건인지 알게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사건의 전말에 대한 궁금함과 문제의식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덮고 나면 작가의 문제의식에 동승하게 된다.
오!!! 요리조리 쓰다보니 여기까지 스포를 최대한 안 했다. 만세!!
웹소설 지망생 기현이의 아빠가 목사님이라는 사실은 꽤 의외였는데, 시골마을 목사님인 만큼 마을의 문제에 이래저래 마음쓰지 않을 수 없었던 바, 이 사건에 대한 추도문을 쓰셨다. 그 일부로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여기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을 착취하고 유린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 당장 이 죽음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을 좋은 곳, 귀한 곳, 아름다운 곳으로 다음 세대에게 이어 주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