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따먹기 스콜라 창작 그림책 86
김지영 지음, 남형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책의 특징 중 하나로 글과 그림의 보완적 서사를 꼽는다. 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빈 곳을 그림이 채워가며 함께 이야기를 해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글만 읽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이 책을 보며 그걸 실감했다. 글만 읽으면 반칙을 하지 말자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책이 아닌 것을 그림이 말해준다.

 

많고많은 놀이들 중에서 작가님이 땅따먹기를 고른 이유를 알 것 같고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땅따먹기. 어렸을 때도 놀이에 취약하던 내가 그나마 깍두기가 되지 않고 할 수 있는 놀이가 땅따먹기였기에 매우 반가웠다.^^;;;

 

처음 본 남형식 작가님의 그림은 아주 재밌으면서 귀여웠다. 아이 한 명이 놀자고 친구들을 부른다. 반달곰, 여우, 산양이 왔다. 넷은 커다란 네모를 그리고 각 귀퉁이에 자기 땅을 그렸다. 땅따먹기 시~! 그런데 아이가 자꾸만 반칙을 한다. 가위 바위 보를 늦게 내고, 친구의 돌멩이가 가는 데다 발을 대고, 돌멩이를 튕기려는 순간 친구를 웃기고, 온갖 반칙을 써서 땅을 독차지하곤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은 다 떠나고 혼자다. 아이가 차지한 땅은 더 이상 푸른 잔디밭이 아니고 딱딱하고 검은 땅이 되어있다.

 

아가들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이 책은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책의 한쪽 귀퉁이에는 동물들이 완전히 떠나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같이 놀자고 친구들을 애타게 부르는 아이에게 이제 반칙 안 할 거야?”라고 살며시 묻는다. 약속하고, 사과하고 함께 다시 놀이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딛고 선 땅은 다시 환하게 푸르다.

 

반칙을 하는 아이가 인간이라는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자연의 법칙을 지키며 사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만이 그 법칙을 멋대로 무시한다. 동물들은 반칙하는 인간들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들이 반칙하며 독차지한 영역은 저토록 검고 황폐한 땅이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땅따먹기를 좋아하는 인간, 반칙을 일삼는 인간, 손만 대면 망가뜨리는 인간. 귀여운 그림, 단순한 이야기 속에 인간의 속성이 섬뜩하게도 정확히 들어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아이와 동물들이 함께 하며 푸르름을 되찾은 해피엔딩이지만, 지구의 마지막 페이지가 어떨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이런 메시지가 우리의 마음을 부지런히 두드리면 달라질까. 이 책을 읽으며 놀이규칙을 잘 어기고 깽판 놓는 아가들이 내가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다 떠나는구나를 깨달아도 매우 좋은 일이다. 그것 한 겹만 들어있어도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구와 인간에 대한 주제가 한 겹 더 들어있으니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라고 하겠다.

 

땅따먹기. 내 어린시절부터의 오랜 놀이. 놀이로는 좋은데, 단지 놀이로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 없는 수영장 사계절 1318 문고 147
김선정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추진하며 메일로 몇 번 연락하고 한번 만나뵈었을 뿐인데, 내마음대로 실친의 범주에 넣은 작가님이다. 실친의 새 책이 나왔다?! 보자마자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작가님의 청소년소설은 처음 읽는거라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많은 청소년소설이 그렇듯이, 굳이 청소년이라는 구분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내용이었다. 주인공의 연령대와 장소가 그런 것 뿐이지 내용은 청소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소설로 한정지어진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널리 읽히면 좋겠다.

 

책장을 정신없이 넘기면서, 나는 리뷰가 아주 짧아지더라도 이 책의 스포를 절대 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낱말 하나만 공개하면 바로 스포의 출발이 된다. 나는 보통 책 정보나 영화 정보를 어느정도 알고 보는 것을 좋아한다. 스포는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책 정보를 보지 않고 바로 읽었는데 엄청난 몰입감이 있었다. 책 정보를 다 읽고 읽었다면? 그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 스포를 싫어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런 분들은 이 리뷰도 그만 읽으시고 인터넷서점의 책 정보도 나중에 읽으시는 걸 추천한다. 책 소개에 너무 자세한 정보가 다 나와있었다. 그래서 리뷰자 한 명이 스포를 참아봤자일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편하게 쓰도록 하겠다.^^;;;

 

작가의 말이 맨 뒤에 나와있었지만 나는 그것부터 읽었다.

이 책의 초고는 책의 배경이 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썼습니다.”

비극적인 사건? 뭐지? 내 기억은 여러 가지 사고들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 책의 초고를 쓴 최초의 날짜를 찾아보니 대략 9년 전이었습니다.”

세월호 이야기인가.... 수영장이라는 소재는 그것과 관련이 있는가...ㅠㅠ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작가님이 마음속에 품고 오랫동안 고생했던 그 사건은 내 기억의 목록에는 없는 사건이었다. 그 끔찍한 대량 희생의 주인공들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들어본 기억은 난다. 끔찍하다... 라는 생각은 잠깐 했지만 바로 잊어버렸다. 상상력의 빈곤은 때로 축복이다. 옆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니기 때문에 잠시 눈살 찌푸리고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작가님을 찾아가 잊지 말고 세상에 내어놓아 줄 것을 오랫동안 요구했다.

오랜 시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야기들은 자신을 가둬놓고 내놓지 않은 주인에게 단단히 화가 나서 복수를 하려 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지 말고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한다는 설화지만 저는 다르게도 느껴집니다. 내놓지 않고 묻어버린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비집고 나오니 더 큰 화가 나기 전에 세상에 보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 일을 다룬 이 책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이 근본적인 물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더 현명한 방법을 찾고, 이미 희생된 생명들에게는 위로와 안도를,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경고를 주었으면 좋겠다. 얽혀있는 세상 일을 풀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이야기가 그걸 할 수 있나.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는 있다. 그러니 이 책이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이야기의 초반에, 서사의 주축이 되는 삼총사가 결성이 된다. 목현읍이라는 시골에 있는 오래된 고등학교의 비주류 학생 3, 각각 홀로 왕따였던 아이들 셋이 뭉치는 과정은 도입의 공식 같은 느낌이 살짝 있지만 그래도 흥미롭고 신선했다. 특히 웹소설가 지망생인 기현. 아직 대가의 자질이 보이는 건 아니고 자뻑에 가까운 실력이긴 하지만 주 서사와 나란히 가는 기현의 웹소설은 이 책의 흥미와 긴장을 높여주는 요소였다. 이 소설의 소재에 공감하면서 취재와 조사에 도움을 주는 진호와 영리가 합류한다. 물론 청소년답게 수익금 분배에 대한 계약을 하고서.^^

 

이 책의 제목. 목현고 체육관 뒤쪽에 방치되어 있으며, 학생들 대다수가 잘 알지도 못하는 수영장. 이제는 물 없는 수영장. 이 소재에 담긴 큰 사건은 대체 무얼까? 익사 사고인가? 무슨 비리라도 얽혀있나? 방치된 채 버려져 음습하고 기괴해진 이 공간은 독자들의 긴장감을 높인다. 웹소설 3총사는 이곳에 진입한다!

 

새로운 사건들이 계속 생기거나 밝혀지며 책의 몰입감은 계속 높아진다. 중반까지는 긴장감과 궁금함이 높아지고, 중반 이후에는 긴장감은 좀 해소된다. 무슨 사건인지 알게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사건의 전말에 대한 궁금함과 문제의식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덮고 나면 작가의 문제의식에 동승하게 된다.

 

!!! 요리조리 쓰다보니 여기까지 스포를 최대한 안 했다. 만세!!

웹소설 지망생 기현이의 아빠가 목사님이라는 사실은 꽤 의외였는데, 시골마을 목사님인 만큼 마을의 문제에 이래저래 마음쓰지 않을 수 없었던 바, 이 사건에 대한 추도문을 쓰셨다. 그 일부로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여기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을 착취하고 유린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 당장 이 죽음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을 좋은 곳, 귀한 곳, 아름다운 곳으로 다음 세대에게 이어 주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스트셀러 소설에 대한 편견이 있다. 훌륭한 작품은 원석처럼 묻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베스트셀러는 훌륭한 작품은 아닐 것이다.

이건 대중의 시각에 대한 무시라고 하겠지. 위와 같은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이 종합1위를 몇주간 하면서 많이 팔리고 읽혔던 것을 보면 대중의 안목을 믿고 책을 골라도 좋을 것 같다. 나처럼 소설을 많이 안 읽어본 사람은 말이다.

이 작가는 다작을 하는 분은 아니라고 한다. 가끔 나오는 작품 또한 분량 면에서 얄팍하다. 이 책도 작은 판형에 130쪽 정도. 덕분에 독서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나도 하루만에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와 소통한 역자의 의견을 읽어보니 작가는 매우 절제되고 밀도 높은 문장들을 쓰는 것 같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고 아일랜드의 부끄러운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이라고 불리는 그 일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일어났던 인권유린이었다. 미혼모, 고아 등을 수용했던 그 시설에선 수용자들이 가혹한 노동과 학대에 시달렸다. 사람들도 어렴풋이 알고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력의 보호를 받는 종교단체의 힘은 깊고 넓게 뻗은 뿌리처럼 견고했고, 어디에서부터 손을 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거기에 아주 작은 균열을 낸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빌 펄롱이었다. 1946년생으로 나오고 책의 배경은 1985년이다. 이 사람은 똑똑하고 자기주장과 의협심이 강한, 불의에 맞서는 이들이 흔히 갖고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매우 평범하고 자기 가족을 사랑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조심조심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인해 출신성분에 비해서는 꽤 많은 것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실업자가 넘쳐나는 불경기에 그래도 그가 운영하는 석탄·목재상은 잘 되고 있었으니까.

출신성분 얘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그의 어머니는 윌슨 부인의 집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열여섯 살에 그를 낳았다. 평생 그에게 누구도 아버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불쌍한 팔자라고도 할 수 있는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은 윌슨 부인이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살던 그는 어머니를 내치치 않고 거두어 주었고 출산을 도와주었고 그 집에서 자라도록 허락해 주었으며, 준 자식처럼 대해주었다. 그래서 그의 유년은 다소 불쌍했지만 크게 불쌍하진 않았다. 그는 바르게 장성하여 그의 일을 일구고 가정을 꾸리고 다섯 딸을 낳아 가장의 의무를 다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런 그가 권력과 결탁한 종교세력의 비리를 들춘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는 그런 생각을 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냥 그는, 마음이 시키는 한 가지 일을 했을 뿐이다. 그 영향과 결과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고 책이 끝난다. 열린 결말이라 독자의 상상의 몫일 텐데, 그는 그 일로 꽤나 곤경을 겪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대하게 뻗은 악의 뿌리를 캐내는 데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그가 자신의 행동에 그렇게까지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현타가 왔던 것은, 나는 그렇게 못할텐데 라는 자각이다. 나의 일상, 뭐 대단히 부유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그저그런 나의 일상. 여기에 돌을 던지는 일을 이젠 절대로 못하겠다는.... 이것이 기득권의 특징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나도 기득권이 된 것인가. 그리고 기득권의 또다른 특징은 선택의 순간에 비겁해지는 것이던가. 그렇게 본다면 펄롱은 대단히 용기있고 훌륭한 사람이다.

내 안의 비겁함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펄롱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에는 빚을 갚는 마음도 있잖아. 그 역시 미혼모의 아들이잖아. 윌슨 부인이 거두어주지 않았더라면 그와 그의 어머니 모두 그 수용소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든가 더 비참한 인생이었을 수 있잖아. 자신과 같은 입장을 보았을 때 자신이 받았던 은혜를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지.

음 그렇지만 알고 있다. 당연하지 않다. 은혜를 받았는데 돌려주지 않거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더 모질게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내가 어떤 쪽일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ㅠㅠ

내 리뷰가 얼기설기 써나간 줄거리와 소감은 작품의 깊고 유려함에 비해 너무 거칠고 볼품없다. 이 책에는 당연한 것, 인류 보편의 전통적인 주제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새롭고 깔끔하고 단단한 그릇에 담길 수 있구나. 읽어봐야 알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인에게 그래픽 노블 1
이루리 지음, 모지애 그림 / 이루리북스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루리 작가님의 그림책 원격연수를 들은 적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 강의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작가님의 얼굴과 말투는 생생하다. 같은 교사는 아니지만 그림책 작가이자 출판인으로서 그림책에 진심인 인생을 사시는 분이어서 그림책 그 자체의 재미와 소중함을 느끼는 연수였다고 기억된다.

 

이번에 나온 지구인에게라는 책을 반가운 마음으로 펼쳤다. 새롭고 색다른 느낌으로 가득했다.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넘기던 책장은 어느새 놀라움과 슬픔으로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이 책에는 작가 가족의 평생의 아픔이 담겼다. 이 아픔을 드러내놓기 쉽지 않았으리라.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제 그 아픔의 소용돌이가 어느정도 가라앉고 상처에 딱지가 앉았기에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아픔은 작은형의 죽음이었다. 작은형은 바보처럼 묵묵하게 가족들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생전에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뒤늦게서야 알았기에 가족들은 더욱 아팠고 방황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이 그림책에는 많은 상징이 들어가 있는데, 작은형의 캐릭터와 가족의 아픔을 극대화하기 위해 창작한 작가의 설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괴물(외계인)이었다. 어느날 는 아침 식탁에서 아버지의 등에 올라탄 괴물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 괴물은 아버지의 말과 행동을 거칠게 만들고 있었다.

 

는 그 괴물을 떼어내려고 아버지에게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큰형에게 끌려나가 혼나게 되었다. 다른 가족에게는 그 괴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나는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작은형이었다. 형은 전부터 그 괴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눈이 뜨인 는 가족 뿐 아니라 밖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괴물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둘은 함께 괴물 퇴치 방법을 연구한다. 하나도 성공하진 못했지만. 유일하게 성공한 건 목욕탕에서였다. 괴물은 따뜻한 비눗물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형제는 신나게 사람들의 등을 밀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목욕이 끝나자 괴물들은 또다시 달라붙어 자라기 시작했다. 그래도 목욕하는 동안은 괴물과 분리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표현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작가는 목욕탕을 좋아하시나? 많은 어른들이 목욕탕에서 시름을 잊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아님. 대중목욕탕에 안 간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기도 하지.

 

그 일은 40여년 전, 작가님이 초등학생이고 작은 형이 고등학생일 때 일어났다. 전철역 승강장에서 형제는 아버지와 큰형을 보았다. 괴물 때문에 위험해지는 것을 본 순간, 작은형이 달려들었다. 결국 작은형은 열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전철 사고. 이것은 작가의 작은형이 실제로 겪은 사고이다.

 

작은형의 유품을 정리하며 가족들은 작은형의 흔적들을 보게 된다. 그가 남겨놓은 가족사랑의 증거들을 보며 무심했던 자신들을 깨닫고 후회와 아픔으로 몸부림친다. 그때였다. 괴물들이 그들을 빠져나가 원래 왔던 밤하늘로 돌아가버린 것은.

 

그리고 작가의 말이 이어진다. 수십 년 동안 품고 아파했던 작은형의 이야기를 한다. 작은형에게 사랑의 인사를 건넨다. 작은형이 책을 만들며 사는 작가의 지금 모습을 보면 기뻐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구인에게>라는 제목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지구인은 우리 모두가 아닐까. 뭐 당연하잖아. 우리가 지구인 아니면 뭔데. 그런데 그 괴물을 작은형은 아무래도 외계인인 것 같아라고 설명했었다. 이 책은 그 외계인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는 지구인들에게 보내는 위로일까. 외계인을 떨쳐내고 지구인으로 살아가라는 응원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독사를 준비 중입니다 - 홀로 인생을 마주할 줄 아는 용기와 자유에 대하여
최철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그때 보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을 했었나보다. 도서관에서 ‘신청하신 책이 도착했으니 모월모일까지 대출하시라’는 알림이 왔다. 내가 무슨 책을 신청했더라 하며 제목을 보니 이 책이었다. 요즘 나의 관심사 순위로 따지면 신청할 만한 책이었다. 수많은 정보가 잠시 눈에 머물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그때 도서관에 바로 신청하지 않았다면 이 책도 그럴 뻔했다.

다음날 바로 빌려와보니 크지 않은 판형에 본문도 빽빽하지 않고 쪽수도 160쪽 정도, 문장도 어렵지 않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천천히 조금씩 읽어도 되지만 한번에 읽고자 한다면 집중해서 2시간 정도만 들이면 완독할 수 있겠다. 읽기는 이처럼 쉽지만 그 내용의 무게는 커서 속독을 추천하고 싶진 않다. 나는 속독을 해버린 탓에, 여운을 남겨두려고 이렇게 리뷰를 쓴다.

이 책의 저자는 80세가 넘으셨다고 한다. 이렇게 고령자의 저작물을 내가 읽은 적이 있었던가. 저작물을 바라진 않지만 나도 마지막 직전까지 정신 멀쩡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이분은 기자 생활을 수십 년 하셨고 신문사에서 중요 직책도 맡아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활약하신 분이다. 언론인으로서 활동할 당시의 글은 내가 접해보지 못했으니 나와 평소 생각이 다른 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는 오직 한 가지 주제의 내용만 담겼고, 그 주제에 나는 매우 동의한다. 그것은 웰 다잉, 다른 말로는 ‘존엄사’이다.

이 책에 그 구체적인 방법이 담겼나 해서 속독을 한 것 같다.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길이 명확하다면 누구나 그 길을 가지 왜 힘겹고 비참한 죽음을 택하겠나. 이 책을 통해서 그 길이 어렵다는 것을, 좀더 정확히 말하면 맘대로 안된다는 것을 더욱 깨달았을 뿐이다. 엥 그렇다면 이 책은 제껴, 패스!! 이건 아니다. 그렇다면 리뷰를 쓰고 있진 않겠지.

저자는 독거노인이다. 부인과 사별한 지도 10년이 넘었으며 안타깝게 딸도 젊은 나이에 떠나보냈다. 본인 또한 암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어 매우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노년이다. 하지만 그는 요리를 취미생활로 개발했고 이처럼 글도 쓰면서 홀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되도록 즐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존경스러운 정신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벌써부터 그런 두려움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배웠건, 어떤 지위에 있었건, 돈이 많건, 그런 것과 상관없이 두려움없이 독립적인 사람은 똑같이 훌륭하다.

저자는 ‘노년 남자’가 받는(받을 수밖에 없는?) 취급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어르신들 세대도 노년으로 접어들면 독립성과 사회성 면에서 남녀가 역전된다. 남자노인들은 한마디로, 도움도 안되고 존재도 불편한, 민폐 무용지물이 된다. 여성의 노년도 크게 다를까마는 남자의 노년은 더 불쌍하다.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해봤자인 걸 알면서도 내 가까운 남자들이 걱정된다. 이러한 노년 남자로서 저자가 선택한 것은 이것이다. 제목에 있다. “고독사를 준비중입니다.”

「언젠가 내가 혼자 숨져있는 모습이 뒤늦게 발견됐다 하더라도 결코 놀라지 말 것을 아들 내외에게 여러 차례 일러두었다. 우리 시대의 삶과 죽음이 그러하니 아버지의 고독사를 섧게 여기지 말라 했다. 그건 불효가 아니다. 난 이대로가 좋다. 나의 평화를 위해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31쪽)
문제는 말년에 병원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일단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라는 것을 잘 알아보고 미리 작성해 두어야 하겠다. 그런데 이걸 썼다고 해서 존엄사가 될 리는 만무하다. 가족들이 충분히 취지를 알고 동의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의 본인 선택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가족이 붙들기도 하지만 본인이 붙들기도 한다. 그건 정말 그때가 되어보지 않고는 모를 것 같다.ㅠㅠ

저자는 웰 다잉에 관심을 갖고 강연활동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의 마지막을 경험하고 상담도 하였다. 그래서 얻게 된 생각을 나누려 이 책을 썼을 것이다. 타인들의 마지막에 대하여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진 않았다. 개인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한다. 그중에는 ‘부럽다. 나도 저렇게’ 라고 생각되는 마지막도 있지만 절대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았으면 싶은 길고 비참한 마지막도 있다. 여기에는 선택과 운명이 섞여있다고 생각한다. 선택이 몇 퍼센트쯤 되는지 잘 모르겠다. 되도록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생겼다. 그래야 “고독사를 준비중입니다.”라는 저자의 말씀도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개인의 선택 여지가 지금으로선 크지 않은 것이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 운운을 하고있는 것일 텐데, 저자 또한 그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고려 사항에 넣지 않은 걸 보니 말이 그렇지 거의 가능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것은, 의료 체계를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회복가능성이 없는 중증환자의 치료 목표를 연명에 두지 않는 것. 존엄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 고통 속에서 목숨만 부지하지 않도록 치료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었으면 한다. 목숨의 길이보다 남은 삶의 질에 큰 목표를 두고 함께 힘써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상상이 조금은 덜 두려워질 것 같다. 나에 대해서도 내 부모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인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많은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병원에 한 달도 채 못 있고 돌아가셨다. 그 정도면 정말 잘 가신 거라고 모두들 말했었다. 하지만 그 한 달도 그보다는 편하게 있다 가셨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질 때가 있다. 콧줄을 통한 강제 영양공급이 아버지에게 결과적으로는 “기운차려서 고통을 더 느껴라” 라는 폭력이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당시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본인의 의지가 확고해도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는 게 많지 않은 나의 경험 중 하나다. 이런 일들 하나하나가 솔직하게 논의되고 최상의 선택을 본인과 가족들이 할 수 있도록 열려 있으면 좋겠다.

의료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세상. 이제는 더 이상 수명을 늘리는 것보다 이런 쪽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평온한 죽음을 돕는 의료. 죽음은 예외 없는 모든 이의 것이니까. 그걸 반대할 사람 누가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