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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손 지우 ㅣ 작은 책마을 53
최도영 지음, 최민지 그림 / 웅진주니어 / 2022년 5월
평점 :
요즘 읽은 책 중에 평이 좋은 두 권의 단편집이 유독 내게는 별로였다. 내가봐도 훌륭한 책이긴 했는데 마음이 가지 않는다고 할까.... 훌륭하지만 좋지는 않은....^^;;; 작품에서 겨누는 무언가에 내가 들어있는 느낌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서늘한 느낌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의 취향 탓일수도 있다. 근데, 이 단편집이야말로 정확히 나를 겨누고 있는데? 그런데 난 웃고 말았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아 미안해 미안해, 조심해야겠네.^^ 이런 느낌으로.
저학년용 얇은 단편집인데 작가 이름을 보니 몇 년 전 학급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었던 <레기, 내 동생>이라는 수상작의 작가님이어서 꺼내들게 되었다. 검색해보니 그 책만큼 팔리는 책은 아닌데, 읽어보니 내 느낌으로는 뒤처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어른들의 말 한마디가 어린아이들의 마음속에 퍼지는 파장을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파마 임금님]의 화자는 1학년 수호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마를 하는 날이라 신이 났다. 그런데 얄미운 아랫집 동생 영교도 같이 한다는 거다. 영교는 수호보다 야무지고 똘똘하다. 더 얄미운 건 본인도 그걸 알고 으스댄다는 거다. 영교 엄마는 아닌 척하면서 웃음을 깨물고 수호 엄마는 열받아서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런 일들은 다 ‘비교’ 때문에 일어나는 거다. 비교는 인간의 본성인 건가. 나도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열등감으로 많이 낭비했다. 지금도 능력있는 남들을 많이 부러워하긴 하지만 그냥 부러울 뿐이지 나를 들볶지는 않는다.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부러움과 은근한 으쓱함 모두를 경험한 것 같다. 키우고 나니 모두 부질없던 그 감정들을....
파마는 멋진 미용실이 아닌 야매 아줌마 집에서 하게 됐다. 야매 아줌마는 파마 도구를 아이들한테 집어달라고 말하면서 “형이 잘하나, 동생이 잘하나, 한번 봐야지.” 라고 하는게 아닌가. 영교는 신이 나고 수호는 움츠러드는 순간이다.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빈번하다. “몇 반이 더 잘하나 볼까요.” “누가 더 잘하나 볼 거예요.” 이 말은 아이들의 허리를 단번에 꼿꼿이 하는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나는 이제 이런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됐다.
파마를 하는데 똘똘한 영교는 역시 아줌마 마음에 들었고 어설픈 수호는 역시나 어설픈 티를 냈다. 아줌마는 굳이 “동생이 더 똘똘하네.”라는 말을 하고 말았고 엄마는 또 열을 받았다. 심통이 난 수호는 파마도구들을 휘젓는데, 여기서부터 판타지! 파마 임금님들이 나타난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다 임금님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수호가 외쳐 묻는다.
“무슨 임금님이 이렇게 많아요? 임금님은 하나여야죠!”
이것이 우리가 가진 ‘서열’ 고정관념이다. 서열은 존재하고 그 우위를 점령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는 법. 아래에 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사회는 무한 경쟁, 그 연령은 점점 더 낮아져.... 킬러문항만 없앤다고 될 일인 줄 아나? (앗 너무 많이 나갔네ㅠㅠ)
파마나라 임금님들은 수호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다. 수호가 원하는 회오리파마를 해주었고, 영교에게는 촌스러운 버섯머리를, 엄마와 아줌마들한테는 사자머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수호는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파마만 하는 임금님은 시시해요.”
슬픈 얼굴이 된 임금님들은 파마를 다시 풀어놓는데, 마지막 순간에 수호가 붙잡는 바람에 결국 파마는 유지된 채로 마법은 끝났다. 이걸 보면, 상처를 주는 쪽은 늘 어른인 것은 아니다. 아이도 어른한테 상처를 준다. 그 두 가지 모두 괜찮지 않다. 어른들은 절대 강자이고 절대악이며 아이들은 절대약자이고 절대선이고. 그렇지는 않다는 뜻이다. 피차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물론 더 많이 산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하는 것 분명하지만.
표제작인 [숙제 손 지우]에서 직장에 다니는 지우 엄마는 바쁘다. 방과후 순례를 하다가 지우가 집에 오는 시간은 5시 반, 엄마가 퇴근하고 들어오는 시간은 6시 반이다. 둘 다 지쳐 쉬어야 할 시간이지만 지우에게는 숙제가, 엄마에게는 집안일이 있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며 쉬지않고 지우한테 숙제타령을 한다. 지우의 엄살과 투정은 무시되기 일쑤다. 아이의 엄살은 때로 다독임이 필요하지만 엄마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 또한 엄마로서 교사로서 이렇게 여유가 없던 순간이 많았다. 특히 징징거림을 몹시 싫어하는 성격이라 받아주지 못한 순간이 많았을 거라 짐작한다. 지우는 힘없이 책상 앞에 앉았다가 입이, 다리가,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손만 남는다. 숙제를 하는 손. 바로 제목인 ‘숙제 손 지우’다.
결국 지우가 제 모습으로 돌아온 건 엄마의 이 혼잣말이었다.
“숙제가 다 무슨 소용이람. 깜깜해질 때까지 난 저녁도 안 먹이고 뭐 했니..... 배고플 텐데 얘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내 아이들 다 키운 교사로서 엄마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이들 밥에 진심이셨으면 좋겠어요. 밥이요.... 그게 되게 중요해요. 밥 좀 정성껏 차려 먹이세요. 아침도 꼭 먹이시구요.
그리고 교사로서 자기변명을 하자면, 나는 숙제를 거의 내주지 않는다. 요즘 학교 교사들은 거의 그렇다. 이 책처럼 매일매일 엄마가 저렇게 잔소리를 할 만큼 숙제가 있지 않다. (다 그렇다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래서, 엄마가(또는 아빠가) 차린 제대로 된 밥을 아이들이 꼭 먹으면서 자랐으면 좋겠다.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단순한 영양소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바쁘고, 그러니까 할 일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겠지만, 내 주장은 밥이 그 우선순위에 든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은.
[맞혀 맞혀 다 맞혀]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들어있다. 운동을 심하게 못했던 나. 피구 하면 일등으로 맞고 나가는 나. 공이 오면 받을 생각도 못하는 나. 그래도 나 때는 ‘깍두기’라는 것이 있어서 친구들이 많이 봐줬는데, 내가 요즘 아이라면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랐을 것 같다. 이 책의 다해는 “에이, 그걸 못 맞혀?” 라는 선생님이 한마디에 기가 죽는다. 아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럼~! 잘 못하면 어때” “못해도 괜찮아.”라는 말이었다. 결국 선생님께 그 말을 듣고 회복되는 다해. 노력해서 극복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어때~ 괜찮아.” 라는 여유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운전을 포기했을 때 어떤 분이 “아, 선생님보다 띨띨한 사람들도 다 해요. 공부도 잘했는데 왜 그걸 못해.” 라고 해서 우울했지만.... 그냥 뚜벅이 생활에 만족하니까 가끔 불편한 때를 빼놓고는 괜찮다.ㅎㅎ
이 책에 공감했던 건 어쩌면 지금의 나가 아닌 내 안의 어린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은?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까? 나처럼 어딘가 부실한 아이들만 공감하려나?ㅎㅎ 어쨌든 기회가 된다면 같이 한 번 읽어보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