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명화, 붉은 치마폭에 붉은 매화 향을 담다 (표지 2종 중 ‘청록’ 버전)
서은경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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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순하고 심심한 제목이다. 부제가 감각적이어서 그나마 느낌을 돋워 준다. ‘붉은 치마폭에 짙은 매화 향을 담다.’

 

서평게시판에서 이 책을 골라잡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남은 책이 거의 없었고, 만화 형식으로 된 그림 관련 책이라는 점이 궁금하기도 해서 별생각 없이 신청했는데 받고보니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와우 수지 맞았는데? 이런 생각이 들 정도.

 

일단은 만화 자체도 아주 좋았다. 이런 말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수준과 품격이 있다고 할까. 캐릭터를 과장하고 에피소드를 억지로 짜 넣음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좋았다. 꼭 웃겨야 맛은 아니니까. 조용하고 잔잔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가끔씩 미소도 지을 수 있었고. 옥탑방에 세들어 사는 가난한 그림작가 주봉 씨와 고양이 캐릭터로 그려진 묘묘 씨. 집주인 오사장과 그의 딸 초등학생 꼬경이 등 등장인물들이 평범하면서도 친근했다. 엄청 잘나지도 않았고 적당히 게으를 때도 있고 하는 일이 썩 잘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한심한 인생도 아닌 보통 사람들.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책의 느낌 자체가 한적한 것과 같이, 많은 작품을 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작품에 깊이 공감하는 것이 여러 작품을 보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이 책을 보면서 들었다.

 

예를 들면 김정희 편에서는 <세한도>만을 소개하고 있다. 세한도가 유배지에서 그린 그림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그에게 충심을 다하는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늙고 권력없는, 그래서 아무 유익도 줄 수 없는 스승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섬긴 제자나, 그 고마움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어하는 스승의 마음이 모두 감동적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흔하게 볼 수 없는 마음이니.

 

빼놓을 수 없는 화가, 김홍도 편도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서당이나 무동 같은 풍속화 대신에 좌수도해도, 한정품국도를 소개하고 있어 새로웠다. 다양한 장르의 그림에 두루 능했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풍속화 외의 그림은 잘 몰랐기에 유익한 감상이 되었다.

 

그 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 익히 아는 대표작들도 반가웠고, 나비를 즐겨 그렸다는 남계우, 대나무를 즐겨 그렸다는 이정 등의 화가를 소개받게 된 점도 좋았다. 정약용에 대해서는 실학과 저술로만 알고 있었는데, 유배지에서 외롭게 지내며 부인이 보내온 오래된 치마폭에 그림을 그려 자녀들에게 주었다는, 특히 혼례식에 가보지도 못한 딸에게 그려준 그림의 사연이 애틋하다.


현실과 과거를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잘 연결하는 작가 서은경 님의 역량에 감탄했다. 글작가가 따로 있지 않다는 점, 옛 그림에 대한 조예가 매우 깊어보인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지점이었다. 이 분야에 관심있는 학생이라면 선물로 주어도 매우 가치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만화책이지만 여러 번 읽어봐도 좋을 책. 말하자면 소장하기에도 좋을 책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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