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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런 성격일까? - 에니어그램이 알려주는 온전한 나로 사는 길
정유진.임소연.추교진 지음 / 정신세계사 / 2024년 5월
평점 :
그동안 에니어그램에 관심이 있었다고 해야할지 아니라고 해야할지 애매하다. 관심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연구해볼 열심까지는 없었다. 15년 전쯤, 이 책의 저자인 정유진 선생님이 인도하시는 원데이 연수에 참여해본 것이 전부다. 그 이후로 두꺼운 책을 한 권 읽다가 만 것 같고, 자녀교육용? 얇은 책을 한 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으로는 3년쯤 전에 에니어그램 소설을 발견하고 재밌겠다 싶어서 읽어봤다. 예상대로 재미는 있었고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소설의 특성상 지식을 더욱 넓혀주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페북 등의 SNS에서 남들이 성격검사 결과를 공유하고 링크를 올려주면 에이 이게 뭘... 하면서도 대부분 해보는 것 같다. 나도 그렇거든.ㅎㅎ 그리고선 오 신통하다며 좋아한다. 인간에겐 자신의 성격을 진단하고 규명해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일까. 부쩍 심해진 mbti 열풍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등학생들도 자기소개할 때 언급하고, 서로서로 묻기도 하는데 듣고있자면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한다. 섣불리 접근하는 건 심심풀이 이상의 의미는 없겠다 싶어서.
에니어그램도 성격유형을 찾는 방법 중의 하나다. 단편적으로 보면 9개의 유형이니 16개인 mbti 등 다른 검사들과 비교했을 때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개수로 비교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에니어그램의 깊이는 그 사람의 심연에 잠긴 근원을 찾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진단도 쉽지 않고 오랜시간 모르거나 잘못 알고서 살아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견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 것이 단점이라면, 일단 파악하고 난 다음에는 자신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 깊이는 여타의 성격검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9개의 유형 중에서 나의 기본성격이 있지만 그것이 나를 다 표현해주는 것은 아니다. 기본성격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방향성이 있고, 그것들의 조합이 나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성격을 찾아내는 것도 어떤 사람은 꽤나 오래 걸린다. 말하자면 애니어그램은 한번의 검사로 결정된다기보다는 자신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인 것 같다.
나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15년 전 연수에서 한 검사에서 나는 1,9번이 똑같이 매우 높게 나왔고 그 다음으로는 6번이 나왔다. 2,4,5는 중간 정도로 나왔고 3,8은 낮았고 7은 매우 낮았다. 이러한 전체적인 경향성은 평생에 걸쳐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커다란 변신의 계기가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그때 동점으로 나온 1,9번 중에서 1번이 나를 더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기본성격(대표 유형)은 1번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때 연수에서도 1번들의 모둠에 들어가 토의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해본 검사에서도 상중하의 전체적 경향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즐거움 추구가 가장 뒤로 밀리는 사람이고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성취 욕구도 그리 강하진 않다. 하지만 기본성격에 변화가 있었다. 15년 전 세 번째로 나왔던 6번 유형이 1,9번을 치고 튀어나와 단연 높게 나왔다.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이제 나의 직업을 접을 날이 몇 년 남지 않아서 직업적 마인드가 줄어들 시점이라는 점, 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점도 영향이 조금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나의 심연, 즉 잠겨있는 빙산 부분을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나의 근원과 뿌리를 보는 데 도움을 주었다.
15년 전 6번이 썩 끌리지 않았던 이유는 대표명칭인 ‘헌신가’라는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리 헌신성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빙산의 아랫부분, 즉 나의 두려움과 욕망, 집착 등을 보게 되니 나는 확실히 1번보다는 6번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6번의 근원적 두려움은 '안내받지 못하는 것'이고 핵심감정은 불안이다. 나는 혼자있는 것을 무척 선호하는 사람인데 그때도 한줄기 끈은 연결되어 있길 바라는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고립은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의지할만한 존재를 원한다. 그래서 내가 호감을 갖는 사람은 주로 이렇다. 속이 깊고 멘탈이 강한 사람, 호들갑스럽지 않으며 약속을 잘 지키고 한번 말해놓으면 두세번 말할 필요가 없는 사람. 한마디로 믿을만한 사람이다. 신뢰. 이게 내가 사람을 보고 관계를 맺는 절대기준이다. 이것이 나의 깊은 불안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나는 나 자신도 불신한다. 내가 참 시원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주변에 누군가 든든한 사람이 있어서 불안감을 줄여주기를 바란다.
설명을 읽다가 너무 맞아서 허탈하게 웃은 부분이 있다.
"안전에 집착하는 6유형들은 미래에도 큰 기대가 없습니다. 크게 성공하는 것보다 망하지 않는게 더 중요하고, 앞서가는 것보다 뒤처지지 않는게 더 중요하다 여기지요. 머릿속에 최악의 상황을 그려놓고 그것을 피하는데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아~ 웃프다.ㅎㅎㅎ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언은 나를 안심시키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의 통찰력 인정하기(통찰력 있다는 소리는 가끔 들음),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쓰기(이미 하고 있는 편), 할까말까 고민될 땐 일단 하기(가장 어려운 조언ㅋ) 등이다.
책의 리뷰에 개인적인 얘기를 너무 많이 한 느낌이라 꺼림칙하긴 한데... 나는 원래 리뷰가 독후감인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해야겠다. 각 유형들의 독후감을 다 모으면 꽤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 책의 1,2부는 애니어그램, 성격의 개념을 설명하는 장이고 3부는 검사, 4부는 각 유형을 자세히 설명한 장이다. 이 4부가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나는 4부에선 내 유형만 읽었으니 이 책을 다 읽었다곤 볼 수 없는데, 다른 유형들도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다. 지인들과 관련지어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에니어그램의 깊이와 넓이는 이후 5,6부에서 진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9개에 불과한 성격유형이 전부가 아니다. 기본성격 외에 다양한 성격 역동이 한 사람의 총체적 성격을 구성한다. 힘의 중심, 욕구의 사회적 충족 방식, 욕구 좌절 대처 방식, 인간관계 갈등 대처 방식 등이 새롭게 다양한 그룹을 이룬다. 그래서 성격이란 단순명료하지 않으며 쉽게 규정될 수도 없는 것이다. 뿌리가 같아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남에게 보여질 수 있다.
에니어그램의 특징인 '날개'도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니어그램의 최종 목적지, '온전한 통합'은 단순 성격검사를 넘어서 삶의 태도와 방향을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다. 인생이란 어쩌면 자신을 탐구하는 여정인 바, '나는 어떤 모양의 사람인가?'를 넘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에니어그램을 높이 사고 싶다.
애니어그램에 대한 기존 저서들이 이미 여러 권 있지만, 저자들은 좀더 쉽게 체계적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안내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표한 바를 충분히 달성한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480쪽에 달하는 이 책을 읽는데 부담이 거의 없다. 물론 하루만에 뚝딱 읽어지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천천히 진단도 하고 생각도 하며 읽는 것을 추천한다. 그 과정에서 좋은 점은 끝까지 흥미를 유지하며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도록 서술이 친절하고 상세하다는 점이다.
책의 디자인으로 볼 때 본문에는 그림이나 사진이 거의 필요치 않고 도표가 들어가 있는 정도인데 눈에 잘 띄고 알아보기 쉬웠으며 소제목들에 적당하고 깔끔한 색이 들어가 있어 가독성을 높여주었다. 특히 표지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표지의 연두색이나 책등의 노란색이 다 고상한 느낌을 준다. 은박으로 인쇄된 제목이 너무 작지 않나? 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왠지 적당하는 생각이 든다. 가운데 크게 들어가있는 애니어그램의 원이 제목의 역할을 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받아들면 마음이 흡족하고 꼭 읽어서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에니어그램을 좀더 알고 싶은 이들, 나에 대한 탐구 욕구가 있는 분들에게 자신있게 권해도 되겠다. 매우 흥미로운 독서이자 나를 탐구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