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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ㅣ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3월
평점 :
-쓰다보니 스포가 있음. 주의-
<죽이고 싶은 아이>에 이은 이꽃님 작가의 청소년 소설이 나와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인간 내면의 문제와 반전 면에서 이꽃님 작가는 정말 탁월하신 것 같다. 작가가 설계해 놓은 판에서 독자들의 감정도 이리저리 격동한다.
내 처음 감정은 ‘같잖음’ 이었다. ‘꼴값떨고 자빠졌네’와 비슷한 느낌? 같잖기로는 남자애 여자애 막상막하였지만 남자애 쪽이 좀더 강한. 이따위를 사랑이라고 부르는구나 니네는. 작가님이 이번에는 이렇게 같잖은 사랑을 그렸나? 설마 이게 다는 아닐테지. 이게 다라고 해도 뭔가 하고픈 말이 있을 테지.
당연히 이게 다가 아니었다.
사귀는 남녀학생이 저수지에 갔다가 남자애(해록)가 실종되었고 여자애(해주)는 운동화를 물가에 가지런히 남긴 채 젖은 모습으로 돌아와 지금은 멀쩡히 집에서 경찰을 맞이하고 있다. 경찰의 조사를 받으며 서술한 이야기로 서사가 전개되는데, 해주가 해록이한테 과거를 회상하며 말하는 관점으로 서술된다.
“기억 나? 우리가 저수지에 갔을 때 말이야. 그날 유난히도 어두웠잖아.”
이런 식으로 말이다. 중반 이후까지 해주의 관점에서 그들의 연애사가 서술된다.
한없이 가볍고, 소비적이기만 하고 생산적인 것은 없으며, 감정의 유희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그들은(여자애는)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내가 개네들 반에 있었다면 나는 최대한 멀리했을 거다. 왜냐면 노답이니까. 설득하고 논쟁하느니 그냥 멀리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거다. 한때 친구였던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앞에서도 처음 느낌을 말했듯이 남자애 쪽이 훨씬 더 꼴값 느낌이었다. 명품 타령을 한다든지, 치마 입은 애가 좋다고 말해서 여자애가 매주 옷을 사게 만든다든지, SNS에 여자애 사진을 올리면서 ‘내 거’라고 칭한다든지. (이 칭호는 정말이지 질색이다. 아이돌 노래 중에 ‘내꺼하자’인가 하는 노래가 있던데 자세한 가사는 안 들어보았지만 제목만으로도 패스) 하지만 해주는 그걸 추구했다. 서로의 ‘내 거’가 되는 것을. 해록이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모든 관계가 무너져도 해록 하나로 만족하려고 했다. 그럴수록 해주에게 해록은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고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자기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물론 해록이 보여줬던 관심과 애정표현에 설레고 행복했던 마음은 이해가 간다. 누군들 그런 순간에 대한 로망이 없겠는가? 하지만 이런 대목을 보면 그런 마음이 다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팔을 뿌리치고 걸어가는 네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어. 이대로 널 보내면 안 된다고. 널 보내면 다른 애한테 가서 나에게 보여줬던 달콤한 미소를 짓고 따뜻한 눈길을 보낼 것 같았어. 죽어도 그 꼴을 볼 수는 없었어.” (155쪽)
드디어 반전은 다가온다. 해주를 찾아온 아줌마 경찰의 입에서 나온 말들. 탐문을 통해서 확인한 사실들. 그것은 지금까지의 해주의 말이 매우 교묘하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알려준다. 남자애가 훨씬 꼴값이라는 나의 느낌도 해주의 말에 속은 것이었다. 남을 지배하려는 속성을 가진 인간이 가진 파괴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작가는 그 영향력을 곰팡이에 비유했다.
“그 다음은 친구였을 거야.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점점 부모에게서 멀어져 친구와의 관게에 집중하게 되니까. 너는 부모님이 너에게 그랬듯 네 말이면 뭐든 복종하는 친구가 필요했어. 순진하고 착한 몇 명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친한 친구가 되어주는 척하며 너는 친구들을 마음대로 이용했을 거야.”
철렁했다. 이런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 투톱도 인정 못해, 자기 혼자 원톱이어야만 하는 아이들. 필적할 대상이 나타나면 눌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뜻대로 되지 않아 고립되면 피해자로 돌변하여 주변을 가해자로 만들고 흐느껴 울기까지 한다. 그 아이가 친 올가미에서 벗어나기는 어른도 쉽지 않다. 그런 아이가 쉽게 바뀔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한숨과 함께.
사랑은 누구나 한다. 이 책이 ‘사랑 이야기’라고 해주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래. 사랑은 괜찮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지. 그 건강성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건강하지 못한 사랑은 무관심보다도 해롭다. 현실적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엮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멀리할 것이다. 자식들에게도 엮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우리반 학생이라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간은 멀리하여 고립시키는 것이 정답인가? 그럼 고립된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면이 없는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즐기면서 지배욕을 점점 키워가는 모습. 반대로 나를 지배하는 사람에게서 단호히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누구나 아찔한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산다는 건 참 복잡하다. 자주 살피고 돌아봐야 한다.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고 자신을 돌아봤으면 한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