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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지 않고 ㅣ 신나는 새싹 204
스테파니 드마스 포티에 지음, 톰 오고마 그림, 이정주 옮김 / 씨드북(주) / 2023년 9월
평점 :
책을 받아서 펼쳐보면서, 가장 먼저 색상이 낯설었다. 칼라프린터에서 특정 색 잉크가 떨어져서 나온 색 느낌도 나고, 형광 느낌이 나는 빨강은 새 책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책을 펼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말하자면 썩 선호되는 색상 느낌이 아닌데, 그림작가는 왜 이런 색상을 사용하셨을까? 뭔가 뜻과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근하고 귀엽고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는 그림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과는 다른, 표정도 색상도 부족한 그림이 자세히 살펴보니 이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살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살기 힘들다. 남의 슬픔과 고통이 남일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말이다. 차라리 공감을 차단하고 나면 마음은 좀 편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 <돌아가지 않고>에서 돌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즉, 직면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힘드니까.ㅠㅠ
이 책의 ‘나’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아이인 것 같다. 학급에도 간혹 이런 아이들이 있다. 옛날보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남의 상황에도 놀라고 걱정하고 마음 아파한다. ‘나’는 학교가는 길에 매일 거리의 여인을 만난다. 작은 아기를 안고 매일 길에 앉아있다. 이 장면을 직면하기 너무 힘들어 ‘나’는 딴 데를 쳐다본다. ‘난 여기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아기를 따뜻한 곳에 눕히고, 아기 엄마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싶다.
엄마에게 말해보니 엄마는 불공정, 인류애 등을 언급하셨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저 눈물이 나올 뿐이다. 동전이나 과일 등 엄마가 사소한 것들을 건넬 때 아이는 어찌할 줄 몰라 엄마 뒤에 숨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아주 작게 느껴진다.
하지만 다음 장에서 작가는 엄마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다 책임질 수는 없어.
하지만 한 번의 미소, 한 번의 눈길,
아주 작은 행동이어도 괜찮아.
그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아.”
그날 밤 ‘나’는 가장 아끼는 인형과 작별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인형을 길 위의 여인의 아기에게 가져다주었다. 아기가 방그레 웃었다. ‘나’는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아주 작은 행동을 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섭고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더 이상 남을 돌아보는 사회가 아니다. 남은 고사하고 가족도 돌아보기 싫어하는 세상이 되었다. 돌봄은 갈수록 더 필요한데 그것을 돈으로 하려는 세상이 되었다. 돈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내게 필요한 손길을 돈으로 살 수라도 있으니. 하지만 그것도 없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은 공감능력에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오지랖은 짜증스러운 것이 되었다.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한다. 바보같이 굴지 말고 내 것 잘 챙기라고 한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과연 개인들이 행복한가? 그게 아닌 것 같아 고민이다.
세상의 모순들은 너무 크고 육중해서 어떻게 해도 꿈쩍할 틈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작은 일이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우리가 다 책임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돌아가지’ 말고 직면하라고 말한다. 직면이 힘들어서, 혹은 신경쓰기 귀찮아서 점점 숙여지는 고개, 피하는 시선.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도 하기 쉽지 않다. 내가 이 책의 엄마만큼이라도 된다면 그래도 자신있게 할 말이 있겠지만.... 그냥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읽어봐야 할 그림책인 것 같다. 밑빠진 독에 작은 바가지라도 물을 떠넣는 행동은 필요하고, 동시에 빠진 밑바닥을 때우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겠지. 그런 아이들로 자라나는 게 우리의 희망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