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작은 불꽃 두근두근 어린이 성장 동화 9
프랑수아 다비드 지음, 앙리 갈레론 그림, 성미경 옮김 / 분홍고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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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기분이 어두워지는 이런 책은 명백히 내 취향은 아니다. 또한 이런 취향은 불안과 공포에 취약하고 안정감을 최대 가치로 추구하는 나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면 나는 이런 작품을 일부러 피해야 할까? 그러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일종의 '직면'이라 하겠다.

이 책은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모음이다. 그런데 그 잠자리는 수용소의 침대...ㅠ 문느라는 여자가 같은 침대에 누운 릴라라는 아이에게 속삭이며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아이는 이야기를 듣고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듣는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기억한다. 이야기들은 대부분 불행하고 어둡다. 하지만 어두움이란 상대적이지. 밝은 자리에 있는 나에겐 어두워 보이는 것이 어둠에 있는 이들에겐 밝게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수용소라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공간에서의 삶을 하루하루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이야기들엔 대부분 폭정을 하는 자들이 나오고 그들의 끔찍한 최후가 나온다. 표지의 표범에게 뜯어먹힌 왕도 그중의 하나다. 목이 잘려 죽기도 하고, 강산성이 된 물에 빠져 녹아 죽기도 하고 불타 죽기도 한다.

요즘의 나는 악행이 끔찍하게 묘사된 것도 그들이 처참한 최후를 맞는 것도 읽기 싫다. 그게 권선징악이라도 싫다. 나쁜 놈들도 적당히만 나빴으면 좋겠고 그 최후도 너무 처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내 성격이고^^;;;; 그러나 세상은 어떠한가. 세상엔 끔찍하게 나쁜 인간들이 존재하고, 또 나를 포함한 우매한 대중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악행에 동참하고, 그리하여 이 책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다. 더 슬픈 건 처참한 최후가 악행자에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둡고 무서운 것은 이 책이 아니고 이 세상이다. 이 책엔 오히려 정의가 있고 빛이 있다. 제목이 <어둠 속에 작은 불꽃>인 것처럼. 그리고 연대로 폭정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헝겊 조각]이라는 이야기에서는 애착장난감이던 빨간 헝겊을 빼앗겨 낙심에 빠진 소년을 위해 온 마을이 파업을 하고 그 결과 소년의 그 작은 물건을 다시 되찾는다.
[책과 채찍]이라는 이야기에선 왕의 명으로 아이들을 학대하며 가르치는 선생이 나온다. 채찍을 들고 읽고 쓰기 외우기 외엔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 그 무수히 많던 글자들은 다 사라지고 선생은 채찍을 들고 혼자 남았다.
표제작이자 마지막 이야기인 [어둠 속에 작은 불꽃]에서는 빛을 금지하는 왕이 나온다. 백성들은 익힌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추위에 떨어야 했다. 급기야 왕은 무성한 숲의 나무를 캐내어 도시에 옮겨 심으라고 명령했다. 그 소식을 들은 새들은 행동했다. '어둠 속에 작은 불꽃'은 바로 새들의 눈빛이었다. 그 힘은 강력했고 독재자를 응징했다.

"세상이 또다시 어두워지면 그 새가 빛을 가져다줄 거야."
얼마나 희망적인 메시지인가.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왜 어둡게 읽었을까. 기운이 빠진 나는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 자체가 힘든 것 같다. 그냥 아예 처음부터 너무 어둡지 않았으면 하는....^^;;;

오늘도 세상의 어떤 곳에서는 신음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가하면 서로 버티어주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주변에 많다. 그 따뜻함이 저 큰 신음을 감싸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 슬픈 현실이다. 그러니 인간은 외면해선 안되겠지.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그걸 어떻게 경고해야 하는지. 이 책은 어쩌면 그 역할을 하려고 애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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