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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된 도서관 ㅣ 큰곰자리 22
플로랑스 티나르 지음, 김희정 옮김, 이노루 그림 / 책읽는곰 / 2016년 1월
평점 :
어릴 때, 읽을 책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 내가 소중히 여기던 두 권, <15소년 표류기>와 <로빈슨 크루소>가 있었다. 그시절 표류와 무인도 이야기는 처절한 생존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이며 비슷한 상황을 꿈꾸게 했다. 일단 너무나 재미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이 책은 꿈꾸게 하지 않았다.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 읽은 책 중에도 마이클 모퍼고의 <켄즈케 왕국>이 있었는데 그 책은 정말 어린시절 독서의 추억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져들어 읽었다. 이 책은 그다지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었다. 문체도 건조하고, 긴장감도 흐뭇함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건의 발단에 대한 설득력은 갖추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일 것 같은데, 마지막까지 읽어도 그에 대한 내용은 없다. 정육면체의 콘크리트 건물인 도서관이 어떻게 해서 통째로 뽑혀 바다를 표류하게 되었는지, 그러한 구조가 어떻게 배의 역할을 하면서 1년이 넘게 뒤집히지 않고 바다위를 떠돌수 있었는지, 그에 대한 설득도 준비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발상은 신선하나 발상에 대한 근거는 필요한 법인데.
하지만 이 책에 대하여 혹평만을 하고 싶진 않은 것은, 생존의 문제에 닥친 이들의 생활 모습을 세심하게 잘 그려냈다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이런 상황에 던져졌다면 나는 과연 필요한 사람일까?'
이런 면에서 이 책은 15소년 표류기에 가장 가깝다. 조금 다른 점은 처음부터 지도해 줄 만한 어른이 탑승하고 있었다는 점. 관장님과 사서, 선생님, 여직원 이렇게 4명의 어른과 6학년 F반 13명의 어린이들이 함께 표류를 하게 되었다. 얼마나 지속될 지 모를 생존의 상황에서 관장님이 아이들에게 지시한 일상의 규칙과 역할분담은 참 훌륭하다. 사서인 사라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려깊은 마음과 태도는 참 아름답다. 다 큰 아들을 걱정하는 아줌마인 여직원 페레스 부인도 요리, 세탁 등 아이들의 일상에 필요한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해낸다.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기술 선생님인 이봉 선생님이 해냈다. 그는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로 자가발전기나 낚시, 물 모으는 장치 같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도구들을 만들어 냈다. 그의 지도에 따라 아이들은 나침반이나 속도 측정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까의 질문을 다시 해 본다. 생존의 위기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난 일단 수영을 못하고, 이봉 선생님이 가능한 모든 기술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침착하게 무리를 통솔할 판단력도 부족하다.
그래도 이 책에선 배경을 도서관으로 해서 위기의 순간에 책이 주는 위로와 도움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들에게 닥친 가장 위험한 고비는 물부족으로 인한 갈증이었는데, 이 상황에서 실수로 물을 낭비한 케빈에게 용서와 아량을 베풀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보다 훌륭한 인성을 가졌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상황을 겪어보기 전에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폭풍이 몰아쳐 물에 빠질 위기에서 케빈은 친구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끌어올려 주었다. 그리고 둘은 끌어안았다. 대단히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느낌이 좀 부족하다... 는 것은 그저 나의 느낌일 수도 있다.
15소년 표류기와 이 책을 나란히 펼쳐 놓고 비교하면 이 책의 장점이 더 많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내가 나이 들어 읽어서 모험에 대한 짜릿함 보다도 그 난감함과 피곤함에 심히 몰입되었는지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 책을 읽고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키워 주고 싶은 능력이 두 가지로 정리된다.
1. 생존할 수 있는 능력 : 이 책의 초반부에서 사이드는 거의 부적응아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나 위기 상황에 대단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2. 협력할 수 있는 인성 : 심리적으로는 절망, 육체적으로는 고통인 상황에서 남의 생각까지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했을 때 그들의 생존이 연장될 수 있었고, 결국은 구조되었다.
이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것들 중 절반은 버려도 되는 내용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하나도 가르치고 있지 않다. 또 그런 능력이 하나도 없는 내가 교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 시대의 문제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