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믹스 : 지구를 지키는 소년 - 제4회 스토리킹 수상작 아토믹스 1
서진 지음, 유준재 그림 / 비룡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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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연수에서 김남중 작가님의 '동화의 소재와 주제'라는 강의를 들었다. 그 때 나는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작가님들은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치유하고 변화시키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대의 문제나 아픔을 동화의 소재로 삼으시는 경우가 많죠. 그렇다면 이제 원전문제를 다룬 작품도 많이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작가님께서는 그럴 계획은 없으신지요?"
질문을 못했으니 이에 대한 답은 당연히 듣지 못했지만, 왠지 언젠가는 쓰실거란 기대를 혼자서 해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놀랍고 강력한 작품과 마주했다! 내가 고대하던.

작가의 이력이 흥미롭다. 전자공학과 박사과정을 하다 문화잡지의 편집장이 되었다가 소설가로 데뷔?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다 동화로는 처음 쓴 작품 같은데 제4회 스토리킹 수상작으로 뽑혔다. 이건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뽑는 것이라 일단 가독성과 흥미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소재와 주제는 어떠할까?

여기에서 내 눈이 휘둥그래진 거다. 바로 원전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이 책은 많이 팔릴 것 같으니 파급력도 크겠다. 그럼 중요한 메시지를 설득력있고도 인상적으로 잘 전하고 있을까?

주인공 소개를 읽어보았다.
오태평 : 원전사고로 피폭되어 슈퍼파워를 얻었다. 이 능력으로 아토믹스가 되어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는 괴수를 무찌른다.
엥? 이게 뭔 황당무계한 소리야? 철없는 아이들이 읽고 "나도 피폭돼서 아토믹스 되고 싶어!" 이러면 어쩌려고?

그런 아이가 있을 확률도 0.1%는 되겠으나(앞에 몇장만 읽고 집어던진 아이ㅎㅎ)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 책은 문제를 단순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의문이 제기되며 궁금증이 생기고, 그것이 책에 더 몰입하게 만들고, 그러다보면 의문이 해결되기도 하고 더 깊은 의문에 봉착하기도 한다. 아무리 메시지가 좋아도 끝까지 이끌어가는 힘이 약해 중간에 책을 놓게 만들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이 책은 주인공에게 지구영웅의 역할을 주어 괴물을 무찌르는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장면으로 어린이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반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괴물과의 싸움이 끝나며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 아토믹스인 태평이나, 그가 무찌른 바다괴물이나 모두 원전의 희생물이었을 뿐이라는 것. 이것을 감추고 원전을 계속 진행하려는 세력의 많은 속임수와 음모가 그것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

이제 태평이는 하나하나 생각하고 알아보며 진정으로 지구를 지키는 소년이 되려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가 되지만 앞선 스토리킹 수상작들의 속편이 계속 나왔던 것처럼 이 작품도 그렇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다. 작가가 무게와 재미 모두를 잃지 말고 뚝심있게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를 응원하며 기대한다. 이 작품이 널리 읽혀 원전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라 널리 공유되고, 상식적인 토론과 대안이 많이 나오게 되었으면 좋겠다. 문학이 때로는 그런 힘도 가지기를 각별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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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꼬마 거인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6
로알드 달 지음, 퀜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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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안 읽은게 있었다. 요즘 상영되고 있는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원작인 <내 친구 꼬마 거인>이다.

로알드 달의 작품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좋아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그 엽기성(?)과 유머, 상상력 때문일 것 같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건 그 엽기성에도 불구하고 결말이 갖고 있는 교훈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옛이야기가 그렇듯이 말이다. 로알드 달의 작품의 캐릭터는 단순하고 과장되어 있으며 이중적이지 않다. 결국 약하고 선한 존재가 강하고 악한 존재를 물리치는 옛이야기의 전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론을 공부한 바는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로알드 달의 인기는 그의 작품이 가진 심리적 치유효과와 관련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작품도 그렇다. 고아원에 살던 소녀 소피는 우연히 거인의 밤 활동을 지켜보다 거인에게 들켜 그가 사는 굴로 납치당한다. 그 마을은 거인들이 사는 곳이었는데 나머지 거인들은 모두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들이었고 몸집도 두배 이상 더 컸다. 이 거인 선꼬거(선량한 꼬마 거인)는 거인 중에 가장 작고(그래봤자 7m가 넘지만) 사람을 먹지 않기 위해 맛이 끔찍한 킁킁오이만을 먹으며 살고 있었다.

거인의 굴에는 수많은 유리병들이 가득했는데 이것은 그가 밤에 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바로 자는 사람들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다. 선꼬거는 꿈을 잡아서 유리병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한 사람들의 잠자리에 찾아가 그 꿈을 넣어준다.
꿈에 대한 거인의 생각이 무척이나 시적이다.
"이 세상에 있는 꿈들은 저마다 다르게 음악 소리를 내고 있는다."
"음악이 뭔가를 전해 주는다. 메시지를 보내는 건다. 음악이 나한테 말을 거는다. 음악은 언어와 같는다."

(거인은 학교를 다니지 못해 문법이 아주 서툴다^^)

나머지 거인들은 세계를 휩쓸며 사람들을 잡아먹고 다닌다. 그것을 막기 위한 거인과 소피의 활약. 그건은 로알드 달의 상상력이 아니면 펼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 작품에서 로알드 달의 유머는 언어유희로 많이 나타났다. 원작으로 읽어볼 수 있는 영어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이럴 때 젤 아쉽다. 모름지기 인간은 배울 수 있을 때 본인의 최선을 다해 배워 두어야 하는 것을.^^;;

내일 영화를 보려고 예매했다. 상영관이 별로 없는데다 횟수도 적어 맞추기 어려웠다. 살짝 지루하다는 영화평도 보인다. 어떻게 만들었길래 이런 이야기가 지루해? 내일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가을 독서축제 때 원작이 있는 영화상영이 있는데 내일 보고 결정해야겠다. 그때 되면 DVD로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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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연구부장인 언니가 요즘 연수를 받고 와서 머리 복잡해 한다. 그 중의 한 내용이 4차 산업 시대의 도래에 대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의 직업 중 상당수가 없어질 것이며 현시대에 중시하는 역량들이 그시대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될 것이라 한다. 기계와 로봇이 그 기능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이라는 게 학생들이 장래 살아갈 역량을 키우는 측면이 강하므로 이런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문제는 정확한 전망이다. 미래를 정확히 전망해야 필요한 교육의 내용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어떤 이는 과학기술 발전의 장밋빛 꿈을 가지고 공상과학소설을 쓰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과도한 개발로 이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인류가 가야할 어둡고 괴로운 길에 대해 얘기한다. 통역기가 발전해 외국어능력 같은 것도 필요없고 각종기능은 로봇이 대신하니 창의력, 상상력, 협업능력 등을 키우는 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도 보았다.















이런 시대에 나온 이 동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때는 2055년. 승모네 가족에게 특별한 일이 닥친다. 99년에 냉동인간상태에 들어간 증조할아버지가 깨어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깨어나 새로운 세상과 맞닥뜨리며 겪는 에피소드들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내용은 '과학상상화대회' 그림 내용의 총집합이라 하면 되겠다.
- 아빠의 직장은 달기지. 형은 우주항해사 훈련중
- 식사는 우주식(튜브식) 아니면 분자요리(식재료 없이 맛과 영양만 살린 요리)
- 가족도 각자의 생활, 필요한 경우에는 홀로그램으로 집합, 함께 식사를 하거나 스킨십을 하거나 하진 않음
- 자동변기가 알아서 장운동을 시키고 변을 뽑아 처리함. 똥 눈다는 개념이 없음(이것을 할아버지가 제일 못견뎌함)
- 잠은 수면기에 들어가 시간조절하면 딱 시간에 맞추어 숙면하게 해 줌
- 옷은 첨단 센서를 갖춘 위생복으로 자동 소독과 감염예방이 됨
- 하늘을 나는 무인자동차
- 출석을 하는 학교는 없음(이 대목 애들이 좋아하겠다)
- 노동에 해당되는 모든 일들을 곳곳에서 로봇이 하고 있음
- 모든 것은 첨단화 되어 있어 언제나 최적의 상태를 자동적으로 유지하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음

승모는 이러한 세상에 할아버지를 안내하고 적응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할아버지는 모든게 인공적이고 사람의 정이 의미없는 이 세상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데.... 여러 곳을 안내받던 할아버지의 눈에 띈 곳이 있다. 승모네가 사는 과학도시 바깥에는 과학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자연지대가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고집으로 승모와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디지털 세상을 맹신하고 자연지대를 경멸하던 승모의 생각에도 약간의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국 할아버지는 과학도시의 시민칩을 사양하고 자연지대로 가는 선택을 하며, 가족들도 모두 그 선택을 존중한다. 이렇게 작가는 미래 디지털세상의 장밋빛 꿈에 일침을 가하며 경고를 보낸다.













생각해보니 이러한 주제의식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 <랑랑별 때때롱>이다. 이 작품은 랑랑별에 사는 때때롱 가족과 지구의 새달이 가족이 교신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나중에는 새달이 일행이 랑랑별로 가게 되는데 그 별의 모습은.... 자연이 맑고 아름답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지구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때때롱 할머니의 수수께끼 같은 말, '500년 동안....'
일행은 할머니가 주신 도깨비옷을 입고 5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는데, 놀랍게도 랑랑별의 그 과거는 위의 책 <디지털보이>가 보여주는 지구의 미래였던 것이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과학기술만이 발전된.... 500년이 걸려 랑랑별이 간신히 회복시킨 세상은 바로 우리가 어린시절 살던 그 세상이었다. 이 결말을 읽었을 때 결이 고운 권정생 님의 문장 속에 숨겨진 힘을 느끼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4차 산업과 교육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휴지조각이 될 뿐이니, SW교육에 매진해야 하는가? 자동통역기와 번역기가 완벽한 작업을 해줄텐데 영어단어 따위를 뭐하러 외우냐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인간성 상실에 대비해서 인성교육과 더불어사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이 맥락에서 가능한 얘긴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갖는 나는 이런 논의 자체가 불편한 게 사실이다. 내가 랑랑별이 500년 걸려 회복한 세상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내가 디지털 세상에서 뒤떨어질 게 뻔해서인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미래의 디지털보이들을 가르친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럼 나는 이제 손을 놓는게 맞는 건가?

진정 그러하다면 놓아야겠지. 그러나 놓을 때 놓더라고 묻고 싶고 듣고 싶다. "이미 브레이크 밟기엔 늦었으니 우리는 조만간 저기에 처박히게 될 겁니다" 라는 미래전망 말고,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거기에서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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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아이 어린이 나무생각 문학숲 2
안미란 지음, 김현주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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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투명한 아이라니?

건이네 낡고 작은 건물에는 건이아빠가 운영하는 신문보급소와 살림집이 있고 월세를 주는 작은 공간이 둘 있다. 구석방에는 외국인근로자 아주머니가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신문보급소 옆에는 동자귀신을 모신다는 할머니가 손녀딸 보람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어린 딸 이름은 눈이다. 한국에 와서 난생처음 눈을 보고 딸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 아이가 바로 '투명한 아이'다. 신정 연휴를 하루 앞둔 어느 늦은 시간 어린이집 원장님이 엄마한테 연락이 안된다며 급히 건이네한테 부탁하고 떠난 아이. 엄마는 밤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백방으로 엄마의 행방을 찾던 가족들은 알게 된다. 눈이는 실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떠나버린 아빠. 불법체류자인 엄마 밑에서 출생신고도 되어있지 않은 무국적 아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이는 '투명한 아이'다.

작가는 이 아이를 통해 소외된 계층도 함께 누려야 하는 인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와 너, 편가르기보다 지구촌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 함께 사는 이웃, 인간으로서의 존엄권과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가진 이웃으로서 투명한 아이 눈을 보듬어 안아 주시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국적없는 아이 눈의 가족이 되어주기 바랍니다."(159쪽. 작가의 말)

이렇게 제목에 부각된 대상은 다문화가정이지만 작가가 마음에 품고 다루는 대상은 하나 더 있다. 장애인이다.
건이네 4식구 중 한 명은 고모인데,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이고 다리를 쓰지 못해 휠체어로 이동해야 한다. 고모는 오빠인 건이아빠의 신문보급소에서 광고지를 끼우는 일 등을 도우며 함께 살고 있다.
(여기에서 전혀 필요없는 감정이입. 이런 시누이랑 사는 건이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예민할 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하고, 말도 조심해야 하고, 밥도 차려줘야 하고...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가질래도 눈치봐야 하고... 참 무던하다 무던해... 나같으면 스트레스 받아서 못 살텐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 나는 이게 문제다.)
세상에 나갈 일이 적은 고모가 그나마 조금의 발걸음으로 나가서 겪은 일들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다.

외로운 이들은 자기들끼리 보듬는 법, 고모는 눈이를 입양해서 자기가 키우겠다고 해서 가족들을 놀라게 한다. 다행히 눈이 엄마를 다시 찾게 되어 이 얘기는 없던 걸로 되었지만.... 눈이가 엄마랑 떠날 때, 이 따뜻한 가족들은 한가지씩 선물을 한다. 고모는 깨끗하게 머리를 빗기고 예쁜 옷을 입힌다. 엄마는 보건소에 데려가 필요한 예방접종을 한 아기수첩을, 아빠는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마지막으로 건이와 보람이는 '우주 시민증'을 만들어준다. 작가의 메시지가 잘 드러난 결말이다. 시민증의 문구. "당신은 우주 시민으로서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푸키로 별 뿐 아니라 지구 넘어 어떤 세상도 상관없어요."^^

고모도 시민증 발급을 부탁하는 장면이 재밌지만 애틋하다. 고모는 용기를 내서 더 배우고 더 다녀보려고 한다. 아까 했던 저런 생각에 미안해진 나는 고모를 힘껏 응원한다. 자기것을 조금씩이라도 양보해야 모두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 난 뭘 양보할 수 있지....? 라는 질문이 체에 거른 듯이 마지막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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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동화 두 권이 우연히 비슷한 소재를 담고 있었다. 아동학대와 방임, 그리고 아이들이 보육원에 가는 상황까지....














<해피버스데이 투 미 / 신운선 / 문학과지성사>

이 책의 화자는 아이다. 남매 중에 누나다. 아빠는 집을 나갔고 엄마는 남매를 돌보지 않는다. 며칠씩 안들어오기도 하고 들어와도 잠만 잔다. 늘 술에 절어 있다. 보다못한 동네 주민들의 신고로 복지사들이 방문을 했고, 아이들을 일시보호소로 보냈다. 기간 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코스는 보육원이다. 













<우주비행사 동주 / 김소연 / 별숲>

이 책의 화자는 복지센터에 근무하는 미술치료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동주라는 아이의 치료와 상담을 맡게 되는데 엄마는 이혼과 함께 떠났고, 아빠는 몇년 키우다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겼으며, 몇 번 생활비를 보내다 그마저도 끊고 잠적했다. 이 할머니도 위 책의 엄마처럼 알콜중독이다. 더 심한 것은 술을 마시면 울분이 폭발해 아이를 개 패듯 팬다. 이 상황을 알게된 상담사 선생님들은 아이의 보육원 행을 추진한다.


두 작품 모두에서 아이들의 공통된 반응은 보육원 행에 극렬히 저항한다는 것이다. 비록 돌보지는 못해도 엄마 아빠가 있는데, 할머니도 있는데....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을 한편으로는 알면서도 강력히 부인하고 싶어한다. 이 아이들에게 보육원이란 세상의 끝에 이르러서야 가는 곳이다. 즉, 세상 모두가 나를 버렸을 때 말이다. 아이들은 그 누구라도 한명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고 믿으려 한다. 동주는 자신을 패는 할머니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그냥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나는 그 때 세상에 아니, 우주에 나 혼자 남은 줄 알았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할머니가 날 때리는 거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날 버리는 건 참을 수 없어요."


위 책의 누나 유진이는 몇 년 전에 갔던 할머니댁을 떠올린다. 할머니가 있는데 왜 보육원에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유진이는 하루의 탈출을 감행해 시골에 있는 할머니집까지 간다. 하지만 그 집에는 다른 가족이 살고 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던 것이다.....ㅠㅠ


이리하여 두 동화 모두 주인공들이 보육원에 가게 되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누군가가(예를 들면 상담사 선생님이라든지, 할머니 집에 새로 이사온 가족이라든지) 그들의 상황을 딱하게 여겨 대신 부모가 되어준다든지, 그런 건 없다. 그들은 주어진 현실에 직면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진장 딱하고 안타깝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무식한 말이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뭔가 붙잡을 것, 희망을 가질 것이 있을 것이다. 다시 찾아올 엄마 혹은 아빠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서 보이는 가능성일 수도 있고 함께 삶을 나누는 이들의 작은 사랑일 수도 있다.


두번째 책의 상담 선생님은 동주와의 관계에서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이 적절함이 그를 프로로 보이게 했다. 이 모습에 비추어 나를 볼 때, 나는 교사 초년생일 때 너무 감정 과잉이었다. 도와주고 싶어 눈물 가득한 눈으로 동동거렸으나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감정부족이다. 선을 정확히 긋고 사적 영역 안에는 절대 들여놓지 않는다. 그게 피차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둘 중에 하나 선택을 하라면 난 초보일 때의 감정과잉보다는 지금을 선택하겠으나, 그게 꼭 좋지만도 않다. 감정이 빠진 껍데기에는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둘의 조화가 잘 되어야 진정한 선생이다.


동화의 소재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내가 하루에 잡은 동화 두 편이 너무 흡사한 이야기였다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들어 접한 가슴아픈 이야기만도 한 둘이 아니었다. 현실은 동화보다 더 참혹한 경우가 많다. 그 아이들이 보육원이든 어디든 극한 상황만은 벗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어떻게든 꿈을 꿀 수는 있었을 것을.... 이 두 권의 책은 살아가는 이유나 힘을 어떻게든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응원한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이것이 충분히 가능할 테고, 그것이 우리가 건강한 사회를 바라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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