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데포 - 특별한 아이와 진실한 친구 이야기, 2015 뉴베리 명예상 수상작 미래그래픽노블 1
시시 벨 글.그림, 고정아 옮김 / 밝은미래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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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책이 뉴베리 아너상을 받은 것도 꽤나 화제가 되었을 것 같다. 이 책은 그래픽 노블, 즉 만화책이니까 말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픽 노블 최초로 뉴베리 아너상을 '엘 데포'에게 수여한 이번 결정은 향후 수십 년간의 출판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일이 될 것이다."

이렇게 형식을 뛰어넘어 파격적인 상을 받게 된 데에는 작품이 독자들에게 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며 엘 데포는 주인공 스스로 지은 별명이다. 데포는 귀머거리라는 뜻이다. 거기에 엘이라는 특별한 관사를 붙였다. 이 제목에서 작가가 스스로를 세상에 위치시키는 건강한 모습을 본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고 당당한.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이 책에는 작가가 청력을 잃게 된 후의 어린시절(주로 학교생활) 이야기가 나온다. 특별하지만 또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한 소녀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초점은 장애의 고통이 얼마나 크며 얼마나 노력하여 그 역경을 극복했는지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 주인공의 경험, 그리고 그때 느낀 솔직한 감정에 맞추어져 있다. 장애라는 경험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지만 감정은 특별하지 않다. 이건뭐지...?라는 혼란스러움을 비롯해서 왜 나한테 이러지? 서운해, 불쾌해, 그만두고 싶어, 좋아해, 안타까워, 신 나, 자랑스러워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잔잔하면서도 공감가도록 드러냈다. 작가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모든 농인의 경험을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실제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보다 내가 청력을 잃고서 느낀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작가의 말 중)

작가는 그 표현을 아주 잘해냈다. 이 책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고도난청이며 보청기와 입모양에 의지하여 듣는 작가의 불편함과 느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나는 청력의 문제가 단지 볼륨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점도 알게 되었다.
또, 장애인 주변의 사람들의 행동이 당사자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게 된 점이 가장 가슴 서늘했다. 도와준답시고 가까이 있는 것이 다 고맙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마워하라고 강요하지 마라. 본인은 도와준다 생각할지 몰라도 그 마음이 진정인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시시에게도 몇명의 친구들이 거쳐갔지만 오히려 시시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그걸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 시시는 용감하고 독립적인 아이다. 마지막 마사하고도 멀어지려는 위기에서 안타까웠지만 결국 진정한 친구는 다시 손을 잡는다. 안심!^^

(그런가하면 약간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런 지적은 참 쓸데없는 것 같지만 난 이왕 글을 쓴 바에는 생각한 걸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말해보겠다. 상대방의 아주 사소한 사생활이나 감정까지도 배려해야 하는 것이 인권이라고 배웠다. 근데 주인공은(작가는) 왜 마이크를 달고 생활해야 하는 선생님의 인권은 배려하지 않았을까? 학생 한명 때문에 겪어야하는 수고와 불편을 얘기하려는게 아니다. 시시는 보청기와 연결된 선생님의 마이크를 통해 선생님의 미세한 소리까지도 다 듣게 되는데, 예를 들면 화장실에서 졸졸졸 소변보는 소리, 아 시원해... 라는 혼잣말 소리 등이다. 그런 걸 듣고 히히거릴 게 아니라 사적 시간이나 공간에서는 마이크를 끄시도록 했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혹 들었다고 해도 그걸 다른 학생들에게 말하면 안되었던 것이고... 만약 그때 철이 없어 그랬더라도 어른이 되어 작품을 쓸 때는 그때 참 철이 없었다거나 미안했다거나 하는 느낌을 넣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인권감수성은 모두를 대상으로 높여 가야 하는 것이므로 어른이나 교사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도 이책을 읽고 그런 생각은 안하시는 거 같아서 한심하게 여겨질 거 같지만ㅎㅎ 그래도 써봤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해.ㅠㅠ)

지난 촛불집회에서 열정적인 두 수화통역사를 보고 많은 이들이 감동받았다. 왜 그랬을까. 농인들이 느끼기 힘든 부분까지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그들의 필사적인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열정적인 도움 없이는 그들의 감각으로 잡아낼 수 없는 느낌.... 그 답답함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하지만 작가는 어린시절을 이와같이 잘 겪어냈고 지금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작가의 말에 나온 것처럼 때로는 축복으로도 여기며, 남과 다름을 슈퍼파워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의 행복감이 느껴지며 나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장애인들도 장애를 '다름' 정도로 인식하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인 긍정성 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작가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의 행복한 삶을 응원하며, 우린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걸음씩 부지런히 내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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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사전 - 요즘것들의 말로 들여다본 요즘 세상 우리학교 생활밀착교양 시리즈
권재원 지음 / 우리학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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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요즘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기성세대에게 그닥 사랑을 받을 만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일상에 성실하진 않았고 숙제는 늘 초치기였고 공손하지도 않았고 욕도 웬만큼 했다. 만화가게를 다녔고 수업시간에 잡념에 빠지거나 졸기 일쑤였고 공책정리는 좋아하는 과목만 잘하고 나머지는 개발새발이었다.

지금의 내가 이런 요즘것들을 만나면 호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까놓고 말해보자. 나는 요즘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교직에서 버티는 한가지 동력은 책임감이다. 나는 이 한가지로 온갖 것을 다 해낸다. 이 기특한 하나의 동아줄은 그동안 닳고 닳았음에도 끊어지지 않고 나를 지탱해 왔다. 요즘것들을 싫어하는 교사인 나를.

그 동아줄은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너도 요즘것들을 좀 이해해봐야 되지 않겠어? 라며. 이 책에는 요즘것들이 잘 쓰는 말들에 대한 풀이, 유래, 거기에 담긴 심리, 사회적 현상까지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다. 요즘것들 말들엔 요즘것들의 애환이 들어있기도 했다. 그러니 국어교과서에서 국어순화를 다룰 때 '바로잡아야 할 말 1순위'인<줄임말> 을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아이들은 그 말을 계속 쓸 것인데 교과서 따로 현실 따로 눈가리고 아웅 할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시도처럼 그 의미를 짚어보고 왜 이런 말을 쓰게 됐을까 성찰해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 사전에 등장하는 낱말로는 현타, 열폭, 덕후, 어그로, 관종, 꼰대, 답정너 등이 있다. 저자의 글을 많이 읽어본 편인데 구구절절 길지 않으면서 핵심을 잘 짚어내고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이며, 쌀쌀맞은 말투에 따뜻한 의미를 깔아놓기도 하는 그의 글을 높이 평가한다. 예를 들어 제1장 '현타'에서 충동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자신을 망가뜨리는 요즘 것들에게 저자는 아주 철학적이면서도 상식에 맞고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하고 살아"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실제로는 요즘것들이 폭주할 때 브레이크를 걸어줄 어른도 그들 인생에 필요한 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중용을 갖춘 이런 조언이 나는 몹시 맘에 든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책장을 뚫을 듯이 읽은 부분은 제6장 '관종' 이었다. 이 말은 작년과 올해 우리반 아이들이 뽑은 '가장 듣기 싫은 말' 랭킹에 올랐다. 실제로 아이들은 이 말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며 분노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은 아마도 아픈델 찔린 반응일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개인주의로 흘러온 이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은 관심에 목말라있다. 긍정적 관심을 끌 자원이 없는 아이들은 부정적 관심이라도 끌어서 그 욕구를 채우려 한다. 이런 아이들이 바로 '관종'이다.
올해 우리반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 관종의 존재와 그들이 주는 성가심과 스트레스, 그로 인한 비호감과 고립의 문제였다. 결국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은 채 겨울방학을 맞았다. 그래서 난 여기에 무슨 해법이라도 있을까 하여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해법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이것이 일종의 마음의 병일진대 개개인마다 원인이 다를 터, 그 누구라도 특효방법을 제시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아주 상식적인 해법은 있다.
"그들이 무작정 관심을 끌려 하지 말고 공동체에서 용인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관심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 관계맺는 방법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이럴 때 그 친구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그 친구를 보듬어 안고 바람직한 상호작용을 익히게 하는 대신, 관종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이전보다 더 외로운 처지로 내모는 것은 잔인한 행동이다." (본문 92쪽)
이런 것들은 교사로서 모르지는 않으나 실행이 어려운 일에 속한다. 이 책이 교사를 대상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니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깨닫는 바가 있을 수 있겠다. 교사의 경우 괸종과 주변아이들 양쪽을 다 지도해야 하니 아이들을 설득하고 지도할 때 참고할 수도 있겠다.

제7장 '꼰대' 편은 도전도 되고 위로도 된다. 언젠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꼰대 테스트'를 해본 적 있는데 나는 꼰대성향이 지극히 적은 것으로 나왔다. 그건 아마도 내가 남의 인생에 간섭하기를 싫어해서일 것이고, 새로운 가치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면에서 나도 꼰대 기질이 다분히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노년기에 접어들기까지 다행스럽게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에 부지런히 배우고 느끼며 나를 넓혀야 한다. 그래야 꼰대가 되지 않고 늙을 수 있다. 결국 꼰대방지의 비결 : 평생학습?

뒤로 갈수록 모르는 말이 많았는데 앞의 낱말들에 비해 우리 사회의 병적 현상을 드러내는 말이 많았다. 인실, 종특과 같은 말들이다. 알고 있었던 헬조선, 수저 같은 말도 그러하다. 특히 인실이라는 말은 전혀 사용해본 적이 없는 말인데 배운 김에 한번 써먹어 볼까. "이 나라를 수십년간 휘감아온 징그러운 바오밥나무 뿌리 같은 박씨 최씨 일가와 김씨를 비롯한 간악한 부역자 무리들에게 인실을 시연해야 하며 그게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 박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것을 실현 못하고 죽쒀서 개주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 수십년을 퇴행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장의 낱말은 '각' 이었다. 앞의 낱말들에 비해서는 무게가 떨어지는 것 같은 말인데 왜 마지막에 왔을까 싶었는데 읽다가 감탄했다.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거기에 있었다. 말의 무게는, 그것도 반복되고 습관된 말의 무게는 우리 인생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의 아이들을, 우리 사회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요즘것들 말을 몇 개 알았다고 쪼금 유식(?)해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ㅎㅎ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으며 현상만 가지고 못마땅해 해서는 현상이 심화될 뿐이다. 이것은 요즘것들과의 소통의 원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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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숲에서 생긴 일 환상책방 5
최은옥 지음, 성원 그림 / 해와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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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가 무수히 변형되고 재생산되는 것을 보면 옛이야기의 원형이 가진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최은옥 님의 <보름달 숲에서 생긴 일>은 현대를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이들이 맞닥뜨리는 건 '구미호'이다. 즉 <여우누이>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최은옥 님은 '저학년을 맡게 되면 많이 읽어주고 활용해야지~'라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작가다. 그동안은 저중학년 수준의 얇은 책들을 주로 냈다. <책읽는 강아지 몽몽>은 발간된 그 해에 3학년 아이들과 돌려읽기로 읽어봤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고, 이어지는 <책으로 똥을 닦는 돼지>, <똥으로 책을 쓰는 돼지> 등 책읽기를 설득하는 책들이 전혀 설득스럽지 않고 재미나면서 유쾌해서 참 맘에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동안의 쉽고 유쾌한 느낌을 완전히 벗어 버렸다. 일단 책이 두꺼워졌고(200쪽이 안되니 아주 두껍지는 않지만), 무겁고 기괴하다. 연기자들도 연기변신을 하듯, 작가들도 고정된 분위기의 작품을 계속 쓰기보다 이렇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을 내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족은 캠핑을 간다. 얼마나 신날까? 그런데 이 가족, 같은 곳에 함께 왔으나 제각각 홀로이다. 아들(현규)은 게임기만 하고 있고, 딸(현아)은 단어장에 코박고 있고, 엄마 아빠도 서로에게 틱틱거리기만 할 뿐이다. 캠핑까지 와서 왜? 아빠의 독단으로 오게 된 캠핑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SNS 친구들에게 보란듯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식구들을 끌고 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분개하기엔 마음 한구석 찔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보여주기에 맞춰 사는 삶.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그렇게 왔으니 가족은 사소한 일에도 불만이 터지고 고운 말이 안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밤에 비까지 내려 그들의 자동차는 길을 잃고 헤매다 어떤 곳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 옛이야기 여우누이와 현대 가족의 이야기가 숨가쁘게 엮어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동안 독자들은 몇 번 놀라고, 몇 번 숨을 죽이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작품 초반에 보여주는 다소 극단적인 가족의 모습은 너무 쉬운 복선이라 할 수 있다. 음~ 이렇게 각각 따로 노는 불소통 가족이 있어. 이 가족이 어려움에 처해. 이걸 극복하며 가족애가 싹터. 결말은 해피엔딩이야.
이 뻔한 예측은 들어맞는다. 하지만 예측이 맞다고 해서 시시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전체적 흐름은 예측이 가능하지만 구미호(들)와의 사건들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긴박함의 연속이다. 그래서 예상한 결말에 이르렀을 때 시시함보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옛이야기 원전에 나오는 하얀병, 파란병, 빨간병 화소를 적절히 변형한 작가의 창의성이 놀랍다.

하지만 "너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사람들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훨씬 크고 강해. 가끔은 서로에게 서툴고, 가끔은 틀릴 때도 있지만 가슴 깊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다고!"
라든가
"알아. 예전에 우리 가족이 어땠는지. 그래서 지금부터 잘해 보려고. 엄마, 아빠, 누나가 지금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어. 내가 먼저, 내가 먼저 달라질 거라고!"
와 같은 현규의 대사들은 너무 도식적이고 신파조여서 감동을 좀 반감시키는 느낌이었다. 영화로 치면 오글거리는 대사?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강하다 보니 너무 날것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너무 까다로운 독자인가?^^;;;

이런 점이 별 한개를 깎아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난 여전히 이 작가의 작품에 별 다섯개를 붙인다. 재미있는 이야기꾼인 작가가 옛이야기를 들고 와 기괴하지만 매혹적인 미스터리 동화를 만들어낸 것에 큰 반가움을 표한다. 그리고 각각홀로인 현대의 가족들이 함께 해결할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이 가족의 갈등을 해결할 기회가 된다는 생각에도 동의한다. 물론 더 깊은 갈등의 길로 가는 가족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가족도 요즘 전원이 모여 밥먹을 시간이 거의 없고 나 또한 혼밥을 가장 선호하는데, 이 가족보다 아이들이 컸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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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혀 혀집뒤! - 제5회 비룡소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비룡소 문학상
이리을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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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에 바탕을 둔 작고 따뜻한 판타지, 일상과 연결되는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러운 판타지. 내가 읽어본 중에 이런 판타지는 오카다 준의 작품들이다.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밤의 초등학교에서 등이 그런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느낌을 어디서 받았더라... 골똘히 생각했는데 다 읽을 때쯤 생각났다. 오카다 준이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니 어떻게 그렇게 연결돼?’ 라는 타박을 들어도 할 말은 없다.^^

 

이 책에는 세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각각의 작품이지만 둘째와 셋째 작품은 연결되기도 한다. 세 작품 다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출발하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첫 번째 이야기 뒤집혀 혀집뒤!에서는 딱지치기 이야기가 나온다. 전통딱지는 아니고 문구점에서 파는 고무딱지다. 가끔 이런 게 유행할 때가 있다. 따고 따먹히는 건 일종의 도박성이 있어서 이런 현상은 교사로는 좀 골치 아프다. 종이딱지야 이면지나 우유갑으로 만들면 되지만 고무딱지 같은 건 돈주고 사야되니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의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의 딱지를 보는대로 압수하고 부모님이랑 같이 와서 찾아가!”라고 하시는 걸 너무 비난해선 안된다.ㅎㅎ 하여간에 태풍이는 대마왕딱지에게서 얻은 신비한 능력으로 그렇게도 그리던 딱지왕에 등극하게 되는데, 그 보람도 없이 교장선생님께 딱지를 모두 압수당하고 말았다. 그 신비한 능력이란... “,,,혀집뒤!”라고 주문을 외우면 목표물이 홀랑 뒤집히는 능력이었는데, 딱지를 뺏겨 버렸으니 그 능력을 어디에다 쓴단 말인가?

화가 난 태풍이는 거리에서 만난 못된 사람들을 골려준다. 금연구역에서 보란 듯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의 콜라캔을 뒤집고, 뻔뻔하게 주차된 자동차를 뒤집어 놓는다. 내친 김에 학교로 간 태풍이는 설마...? 하면서도 학교건물을 향해 주문을 외워본다. 그런데, 뒤집혔다!!

다행히 일요일이라 다친 사람은 없었고, 다시 뒤집을 방법은 없으니 학교는 천장과 바닥을 바꾼 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태풍이는 다시는 딱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조용히 학교를 잘 다니다 졸업했다고 한다. 마지막 부분은 정말 천연덕스럽다. 난 왠지 이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다.

태풍이가 졸업한 뒤에 자라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나 봐. 지금쯤이면 벌써 어른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 이 학교 급식에는 달걀 프라이가 유난히 자주 나오는 편이야....” 그 다음은 상상이 가능할 듯.^^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소가 지어지는 작은 판타지.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분량도 적당하고 무척 재미있어 하겠다. 딱지를 압수하는 교장선생님께 분노하고 학교가 뒤집힐 때 함성을 지르겠지? 그정도는 감수하고 읽어주자!!^^*

 

두 번째 이야기 파라솔 뒤에 테이블 뒤에 의자가라는 작품의 느낌이 내겐 가장 좋았다. 24시간 편의점에서 밤시간에 일하는 정 군이 있다. 손님이 가장 없는 새벽시간은 정 군에게 가장 졸립고 지루한 시간이다. 어느날부터 그 시간에 찾아와 편의점의 파라솔 테이블에서 머물다 가는 고양이가 있었다. 정 군은 그 고양이에게 삼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삼순이가 오지 않았다.

삼순이를 못 본지 일주일째 되는 날, 이번에는 까만 고양이가 나타났다. 이때부터 판타지가 시작된다. 파라솔과 테이블과 의자가 행진하며 정 군을 어디로 이끌었다. 가보니 그곳에는 다 죽어가는 삼순이가 있었다. 정 군이 삼순이를 조심조심 편의점으로 데려오자 파라솔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까만 고양이는 뭐였냐고?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줄게.” 2편은 이렇게 마치며 3편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세 번째 이야기 제목은 책고양이가 된다. 고양이가 얘길 한다. “난 책이 아니야. 나는 고양이거든.”

고양이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마법사의 비서가 되었고 또 어쩌구 저쩌구 해서 마법사에게 책이 되는 벌을 받았다. “열의 세 곱절 번 읽힐 때까지라는 단서가 붙어 있으니 독자가 이 책을 읽어주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는 얘기다. ! 정군에게 나타나 삼순이를 구해주게 했으니 이미 열의 세 곱절 번 읽힌 셈인가?^^

 

세 편 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다. 반응이 좋아야 힘이 나는데, 이 책은 반응이 기대된다. 대단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놓지 않고도, 일상의 사소한 것과 연결한 따뜻한 판타지를 창작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리을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본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다. 비교문학을 전공했고 그동안은 주로 번역작업을 하신 것 같다. 다음에도 이와 비슷한 작품세계를 선보일지, 아니면 또 새로운 느낌으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이 나오면 꼭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상상력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출발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깨닫는 그 느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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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장례식 아이앤북 창작동화 41
원유순 지음, 조윤주 그림 / 아이앤북(I&BOOK)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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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몇 년 전에 동물을 키운 적이 한 번 있다. 고슴도치였다. 아들이 다니는 영어공부방 선생님이 처치곤란인 고슴도치를 원하는 아이에게 주겠다고 하셨나보다. 그걸 가져오고 싶다고 울고불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는데, 가져와보니 그건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잔뜩 화가 나('겁이 나'가 맞나?) 온 몸을 팽팽하게 부풀리고 가시를 세운 채 쉭쉭거리는 고슴도치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처치곤란 애물단지였다. 나도 누구한테 떠넘기고 싶을 정도....
이녀석의 가시를 조금이라도 내려 준 사람은 처음에 반대하던 남편이었다. 남편은 며칠 후 암컷 한 마리를 사왔다. 한마리도 싫은데 더 사온다고 난 질색을 했지만, 얼마 후 새끼 다섯 마리가 태어났다. 남편은 그녀석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크는 과정을 사진 찍으며 애지중지 돌봤다. 첫째는 덩치 크고 순해서 곰순이, 둘째는 독일군 닮았다고 일군이.... 밤늦게 들어오면 "우리 애기들, 잘 지냈나?" 하며 도치들 집으로 향했다. 세끼 네 마리는 분양하고 아빠 엄마 도치들과 곰순이는 우리가 계속 키웠다. 곰순이를 키우니 비로소 애완동물 느낌이 조금 났다. 도치가 보여주는 최고의 사랑은 '가시를 세우지 않아주는 것'이다. 특히 남편 손에서는 절대 가시를 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도치들에게 빠져 있을 무렵, 엄마도치가 시름시름하더니 죽었다. 딸과 아들은 눈이 빨개지도록 울다가 아빠와 같이 나가 묻어주고 왔다. 얼마 있다가 아빠 도치도 죽고, 곰순이는 꽤 오래 우리와 같이 있다가 떠났다.
그러는 동안에 집에 들어오면 곰순아~ 부터 부를 정도로 정이 들기도 했지만 많은 식구, 많은 짐에 도치 집과 사육물품들은 솔직히 공간적으로 부담이었다. 곰순이가 떠나던 날, 아프다 떠난 곰순이가 불쌍해서 울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다. 모든 물건을 다 버리고 치웠다. 그 이후 아무 것도 키우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동화를 읽으며 계속 곰순이 생각이 났다. 도치 통에서 태어나 평생 거기서 살다 간 곰순이, 이뻐해 주긴 했지만 안쓰럽고 미안했던 곰순이. 솔직히 인간의 집에서 살 존재는 아니었던 고슴도치 곰순이.

작년 여름방학, 어린이문학 연수에서 원유순 선생님을 뵙고 계속 그분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말'에 선생님의 퇴직 전 경험담이 실려 있었다. 아이의 말과 태도에 머릿속이 '띵'하고 울리던 경험. 이건 아닌 것 같아 붙들고 가르쳤지만 전혀 스며들지 않는 느낌. 교사라면 이 느낌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선생님의 이 경험담은 아이들의 '곤충 기르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동화는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아이들 사이에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키우는 게 대유행이 되었다. 벌레 싸움을 붙이는 것도. 여기에 혹한 새봄이도 엄마를 졸라 사슴벌레를 샀고, 한동안은 이것저것 먹여가며 정성껏 돌봤다. 벌레싸움에서 이기길 고대하며 '헐크'란 이름도 지어주면서.

하지만 헐크는 새봄이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관심이 멀어진 어느날 문득, 죽어있는 헐크를 발견하게 된다. 곤충 장례식을 치르자는 친구 정택이의 제안에 뜨악한 마음으로 헐크를 가지고 나가는데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헐크는 그사이 바짝 말라 있었다. 묻어주고 정택이는 인사를 하는데 새봄이는 인사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지 뭘... 이라고 생각하던 새봄이였기 때문일까? 억지로 입을 떼는데 울컥 떠오르는 생각들, 그리고 눈물.... 원유순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말씀을 그 짧은 눈물에 담았다고 생각된다.
"미안해 헐크, 잘 가. 다음에는 꼭 숲에서 태어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래서 아예 하지 않고 있는 나보다는 훌륭한 이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이 점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생명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검색해보니 원유순 선생님의 다른 책들에 비해 판매지수가 높지는 않다. 그닥 눈길을 끌지 않는 책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두껍지 않으니 몇 번에 나누어 읽어주어도 좋겠다) 아이들이 무심코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생각을 한번 돌아보는 기회를 줄 것 같다. 그런 기회를 많이 가진 아이들일수록 건강하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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