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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혀 혀집뒤! - 제5회 비룡소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ㅣ 비룡소 문학상
이리을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6년 10월
평점 :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에 바탕을 둔 작고 따뜻한 판타지, 일상과 연결되는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러운 판타지. 내가 읽어본 중에 이런 판타지는 오카다 준의 작품들이다.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밤의 초등학교에서 등이 그런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느낌을 어디서 받았더라... 골똘히 생각했는데 다 읽을 때쯤 생각났다. 오카다 준이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니 ‘어떻게 그렇게 연결돼?’ 라는 타박을 들어도 할 말은 없다.^^
이 책에는 세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각각의 작품이지만 둘째와 셋째 작품은 연결되기도 한다. 세 작품 다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출발하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첫 번째 이야기 「뒤집혀 혀집뒤!」에서는 딱지치기 이야기가 나온다. 전통딱지는 아니고 문구점에서 파는 고무딱지다. 가끔 이런 게 유행할 때가 있다. 따고 따먹히는 건 일종의 도박성이 있어서 이런 현상은 교사로는 좀 골치 아프다. 종이딱지야 이면지나 우유갑으로 만들면 되지만 고무딱지 같은 건 돈주고 사야되니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의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의 딱지를 보는대로 압수하고 “부모님이랑 같이 와서 찾아가!”라고 하시는 걸 너무 비난해선 안된다.ㅎㅎ 하여간에 태풍이는 대마왕딱지에게서 얻은 신비한 능력으로 그렇게도 그리던 딱지왕에 등극하게 되는데, 그 보람도 없이 교장선생님께 딱지를 모두 압수당하고 말았다. 그 신비한 능력이란... “혀,집,뒤,혀집뒤!”라고 주문을 외우면 목표물이 홀랑 뒤집히는 능력이었는데, 딱지를 뺏겨 버렸으니 그 능력을 어디에다 쓴단 말인가?
화가 난 태풍이는 거리에서 만난 못된 사람들을 골려준다. 금연구역에서 보란 듯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의 콜라캔을 뒤집고, 뻔뻔하게 주차된 자동차를 뒤집어 놓는다. 내친 김에 학교로 간 태풍이는 설마...? 하면서도 학교건물을 향해 주문을 외워본다. 그런데, 뒤집혔다!!
다행히 일요일이라 다친 사람은 없었고, 다시 뒤집을 방법은 없으니 학교는 천장과 바닥을 바꾼 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태풍이는 다시는 딱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조용히 학교를 잘 다니다 졸업했다고 한다. 마지막 부분은 정말 천연덕스럽다. 난 왠지 이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다.
“태풍이가 졸업한 뒤에 자라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나 봐. 지금쯤이면 벌써 어른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참, 이 학교 급식에는 달걀 프라이가 유난히 자주 나오는 편이야....” 그 다음은 상상이 가능할 듯.^^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소가 지어지는 작은 판타지.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분량도 적당하고 무척 재미있어 하겠다. 딱지를 압수하는 교장선생님께 분노하고 학교가 뒤집힐 때 함성을 지르겠지? 그정도는 감수하고 읽어주자!!^^*
두 번째 이야기 「파라솔 뒤에 테이블 뒤에 의자가」라는 작품의 느낌이 내겐 가장 좋았다. 24시간 편의점에서 밤시간에 일하는 정 군이 있다. 손님이 가장 없는 새벽시간은 정 군에게 가장 졸립고 지루한 시간이다. 어느날부터 그 시간에 찾아와 편의점의 파라솔 테이블에서 머물다 가는 고양이가 있었다. 정 군은 그 고양이에게 삼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삼순이가 오지 않았다.
삼순이를 못 본지 일주일째 되는 날, 이번에는 까만 고양이가 나타났다. 이때부터 판타지가 시작된다. 파라솔과 테이블과 의자가 행진하며 정 군을 어디로 이끌었다. 가보니 그곳에는 다 죽어가는 삼순이가 있었다. 정 군이 삼순이를 조심조심 편의점으로 데려오자 파라솔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까만 고양이는 뭐였냐고?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줄게.” 2편은 이렇게 마치며 3편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세 번째 이야기 제목은 「책고양이」가 된다. 고양이가 얘길 한다. “난 책이 아니야. 나는 고양이거든.”
고양이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마법사의 비서가 되었고 또 어쩌구 저쩌구 해서 마법사에게 책이 되는 벌을 받았다. “열의 세 곱절 번 읽힐 때까지”라는 단서가 붙어 있으니 독자가 이 책을 읽어주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는 얘기다. 앗! 정군에게 나타나 삼순이를 구해주게 했으니 이미 열의 세 곱절 번 읽힌 셈인가?^^
세 편 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다. 반응이 좋아야 힘이 나는데, 이 책은 반응이 기대된다. 대단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놓지 않고도, 일상의 사소한 것과 연결한 따뜻한 판타지를 창작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리을’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본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다. 비교문학을 전공했고 그동안은 주로 번역작업을 하신 것 같다. 다음에도 이와 비슷한 작품세계를 선보일지, 아니면 또 새로운 느낌으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이 나오면 꼭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상상력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출발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깨닫는 그 느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