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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사전 - 요즘것들의 말로 들여다본 요즘 세상 ㅣ 우리학교 생활밀착교양 시리즈
권재원 지음 / 우리학교 / 2016년 12월
평점 :
나도 한때는 요즘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기성세대에게 그닥 사랑을 받을 만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일상에 성실하진 않았고 숙제는 늘 초치기였고 공손하지도 않았고 욕도 웬만큼 했다. 만화가게를 다녔고 수업시간에 잡념에 빠지거나 졸기 일쑤였고 공책정리는 좋아하는 과목만 잘하고 나머지는 개발새발이었다.
지금의 내가 이런 요즘것들을 만나면 호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까놓고 말해보자. 나는 요즘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교직에서 버티는 한가지 동력은 책임감이다. 나는 이 한가지로 온갖 것을 다 해낸다. 이 기특한 하나의 동아줄은 그동안 닳고 닳았음에도 끊어지지 않고 나를 지탱해 왔다. 요즘것들을 싫어하는 교사인 나를.
그 동아줄은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너도 요즘것들을 좀 이해해봐야 되지 않겠어? 라며. 이 책에는 요즘것들이 잘 쓰는 말들에 대한 풀이, 유래, 거기에 담긴 심리, 사회적 현상까지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다. 요즘것들 말들엔 요즘것들의 애환이 들어있기도 했다. 그러니 국어교과서에서 국어순화를 다룰 때 '바로잡아야 할 말 1순위'인<줄임말> 을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아이들은 그 말을 계속 쓸 것인데 교과서 따로 현실 따로 눈가리고 아웅 할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시도처럼 그 의미를 짚어보고 왜 이런 말을 쓰게 됐을까 성찰해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 사전에 등장하는 낱말로는 현타, 열폭, 덕후, 어그로, 관종, 꼰대, 답정너 등이 있다. 저자의 글을 많이 읽어본 편인데 구구절절 길지 않으면서 핵심을 잘 짚어내고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이며, 쌀쌀맞은 말투에 따뜻한 의미를 깔아놓기도 하는 그의 글을 높이 평가한다. 예를 들어 제1장 '현타'에서 충동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자신을 망가뜨리는 요즘 것들에게 저자는 아주 철학적이면서도 상식에 맞고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하고 살아"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실제로는 요즘것들이 폭주할 때 브레이크를 걸어줄 어른도 그들 인생에 필요한 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중용을 갖춘 이런 조언이 나는 몹시 맘에 든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책장을 뚫을 듯이 읽은 부분은 제6장 '관종' 이었다. 이 말은 작년과 올해 우리반 아이들이 뽑은 '가장 듣기 싫은 말' 랭킹에 올랐다. 실제로 아이들은 이 말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며 분노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은 아마도 아픈델 찔린 반응일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개인주의로 흘러온 이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은 관심에 목말라있다. 긍정적 관심을 끌 자원이 없는 아이들은 부정적 관심이라도 끌어서 그 욕구를 채우려 한다. 이런 아이들이 바로 '관종'이다.
올해 우리반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 관종의 존재와 그들이 주는 성가심과 스트레스, 그로 인한 비호감과 고립의 문제였다. 결국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은 채 겨울방학을 맞았다. 그래서 난 여기에 무슨 해법이라도 있을까 하여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해법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이것이 일종의 마음의 병일진대 개개인마다 원인이 다를 터, 그 누구라도 특효방법을 제시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아주 상식적인 해법은 있다.
"그들이 무작정 관심을 끌려 하지 말고 공동체에서 용인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관심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 관계맺는 방법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이럴 때 그 친구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그 친구를 보듬어 안고 바람직한 상호작용을 익히게 하는 대신, 관종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이전보다 더 외로운 처지로 내모는 것은 잔인한 행동이다." (본문 92쪽)
이런 것들은 교사로서 모르지는 않으나 실행이 어려운 일에 속한다. 이 책이 교사를 대상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니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깨닫는 바가 있을 수 있겠다. 교사의 경우 괸종과 주변아이들 양쪽을 다 지도해야 하니 아이들을 설득하고 지도할 때 참고할 수도 있겠다.
제7장 '꼰대' 편은 도전도 되고 위로도 된다. 언젠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꼰대 테스트'를 해본 적 있는데 나는 꼰대성향이 지극히 적은 것으로 나왔다. 그건 아마도 내가 남의 인생에 간섭하기를 싫어해서일 것이고, 새로운 가치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면에서 나도 꼰대 기질이 다분히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노년기에 접어들기까지 다행스럽게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에 부지런히 배우고 느끼며 나를 넓혀야 한다. 그래야 꼰대가 되지 않고 늙을 수 있다. 결국 꼰대방지의 비결 : 평생학습?
뒤로 갈수록 모르는 말이 많았는데 앞의 낱말들에 비해 우리 사회의 병적 현상을 드러내는 말이 많았다. 인실, 종특과 같은 말들이다. 알고 있었던 헬조선, 수저 같은 말도 그러하다. 특히 인실이라는 말은 전혀 사용해본 적이 없는 말인데 배운 김에 한번 써먹어 볼까. "이 나라를 수십년간 휘감아온 징그러운 바오밥나무 뿌리 같은 박씨 최씨 일가와 김씨를 비롯한 간악한 부역자 무리들에게 인실을 시연해야 하며 그게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 박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것을 실현 못하고 죽쒀서 개주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 수십년을 퇴행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장의 낱말은 '각' 이었다. 앞의 낱말들에 비해서는 무게가 떨어지는 것 같은 말인데 왜 마지막에 왔을까 싶었는데 읽다가 감탄했다.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거기에 있었다. 말의 무게는, 그것도 반복되고 습관된 말의 무게는 우리 인생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의 아이들을, 우리 사회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요즘것들 말을 몇 개 알았다고 쪼금 유식(?)해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ㅎㅎ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으며 현상만 가지고 못마땅해 해서는 현상이 심화될 뿐이다. 이것은 요즘것들과의 소통의 원리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