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숲에서 생긴 일 환상책방 5
최은옥 지음, 성원 그림 / 해와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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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가 무수히 변형되고 재생산되는 것을 보면 옛이야기의 원형이 가진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최은옥 님의 <보름달 숲에서 생긴 일>은 현대를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이들이 맞닥뜨리는 건 '구미호'이다. 즉 <여우누이>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최은옥 님은 '저학년을 맡게 되면 많이 읽어주고 활용해야지~'라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작가다. 그동안은 저중학년 수준의 얇은 책들을 주로 냈다. <책읽는 강아지 몽몽>은 발간된 그 해에 3학년 아이들과 돌려읽기로 읽어봤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고, 이어지는 <책으로 똥을 닦는 돼지>, <똥으로 책을 쓰는 돼지> 등 책읽기를 설득하는 책들이 전혀 설득스럽지 않고 재미나면서 유쾌해서 참 맘에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동안의 쉽고 유쾌한 느낌을 완전히 벗어 버렸다. 일단 책이 두꺼워졌고(200쪽이 안되니 아주 두껍지는 않지만), 무겁고 기괴하다. 연기자들도 연기변신을 하듯, 작가들도 고정된 분위기의 작품을 계속 쓰기보다 이렇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을 내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족은 캠핑을 간다. 얼마나 신날까? 그런데 이 가족, 같은 곳에 함께 왔으나 제각각 홀로이다. 아들(현규)은 게임기만 하고 있고, 딸(현아)은 단어장에 코박고 있고, 엄마 아빠도 서로에게 틱틱거리기만 할 뿐이다. 캠핑까지 와서 왜? 아빠의 독단으로 오게 된 캠핑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SNS 친구들에게 보란듯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식구들을 끌고 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분개하기엔 마음 한구석 찔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보여주기에 맞춰 사는 삶.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그렇게 왔으니 가족은 사소한 일에도 불만이 터지고 고운 말이 안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밤에 비까지 내려 그들의 자동차는 길을 잃고 헤매다 어떤 곳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 옛이야기 여우누이와 현대 가족의 이야기가 숨가쁘게 엮어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동안 독자들은 몇 번 놀라고, 몇 번 숨을 죽이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작품 초반에 보여주는 다소 극단적인 가족의 모습은 너무 쉬운 복선이라 할 수 있다. 음~ 이렇게 각각 따로 노는 불소통 가족이 있어. 이 가족이 어려움에 처해. 이걸 극복하며 가족애가 싹터. 결말은 해피엔딩이야.
이 뻔한 예측은 들어맞는다. 하지만 예측이 맞다고 해서 시시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전체적 흐름은 예측이 가능하지만 구미호(들)와의 사건들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긴박함의 연속이다. 그래서 예상한 결말에 이르렀을 때 시시함보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옛이야기 원전에 나오는 하얀병, 파란병, 빨간병 화소를 적절히 변형한 작가의 창의성이 놀랍다.

하지만 "너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사람들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훨씬 크고 강해. 가끔은 서로에게 서툴고, 가끔은 틀릴 때도 있지만 가슴 깊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다고!"
라든가
"알아. 예전에 우리 가족이 어땠는지. 그래서 지금부터 잘해 보려고. 엄마, 아빠, 누나가 지금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어. 내가 먼저, 내가 먼저 달라질 거라고!"
와 같은 현규의 대사들은 너무 도식적이고 신파조여서 감동을 좀 반감시키는 느낌이었다. 영화로 치면 오글거리는 대사?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강하다 보니 너무 날것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너무 까다로운 독자인가?^^;;;

이런 점이 별 한개를 깎아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난 여전히 이 작가의 작품에 별 다섯개를 붙인다. 재미있는 이야기꾼인 작가가 옛이야기를 들고 와 기괴하지만 매혹적인 미스터리 동화를 만들어낸 것에 큰 반가움을 표한다. 그리고 각각홀로인 현대의 가족들이 함께 해결할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이 가족의 갈등을 해결할 기회가 된다는 생각에도 동의한다. 물론 더 깊은 갈등의 길로 가는 가족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가족도 요즘 전원이 모여 밥먹을 시간이 거의 없고 나 또한 혼밥을 가장 선호하는데, 이 가족보다 아이들이 컸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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