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데포 - 특별한 아이와 진실한 친구 이야기, 2015 뉴베리 명예상 수상작 미래그래픽노블 1
시시 벨 글.그림, 고정아 옮김 / 밝은미래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책이 뉴베리 아너상을 받은 것도 꽤나 화제가 되었을 것 같다. 이 책은 그래픽 노블, 즉 만화책이니까 말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픽 노블 최초로 뉴베리 아너상을 '엘 데포'에게 수여한 이번 결정은 향후 수십 년간의 출판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일이 될 것이다."

이렇게 형식을 뛰어넘어 파격적인 상을 받게 된 데에는 작품이 독자들에게 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며 엘 데포는 주인공 스스로 지은 별명이다. 데포는 귀머거리라는 뜻이다. 거기에 엘이라는 특별한 관사를 붙였다. 이 제목에서 작가가 스스로를 세상에 위치시키는 건강한 모습을 본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고 당당한.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이 책에는 작가가 청력을 잃게 된 후의 어린시절(주로 학교생활) 이야기가 나온다. 특별하지만 또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한 소녀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초점은 장애의 고통이 얼마나 크며 얼마나 노력하여 그 역경을 극복했는지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 주인공의 경험, 그리고 그때 느낀 솔직한 감정에 맞추어져 있다. 장애라는 경험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지만 감정은 특별하지 않다. 이건뭐지...?라는 혼란스러움을 비롯해서 왜 나한테 이러지? 서운해, 불쾌해, 그만두고 싶어, 좋아해, 안타까워, 신 나, 자랑스러워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잔잔하면서도 공감가도록 드러냈다. 작가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모든 농인의 경험을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실제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보다 내가 청력을 잃고서 느낀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작가의 말 중)

작가는 그 표현을 아주 잘해냈다. 이 책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고도난청이며 보청기와 입모양에 의지하여 듣는 작가의 불편함과 느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나는 청력의 문제가 단지 볼륨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점도 알게 되었다.
또, 장애인 주변의 사람들의 행동이 당사자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게 된 점이 가장 가슴 서늘했다. 도와준답시고 가까이 있는 것이 다 고맙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마워하라고 강요하지 마라. 본인은 도와준다 생각할지 몰라도 그 마음이 진정인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시시에게도 몇명의 친구들이 거쳐갔지만 오히려 시시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그걸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 시시는 용감하고 독립적인 아이다. 마지막 마사하고도 멀어지려는 위기에서 안타까웠지만 결국 진정한 친구는 다시 손을 잡는다. 안심!^^

(그런가하면 약간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런 지적은 참 쓸데없는 것 같지만 난 이왕 글을 쓴 바에는 생각한 걸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말해보겠다. 상대방의 아주 사소한 사생활이나 감정까지도 배려해야 하는 것이 인권이라고 배웠다. 근데 주인공은(작가는) 왜 마이크를 달고 생활해야 하는 선생님의 인권은 배려하지 않았을까? 학생 한명 때문에 겪어야하는 수고와 불편을 얘기하려는게 아니다. 시시는 보청기와 연결된 선생님의 마이크를 통해 선생님의 미세한 소리까지도 다 듣게 되는데, 예를 들면 화장실에서 졸졸졸 소변보는 소리, 아 시원해... 라는 혼잣말 소리 등이다. 그런 걸 듣고 히히거릴 게 아니라 사적 시간이나 공간에서는 마이크를 끄시도록 했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혹 들었다고 해도 그걸 다른 학생들에게 말하면 안되었던 것이고... 만약 그때 철이 없어 그랬더라도 어른이 되어 작품을 쓸 때는 그때 참 철이 없었다거나 미안했다거나 하는 느낌을 넣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인권감수성은 모두를 대상으로 높여 가야 하는 것이므로 어른이나 교사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도 이책을 읽고 그런 생각은 안하시는 거 같아서 한심하게 여겨질 거 같지만ㅎㅎ 그래도 써봤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해.ㅠㅠ)

지난 촛불집회에서 열정적인 두 수화통역사를 보고 많은 이들이 감동받았다. 왜 그랬을까. 농인들이 느끼기 힘든 부분까지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그들의 필사적인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열정적인 도움 없이는 그들의 감각으로 잡아낼 수 없는 느낌.... 그 답답함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하지만 작가는 어린시절을 이와같이 잘 겪어냈고 지금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작가의 말에 나온 것처럼 때로는 축복으로도 여기며, 남과 다름을 슈퍼파워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의 행복감이 느껴지며 나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장애인들도 장애를 '다름' 정도로 인식하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인 긍정성 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작가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의 행복한 삶을 응원하며, 우린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걸음씩 부지런히 내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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