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 ㅣ 창비아동문고 287
진형민 지음, 주성희 그림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진형민 작가를 당연히 남자로 생각했었다. 일단 이름이 남성적이라 그랬겠지만 좀 시니컬하고 서늘한 문장에서 남자를 연상하는 것은 내 일종의 편견이라 볼 수 있다. <꼴뚜기>와 <소리질러 운동장>을 읽었을 때까지도 그랬다. 특히 소리질러 운동장은 야구 이야기라 의심의 여지없이 그리 생각했다. 어디선가 작가와의 만남 사진을 보고 여자인 걸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라니! 그런데 그걸 알고 읽은 이번 책에서는 처음의 그 느낌이 옅어졌다. 고정관념이란 참 무섭다.
난 꼴뚜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재밌게 읽다가 어떤 부분에서(거의 뒷부분으로 기억) 기분이 팍 상해버렸던 기억만 난다. 그때가 세월호 사건 즈음이었는데 작가님이 전혀 그런 의도로 쓰신 게 아님을 알면서도 맘이 상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예민해져 있던 감정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건드렸던 것 같다. 한 군데서 걸리자 그 책은 제꼈다. 앞부분 좋았던 기억마저도. 이어 읽은 소리질러 운동장은 아주 좋았다. 요즘 학급에서 아이들과 꼴뚜기를 함께 읽는 선생님들을 많이 본다. 나도 언젠가는 다시 읽어볼 것이다. 그때 내가 왜 이런 부분에서 걸렸지? 라고 웃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도 전작들이 가진 장점들 -톡톡 튀는 대사들, 유머, 살아있는 캐릭터, 작가의 문제의식 등- 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번 문제의식은 '돈'에 대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문제의식이다. 돈을 벌기는 왜이리 힘든가? 아니, 누구는 쉽게 버는 돈을 누구는 왜 이리 힘들게 벌어야 하는가? 가진 자는 왜 계속 더 갖게 되고 가난한 자들은 더 가난해지는가?
이것을 아이들 이야기로 풀어내다니 참으로 놀랍다. 지금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주제인만큼, 작가도 작품에서 결론을 내지는 않았다. 대신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 나중에라도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깨닫게 되면 서로서로 알려 주기로 해요. 치사하게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기 없기예요, 알았죠? 나도 꼭 그럴게요."
이 책의 세 아이는 제목처럼 돈을 벌려고 한다. 용수는 축구화가 필요해서, 초원이는 양념치킨을 양껏 먹어보려고, 상미는 예쁜 치마를 사고 싶어서. 중산층 이상의 집이라면 어렵지 않을 일들인데, 이 세 아이의 공통점은 방과후 공부방을 다닌다는 것이다. 보호자가 올 때까지 공부도 봐주고 저녁도 먹여주는 공부방 말이다. 이 아이들이 어떤 계기로 돈을 벌자!고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는데, 과정은 험난하고 결과는 너무 형편없었다. 셋이 몇시간이나 빈 병을 주워 판 돈은 몇백원밖에 안되었고, 다리가 끊어지도록 전단지를 붙이고 받은 돈도 셋이 합해 오천원밖에 안되었다. 공연표 줄 서주기는 그나마 돈이 좀 될 듯하였으나.....
결국 축구화 살 돈 마련을 포기한 아이들은 애써 번 돈을 어떻게 썼을까? 좋은 일에 기부하고 손털기? 그거보다는 쪼끔 현실적이다.^^
아이들의 이 험난한 경험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어린 나이에 헬조선을 뼈저리게 느끼고 살맛을 잃었을까? 화자인 초원이의 생각이 억지스럽지 않게 작가의 생각을 대변한다.
"그런데 돈 버는 일은 원래부터 괴롭고 힘든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초등학생이라 힘들었을까? 너무 힘들지 않게, 계속 재미있게, 거짓말하지 않고도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그러면 오래오래 돈을 벌 수 있을텐데."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양쪽에서 여러 말들이 많다. 하지만 이 아이들처럼 시간과 노력을 다 들여 일한 댓가가 허탈하고 좌절될 지경이라면 그것은 개선해야 할 것이다. 돈이 돈을 벌어 일하지 않고도 부자인 사람 옆에 뼈골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면할 수 없는 이들이 공존하는 세상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어두워서 읽기 힘든 동화도 많은데, 이 책은 힘든 현실을 소재로 삼았으면서도 상큼 발랄하게 읽히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의 장점이라 하겠다. 아이들과 읽으면서 생각해볼 점이 많겠다. 어쩌면 진정한 진로교육이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