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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방귀 아저씨네 동물들 ㅣ 이마주 창작동화
이상권 지음, 심은숙 그림, 서울초등국어교과교육연구회 도움글 / 이마주 / 2015년 10월
평점 :
OX퀴즈.
1.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거다.(O,X)
2. 다툼 발생시 즉시 교사가 개입하여 해결단계까지 가야한다.(O,X)
1번이라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게 여겼다. 일방적 가해자가 있고 괴롭힘이 심한 경우 꾸중도 하고 지도도 했지만 둘이 혹은 여럿이 투닥거리는 경우, 그냥 한꺼번에 말로 꾸짖고 넘어가면 대개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해해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곤 했다. 나는 운이 참 좋게도 지난 학교에서까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화샘 프로젝트 이런 것도 주워들었지만 굳이 적용할 필요까지는 못 느끼고 살았다.
학교를 옮기고 학급의 아이들이 이런저런 사고를 칠 때, 동료 선생님들의 조언은 주로 '즉시개입'과 '적자생존'(적어야 산다) 이었다. 빨리 파악하고 개입하지 않아서 교사가 겪게 되는 고초는 상상을 초월한다(그분들의 경험에서 나온 말), 즉시 개입하고 해결 절차를 밟고 증거를 문서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해에 나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노래를 되뇌이며 살아야 했고 그해 축적한 종류별 문제해결 서식만 해도 한 폴더 그득이다. 올해 그 폴더를 오랜만에 열어봤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에 대한 법조항을 검색한 문서자료까지 들어있었다. "사실을 적시한 것도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뭐 이런 내용들?ㅠㅠ
교사들이 이렇게 된 것은 학폭법이 들어오면서부터라고 본다. 학폭법도 생긴 배경이 있으니 무조건 나쁘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학폭법으로 해결된 사례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의 자정능력에 맡겨도 될 일들에 어른의 즉시개입이 의무화되면서 벌어지는 비교육적 수렁이다. 여기에 빠지면 모두가 불행해지고, 해결은 있다 할지라도 회복은 없다.
이상권 선생님의 이 책을 읽으며 이분이 교사는 아니지만 이런 얘기를 하고 계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 읽고 작가의 말을 보았더니 학폭을 언급하신 것은 아니지만 거의 일치했다.
"친구들끼리 지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나쁜 마음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친구하고 싸울 수도 있어요.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랍니다.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처럼 서로 화해를 하기만 하면 오히려 더 친해질 수가 있는 거지요. 나는 여러분들이 온전히 자기 힘으로 친구와의 관계를 풀고, 마음 속에 있는 따뜻한 말들을 꼭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읽고 혹시라도 화해하지 못한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고요. 그런 바람으로 이 책을 세상 모든 동물들이랑 어린이들에게 보냅니다." (75쪽 작가의말)
이상권 선생님은 자연생태동화를 쓰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도 아이들과 몇 권 읽어봤다. 고학년과는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저학년과는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 등이다. 이번 책도 보아하니 동물을 다룬 책이라 비슷한 느낌으로 열었는데 동물 이야기 안에 한 층의 주제가 더 들어있는 좀더 특별한 느낌의 책이었다.
왕방귀 아저씨네 집에선 여러가지 동물을 키운다. 거의 버려진 아이들을 아저씨가 거둬 키우시는 거다. 그 집에서 어릴적친구 흙표범 아저씨와 박목수 아저씨가 각각 아들(범)과 딸(초우)을 데리고 모였다. 두 아이는 과자를 먹으며 놀다가 동물들에게도 던져 주는데, 병아리를 사납게 쫓아내고 혼자 과자를 차지하는 똥개녀석한테 격분한다. 마침 착한 염소가 나타나 물리쳐 주었다. 아 근데 착한 염소라기엔.... 절름발이 거위와 외눈박이 오리를 괴롭히는게 아닌가! 두 아이는 불쌍한 거위와 오리 편에서 염소를 물리쳐 주었더니, 이번엔 거위와 오리가 귀여운 토끼를 괴롭혔다. 귀여운 토끼는 착하겠지? 천만에 이녀석은 병아리한테 흙을 끼얹고 괴롭혔다. 아이들은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꼈다. 이 와중에 두 아이도 싸워 서로 씩씩거린다.
한참 후 비오는 밖에 나와 염소우리를 보게된 범이는 깜짝 놀란다. 먹이사슬처럼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던 녀석들이 우리 안에서 꼭붙어 잠들어 있는 것이다. 초우가 말한다.
"나도 잠깐 자다가 나왔는데 쟤들이 저러고 있는 거야. 처음엔 꼭 꿈꾸는 줄 알았어. 진짜 아까 엄청 싸웠잖아. 물어뜯고, 들이받고, 차고. 근데 저렇게 사이좋게 누워 있다니.... 범아, 나도 쟤들이랑 같이 자고 싶어."
"나도 그러고 싶다."
"헤헤헤"
"히히히"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고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1.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에 대해서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2. 싸웠을 때 어느 정도까지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
3. 어느 정도부터는 해결이 어려워? 그때부턴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참 고마운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다. 교사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개입이 귀찮아서가 아니라는 말을 굳이 하고 싶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민감성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인간관계 능력을 먼저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좋은 다리가 되어줄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