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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두 다 금지야! ㅣ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45
아나 마리아 마샤두 지음, 조제 카를루스 롤로 그림 / 책속물고기 / 2016년 4월
평점 :
읽는데 15분이면 충분하다. 60쪽 정도 분량에 글씨도 크고 자간도 넓다. 분량으로만 친다면 1,2학년용이다. 실제로 인터넷서점의 분류에도 1,2학년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내용으로는 그렇지가 않다. 1,2학년도 나름의 수준에서 받아들이며 읽겠지만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와 배경까지 생각하려면 어른들이 읽고 토론해도 될 만한 내용이다.
작가는 브라질 사람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1980년대 브라질에서 겪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브라질의 역사를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키워드는 “자유”다. 반대편에서 찾자면 “독재자”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수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낱말이다. 이 키워드로 우리의 현대사를 서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시절’에 ‘어떤 나라’가 있었다.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나라였다. 조금의 문제와 불편함은 있었다.
『가끔은 혼란스럽고 정신없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동시에 말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목소리도 커지고 말다툼과 싸움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다 함께 질서를 지키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본문 9쪽)
그 사이에 독재자가 나타났다. 스스로 그 자리에 앉아서 힘이 제일 세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그런데 그걸 반기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
『처음에는 그 방식을 반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해서 시끄러운 말다툼을 멈추게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가 조용하고 평화로워졌다고 느꼈던 것이지요. 하지만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무시하고 점점 바보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2쪽)
그 바보같은 일들은 이런 것이다. 다른 의견 금지. 반대자 감옥으로 보내기. 다른 색깔 금지(회색으로 통일하기), 금지, 금지, 금지......
“이런 순 없어!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모두가 이렇게 분통이 터지는 와중에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족속들도 있었다. 이 부분 떠오르는 자들이 많아 진심 섬뜩했다.
『많은 사람들 눈에는 이상해 보였지만 이렇게 변해버린 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나라가 편하고 좋았던 때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회색 페인트를 만드는 사람들, 아스팔트나 시멘트, 채소 캔 같은 이 시대에 많이 쓰이는 용품을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기뻐 두 손 모아 박수를 쳤습니다.』 (본문 19쪽)
독재자가 그 체제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설명한 부분도 섬뜩하다.
『독재자의 지휘 아래에서 사람들은 쉴 틈 없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물건은 무척 비쌌고 사람들은 돈을 아주 적게 벌었습니다. 직장과 집은 너무 멀었습니다. 오고 가는 길은 몹시 복잡했습니다. 사람들은 긴 출퇴근 시간에 지쳐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푸른색을 찾아다니거나 생각할 시간도 갖지 못했죠.』 (본문 23쪽)
이 숨막히는 탄압의 시대에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로 시작해서 사람들은 기억 저편에 감춰 두었던 색깔들을, 음악들을, 춤을 찾아내었다. 이것은 독재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축제로 이어졌다. 결국 겁을 먹은 독재자는 아무도 모르게 도망치고 말았다. 무척 다행스러운 해피엔딩이지만 작가는 이런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날 이후 그 누구도 그 나라에서 독재자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독재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를 지금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더 똑똑해진 독재자가 우리 곁에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늘 독재자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독재자가 더 똑똑해졌다면 주머니에 있는 무지개와 몸에 있는 음악과 별만으로는 내쫓을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본문 57쪽)
오랜 암흑을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그 기쁨을 유지하지 못했거나 더 깊은 암흑으로 빠져든 경험이 우리에게도 있다. 지금 이 시점.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축제가 몰아낸 어둠. 하루하루 뉴스에서 기쁨과 힐링을 느끼는 이 색다른 경험. 이 시기에 우리는 더욱 냉철하고 지혜로워져야 하겠다고 간절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저학년보다는 고학년 현대사 수업을 할 때 읽어주겠다. 짧고 상징적인 이런 글에서는 무한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