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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독서하브루타 - 생각숲으로 떠나는 질문여행
황순희 지음, 박선하 그림 / 팜파스 / 2017년 5월
평점 :
독서지도를 해온 지는 오래되었지만 독후활동은 '쓰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공유의 중요성을 알기에 어떻게 하든 나누려고 했지만 그 나누는 것 역시 글을 통해서였다. 일단 쓴 것을 발표한다든가, 소식지에 글을 실어서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눈다든가..... 물론 이러한 방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그 안에서 많은 결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한계를 좀 벗어나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하브루타와 질문이 있는 교실 책들을 접하면서 한계를 벗어날 방법은 여기에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동시에, 여기에 나의 약점이 있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으니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남한테 말을 시키는 일'이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데 굳이 말을 시키는 일이 나는 정말 하기 싫다. 연수에 가서도 억지로 말을 시키는 연수면 일단 미간을 찌푸린다. (하지만 일단 말을 시키면 못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런 연수에서 사실 배우는게 많다.^^;;;;)
교실에는 나 같은 아이들이 많이 앉아 있다. 말시키는게 귀찮은 아이들. 차라리 쓰는게 편한 아이들.(아니 사실은 쓰지도 않는다면 더 좋을 아이들이겠지 ㅎ) 이런 아이들을 구슬러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것은 나에게는 역부족일 뿐 아니라 그 싫은 심정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큰 약점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래서 작년 수업부터는 사회나 도덕 수업에서 질문교실의 기법들을 조금씩 적용해 보았다. 쉽지는 않았다. 시간에도 쫓기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질문만들기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이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올해는 돌려읽기 독후활동을 쓰기활동에서 말하기 활동으로 전면 전환했다. 고학년이라면 쓰기에서 좋은 결과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아까워서 망설였을텐데 올해 2학년을 맡아서 쓰기에 대한 미련을 아낌없이 버리고 일단 말하기에 집중해 보았다.(2학기에는 천천히 쓰기도 도입할 생각이다. 말하기 내용을 바탕으로)
이런 상황 중에 있으니 이 책은 내게 꼭 읽어봐야 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이라는 제목처럼 학생독자를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독서 하브루타를 시도해 보려는 교사들에게도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이다. 솔직히 '아이들이 이런 책을 굳이 읽을까?' 라는 생각이 좀 든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한 교사들의 지침서라고 하는게 좀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저자 황순희 선생님의 수업은 쉬운 텍스트에서 시작하여 깊고 창의적인 사고로 이어지게 한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이를 위하여 선생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텍스트는 이솝우화다. 매우 짧고, 한번쯤은 다 들어봤으며 주제도 뻔한 것 같은 우화를 가지고 질문으로 꼬리을 잇는 대화를 나누다보면 기존 생각의 틀을 깨고 훨씬 깊이 있고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에 적당한 텍스트로 두번째는 그림책이다. 이 책의 3장에서는 <야쿠바와 사자>라는 책으로 진행한 수업사례를 소개했다. 이 그림책을 처음 읽었을 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 아이들과 아주 깊이있게 다룬 기록이 나와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여기에서 '모둠 간 내용 파악하기' 등의 수업기법들도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에서 키울 수 있는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서술해 놓았다. 4장은 창의성과 심미적 감성 역량, 5장은 논리적 사고력과 탐구력 이런 식으로 말이다. 독서 하브루타를 통해 이렇게 다양한 역량을 키울 수 있다니 참 대단한 일이다. 저자 선생님의 수업을 보니 하브루타를 통해 생각나누기를 하고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활동까지 이어지게 했는데, 여러 역량의 개발에는 이 표현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 즉 말하기에서 끝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 학생 : 그런데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왜 표현활동까지 해야 하는 거죠?
교사 : 생각 나누기만 해도 우리의 생각을 키우기에 아주 좋아. 하지만 생각나누기에서 그치면 풍성해진 생각이 오래 남지는 못하거든. 그러나 생각한 것을 작품으로 남기는 활동까지 하면 그 생각을 되새기게 되어 오래 남는단다.』 (본문 100쪽)
예전의 내 방식이 생각을 살찌우지 못하고 바로 표현활동으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면, 지금 말하기에서 그치는 방식은 열어만 놓고 수렴을 하지 못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말하기에다 예전의 표현활동을 잘 이어서 결합시켜야 완성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 그런데 사실 책을 읽히고, 생각 나누기를 하고 표현활동까지 하게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저자는 주로 짧은 본문을 사용하신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나는 짧은 본문으로만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러면 더더욱 슬로리딩에 가까운 충분한 시간투자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수석교사인 고수 저자의 수업을 엿볼 수 있어서 참 의미있었다. 맛을 다 아는 것 같은 본문을 씹고 또 씹어 새로운 맛을 느끼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표현활동을 창조하게 하는 저자의 역량은 쉽게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와 같은 수준으로 진행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책에서 던져준 생각과 아이디어로 나의 수업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보며 나에게 맞는 방법을 세우도록 노력해 보겠다.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