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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가르다 - 제6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샘터어린이문고 51
김혜온 지음, 신슬기 그림 / 샘터사 / 2017년 10월
평점 :
특수교사이신 김혜온 선생님과 나는 지난 학교에서 3년간 같이 근무했다. 특수학급을 신설하던 해에 오신 선생님은 교실을 만드는 것 등 모든 초기작업부터 업무를 시작해 고생을 많이 하셨다. 처음에는 몇 명 안되던 아이들도 해가 갈수록 늘어났고 일반학교 안의 특수교사라는 한 명 밖에 없는 자리는 정말 그 책임이 막중하면서도 외로워 보였다.
그 힘들었던 첫해 겨울로 기억한다. 선생님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화를 쓰신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기에 깜짝 놀랐다. 놀랍고도 부러웠다. 한 가지도 똑똑히 하고 살기 힘든 세상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 동화를 쓰셨담? 언젠가 책이 나오면 도서실에도 사놓고 아이들에게도 권해주리라 다짐했었다.^^
생각보다는 오래 기다려 드디어 책이 나왔다. 그사이 정채봉문학상까지 수상하셔서 작품이 같이 묶여 나왔다. 가까운 지인 중에 저자들이 종종 있지만 동화작가는 처음이라 신기하다. 책 안에는 처음에 봤던 신춘문예작품, 문학상수상작품, 그리고 또 한 작품, 이렇게 세 작품이 들어있었다.
주인공이 모두 다른 시각이다. 장애아동 본인, 그 형제, 그리고 담임선생님. 세 작품 모두 선생님의 곧고 온순하고 섬세한 성품을 보여주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신춘문예작 <천둥번개는 그쳐요?>에서 장애 오빠를 둔 여동생의 마음결을 어루만지는 선생님의 작고 섬세한 손길을 느꼈다면 표제작 <바람을 가르다>에서는 웬만한 건 휙휙 넘길 것 같은 유쾌하고 대범한 손길이 느껴졌다. <해가 서쪽에서 뜬 날>에서는 커다랗고 호탕한 웃음이 느껴졌다. 평소 선생님이 그렇게 웃으시는 걸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의 선생님은 첫 작품의 여동생을 품으신 그 모습이 가장 어울린다. 하지만 내가 본 모습은 선생님의 극히 일부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했다.
일반교사도 그렇지만 특수교사는 다양한 인간관계와 마주해야 한다. 장애학생, 그를 둘러싼 일반학생, 장애학부모, 이들을 보는 일반학부모, 그리고 학급담임교사 등등.... <바람을 가르다>에서는 이 모든 관계를 거의 다 다루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사람은 장애학부모, 찬우의 엄마다. 온몸으로 찬우를 덮어주는 이불이 되겠다는 테세로 살아가고 있지만, 다 보인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이. 그럴 때 대책없는 종류의 인간 용재를 만난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는 다행이 정말 많다. 찬우를 태운 용재의 자전거가 사고가 났을 때, 용재보다 찬우가 덜 다친 것도 다행이고(용재야 미안) 그바람에 찬우엄마가 큰소리 못내고 찬우의 설득에 넘어간 것도 다행이고, 용재엄마가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어서 "저런 애 때문에 우리 아들이 부상을!" 하면서 길길이 날뛰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그래서 바람을 가르는 시원함을 독자에게도 선사해 주었다. 많이 보고 싶은 장면들이다. 단, 현실에선 다치는 것은 빼고.^^
마지막 작품 <해가 서쪽에서 뜬 날>의 마선생님은 카리스마 빼면 시체인 산적 캐릭터의 남자선생님이다. 나랑 딱 정반대라 하겠다. 하지만 비슷한 점이 하나 있으니, 성격이 급하고, 그리고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다. 그건 자폐아동인 유빈이에게 참을 수 없는 자극이어서, 마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7년간 고수해오던 캐릭터를 타의에 의해 수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마선생님에게도 행복이었다. 그래, 이렇게 장애학생의 존재는 교실의 복덩이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반에도 올해 이런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수시로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근데 내가 열받은 걸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면 내 턱 밑으로 들어와 나를 제지한다. "안돼~ 그러지마! 화 안낼거지? 힝힝"
나야 물론 머쓱하지만 일은 없던 걸로 된다.ㅎㅎ
장애는 꼭 치료나 극복의 대상인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냥 그대로를 존중하며 서로에게 스미어 사는 것이라고. 올해 한 녀석이 나에게 다가와 "♡♡이(위에서 말한 아이)는 행복할까요?" 라고 근심어린 낯빛으로 물은 적이 있다. 이 책이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할 수 있지. 우리가 함께만 한다면 말이야!
현실적으로, 디테일에서의 어려움과 갈등은 언제 어디서든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는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과제가 될 것이다. 그 세상과 작가의 작품세계를 큰 박수로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