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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통구 ㅣ 환상책방 3
강정연 지음, 국민지 그림 / 해와나무 / 2015년 10월
평점 :
아이들이 커가고, 온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밥을 먹는 횟수도 줄어들게 되면서, 나는 음식에 들이는 시간이 점점 아까워졌다. 아이들 어릴 때는 밤늦게까지 김밥재료를 준비해놓고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기도 하고, 속재료를 바꾸어가며 여러 가지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하고, 돈까스도 직접 만들어 튀겨서 야채와 함께 큰 접시에 담아 제대로 외식 기분을 내면서 먹어 보기도 하고, 맛있는 양념장을 만들어 국수를 비벼먹기도 하고... 이런저런 먹을 궁리를 하고 그걸 함께 먹는 시간들이 행복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모든게 귀찮다. 적당히 때우는게 장땡이다. 사먹는 혼밥이 가장 편하고 맛있다.
이 책을 읽으니 숨어있던 따뜻한 요리의 추억이 스며나오는 느낌이 들면서.... 내가 만든 따뜻한 음식을 누구에겐가 건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누구에겐가 따뜻한 밥은 참 절실한 것이다. 아니 누구에게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상구는 늘 지각을 하고 선생님께 혼이 난다. 그 선생님이 나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우리반의 그 아이는 지금 이런 상황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상황을 가장 먼저 알고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고.... 상구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엄마는 떠났고 상구는 아빠가 맡고 있다. 하지만 아빠는 자기 한몸 주체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또 아침일찍 출근을 한다. 상구를 깨워 주지도 못하고. 맞춰놓은 알람도 소용없이 상구는 늘 지각이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말라비틀어진 피자 조각이나 차가운 김밥조각은 보기도 싫다.
그런 상구의 등굣길에 먹음직스러운 시루떡 한 접시와 쪽지 한 장. 난 떡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상상만으로도 침이 꿀꺽 넘어갔다. 보낸 사람은 -길 건너 큰 집 새로운 이웃-
학교에 다녀오니 이번엔 설탕가루가 반짝이는 맛있는 도넛(꿀꺽...)과 함께 놀러오라는 초대장이,
다음날 아침에는 맛난 샌드위치와 따뜻한 우유가,
기운 빠진 날 오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가 상구를 반긴다.
이렇게 상구의 끼니를 챙겨주는 이웃은 누구였을까? 사람이 아닌 괴물이었다. 둘은 닮은 점이 있었다. '모두 나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할머니한테도, 엄마한테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떠밀린 상구처럼 괴물도 외로움에 가출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 괴물은 자기 이름을 통구라고 짓고(통통 튀는게 특기라서?) 상구와의 따뜻한 시간을 즐긴다. 상구가 집에 찾아왔을 때 그야말로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준다. 보글보글 찌개에, 파송송 계란말이에, 고소한 생선구이에 아삭아삭 김치까지.
“많이 먹어, 상구야.”
“많이 먹어, 통구야.”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이었을까.
상구네 가족이 따뜻함을 회복하고 상구에게 이런 밥상을 차려주게 된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환경적 변화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상구가 통구를 만난 것은 그래서 다행이다. 가족에게서만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가족의 의미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요즘, “많이 먹어”를 해줄 수 있는 사람과 대상은 나일수도 있고 너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는 나는 오늘도 퇴근길에 순대국을 포장해와서 한 끼 때웠구나... 1000원 더 내면 특으로 포장해 주는데 대접으로 4그릇이나 나온다. 밤늦게 들어온 딸이 "엄마 배고파" 하는데 잠에 취해 "그거 순대국.... 퍼서 밥말아 먹어" 라고 했던가...^^;;; 나도 가끔은 힐링푸드를 준비해 봐야겠다. 전에없이 오래가는 감기로 요즘 늘 헤롱모드인데 이것만 좀 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