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복제가 되나요? 창비아동문고 291
이병승 지음, 윤태규 그림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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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두껍지 않은 동화집에 8편이나 되는 단편이 담겼다. 각 편의 길이가 짧다는 뜻이 되겠다. 표제작인 첫편을 읽고는 엥? 이정도의 주제를 이렇게 짧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작품들의 느낌이 다 색다르고 주제도 내용도 다양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짧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묵직한 주제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 역시 여느 책들에 비하면 짧은데, 작가는 여기에서 창작에 따른 본인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동화의 계몽성과 작가의 주제 의식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아동문학은 현실을 어디까지 반영해야 하는가?"

그동안 읽었던 작가의 작품이 그리 많지 않지만(검은 후드티 소년, 난 너무 잘났어 정도) 그런 고민들로 세상에 내놓았던 작품들이구나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그중에서 특히 이 책이 더욱 그런 것 같다.

- 필요에 의해 인간복제가 성행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가? (마음도 복제가 되나요?)

- 오래된 자전거를 방치한 채, 새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는 동우. 둘이 함께한 하루의 모험 뒤 새것을 포기하는 동우. 내 곁에 잊혀진 소중한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달려라 나의 고물 자전거)

- 할아버지와 소년의 우정. 그 속에서 배움의 의미를 비로소 찾아내는 소년 (우주 전파사 할아버지)

- 전형적 여성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엄마, 아빠와의 첫 결혼엔 실패한 엄마, 그런 엄마를 사랑하는 아저씨를 보는 아들의 마음 (레슬링 아줌마와 스파이더맨 아저씨)

- 좋은 집에서 없는 거 없이 살다 사업이 망해 좁은 반지하로 이사온 은찬이. 숨이 막힐 것 같이 좁던 반지하가 점점 넓어보이는 체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내가 작아지면 돼)

- 그림에 열망이 있지만 부모에게 버려지고 할머니에게 얹혀진 주제라 꿈도 꿀 수 없는 태호. 이 꿈이 가능하게 해 주는 두 어른의 역할 (제자입니다!)

- 고양이 벽화로 유명해져 동네는 발전하지만 그 혜택은 커녕 동네에서 밀려나야 되는 원주민들의 아픔-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 (여긴 내 자리야)

- 서예시간의 조용함을 즐기는 아이, 부모님의 갈비집 한구석이 공부방이며 침실인 아이의 이야기 (5교시 서예 시간)

'제자입니다!'의 두 어른(담임 선생님과 화가)같은 어른이 못되어줘서 나를 거쳐간 모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이름난 곳에 가서 구경하긴 좋아하지만 그 이면에 갈수록 외곽으로 밀려나는 못가진 사람들의 애환이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못했다. 이와 같이 작가의 화두인 주제의식은 세상 구석구석을 향한 독자의 감각을 일깨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작아지면 돼>에서 부유에서 빈곤으로 전락한 아이가 긍정적으로 적응법을 찾아가는 모습이 참 건강해서 보기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5교시 서예시간>에서는 주제와는 상관없이 이 대목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주변은 점점 더 조용해진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다.
아, 조용하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거다."
".....시끄럽다. 정말 시끄럽다. 정신이 쏙 빠지게 시끄럽다. 시끄러운 건 불행한 거다."

왜 맥락없이 이 대목에 꽂히지..... 음냐~ㅋ 다시 작가의 말로 돌아가서, 나는 주제의식이 선명한 작품보다는 그냥 동화의 맛이 느껴지는 재밌는 작품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런 작품도 좋다. 계몽적이기보다는 따뜻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평소 지나치는 것들을 살피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작가의 마지막 말, "그런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해 주실 테고 저는 그저 꾸준히 써나가는 수밖에 없겠지요."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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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브레멘 그림책이 참 좋아 46
유설화 글.그림 / 책읽는곰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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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거북과 으리으리한 개집은 내가 구입해서 읽고 학급문고에 꽂아둔 책인데 아침독서시간에 보면 누군가는 꼭 읽고 있다. 1년만에 헌책이 되어버렸지만 그만하면 본전은 뽑고도 남았다두 책 모두 맘에 꼭 들어 서평도 썼던 책들그 작가인 유설화 님의 새 그림책이 알라딘 화면에 뜨길래 덜컥 구입했다어쩜... 이 책은 더 좋다뭔가 가슴 밑에서 울컥 솟아오른다엄청 웃긴데 뭔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재작년내 교직 생애 최악의 아이들과 종업식을 앞두고구질구질 잔소리도 하기 싫고 그렇다고 사랑한다 축복한다 이런 낯간지러운 소리는 사절이고 해서 임팩트 있는 그림책 한방으로 끝내려고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마땅한 게 생각나질 않았었다이 책을 보니 딱 그때 내가 찾던 바로 그런 책이다실패자는 없다분노하지 마라너도 쓸모가 있다괜찮다할 수만 있다면... 분노를 승화시켜라아름다운 것으로......

 

만약 내가 이런 말을 그냥 쌩소리로 애들 앞에서 한다면 그게 무슨 망발이냔 말이다그게 가능하냐나도 그렇게 못하면서그러나 이 책은 보여준다그게 환상이라도 좋다가능성의 길은 넓지 않대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닐 터그리고 길을 찾는 아이들은 더 이상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다 쓰지 않을 터.

 

밴드 브레멘』 제목만 보아도 어떤 책의 패러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브레멘의 음악대난 이 책을 참 좋아했었다등장인물과 설정은 거의 같다사람들에게 학대당하거나 버려진 동물들(고양이)이 사람을 떠나 도망친 길에서 만나게 된다그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다. (이 대목은 그동안 봤던 동물권 관련 어떤 책들보다도 짧지만 강렬했다그런 주제로 이 책을 다루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말은 한때 촉망받는 경주마였으나 다리를 다친 후로는 마차를 끄는 신세가 되어 주인에게 모진 구박을 받았다개는 실험실에서 온갖 주사를 맞았다눈까지 멀게 되자 사람들은 마지막 주사를 준비했고....ㅠ 닭은 날개 펼 틈도 없는 양계장에서 품어보지도 못할 알만 낳았다산란능력이 떨어지자 팔려갈 신세가 되었다고양이는 사람 손에 자라다가 난데없이 버려져 길고양이로 험난한 생활을 해야 했다.

 

넷은 이제 뭐할까 고민하다 브레멘 음악대를 생각해냈다고양이와 개는 목청껏 노래를 뽑았다닭은 비좁은 닭장 생활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날개를 펼치고 춤을 추었다말은 말굽으로 장단을 맞추었다.

 

내일부터 공연을 다니기로 한 브레멘 음악대는 숲속에 들어갔다가 모닥불 주변의 사람들을 발견한다브레멘 음악대가 사람들을 쫓아내던 방법 그대로동물들은 한꺼번에 어마어마한 소리를 질렀다.

 

오우그런데 이게 웬일이지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반기는 거였다. ‘진짜 브레멘 음악대가 나타났다며.... 그들은 밴드 브레멘의 멤버들이었다고래섬 음악 축제(ㅋㅋㅋ)에 가려고 준비중이란다사람에 대한 원망을 쉽사리 놓을 수 없었던 동물들이었지만 밴드 브레멘의 노래에 어느덧 장단을 맞추며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린 버려졌지♪ 우린 지워졌지

우린 감춰졌지♪ 우린 쓸모없지

우린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우린 꿈꿀 거야♪ 계속 꿈꿀 거야

우린 잘 살 거야♪ 잘 잘아 낼 거야

우리 쓸모는♪ 우리가 찾을 거야

.........

 

드디어 도착한 고래섬 음악축제어마어마한 구경꾼들 사이에서 밴드 브레멘의 공연이 시작된다......

 

에필로그와도 같은 마지막장은 신문기사로 구성되어 있는데밴드브레멘의 데뷔 소식과인기곡 TOP 10의 제목들이 재미있다. 1쓸모없는 것들의 노래 2실험이 끝나면 행복해질까? 3길 위의 생명들 4닭장은 이제 됐어등등... 이중에는 작가의 전작 제목도 나오고 등장인물도 나오는 등작가의 귀여운 홍보가 깨알재미를 준다.ㅎㅎ 마지막으로책의 앞면지와 뒷면지를 비교해보면 이 책의 해피엔딩에 다시 한 번 마음이 흐뭇해진다.

 

낼모레가 종업식이다. 2학년이지만 이 책을 읽어줄까고래고래 목소리를 주체 못하던 박 군과 흔들흔들 움직임을 주체 못하던 정 군을 불러내어 노래 부분을 맡기고 나머지는 내가 읽어주어야겠다이렇게 해서 유쾌한 1년을 마무리하고 새 1년을 준비한다미련 따위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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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이유정 푸른숲 작은 나무 13
유은실 지음, 변영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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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작가의『만국기 소년』을 읽었을 때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재미는 있었지만 뭐랄까... 아팠다. 아니 그보다는, 불편했다..? 왠지 아이들에게는 별로 권하고 싶지가 않았다.

중학년 정도를 대상으로 좀 더 짧고 쉽게 나온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는 불편하지도 않았다. 내가 작가의 코드에 익숙해진 것인가? 아니면 작가가 날카로운 부분을 좀 깎아낸 것인가? 그건 모르겠다. 다 읽자마자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내밀었다. 어떤 곳에서는 저학년용으로 추천하기도 하던데, 책이 얇기는 하지만 좀 공감하면서 읽으려면 고학년도 괜찮을 것 같다.

첫 번째 이야기『할아버지 숙제』는 참 고소한 이야기다. 으스대고 자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를 기대하고 집으로 달려갔건만,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은 왜 한결같이... 주정뱅이 아니면 노름꾼이었는지... 숙제를 앞에 둔 경수는 좌절한다. 사실을 알려주는 할머니 앞에서 화를 내는 아빠보다, 담담하게 사실을 알려주는 엄마가 여기서는 훨씬 현명해 보인다. 어쨌든. 경수는 숙제를 다 했다. 할머니와 엄마의 코치를 받아서. 술주정뱅이였다... 라고 쓰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거짓말은 아니게. 다 쓰고 읽어본 경수는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고 한다. 그럼 됐지 뭐... 사는 게 다 그런거지. 세상에 다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와 다 자랑스러운 아버지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사람 다 거기서 거기다. 핑계 대지 말고 내가 잘 살아야 되는 거다. 생각해보니 나도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해 주고 싶었다. 내가 자랑스러운 엄마가 아니라서 그런가... 어쨌든, 첫 이야기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냥』은 엄마의 출산 때문에 고모집에 며칠 살게 된 진이의 ‘해방기’이다. 아빠의 누님인 고모는 나이만큼 마음도 넉넉해서 아이를 닦달할 줄 모른다. 자기 집보다 훨씬 좁은 고모집을 나오면서 진이는 ‘고모집은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새장에 가두는 부모들이 한번쯤 생각해야 될 대목이다.

표제작인『멀쩡한 이유정』은 다른 건 멀쩡한데 심각한 길치인 유정이의 이야기다. 4학년인데 집을 못찾아서 늘 동생과 함께 다녀야 하는 유정이. 누구에게나 잘 안 되는 일이 있다. 나만 해도, 운전을 못한다. 배울 엄두도 내 본 적이 없다. 내 차 망가지고 돈 드는 건 괜찮은데, 다른 사람 다치게 하면 평생 어떻게 살아가나? 이런 두려움 때문에 누구 말마따나 '사지 멀쩡하고 대학까지 나온^^;;' 내가 운전을 못한다. 솔직히 나는, 자전거도 못 탄다. 가끔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 같은 모지리도 없어” 이러고 떠들고 다닌다. 하지만 난 <멀쩡히> 직장생활 잘 하고 살아간다. 그러니, 남의 약점에 호들갑을 떨지 말고 이해하고 배려할 일이다.

『새우가 없는 마을』 난 이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눈물까지 났다. 빈병 줍는 일로 살아가시는 생활보호자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는 기철이. 조손간의 대화가 어찌나 실감나는지, 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읽기까지 했다. 난생 처음 <진짜 짜장면>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 왕새우를 먹으러 갔다가 대형마트와 카트에 좌절하고 발길 돌릴 때의 대화.... 작가 특유의 유머가 들어있긴 한데 왜 눈물이 나는지....

『눈』을 읽으며 나는 작가가 혹시 하나님을 믿는 분인가 궁금해졌다. 그간의 작품을 볼 때 무신론자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빠를 잃고 매사에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는 영지를 놓고 엄마는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영지는 불공평해서 억울한 게 많습니다. 우리 영지가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아빠를 살려달라는 기도도 들어주시지 않던 하나님이 어찌 이런 기도는 금방 들어주시는지, 바로 다음날 옥상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영지 눈앞에 장갑도 못끼고 눈을 만지는 옆집 옥탑방의 아이가 나타난다. 장갑이 두 개인 건 어떻게 알고... 엄마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걸 끝까지 방해하려던 영지는 결국 포기하고(장갑을 꽁꽁 뭉쳐 옆집 옥상에 던져주고) 새 장갑을 끼며 되뇌인다. “이건 못 줍니다. 절대 못 줍니다.”
난 여기서 하나님의 미소를 보는 듯 했다. 작가는 어떤 뜻에서 쓰셨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은 요지경이고 어디에도 하나님의 뜻 같은 건 없어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내 뜻이 맞다고 부르짖고 싶은 순간들이 종종 닥친다. 그 때 내가 하는 행동이, 영지와 크게 다를 것 없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느낀다. 그것까지도 예쁘게 보아주셨다는 것을...

쓰다보니, 어린이용 짧은 단편에 이렇게 인생의 이야기를 많이 담을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이 다시 한 번 존경스러워진다. 자기가 살아 온 세월만큼, 겪고 생각한 것만큼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도 이 책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게 어른의 욕심이라면 그냥,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책이다.


(2009년에 다른 곳에 썼던 것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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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식까지 1주일이 남았다. 국어 진도는 다 끝났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만들기 수업을 하기로 했다. 올해는 <와우의 첫 책>으로 시작을 했다. 자료도 필요없고 아주 간단했다. 와우가 작가 구렝 씨의 이야기를 받은 직후, 황조롱이에게 잡혀가서 황조롱이 아가들에게 맨 처음 시작한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너희들이 나머지를 만들어 봐. 다 만들고 나면 와우가 지은 이야기를 읽어줄게.”

그리고 우리반이 이런 것에 얼마나 소질이 있는지를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이제 쓰기 시작, 그 시끄럽던 우리반 교실에 연필 사각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창작의 즐거움에 빠진 아이들의 눈에서 빛이 난다.

 

아쉽게도 시간이 얼마 안남아서 반 정도의 아이들만 완성된 이야기를 내고 나머지는 집에서 완성해오겠다며 가지고 갔다. 오늘 낸 아이들 것도 꽤 괜찮다. 1년간 책을 많이 읽어준 정선생, 아이들에게 작가의 씨를 심어준 것인가?ㅎㅎ 자화자찬은 그만 하고 두 편만 소개한다.^^

 

<와우의 첫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첫머리는 이렇다.

옛날 옛날에 너불이라는 뱀이 살았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사람 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가 글쎄 뱀이 되고 싶다는 거야.

 

(아이가 이어 지은 이야기1)

너불은 이 생각 저 생각을 했어.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났어.

우리 마술사님한테 가서 우리 몸을 바꿔달라고 하자!”

좋아!”

뱀 너불과 아이는 마술사에게 갔어. 아이는 마술사에게 몸을 바꿔달라고 했지. 마술가는 안된다고 했지만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어. 결국 둘의 몸이 바뀌었지. 뱀은 아이로 아이는 뱀으로.

뱀 너불은 아이의 집으로 갔어. 아이의 엄마는 요리를 하고 아빠는 일을 하고 있었어. 너불은 적응이 안됐지. 밥을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도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지.

한편 뱀이 된 아이는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 잔소리, 학교가 없어서 좋았어. 근데 마술사가 주의를 주었지. “아이야, 독수리를 조심해. 안 그러면 넌 없어지고 말 거야. 꼭 기억해!”

하지만 아이는 독수리가 누군지 몰랐어. 그래서 숨어만 다녔어. 어느날 나무 밑을 가는데 독수리가 나타났어. 아이는 도망쳤어. 하지만...... 결국 사라졌어.

너불은 어떻게 됐냐고? 적응을 잘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아이는 사라졌지만.

 

(아이가 이어 지은 이야기2)

뱀은 말했어. “너는 뱀이 되면 안 돼!”

?”

너는 엄마와 아빠가 있어. 하지만 니가 뱀이 되면 사람 말도 못하고 엄마와 아빠도 만날 수 없어. 그래도 괜찮니?”

아이는 계속 망설였어. 그러더니

그럼 엄마와 아빠도 뱀이 되면 되잖아.”

뱀은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어떻게 저 아이와 엄마 아빠를 뱀으로 만들지?”

뱀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불러왔어. 뱀은 엄마 아빠를 보고 말했어.

이 아이가 뱀이 되고 싶대요.”

엄마가 말했어.

뱀이 되고 싶다고? 뱀처럼 하고 싶은 거겠지!”

아니야! 난 뱀이 되고 싶어!”

뱀은 물었어요. “넌 왜 계속 뱀이 되고 싶니?”

나는 항상 학교에서 애들한테 맞고 놀림 받고 괴로워. 그리고 엄마아빠는 놀아주지 않고 말을 들어주지도 않잖아!”

엄마 아빠는 깜짝 놀랐어요. “미안해. 엄마는 학교생활이 좋은 줄 알았어....”

그 뒤로 아이는 뱀한테 오지 않았어요.

 

내새끼들이지만 정말 기특하지 않은가? 보통 이야기를 지으라고 하면 때리고 부수고 찌르고 쑤시다가 다 죽고 끝나는 엽기결말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이런 설명도 했다.

얘들아, 이야기에는 법칙이 없는 것 같지만 잘 보면 법칙이 숨어 있기도 해. 예를 들면 못된 짓을 마구 하다가 그냥 끝나는 이야기가 있니?”

“....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그런 사람은 보통 어떻게 되니?”

댓가를 치러요.”

그렇지, 벌을 받든가, 뉘우치든가 하지? 그러니까 마구 때리고 총쏘고 죽이다 끝나는 거 말고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오도록 잘 써 봐.”

그런 단서가 붙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엽기폭탄 결말은 하나도 없었다.

내일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주고 폭풍 칭찬을 해줘야겠다. 남아있는 비타민과 사탕도 대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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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마지막 바이올린 생각쑥쑥문고 12
안나 만소 지음, 가브리엘 살바도 그림, 오세웅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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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서관의 추천목록에 중학년용으로 올라 있어서 구입해 봤다. 스페인 작가의 작품은 읽은 기억이 거의 없고 이 작가의 이름 역시 생소하다. 작품은 잔잔하게 참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그리 재미있고 몰입된다는 느낌은 못받았다. 그래도 아주 신선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었다는 생각은 든다.

신선하다고 해서 현대적 소재인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다. 옥타비오의 아빠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다. 옥타비오는 아빠의 작업을 하루종일 지켜보는 게 취미다. 아빠의 작업에서 한 대의 악기가 탄생하는데 얼마나 많은 단계와 세심한 작업이 필요한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들의 이 세월 말아먹는 취미를 용인해주는 아빠는 요즘 부모님들과는 조금 다르다.

"아빠는 다른 부모님들처럼 아들에게 받아쓰기 숙제나 암산 공부를 시켜야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빠는 작업실에 옥타비오만을 위한 작은 책상을 만들어 주었고, 그곳에서 옥타비오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하게 해주었다. 그 덕분에 옥타비오는 아빠가 바이올린을 만드는 과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하긴 아빠보다도 아들이 더 특이하긴 하다. 이런 취미를 가진 아이는 흔치 않을 터.

이 책의 위기와 갈등은 어느날부터인가 닥쳐온 아빠의 손떨림으로부터 시작된다. 정밀작업을 해야 하는 아빠에게 그 증상은 절망적이다. 같은 증상을 가진 나는 이때부터 숨을 멈춘듯이 읽어나갔다. 갑자기 다가온 손떨림은 어떤 병인걸까? 파킨슨병은 아닌것 같고, 나같은 본태성진전증은 어릴때부터 나타나는데...
병명을 밝히지는 않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아빠는 더이상 장인의 일을 계속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알게된 수집상인이 거액의 돈을 제시하며 마지막 바이올린을 제작해달라고 한다. 고민하던 아빠는 제작하기로 결심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작품을 만드는 아빠와 그 옆을 지키는 아들은 이미 소울메이트라고 할까? 아빠는 그 바이올린을 팔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의 제목인 '아빠의 마지막 바이올린' 그것은 거액의 수집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는 선물이 되었다. 옥타비오는 바이올린 연주에 소질도 없고 연주자가 꿈도 아니지만 바이올린을 연습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빠처럼 훌륭한 현악기제작자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래도 아빠가 만들어 준 마지막 바이올린을 더 잘 연주하고 싶어 열심히 연습할 생각이다.
비록 서투를지언정 노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정말이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꿈을 얘기하는 책을 읽어주게 된다면 그 큰 꿈을 이야기하는 온갖 자기계발서들을 치우고 이 책을 읽어주는게 어떨까 싶다. 꿈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을 만날 수도 있고, 그 난관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일에 나의 최선을 다 쏟는 것, 서툴러도 노력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좀더 입에 착착 감기는 문장과 속도감 느껴지는 재미를 가졌다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할지는 좀 자신이 없다. 뭔가 다가옴이 느껴지는 아이들에게는 인생책이 될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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