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식까지 1주일이 남았다. 국어 진도는 다 끝났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만들기 수업을 하기로 했다. 올해는 <와우의 첫 책>으로 시작을 했다. 자료도 필요없고 아주 간단했다. 와우가 작가 구렝 씨의 이야기를 받은 직후, 황조롱이에게 잡혀가서 황조롱이 아가들에게 맨 처음 시작한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너희들이 나머지를 만들어 봐. 다 만들고 나면 와우가 지은 이야기를 읽어줄게.”
그리고 우리반이 이런 것에 얼마나 소질이 있는지를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이제 쓰기 시작, 그 시끄럽던 우리반 교실에 연필 사각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창작의 즐거움에 빠진 아이들의 눈에서 빛이 난다.
아쉽게도 시간이 얼마 안남아서 반 정도의 아이들만 완성된 이야기를 내고 나머지는 집에서 완성해오겠다며 가지고 갔다. 오늘 낸 아이들 것도 꽤 괜찮다. 1년간 책을 많이 읽어준 정선생, 아이들에게 작가의 씨를 심어준 것인가?ㅎㅎ 자화자찬은 그만 하고 두 편만 소개한다.^^
<와우의 첫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첫머리는 이렇다.
옛날 옛날에 너불이라는 뱀이 살았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사람 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가 글쎄 뱀이 되고 싶다는 거야.
(아이가 이어 지은 이야기1)
너불은 이 생각 저 생각을 했어.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났어.
“우리 마술사님한테 가서 우리 몸을 바꿔달라고 하자!”
“좋아!”
뱀 너불과 아이는 마술사에게 갔어. 아이는 마술사에게 몸을 바꿔달라고 했지. 마술가는 안된다고 했지만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어. 결국 둘의 몸이 바뀌었지. 뱀은 아이로 아이는 뱀으로.
뱀 너불은 아이의 집으로 갔어. 아이의 엄마는 요리를 하고 아빠는 일을 하고 있었어. 너불은 적응이 안됐지. 밥을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도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지.
한편 뱀이 된 아이는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 잔소리, 학교가 없어서 좋았어. 근데 마술사가 주의를 주었지. “아이야, 독수리를 조심해. 안 그러면 넌 없어지고 말 거야. 꼭 기억해!”
하지만 아이는 독수리가 누군지 몰랐어. 그래서 숨어만 다녔어. 어느날 나무 밑을 가는데 독수리가 나타났어. 아이는 도망쳤어. 하지만...... 결국 사라졌어.
너불은 어떻게 됐냐고? 적응을 잘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아이는 사라졌지만.
(아이가 이어 지은 이야기2)
뱀은 말했어. “너는 뱀이 되면 안 돼!”
“왜?”
“너는 엄마와 아빠가 있어. 하지만 니가 뱀이 되면 사람 말도 못하고 엄마와 아빠도 만날 수 없어. 그래도 괜찮니?”
아이는 계속 망설였어. 그러더니
“그럼 엄마와 아빠도 뱀이 되면 되잖아.”
뱀은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어떻게 저 아이와 엄마 아빠를 뱀으로 만들지?”
뱀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불러왔어. 뱀은 엄마 아빠를 보고 말했어.
“이 아이가 뱀이 되고 싶대요.”
엄마가 말했어.
“뱀이 되고 싶다고? 뱀처럼 하고 싶은 거겠지!”
“아니야! 난 뱀이 되고 싶어!”
뱀은 물었어요. “넌 왜 계속 뱀이 되고 싶니?”
“나는 항상 학교에서 애들한테 맞고 놀림 받고 괴로워. 그리고 엄마아빠는 놀아주지 않고 말을 들어주지도 않잖아!”
엄마 아빠는 깜짝 놀랐어요. “미안해. 엄마는 학교생활이 좋은 줄 알았어....”
그 뒤로 아이는 뱀한테 오지 않았어요.
내새끼들이지만 정말 기특하지 않은가? 보통 이야기를 지으라고 하면 때리고 부수고 찌르고 쑤시다가 다 죽고 끝나는 엽기결말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이런 설명도 했다.
“얘들아, 이야기에는 법칙이 없는 것 같지만 잘 보면 법칙이 숨어 있기도 해. 예를 들면 못된 짓을 마구 하다가 그냥 끝나는 이야기가 있니?”
“....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그런 사람은 보통 어떻게 되니?”
“댓가를 치러요.”
“그렇지, 벌을 받든가, 뉘우치든가 하지? 그러니까 마구 때리고 총쏘고 죽이다 끝나는 거 말고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오도록 잘 써 봐.”
그런 단서가 붙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엽기폭탄 결말은 하나도 없었다.
내일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주고 폭풍 칭찬을 해줘야겠다. 남아있는 비타민과 사탕도 대방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