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복제가 되나요? 창비아동문고 291
이병승 지음, 윤태규 그림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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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두껍지 않은 동화집에 8편이나 되는 단편이 담겼다. 각 편의 길이가 짧다는 뜻이 되겠다. 표제작인 첫편을 읽고는 엥? 이정도의 주제를 이렇게 짧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작품들의 느낌이 다 색다르고 주제도 내용도 다양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짧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묵직한 주제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 역시 여느 책들에 비하면 짧은데, 작가는 여기에서 창작에 따른 본인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동화의 계몽성과 작가의 주제 의식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아동문학은 현실을 어디까지 반영해야 하는가?"

그동안 읽었던 작가의 작품이 그리 많지 않지만(검은 후드티 소년, 난 너무 잘났어 정도) 그런 고민들로 세상에 내놓았던 작품들이구나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그중에서 특히 이 책이 더욱 그런 것 같다.

- 필요에 의해 인간복제가 성행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가? (마음도 복제가 되나요?)

- 오래된 자전거를 방치한 채, 새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는 동우. 둘이 함께한 하루의 모험 뒤 새것을 포기하는 동우. 내 곁에 잊혀진 소중한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달려라 나의 고물 자전거)

- 할아버지와 소년의 우정. 그 속에서 배움의 의미를 비로소 찾아내는 소년 (우주 전파사 할아버지)

- 전형적 여성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엄마, 아빠와의 첫 결혼엔 실패한 엄마, 그런 엄마를 사랑하는 아저씨를 보는 아들의 마음 (레슬링 아줌마와 스파이더맨 아저씨)

- 좋은 집에서 없는 거 없이 살다 사업이 망해 좁은 반지하로 이사온 은찬이. 숨이 막힐 것 같이 좁던 반지하가 점점 넓어보이는 체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내가 작아지면 돼)

- 그림에 열망이 있지만 부모에게 버려지고 할머니에게 얹혀진 주제라 꿈도 꿀 수 없는 태호. 이 꿈이 가능하게 해 주는 두 어른의 역할 (제자입니다!)

- 고양이 벽화로 유명해져 동네는 발전하지만 그 혜택은 커녕 동네에서 밀려나야 되는 원주민들의 아픔-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 (여긴 내 자리야)

- 서예시간의 조용함을 즐기는 아이, 부모님의 갈비집 한구석이 공부방이며 침실인 아이의 이야기 (5교시 서예 시간)

'제자입니다!'의 두 어른(담임 선생님과 화가)같은 어른이 못되어줘서 나를 거쳐간 모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이름난 곳에 가서 구경하긴 좋아하지만 그 이면에 갈수록 외곽으로 밀려나는 못가진 사람들의 애환이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못했다. 이와 같이 작가의 화두인 주제의식은 세상 구석구석을 향한 독자의 감각을 일깨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작아지면 돼>에서 부유에서 빈곤으로 전락한 아이가 긍정적으로 적응법을 찾아가는 모습이 참 건강해서 보기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5교시 서예시간>에서는 주제와는 상관없이 이 대목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주변은 점점 더 조용해진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다.
아, 조용하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거다."
".....시끄럽다. 정말 시끄럽다. 정신이 쏙 빠지게 시끄럽다. 시끄러운 건 불행한 거다."

왜 맥락없이 이 대목에 꽂히지..... 음냐~ㅋ 다시 작가의 말로 돌아가서, 나는 주제의식이 선명한 작품보다는 그냥 동화의 맛이 느껴지는 재밌는 작품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런 작품도 좋다. 계몽적이기보다는 따뜻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평소 지나치는 것들을 살피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작가의 마지막 말, "그런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해 주실 테고 저는 그저 꾸준히 써나가는 수밖에 없겠지요."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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