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손가락 수호대 살림어린이 숲 창작 동화 (살림 5.6학년 창작 동화) 1
홍종의 지음, 최민호 그림 / 살림어린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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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남의 일에 관심이 없고 남의 과한 관심도 싫어한다. 아이들 중에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만 신경쓰고 참견하는 아이를 아주 싫어한다.

하지만 난 인정한다. 세상은 오지랖 넓은 사람이 만들어 간다는 것을. 난 귀찮아서 혼자만의 세계로 숨어버리지만 그는 주변을 살피고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도와준다. 말하면 뭐하겠나 입만 아프다 하면서 외면하는 일을 그는 앞장서서 말하고 고치려고 애쓴다. 남의 상황에 휘말리면 감정이 낭비될까 두려워 한발짝 물러나지만 그는 기꺼이 휘말려 함께 아파하고 기뻐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물론 본인 심신이야 편치 않겠지. 그래서 나는 못하는 거구.

이 책은 그런 이야기다. 남의 어려움을 보고 그냥 못 지나치는 사람,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사람. 바로 은혁이의 아빠다. 그러나 아빠는 무사하지 못하다. 노인을 괴롭히는 불량학생들을 훈계하다 싸움으로 번져 오히려 폭력 전과를 갖게 되었고, 어느날 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지 피를 흘리고 들어왔다. 상황을 파악 못한 가족들은 밤을 그냥 넘겼고, 아빠는 의식을 잃어 병원에 실려간다.

이 일에 나서는 것은 철없는 초등학생 - 은혁이의 같은반 친구들이었다. 본의 아니게 이들은 다섯손가락 수호대라는 이름을 갖게 됐지만 모두들 성격도 스타일도 아주 다르다. 아이들의 부모도 마찬가지. 그리고 담임선생님도.... 아주 특이한 캐릭터다. '오늘도 무사히'만 바라는 무기력 무성의한 교사. (왜 교사들은 이렇게만 묘사되나? 하루하루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데, 라는 속상함이 좀 들었지만 나중에 보면 의외의 반전이 있다.)

결국 아이들은 아빠의 선의와 결백을 밝혀냈고 아빠의 오지랖 행위가 아니었으면 더 큰 고통을 당했을 사람들의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결국 작가는 오지라퍼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독자들도 그쪽에 서라고 등을 떠민다. 음냐.... 하지만 그가 남편이나 아들이라면.... 생각만 해도 살이 떨리니 어쩌랴. 그래도 이 정도로 몸을 던지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은 더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된다. 내가 곤경에 빠졌을 때 모두가 자기 앞가림만 한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그건 살맛나는 세상이 아니겠지.

마지막.... 무기력 무관심 담임선생님의 반전....ㅠㅠ
교사폭행과 병가의 트라우마가 그리 방어적인 교사를 만들었는데.... 다섯손가락 수호대의 엄마들이 선생님 책임도 아닌, 아이들이 벌인 일을 가지고 또 선생님을 그리 쥐잡듯이 잡았으니.... 동화의 서사 한편에서 교사의 트라우마를 이렇게 다루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마지막에 은혁이와 선생님이 서로 용서하고 격려하며 끝나게 되어서 다행이다. 선생님의 트라우마는 아마도 당장 극복하긴 어려울테지만.... 이런 관계가 쌓이다보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흑..... 관계도 어렵고 처신도 어렵구나. 내 앞가림도 어렵고 오지랖은 더욱 어렵고.... 어떻게 살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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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끝낸 파리 한마당 아이들
브린디스 뵤르기빈스노티르 지음, 안병현 그림, 김선희 옮김 / 한마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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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소개와 평이 무척 좋길래 손에 잡았는데 잘 읽히지가 않았다. 전쟁의 무의미함과 백해무익함, 절대적으로 막아야 할 필요성을 파리의 시점에서 서술하며 결국 전쟁을 끝내는데 파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니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고귀한 주제와 흥미로운 상상력을 다 갖췄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건 아닌데 뭔가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추측한다면 혹시 문체?가 아닌가 싶다. 동화 치고는 이야기의 맛을 느끼기 어려운 딱딱한 문체.... 저자는 아이슬란드의 작가인데 그 책 자체가 그러한지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었는지는 내가 알 수가 없다. 하여간 좋은 주제와 흥미로운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손에서 끝까지 책장이 넘어가기 쉽지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아쉬운데....

흥미로운 발단은 이렇다. 인간의 집에 살던 파리 콜겍스, 플라이, 해리 슈거는 어느날 집주인이 전기파리채를 홈쇼핑으로 주문한 것을 알아차리고 근심에 빠진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네팔의 어떤 승려들은 절대 파리를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택배가 도착하던 날 그들은 그 착한 승려들이 산다는 네팔을 향해 길을 떠난다.

(줄거리만 보면 엄청 재밌게 생기지 않았나? 근데 왜 읽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지 난 그게 의문이었다.) 이 여정에서 파리들은 아삼-배드라는 전쟁지역을 지나게 되고 그곳의 파리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이 이 전쟁에 휘말릴 것과, 결국 이것을 멈추는데 삶을 걸어야 할 운명인 것을 깨닫는다. 대체 미물 중에 미물인 파리들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전쟁을 멈춘단 말인가? 궁금하고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앞에 말한 대로 책장이 홱홱 넘어가지는 않아서 근근히 다 읽었다.^^;;;;

재미라는 것은 주관적인 느낌과 취향이니, 이런 주제의 작품을 쓴 작가에게 일단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전쟁을 선택하고 벌이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 그리고 평화의 가치와 소중함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말해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의지만으로 평화를 외치기 어려운 세상, 특히 그중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더욱 그렇다. 파리에게 배워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평화에 대한 의지 뿐 아니라 지혜로움에 있어서도.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 책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맛깔나는 영화언어를 가진 감독이 만든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스토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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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최고로 특별해지는 법
카트레인 베르에이큰 지음, 에바 마우튼 그림 / 푸른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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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최고로 특별해지는 법 / 카트레인 베르에이큰 / 푸른날개>

사람들은 모두 특별해지기를 원한다? 글쎄 그런 것도 같고 아닌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떤가? 나는 평범한 내가 그럭저럭 괜찮다. 어디서든 Top보다는 중간 조금 위, 중상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렇지만 속속들이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몹시 부럽다. 엄청 똑똑한 사람,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 뭐든 쓱쓱 그리는 사람, 감동적인 책을 쓰는 사람 등등.... 그러고 보면 나도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다고는 볼 수 없겠다.

이 책의 얀은 이름부터 시작해서 외모, 능력, 성격 등등 뭐하나 튀는 게 없는 아이다. 그게 지겨워진 얀은 특별해지겠다고 마음먹는다.
얀은 친구 니나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 세계기록을 세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지켜보니 그들은 하나같이 기괴할 정도로 별 도움 안되는 일에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한발 들고 뛰기, 손톱 기르기, 타자 치기, 트림 길게 하기 등등.... 일련의 경험 후 얀은 "나의 특별함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나를 내가 스스로 좋아한다는 거다." 라고 결론내린다.

그냥 "나는 꼭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평범하면 어때!" 해버리면 안되나?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이라며 정신승리를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러면 이 책의 주제 자체를 부정하는게 될테니.... 사람들은 모두 특별함을 추구하는게 거의 사실이다. 그게 지나쳐 주변을 힘들게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러나 사람들은(아이들은) 대부분 평범하며, 긍정적으로 특별한 사람은 비율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평범의 미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자기 분수를 알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세상을 돕는 일이다. 앗, 그러고보니 그게 특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학급 전체와 함께 읽을만큼 우선적인 매력은 못느꼈다. 하지만 얀처럼 특별함에 목맨 아이가 있다면 읽고 상쾌해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왜 꼭 특별해야 되는데?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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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질리언스 - 다시 일어서는 힘
천경호 지음 / 교육과실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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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 상처를 받는다. 온실의 화초처럼 별 위험 없이 살아온 나도 되돌아보면 아찔하고 아득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불킥 할 일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키웠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전의 나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나를 본다. 그것은 그 수없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해나 용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한 번의 잘못으로 나를 규정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 느낀다. 그런 내가 나보다 어린 세대의 사람들, 말하자면 자식이나 제자들을 볼 때 왜 그만큼의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자식은 한번 발을 헛디뎌 깊은 수렁에 빠질까 불안해하고, 제자는 한 시기의 못된 짓에 정나미가 떨어져 사랑하기 어려워한다. 이 책은 초반부터 이런 나를 위해 쓴 책임을 역설하고 있었다.

학습할 준비와 태도가 전혀 되어있지 않고 주변을 힘들게 하며 주변인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소위 '힘든'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어느 학급에나 있지만, 유독 어떤 학교 어떤 지역에 유난히 많기도 하다. 그것은 그 아이들의 양육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단번에 끊을 수 없는 고리와 같은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라도 안정감과 신뢰감을 느껴야 한다. 이 결정적인 역할은 아무래도 교사가 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헌신과 노력에만 모든 것을 맡겨야 할까? 학생 개인의 노력을 강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도 신뢰받는다는 확신이 필요하고 공격당하지 않는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들을 상대할 여유가 필요하다. 낭떠러지에서 한발 잘못 디디면 굴러떨어질 상태에서 인간은 생존과 방어를 생각하지 사랑과 헌신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리질리언스의 기본은 '신뢰'에 있다. 우리가 작은 역경에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불신과 그에 따른 회의 때문이다. 지탱할 것이 있어야 짚고 일어날 수 있듯이 나를 지지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사회는 우리에게 불신을 강요한다. 사회를 반영하는 학교 또한 그렇다. 친구들간의 갈등을 학교폭력이라는 프레임으로 보게 만들고 교사의 의도를 재단하고 의심하며 교사는 학부모를 극도로 경계한다. 이 안에는 각자도생만 있다. 즉 리질리언스는 없다.

어떤 한 해,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무지막지한 아이들을 맡았다. 아이들과 소통이 비교적 원활했던 나에게 처음 닥친 시련이었다. 학폭에 준하는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대화와 기다림의 태도는 방임과 무대책으로 비난받았다. 그동안 학폭의 시스템을 알지도 알 필요도 없었던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주변의 충고대로 모든 사건에 적자생존(적어야 살아남는다)을 적용하여 기록과 증거를 보존하는 어설픈 형사짓을 했지만 그것 또한 상처로 남았다. 아이들은 12월까지 알뜰하게 사고로 하루하루를 장식하다 2월이 되어서야 나를 좀 놓아주며 그나마 무사히 다음 학년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아이들의 언어폭력성, 타인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무배려와 무매너 등이 내 안에 화를 쌓았고 내가 그들을 싫어해서인지 그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아서인지 우리 사이에 신뢰의 느낌은 없었다. 내 마음은 차갑게 닫혔고 자격지심으로 예민해졌으며 무너지지 않겠다는 오기로 일년을 버텼다. 그리고 다음 해에도 같은 학년을 맡았다. 이 아이들도 명성이 자자했다. 소위 학년 넘버원도 우리반에 있었다. 말썽도 잦았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었으니 나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였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우리 선생님'이라는 의식이 강했고 나의 아주 작은 특기에도 찬사를 보냈으며(^^;;;;;) 실수도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여겼고 돌아서면 잊을지라도 일단은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 나는 출근하는 발걸음 자체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전 해에 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학급활동들을 시도했다. 그 힘은 그들의 나에 대한 호의와 신뢰에서 나왔다. 어른도(교사도) 이러하다. 하물며 아이들이야.

저자는 아이들의 리질리언스를 키우는데 개인요인으로 자기조절 능력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교실에서 실천한 내용들도 소개했는데, 저자의 교사로서의 내공을 느끼게 했다. 인지편향이 있는 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 아이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밉다. 그리고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아 좌절을 안긴다. 저자는 이를 아이 스스로 느끼고 고치기 위해 장기적인 활동을 했다. 월별 시 외우기와 관련 활동들. 보통은 동시를 외우는데 저자는 세계의 명시들을 활용했다.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이었다. 고학년과는 좋은 활동이 될 것 같다. 교사의 문학적 소양도 높아야 하겠다. 두번째는 명언 읽고 글똥누기. 이것도 참 좋다. 성찰의 거울이 될 만하다. 전에 고전읽기를 강권하는 학교에서 난감함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로 적용하면 정말 괜찮겠다. 책도 더 읽고 명언도 많이 찾아봐야겠다. 하여간 유식해야 한다.^^;;

3장은 가족요인을 다루고 있다. 부모의 모습은 무의식적으로 자녀의 모델이 되며 평가의 대상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처신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런 말조차 배부른 소리인 가정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부모님들이 이런 내용을 한번 보시기는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관계는 상대적이고 부모도 격려가 필요한 존재이니 아이들을 통해 부모님을 격려하는 방법도 교사들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가족요인을 만들어내는 많은 부분이 사회의 역할이다. 우리나라가 이 부분에서 많이 성장했으면 한다. 학교에서 밤까지 보육하겠노라며, 교사들에게 묻지도 않고 생색을 내는 정치인들이 부모가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데 정치력을 썼으면 한다. 이런 내용은 4장 사회요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교육의 의미를 학생의 행복, 나아가서 사회의 행복에서 찾는다. 행복. 참 흔한 말이다. 지난 교육감 때는 행복독서교육이라는 말이 공문과 함께 내려왔고 그때 생긴 행복독서축제라는 우리 학교 행사명은 아직도 고정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교육과 행복은 흔히 함께 명명된다. 그런데 행복이 무엇인가?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욕구가 충족된 상태를 말하는가? 그러면 서로의 행복이 상충할 때 교육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저자의 성숙한 안목을 보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올바른 일을 행했을 때' 생기는 것이다. Helper's High에서 보듯이 타인을 사랑하는 행위, 남을 돕는 행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다. 결국 교육의 목적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리질리언스를 갖도록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안전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초등 동료교사이자 페친으로 평상시엔 나처럼 평범한 한 개인으로 보였던 저자의 통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교사들 안에는 이런 내공을 은근히 갖춘 이들이 많다. (나는 아니어서 좀 아쉽지만...^^;;;) 물론 나처럼 진짜로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균도 못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그리고 정말 개념없었던 과거에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교사들이 꽤 있었던 것을 안다. (그렇다. 나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후회한 적이 있다.ㅠㅠ) 그러나 그 이유로 교사들을 매사에 세모눈으로 보며 가장 중요한 학생, 학부모 관계에 불신을 조장하는 행위는 없었으면 좋겠다. 교사불신. 교사자학. 교사위축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세태가 나는 늘 걱정스러웠는데, 이 책을 읽으며 교육을 위해서 꼭 극복되어야 할 문제라 생각되었다. 교사도 적당한 포지션에 서있지 못하면 사지를 결박당한 느낌일 수가 있다. 정말 특별한 사람 외에는 홀로 극복할 수가 없다. 교사도 학생도 리질리언스가 가능한 분위기라면 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 거기에 교사들의 각성과 노력도 필수임은 물론이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 귀염둥이들에 대한 애타는 인내심을 늘려야 한다. 확신을 갖고.

독서모임샘들과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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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실이와 고구마 도둑
허윤 지음, 김유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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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대 님의 그림 때문에 집어든 책이다. 그림이 책을 맛있게 하는 그림작가들 중 한 분이다. 게다가 개 이야기인 것 같아서 더욱 손이 갔다.

화자인 개 보보스는 흰색 포메라니안이다. 우와~ 스타일 멋지고 비싼 개잖아? 그런데 하루아침에 시골집에 맡겨지는 신세가 된다. 집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냄새나는 마당 구석에서 더러운 판자집(개집)에 묶여 살아야 하는 보보스는 절망한다. 이름까지 복실이로 바뀌고 말이다.

어렸을 때 보던 개들은 늘 이랬다. 당연한 줄 알았기 때문에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굉장히 힘겹게 느껴진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은 참 쉽게 변하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런데 보보스, 아니 복실이는 시골생활을 하며 달라진다. 할아버지가 복실이에게 밤에 고구마밭을 지키는 임무를 준 것이다. (무려 멧돼지에게서)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복실이가 자존감과 자신감과 기여감을 찾아가는 이야기.

근데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복실이처럼 살면 개는 정말 행복할까? 남편은 우리집 강아지 눌눌이를 옆에 재우면서 말로는 "개는 개답게 키워야지!"라고 한다. 개답게는 어떤 것일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것, 예를 들면 썰매를 끈다거나 맹인 안내를 한다거나 하는 것이 개답게일까? 그들은 그런 기여를 할 때 행복한 것일까?

옆집 개 멍멍이는 도시의 애완견을 '사람들의 장난감'이라 표현했다. 집안에서 먹고 자고 사람들이 시켜줘야 산책을 하고, 애교부리고 사랑받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견생.... 심지어는 중성화수술에 성대수술까지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보보스나 복실이나 사람을 위해서 이용된다는 것에는 다를 바가 별로 없어보인다. 그래서 시골 복실이의 견생이 더 개답고 행복하다고 단정은 못내리겠다. 그저 인간은 참 동물들을 멋대로 이용하는구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나 하는 생각이 들 뿐.

돈들여 시간들여 얽매이고, 떠나보낼 때 가슴아파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우리는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애타게 마음주며 죄를 짓는 것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어쩔 수도 없고 말이다.

아 모르겠다. 눌눌아~ 산책이나 한 번 더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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