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질리언스 - 다시 일어서는 힘
천경호 지음 / 교육과실천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 상처를 받는다. 온실의 화초처럼 별 위험 없이 살아온 나도 되돌아보면 아찔하고 아득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불킥 할 일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키웠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전의 나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나를 본다. 그것은 그 수없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해나 용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한 번의 잘못으로 나를 규정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 느낀다. 그런 내가 나보다 어린 세대의 사람들, 말하자면 자식이나 제자들을 볼 때 왜 그만큼의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자식은 한번 발을 헛디뎌 깊은 수렁에 빠질까 불안해하고, 제자는 한 시기의 못된 짓에 정나미가 떨어져 사랑하기 어려워한다. 이 책은 초반부터 이런 나를 위해 쓴 책임을 역설하고 있었다.

학습할 준비와 태도가 전혀 되어있지 않고 주변을 힘들게 하며 주변인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소위 '힘든'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어느 학급에나 있지만, 유독 어떤 학교 어떤 지역에 유난히 많기도 하다. 그것은 그 아이들의 양육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단번에 끊을 수 없는 고리와 같은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라도 안정감과 신뢰감을 느껴야 한다. 이 결정적인 역할은 아무래도 교사가 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헌신과 노력에만 모든 것을 맡겨야 할까? 학생 개인의 노력을 강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도 신뢰받는다는 확신이 필요하고 공격당하지 않는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들을 상대할 여유가 필요하다. 낭떠러지에서 한발 잘못 디디면 굴러떨어질 상태에서 인간은 생존과 방어를 생각하지 사랑과 헌신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리질리언스의 기본은 '신뢰'에 있다. 우리가 작은 역경에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불신과 그에 따른 회의 때문이다. 지탱할 것이 있어야 짚고 일어날 수 있듯이 나를 지지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사회는 우리에게 불신을 강요한다. 사회를 반영하는 학교 또한 그렇다. 친구들간의 갈등을 학교폭력이라는 프레임으로 보게 만들고 교사의 의도를 재단하고 의심하며 교사는 학부모를 극도로 경계한다. 이 안에는 각자도생만 있다. 즉 리질리언스는 없다.

어떤 한 해,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무지막지한 아이들을 맡았다. 아이들과 소통이 비교적 원활했던 나에게 처음 닥친 시련이었다. 학폭에 준하는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대화와 기다림의 태도는 방임과 무대책으로 비난받았다. 그동안 학폭의 시스템을 알지도 알 필요도 없었던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주변의 충고대로 모든 사건에 적자생존(적어야 살아남는다)을 적용하여 기록과 증거를 보존하는 어설픈 형사짓을 했지만 그것 또한 상처로 남았다. 아이들은 12월까지 알뜰하게 사고로 하루하루를 장식하다 2월이 되어서야 나를 좀 놓아주며 그나마 무사히 다음 학년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아이들의 언어폭력성, 타인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무배려와 무매너 등이 내 안에 화를 쌓았고 내가 그들을 싫어해서인지 그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아서인지 우리 사이에 신뢰의 느낌은 없었다. 내 마음은 차갑게 닫혔고 자격지심으로 예민해졌으며 무너지지 않겠다는 오기로 일년을 버텼다. 그리고 다음 해에도 같은 학년을 맡았다. 이 아이들도 명성이 자자했다. 소위 학년 넘버원도 우리반에 있었다. 말썽도 잦았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었으니 나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였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우리 선생님'이라는 의식이 강했고 나의 아주 작은 특기에도 찬사를 보냈으며(^^;;;;;) 실수도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여겼고 돌아서면 잊을지라도 일단은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 나는 출근하는 발걸음 자체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전 해에 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학급활동들을 시도했다. 그 힘은 그들의 나에 대한 호의와 신뢰에서 나왔다. 어른도(교사도) 이러하다. 하물며 아이들이야.

저자는 아이들의 리질리언스를 키우는데 개인요인으로 자기조절 능력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교실에서 실천한 내용들도 소개했는데, 저자의 교사로서의 내공을 느끼게 했다. 인지편향이 있는 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 아이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밉다. 그리고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아 좌절을 안긴다. 저자는 이를 아이 스스로 느끼고 고치기 위해 장기적인 활동을 했다. 월별 시 외우기와 관련 활동들. 보통은 동시를 외우는데 저자는 세계의 명시들을 활용했다.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이었다. 고학년과는 좋은 활동이 될 것 같다. 교사의 문학적 소양도 높아야 하겠다. 두번째는 명언 읽고 글똥누기. 이것도 참 좋다. 성찰의 거울이 될 만하다. 전에 고전읽기를 강권하는 학교에서 난감함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로 적용하면 정말 괜찮겠다. 책도 더 읽고 명언도 많이 찾아봐야겠다. 하여간 유식해야 한다.^^;;

3장은 가족요인을 다루고 있다. 부모의 모습은 무의식적으로 자녀의 모델이 되며 평가의 대상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처신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런 말조차 배부른 소리인 가정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부모님들이 이런 내용을 한번 보시기는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관계는 상대적이고 부모도 격려가 필요한 존재이니 아이들을 통해 부모님을 격려하는 방법도 교사들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가족요인을 만들어내는 많은 부분이 사회의 역할이다. 우리나라가 이 부분에서 많이 성장했으면 한다. 학교에서 밤까지 보육하겠노라며, 교사들에게 묻지도 않고 생색을 내는 정치인들이 부모가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데 정치력을 썼으면 한다. 이런 내용은 4장 사회요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교육의 의미를 학생의 행복, 나아가서 사회의 행복에서 찾는다. 행복. 참 흔한 말이다. 지난 교육감 때는 행복독서교육이라는 말이 공문과 함께 내려왔고 그때 생긴 행복독서축제라는 우리 학교 행사명은 아직도 고정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교육과 행복은 흔히 함께 명명된다. 그런데 행복이 무엇인가?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욕구가 충족된 상태를 말하는가? 그러면 서로의 행복이 상충할 때 교육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저자의 성숙한 안목을 보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올바른 일을 행했을 때' 생기는 것이다. Helper's High에서 보듯이 타인을 사랑하는 행위, 남을 돕는 행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다. 결국 교육의 목적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리질리언스를 갖도록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안전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초등 동료교사이자 페친으로 평상시엔 나처럼 평범한 한 개인으로 보였던 저자의 통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교사들 안에는 이런 내공을 은근히 갖춘 이들이 많다. (나는 아니어서 좀 아쉽지만...^^;;;) 물론 나처럼 진짜로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균도 못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그리고 정말 개념없었던 과거에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교사들이 꽤 있었던 것을 안다. (그렇다. 나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후회한 적이 있다.ㅠㅠ) 그러나 그 이유로 교사들을 매사에 세모눈으로 보며 가장 중요한 학생, 학부모 관계에 불신을 조장하는 행위는 없었으면 좋겠다. 교사불신. 교사자학. 교사위축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세태가 나는 늘 걱정스러웠는데, 이 책을 읽으며 교육을 위해서 꼭 극복되어야 할 문제라 생각되었다. 교사도 적당한 포지션에 서있지 못하면 사지를 결박당한 느낌일 수가 있다. 정말 특별한 사람 외에는 홀로 극복할 수가 없다. 교사도 학생도 리질리언스가 가능한 분위기라면 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 거기에 교사들의 각성과 노력도 필수임은 물론이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 귀염둥이들에 대한 애타는 인내심을 늘려야 한다. 확신을 갖고.

독서모임샘들과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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