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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신발 찾기 - 제1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ㅣ 반달문고 37
은영 지음, 이지은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1월
평점 :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과 교실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들의 ‘조용한 아픔’에 주목한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은 잘 드러나지 않고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으니까. 드러난 문제만 처리하기에도 교실이란 곳은 너무나 별 일이 많이 일어나는 정신없는 곳이니까. 가르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으며 교사의 첫째 역할은 수업이지 심리치료는 아니니까. 내게 그런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만 아이들의 아픔에 눈이 간다. 이것을 모른 척 하고서 학급을 운영하기에는 아이들의 아픔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고, 그저 내가 할 일은 알아주기, 인정해주기, 가끔 기회를 잘 잡아서 격려해주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픔을 안고서도 드러내지 못하고 나를 스쳐간 수많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아이들에게 손 한번 잡아주었었기를, 무심코 웃으며 안아주었던 일이 한번이라도 마음에 위로가 되었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담겼다. 얇은 두께 안에 다섯 편이니 각편의 길이는 짧은 편인데, 뭔가 깔끔한 짧음이라고 할까, 군더더기가 없다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외롭고 슬픈 아이들의 심리가 아주 잘 담겼다. 상징적으로.... 그래서 길이가 짧은 것 같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으니. 그래서인가. 더 서늘하게 마음속으로 훅 들어온다.
「파란 목도리 여우」의 란이는 천둥치는 긴 밤을 해진 ‘파란목도리’ 여우인형을 끌어안고 떨며 보낸다.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란이야, 오늘은 어머니 오시지?”하고 묻는다. 란이는 같은 반 친구 지수랑 싸우다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양쪽 부모님이 오시기로 한 듯. 하지만 란이는 엄마가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누군가 란이 엄마라며 교실로 들어선다. ‘파란 목도리’를 한 예쁜 아줌마가. 이어서 우락부락한 지수 아빠도 들어온다. 손톱자국을 냈으니 어쩔 거냐며 으르렁대는 지수 아빠를 파란목도리 엄마는 여유있게 받아친다. 그리고 어젯밤 지수 부모가 혼자 있던 란이 집에 들이닥쳐 가한 폭행을 까발린다. 지수 아빠는 당황해서 꼬리를 내리고 허둥지둥 나가버린다. 통쾌한 결말.
그런데 참 슬프다. 이 통쾌한 결말이 아이의 환상이라는 사실이. 누가 이 아이의 파란목도리 여우가 되어 줄 것인가. 편들어줄 엄마도 없이 대부분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가 친구 부모에게 당한 잡도리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몰지각한 어른들은 많고 그 어른들은 상처를 주는데, 따뜻이 감싸줄 어른은 많지 않고 내 마음을 알리기는 어렵다. 이 이야기가 단지 환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말고 필요시 파란 목도리 여우가 되어줄 수 있는 어른이 이 사회에 많다면. 이것이 너무 큰 꿈이 아니라면!
「동그라미 그리기의 비밀」은 섬뜩하다. 마치 옛이야기의 화소와 같은 ‘소원 들어주기, 대신 조건이 있어’로 시작된다. 생일잔치를 하고 싶어 엄마를 조르는 시아에게 외눈박이 까마귀는 화려한 생일잔치를 열어주는 대신 딱 한 명의 친구들 초대하지 말라는 제안을 한다. 다미를 제외하고 모든 친구가 모여 화려한 생일파티를 한 후, 아이들은 까마귀가 가르쳐 준 동그라미 그리기 놀이에 빠져들었다. 손에 손을 잡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노는 놀이, 단 다미는 절대 끼워 주지 않고....
그 놀이는 마치 수렁과도 같았다. 아이들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시아는 다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까마귀가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손을 내민 것은 다미였다. 까마귀가 되어 하늘로 오르던 아이들은 그 손에 의지해 겨우 땅에 발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은 우리가 아는 그 시끄럽고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그렇다. 따돌림은 어떤 경우에 “하나는 빼야 돼. 그래야 더 재미있지 않겠니?”라는 까마귀의 속삭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아이들도 모든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는 힘들다. 따라서 결속하기도 하고 소원해지기도 하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이지만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까마귀의 속삭임이다. 다른 작품들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지만 이 작품은 아이들의 비틀린 마음을 직접 지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함께 읽으며 아이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어쩌면 두려운 일일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이 되기 전에 아이들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표제작인 「숨은 신발 찾기」에서는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태이가 갑작스러운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갈 바 모르는 자신의 마음에 당황하는 이야기다. 그 마음은 ‘신발’이 되어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아이는 그 ‘신발’을 찾아 헤맨다. 헤매다 만난 교감선생님도 똑같은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하지만 상관없어. 날 위로해 줄 필요는 없단다. 난 이미 다 컸으니까.” 하는 말씀에 살짝 비친 눈물이 보인다. 그렇게 모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처를 안고, 갈 바 모르는 마음을 찾아 헤매다 붙들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겠나. 상처 없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그 마음끼리 서로 손잡는 것이 필요할 뿐.
헤매다가도 하교시간이 되면 딱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던 신발이 어느 날은 나타나지 않았고, 태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차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에게 온 전화,
“태이 별 일 없는 거지? 애는 온데간데없고, 신발만 덩그러니 현관에 놓여 있잖아. 흙투성이가 된 채로!”
“태이 신발이라고?”
“그럼, 내가 아들 신발도 모를 거 같아?”
그 때 마음은 눈물을 그쳤고, 울음은 좀 시간이 걸려 잦아들었다. 아이는 이렇게, 아픔을 치유해갈 것이다. 신발도 점점 제자리를 찾겠지.
「시간을 묻는 아이」의 마리는 새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 마음의 두려움은 강박적으로 시간을 묻는 행동과 수다스러운 말투에서 드러난다. 새엄마는 좋은 사람인 듯한데, 고정된 새엄마의 이미지(아이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책을 자주 언급한다), 낳아준 엄마도 아닌데 어떻게 닮느냐는 친구의 말, 둘이만 다정한 아빠와 새엄마의 모습.... 이런 것들이 아이의 불안을 부채질한다. 아이가 마음을 털어놓는 상대는 공원 연못의 거북이다. 거북이는 어느날 할머니의 모습으로 아이의 수다를 다 들어주고 “괜찮니?”라고 물어봐준다. 새엄마가 찾으러 와 둘이 손잡고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다. 거북이. 가장 큰 어른의 모습이다.
「이상하고 괴상하고 발칙한 것」은 다름아닌 뿔이었다. 솔이가 ‘마마보이’라는 친구의 말에 화나서 엄마의 말에 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날부터 머리에 뿔이 돋았다. 엄마나 교장선생님은 그걸 당장 뽑아야 한다며 펜치를 들고 달려든다. 솔이는 뿔을 엉덩이로 옮겨 붙였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솔이는 더 대단한 사고들을 치게 됐다. 솔이를 복도로 내쫓은 선생님이 잠시 후 나오셔서 하신 말씀에 나는 부끄러워졌다. “언제 이렇게 컸냐? 오솔! 뿔도 다 나고....”
나는 뿔 달린 아이들이 싫다. 그래, 그건 어쩌면 ‘나는 아이들이 크는 게 싫다’는 말일수도 있겠구나. 이 선생님처럼 단호하게 행동은 제지하되 뿔 자체는 인정해주는 어른이 되어야 하겠구나. 솔이를 마마보이라고 놀리던 구태가 놀라서 한 말, “세상에.... 내 거보다 크다니!” 이 마지막 문장은 무슨 오래된 유머 같기도 하고 웃음이 터진다. 아 그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뿔이 없는(없었던) 사람 있냐고!! 이 작품으로 아이들과 솔직한 나눔이 가능할 것 같다. ‘나의 뿔 이야기’로.... 교사의 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벽을 허무는데 가장 효과적일 듯. 서로의 뿔을 이해하고, 그걸 존중하여 되도록 건드리지 말고, 그렇다고 뿔 있다고 아무데나 들이받지는 않게 잘 조절하고, 혹시라도 뿔사고가 났을 때는 함께 의견을 모아 잘 해결하고.... 이런 교실을 만들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내가 올해 5학년을 맡았다면 온작품읽기로 이 책을 선정할까 고민해 보겠다. 4학년도 괜찮은데 상징을 이해하기에 조금 이른 것도 같고. 6학년이 읽기엔 조금 얇은 것도 같고. 어쨌든 넓게 잡아 4~6학년 교실에서 읽기에 추천하고픈 책이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어른들은 몹시 불안하다. 상처받고 숨어있는 아이를 어떻게 알아볼까? 어떻게 치유해줄까? 내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그러나 그런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자가 치유의 능력이 있다. 이 책은 그 과정에 함께 할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마음결을 깊이 들여다 본 작가의 시선에 감사하며, 이런 책을 함께 읽는 교사가 되는 것도 하나의 노력이라 위안을 해 본다. 그러다 필요한 한 마디, 웃음, 박수, 포옹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