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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야구 ㅣ 창비아동문고 302
이석용 지음, 한지선 그림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야구를 좋아하는 고학년이라면 반드시 좋아할 책이다. 야구를 좀 덜 좋아하더라도 읽는 맛이 좋아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문체는 동화보다는 청소년소설에 가까운 느낌이다.
지금은 야구를 안보지만 10대때는 야구 시즌이 끝나면 허전할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다. 내가 중학생 되었을때 프로야구가 생겼으니 초딩때는 고작 고교야구가 있었을 뿐이지만 아버지가 응원하시던 군산상고나 광주일고를 열렬히 응원했다. 부모님이 무슨 생각이셨는지 TV를 아주 늦게 사셔서 그당시 라디오로 야구중계를 들었다. 대형 화면으로 중계를 보는 지금엔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나 싶겠지만 당시엔 나름 그것만으로도 두근대고 긴박감이 넘쳤다. 그래서 난 믿는다. 이 책도 재밌을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하자면 지상중계다. 라디오중계도 재밌었던 나에겐 충분히 재밌었다.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ㅎㅎㅎ
배경은 백도라는 섬마을의 초등학교다. 정식 야구부가 있진 않지만 이 섬의 아이들은 대대로 야구를 하며 자라왔다. 자연이 만들어낸 천혜의(?)야구장이 있기도 하고. 약간 비현실적이라 느껴진 것은 폐교되지나 않으면 다행인 섬마을에 엔트리에다 후보선수까지 갖춘 야구팀이 두 팀이나 만들어진다는 것. 백합팀 아이들이 사는 섬의 북쪽은 주로 관광업으로, 옥포팀 아이들이 사는 남쪽은 주로 어업으로 먹고 사는 마을이다. 관광객이 쏠쏠한 섬이라 했으니 그정도 규모도 가능한가? 잘 모르겠다. 물론 선수층은 실력과 상관없이 이루어져 있고 여학생들도 엔트리에 끼어있다. 심지어 옥포팀은 투수와 포수가 모두 여학생이다.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린시절 아버지가 사다주신 박수동 화백의 '번데기 야구단' 만화가 생각나네. 그보다 좀 뒤에 나온 이현세 화백의 '공포의 외인구단'도. 모두 떨거지들이 모인 팀이 괴력을 발휘하여 엘리트 팀들을 이기는 스토리인데, 그에 비하면 이 책의 비현실성은 아주 손톱만한 애교라고 볼 수 있다.^^ 아참 그리고.... 초딩 동네팀이지만 투수들이 몸쪽 높은 공이니 바깥쪽 낮은 공이니 가운데 빠른 공이니 하면서 나름 제구를 하는데 이것도 가능한 얘긴가? 내게는 거기까지 공이 닿는 것만도 힘든 일이라서 말이다.^^;;;;;
어쨌든 이런 걸 굳이 따지지 말고 스토리에 집중해서 읽으면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꽤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캐릭터가 살아있고 다양하다. 양념 역할을 하는 코믹 캐릭터,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만드는 역경 극복 캐릭터, 약간의 로맨스를 가미하는 캐릭터, 의리의 캐릭터, 비열의 캐릭터, 재야의 고수 캐릭터 등 극적 재미를 위한 캐릭터들이 적절히 잘 배치되어 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이 책에서 '갈등'과 '성장'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인간이 모인 곳엔 어떤 형태로든 갈등이 있고, 그것을 건강하게 풀며 성숙해지는가 진흙탕 싸움을 하며 서로를 깎아먹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실 속에서 건강한 해결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아이들도 그렇다.(부모 등의 어른이 끼어 해결의 가능성조차 차단되는 경우도 있음) 이 책에서 보여주는 해결은 고매한 인격을 요하지 않으면서도 꽤 건강하다. 소재는 야구라는 스포츠지만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한 이야기라고 본다.
두번째로 '성장'을 이야기하자면 이 책에서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법을 훈련했다. 통쾌한 역전승 같은거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의 아이들은 어제의 아이들보다 조금씩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늘 아이들에게 말하지만 말빨이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이 책에서 그 이야기를 해주어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야구'에만 집착하고 연연하기보다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도 미더웠다. 다리를 저는 야구천재 풍길이는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 그게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안타까운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성장하며 각기 자기 길을 찾아간다. 외인구단의 심판이자 감독 격인 김노인이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들에 '성장'의 열쇠가 담겼다.
"이기는 것도 야구고 지는 것도 야구야. 야구장에 하얀 줄 긋는 것도 야구고 가스버너에 조개를 굽는 것도 야구라 이 말이야."
- 인생에 주연과 조연은 따로 없다는 말로 나는 해석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을 뿐.
"너희는 야구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던 거지. 너무 사랑하니까 잘하고 싶고, 또 매일 그 생각만 하니까 고급 작전이 자연스레 나오게 되었던 거야."
- 사랑하다 보면 전문가가 된다. 어떤 형태, 어떤 방면에서든.
"내일 경기할 때는 충일 아이들은 신경 쓰지 말고 자기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거야. 그러면 아름다운 야구를 할 수 있지. 너희들이 쭈욱 그래왔던 것처럼."
- 이기려고만 하는 인생은 이름답지 않다.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인생이 아름답다.
그러고보니 인생의 진리가 담긴 책이네.^^ 고학년, 중학생 친구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욱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