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리아 칼라스>

더숲 상영 시간표를 보다가 이 영화를 골랐다. 난 음악에 재능이 없지만 음악영화는 좋아한다. 그리고 세기의 디바라는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과 일생이 궁금했다.

1. 인간의 목소리로 그런 고음을 그렇게 아름답게 낼 수 있다는 게 경이롭다. 전에 지휘자 선생님이 "내가 힘들면 듣는 사람이 편하다" 이런 뜻의 말씀을 하셨는데 관중의 귀에 편안한 고음을 내는 성악가의 몸은 호흡유지에 엄청난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물론 프로들은 그런게 표시나지 않지만) 한 곡도 어려운데 수많은 관중의 주목을 받으며 긴 시간 연주해야 하는 공연은 성악가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일까. 인생후반에 쇠약해진 그녀는 무대에 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노래는 목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술(특히 성악)을 한다는 건 엄청난 자기관리다. 잘은 모르지만 조수미 씨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그녀는 마리아(인간,여자)와 칼라스(공연자) 두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이야기했다. 칼라스로서의 삶은 최고에 올랐지만 마리아로서의 삶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을 환호하는 관중 속에서도 그녀는 외로웠던 것 같다. 환호하는 저 많은 사람들도 공연이 끝나면 자신의 가족 곁으로 돌아갈 뿐 지친 그녀의 옆에 있어줄 사람들은 아니니까.... 문득 그녀의 외로움이 이해되었다. 그녀의 옆에는 늘 개가 있었다.(우리집 개처럼 쫄랑거리는 푸들이라 내 눈에 확 들어옴) 개의 존재가 내겐 그녀의 외로움의 표상으로 느껴졌다. 사랑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다고 했던 칼라스는 결혼도, 뒤늦게 찾아온 사랑도 다 상처로만 남았다.

3. 특출한 재능은 축복일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힘겨운 운명일수도 있겠다. 세기에 한명이라는 재능. 그것도 전세계에서. 얼마나 대단한가? 근데 그 재능을 나에게 주겠다면... 생각좀 해봐야 되겠다. 평범한 행복. 비범한 외로움. 뭘 선택해야 할지 말이다. (물론 평범해도 외롭다.^^;;; 하지만 외로움의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4. 이 세기의 소프라노 역할을 누가 맡았을까? 했는데 다큐영화였다. 오래된 자료영상만 가지고 한 인생을 조명하는 음악영화를 만들다니 그것도 대단하다.

그녀는 외로움과 불안, 우울 속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음악은 아직도 우리 곁에 있고 여전히 경이롭다. 그리고 그 재능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녀의 식탁에서 떨어진 빵부스러기라도 주워먹겠다는 지망생들이 줄을 섰을 것이다. 나야 뭐 그런 것조차 아니고 그래도 평생 득음은 한번 해봤으면 하는 소망이 있는데... 동학년 언니가 "나 올해 애들한테 소리지르다가 득음했잖아." 하셨는데 난 27년을 소리질러도 득음의 문턱에도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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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선생 거선생 사계절 그림책
박정섭 지음, 이육남 그림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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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특이하고 새로운 그림책이다. 일단 토끼와 거북 그 뒷이야기라는 점....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겠지? 그 이야기의 변형은 이미 많이 나왔으니까.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단연코 새롭다.^^ 그리고 채색이 전혀 없는 백묘화라는 점. 그 그림들이 곳곳에서 김홍도의 풍속화를 연상시킨다는 점 등이 특이하다.

글투도 아이들 대상이라기엔 투박하고 구성지다.
"토끼가 시건방 떨다 그만
거북이한테 진 이야기는 다들 한번쯤 들어봤지?
그 뒷이야기가 쬐끔 재미지다고 하던데
어디 들어볼 텐가?"

이런 식이다.

토선생은 피하고 싶어하는 거선생을 계속 집적거린다. 물론 재경주를 하고 싶어서지. 그렇게 집요하게 쫓아다니다 결국 거선생의 등딱지를 토선생이 짊어지고 경주가 시작된다. 토선생은 등딱지가 무거워 힘들고 거선생은 추워서 덜덜 떨며 재채기를 한다. 등딱지를 돌려달라는 거선생의 애원을 뿌리치고 달려나가던 토선생은 뜻밖의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거선생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빠져나오지만.... 이미 둘 다 혼수상태다.

판소리가 관중과 함께 만들어가는 양방향 소통의 공연이듯이, 이 책도 등장인물들이 작가와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작가 양반 독자 양반, 우리 좀 살려 주시게.
우리가 죽으면 이 이야기도 끝이란 말이오."

이어서 떨어지는 빗발과 함께 관중(아니 독자)들의 소리가 쏟아진다.
- 그러게 왜 또 경주를 하자고 했나?
- 이미 답은 토선생이 쥐고 있지 않은가?

독자들의 소리에 정신이 든 토선생은 아직 혼미한 거선생을 등껍질에 태우고(등껍질은 여기에서 참 많은 역할을 한다) 날아올랐다고 해야하나, 튀어나갔다고 해야 하나, 책의 경계까지 부수고 탈출한 그들은 어디까지 가는 걸까? 열린 결말을 넘어선 '탈출한 결말'은 독자에게 어디까지의 상상을 가능케 할까?^^

등껍질에 올라타는 모습이 내겐 봅슬레이에 올라타는 오랜 동지의 모습으로 보여서, 앞으로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또다른 무수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이들은 승부를 다투는 경쟁자일 뿐이었지만, 이 책의 이야기를 겪고 나니 이제 더이상 경주는 무의미해졌다. 이 책의 뒷이야기를 또 쓴다면 더이상 경주는 안 나오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을 신청하면서 컬러링에 욕심이 났었다. 복사해서 반 아이들이 한장씩 색칠하고 묶어서 새 책을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하는. 그럭저럭 좋아하는 활동이 될 것 같긴 한데, 그보다도 튀어나간 주인공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고 이야기 나눠보는 활동들이 더 재미날 것 같다. 그리고 컬러링을 하더라도 이 책의 바탕이 된 풍속화, 산수화 등을 감상하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따라서 중학년이나 고학년 활동으로도 가능하겠다.

재미있는 생각들이 샘솟게 해주는 책은 일단 좋은 책이라고 본다. 작가의 상상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산만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상상력의 크기가 '산만'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부럽다...ㅎㅎ 작가의 상상력에 빌붙어 이 책을 아이들과 재미나게 나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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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행복한 왕자 큰곰자리 4
시미즈 치에 지음, 야마모토 유지 그림, 한영 옮김 / 책읽는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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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너무 속물이지만(ㅋㅋ), 이 책은 일석이조다. 한 권으로 두 권을 읽으니 말이다. 이 책과 또 한 권.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먼저 읽어주어야겠다. 어린이작가정신 그림책으로 읽어주면 적당할 것 같다. 어릴적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베이는 듯한 가슴아픔이 아주 오랜만에 기억났다. 귀한 보석을 다 빼내고 버려지는 왕자.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 제비. 아름다운 비극, 행복한 비극이라는 역설을 느끼기엔 너무 어렸었던가. 우리 아이들에겐 그 책이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2학기에 2학년 학급 아이들과 읽을 책을 찾다가 이 책을 펼쳤다. 매 회차마다 4권의 책을 선정해 함께 읽는데, 문학과 비문학, 문학 중에서도 국내 문학과 외국 문학을 골고루 읽어보려 한다. 국내 작품은 읽힐 것이 넘쳐서 걱정이지만 외국 작품은 고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저학년은. 물론 국내 문학으로 다 선정해도 되지만 이왕이면 골고루 넣어보려고 이책 저책 찾아본다. 전년도에 읽히고 반응 좋았던 책이 올해는 고전하는 경우가 있어 책 선정은 해마다 반복되는 과업이다. 다행히 즐거운 과업이라서 그렇지.^^

지난 차에 들어갔던 글밥 다소 많았던 책에 고전하는 몇몇 아이들을 보고 이번에는 확 줄였다. 이 책은 83쪽이지만 워낙 그림이 많고 글씨가 커서 실제론 40쪽도 안될 것 같다. 몇분만에 "다 읽었는데 뭐해요?" 하는 아이들이 나오겠다. 얘들아, 짧다고 훌렁 읽어 치우지 말고 좀 꼭꼭 씹어 읽어보자.

이 책의 유이치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 장애아동을 주인공으로 한 일본의 동화들은 작품 수도 많을 뿐 아니라 참 따뜻하게 다룬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무너질 듯 다루지도 않고 마냥 낙관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어려움은 현실이고 서러움도 있지만 무심한 듯 절제된 문장 속에 따뜻함과 희망이 배어나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었다. 이 책도 그렇다.

유이치는 보청기를 끼고, 그래도 듣기와 말하기가 자유롭진 못하다. 그런 유이치가 이번 학예회 연극 '행복한 왕자'의 제비 역할에 지원했다. 안될텐데.... 하는 수군거림이 있었고 유이치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극복하고 잘 한다면 박수칠 일이지만 만약에 그렇게 못한다면.... 유이치는 공개적으로 더욱 난처한 상황이 된다. "유이치가 제비 역을 맡고 싶어하는 마음은 소중히 여기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라는 마리 선생님의 말씀도 큰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겐타를 비롯 몇몇 친구들의 응원으로 유이치는 그렇게 원하던 제비 역을 맡게 된다.

애초에 유이치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못되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친구 겐타였다. 유이치의 대사 연습을 위해 매일 꼬박꼬박 시간을 내 주었다. 유이치도 마음을 다해 연습했다. 결국 감동의 무대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멈추고 생각해볼 대목은 '다른 이의 마음'이다. 이 책에선 특히 유이치의 마음이 되겠다. 그리고 '우정'이다. 도움을 준다고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닌 동등한 우정. 그리고 눈물이다. 행복한 왕자님의 눈물, 그리고 유이치 엄마의 눈물, 유이치의 눈물. 마지막으로 선물이다. 왕자님이 주신 선물.

이 책이 우리반의 현실이라면 난 살얼음판을 걸을 것이다. 친구를 위해서 이렇게 기꺼이 시간을 내는 아이도, 그걸 허용하는 부모도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더구나 겐타가 넘어져 다치고 수영도 못가게 되고 다음날 붕대 감고 등교했을 때, 아 이게 실제상황이라면 등골이 오싹하다.ㅠ 어느새 나도 이런게 요즘 세태이고, 오지랖은 주책일 뿐이고, 적절한 무관심이 미덕이라는 확신을 키워가며 살아오진 않았는지. 무의식중에 아이들에게까지 주입하진 않았는지.

나부터 <행복한 왕자>를 마음을 다해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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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심해요 철학하는 아이 12
엘로디 페로탱 지음, 박정연 옮김, 이정화 해설 / 이마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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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급의 소심한 아이들에게 보일듯말듯한 애정을 품는다. 말로는 쏟아놓지 못하는 걸 차곡차곡 써내려간 글을 모범작품으로 함께 읽으며 수업할 때, 공개적 칭찬도 부담스러워하는 그 아이와 눈맞춤으로 고개를 끄덕여줄때, 살며시 번지는 그 아이의 미소만으로도 힘이 난다. 난 몰래 그들의 편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 얇은 책은 한 소심한 아이의 자기고백이다.
"자신만만한 사람들
큰 소리로
웃고 노래하는 사람들,
남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
놀랍고 부러워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요.
우습게 보일까 봐, 사람들 눈에 뜨일까 봐
남들과 달라서 따돌림 받을까 봐 걱정돼요."

이러던 아이는
"소심함은 나를 뒷걸음치게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게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하더니 결국
"나는 소심함을 내버려 두었어요."
라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이처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소심함이든 대범함이든 조심성이든 덤벙댐이든 사람에겐 타고난 기질이 있다. 기질을 부정하고 한가지 모델을 추구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두려움없이 도전하는 이들이 부럽다.
갈등 앞에서 회피하지 말고 침착하게 꼬인 것을 푸는 이들이 부럽다.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이들이 부럽다.
능력에 버거울 정도의 짐을 기꺼이 지고 이를 악물어 끝내 해내고 마는 의지의 인간형들이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이 부러움이 결국 소심함이다. 그래서 소심함에 그냥 만족하기는 참 어렵다.

난 외가쪽 집안 내력으로 본태성 진전증(일명 수전증)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언젠가 걱정이 되어 한의원에 한번 가봤는데 진맥을 하신 선생님이 내 체질이 '소심'이라고 했다. 아놔~ 그게 신체와도 관련이 있는거야? 진전증은 큰 병은 아니니 간호사나 정밀작업 같은 직업만 갖지 않으면 사는데 지장은 없다고 했다.... 헌데 체질이 소심이란 건 대체 어떻다는 뜻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하여간 이생망이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진취적으로 돌파할 힘이 내 안에 없다. 노래할 때도 느끼지만 나는 뱃심이 없다....ㅋㅋㅋ

그래서 난 평생 좁은 범위를 정해 놓고 꼼지락거리며 살았다. 대단한 사업을 벌여본 적도 없고 남한테 크게 원망들을 일도 없고 학급운영이 대박난 적도 없지만 폭망한 적도 없고 그럭저럭 조심조심 살아왔다. 좌충우돌 부딪쳐 보는 것이 인생이라면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것도 인생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어느쪽이 더 옳지는 않다.

이 책은 내 분신인 소심이들을 위로하는 책이다. 또한 반대의 아이들이 소심이들을 이해하는 데도, 거꾸로 소심이들이 반대의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도 통찰을 줄 책이다. 말하자면 생긴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겨먹은 걸 요리조리 잘 써먹으면서 최대의 효과를 꾀하며.

"어느 날, 누군가가 말했어요. 소심함은 병이 아니라고요.
소심함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능력이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요.
큰 소리나 커다란 몸짓으로
반응하지는 않지만
편안함을 주기에
함께하길 좋아한다고요."

이게 뭐 내 얘기는 아니다.ㅎㅎㅎ 하지만 나도 소심함의 장점을 잘 찾아보고 살아가야겠다.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다르게 살아보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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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021-11-21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심하시니 글을 신중하게 잘 쓰시네요. ㅎㅎ

기진맥진 2021-11-24 14:4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오래된 글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로봇 프로젝트 상상도서관 (푸른책들) 6
정소영 지음, 에스더 그림 / 푸른책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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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한테 불만이 있고, 그래서 부모를 바꾸어 보지만 결국은 내 부모를 선택하게 되는 구성의 작품들이 꽤 있다. 이번 학기에 우리 학년에선 함께읽기로 <마두의 말씨앗>을 읽었다. 그리고 <마미 마켓>이라는 오래된(94년작) 영화를 이어서 감상했다. 마두의 말씨앗에선 아빠를, 마미마켓에선 엄마를 바꾸지만 둘 다 부모에 대한 불만으로 부모를 바꾸는 마법(?)에 손을 대게 되고, 3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다 실패하고 결국 우리 아빠(엄마)가 가장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친구간에 부모님을 맞바꾸는 이야기도 있다.(엄마 아빠를 바꾸다, 가족 바꾸기 깜짝 쇼 등) 이런 이야기들도 결국은 자기 부모님을 찾아간다. (그러고보니 결말이 반대인 이야기가 나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줄거리를 보고는 비슷한 이야기가 또 나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읽어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관점이 다르고 문체가 다르니 소재의 유사성과는 상관없이 아주 다른 작품으로 여겨졌다.

한 아저씨가 아이들(아들의 학급 친구들)에게 일일교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아저씨는 자신을 '나'라고 하지 않고 '오씨'라며 3인칭으로 서술한다. 그 '오씨'가 바로 이 책의 아빠다. 아들 이름은 연준. (엥, 오연준이면 바람의 빛깔을 부른 제주소년인데.... 작가가 팬인가?^^)

은행원인 오씨는 일에 파묻혀 고되고 힘들다. 주말엔 온전한 휴식을 원한다. 그러나 아빠랑 시간을 보내기를 학수고대하는 아들 준이가 있다. 아들의 기대와 아빠의 욕구는 부딪친다. 아빠는 자신의 욕구를 고수하고 아들은 늘 상처받는다. (이 상황은 마두의 말씨앗과 아주 유사하다.)

어느날 준이는 '아빠 로봇 프로젝트'에 뽑혔다며 어떤 연구소로 오씨를 데려갔다. 준이가 원하는 아빠 로봇을 1년간 무상 대여해 준다고.... 그렇게 해서 아빠 로봇은 오씨네 집에 오게 됐다. 준이는 점점 행복해했고 아빠는 주말에 원없이 늘어져 쉴 수 있어 좋았으나.... 점점 찬밥 신세가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급기야 아빠로봇에게 격렬한 질투심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ㅎㅎ 아빠로봇에게 넘어가버린 아빠의 자리를 오씨는 과연 찾아올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책은 읽어주기로 좋을 것 같다. 중학년용이지만 4학년보다는 3학년 수준에 맞을 것 같고 2학년에겐 살짝 높아보이긴 하지만 괜찮을 것 같다. 읽어주고 나면 "우리 아빠한테 읽어주겠다"며 가져가는 아이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 그걸 들어주는 아빠라면 굳이 안 들어도 되는 아빠일듯....

아이들에게 아빠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아빠 역할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졌고 요즘 아빠들은 우리 어릴 때에 비해 아이들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아빠 역할이 무엇인지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면 좋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소통은 필수지만 그 질도 중요할 것이다. 놀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보다는 지혜로운 이끔이가 되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모기 한 방 물려갔다고 민원전화해서 고래고래 하는 아빠, 동네 치맥집에서 맥주마시며 11시까지 아이들을 가게 앞에서 뛰어놀게 하는 아빠(사실은 엄마들이 더 많음...), 다음날 등교해야 하는 아이 붙들고 밤늦도록 함께 게임하는 아빠.... 현대엔 과거보다 더 다양한 양상의 아빠들이 있다. 좋은 아빠상을 말하기는 참 어렵다. 그리고 솔직히 오씨와 마찬가지로 휴식욕구가 매우 강한 나는 오씨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의 욕구를 다 채우며 부모노릇을 할 수는 없다.(절대로!!) 한편 아이들도 부모의 고충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자식이라도 관계는 쌍방이다.

우리반 아이들 모두가 부모와 좋은 관계 속에서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우리반 아이들은 오씨에게 어떤 말을 할지 들어보고 싶다. 아이의 마음이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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