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선생님은 AI / 이경화 / 창비>
<와일드 로봇>에 이어 로봇이 주인공인 책을 또 읽었다. 아주 쉽게 생긴 이 책이 내게는 어려웠다고 할까.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감정이 바로바로 따라가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느끼기보다는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계속 반박자씩 늦었다.
안드로이드 로봇이 초등교실에 담임선생님으로 등장했으니 시대적 배경은 미래라고 해야겠으나 로봇 교사 외의 배경에서는 별로 미래의 느낌이 없다.
미래초 5학년 1반은 지원받은 아이들로 꾸려졌다. 지원 조건은 AI 선생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대목에 복선이 있었다. 작년 한민아 샘 반 아이들이 대부분 신청했다는 것. 그 샘은 어떤 교사였길래? 아이들이 주고 받는 말 중에서 추측하자면 젊고, 자유롭고, 사랑이 많고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 교사였던 것 같은데....
'김영희'라는 전혀 로봇답지 않은 이름의 선생님을 아이들은 '인지쌤'이라 부른다.(인공지능을 줄인것) 이들의 첫 대면과 수업은 웃음을 자아낸다. 인지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ㅎㅎ 호기심과 짖궂음으로 AI 담임을 대하던 아이들도 점차 이 로봇을 '선생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어하게 된다....? 딥 러닝 기능을 갖추고 미세파동 생체 에너지까지 갖춘 인지쌤과 더 교감하고 싶었던 아이들은 직접 쓴 '코노피오'라는 동화를 인지쌤에게 읽게 한다. 그 결과는......
결국, 인간은 감정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가? 그래서 로봇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고, 더 나아가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는 설정을 한 문학도 계속 나오는 것일까? 진짜로 감정을 가진 로봇이 가능하게 된다면, 그건 좋은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감정은 불안정하고, 때론 아름답지만 때로는 추하다. 그런 감정을 로봇이 가진다면 그건 몹시 위험할 것이다. 안정적인 감정만 갖게 한다면? 그건 감정이 아닐 것이다. 뭐 '유사감정' 정도 되겠지. 우리에겐 그런 거라도 절실한 것일까?
그리하여, 오류로 멈춘 인지쌤을 구하려는 아이들, 로봇 교사를 반대하는 아이들로 맞서는 양상까지 교실에는 나타난다. 여기에서 작가는 여러가지 이슈들을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서 말하고 있다.
먼저 교장선생님.
"인간과 로봇의 차이점이 뭔지 아니? 자기 성찰 능력이란다. 잊지 마라. 자기 성찰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최고의, 그리고 거의 유일한 능력이란 걸." (101쪽)그리고 한민아 선생님 사건을 잘 알고 있지만 뭔가 참고 계신 듯한 옆반 선생님.
"어디를 가나 로봇이 없는곳이 없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학교에까지 로봇이 있다는 건 재앙과 같아. 이제 사람들은 작은 실수도 할 수 없어. 실수를 하면 해고를 당하고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실수할 기회가 없으니 성장할 기회도 없다. 협업은 거짓말이야. 사람을 로봇과 경쟁시키는 거지. 누가 이길지 뻔하지 않니? 사람들은 점점 로봇에게 밀려나고 마침내 로봇처럼 폐기 처분될 거다. 이건 단순히 한민아 선생님을 복귀시키는 것보다 더 큰 문제야. 인간의 미래가 달린 문제지." (108쪽)
과거에 아이들이 한민아 선생님을 잃게 된 사연은 스치듯 지나간다. 선생님은 쫒겨났던 것이다. 그토록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았던 선생님이 학부모들의 불같은 민원을 받고. 잘못이라면 잘못이지만 사적인 공간이니 법적인 잘못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선생님은 개인 비밀 블로그에 아이들과 학부모에 대한 욕을 진탕 써 놓았고, 반의 똑똑한 아이 하나가 그걸 해킹해서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렇게 잘해주던 선생님이 뒤에서 쓴 자기 욕을 읽었을 때 그 뒤통수를 맞은 기분은? 짐작 가능하다. 또한 그런 욕을 개인 공간에 써갈긴 선생님 심정 또한 이해하고도 남는다. 물론 동종업계 사람이어서 그렇겠지.ㅠ
다시 초기화된 인지쌤이 교단에 서며 이야기는 끝나는데, 마지막 문장이 또 미묘하다. 이 책엔 여러 생각들이 엉켜 있다. 그 중에 아이들이 어떤 가닥을 붙잡을지 궁금하다. 내가 붙잡은 건? 두 가지다. 첫째는 4차 산업사회 운운이 시끄러울 때, "앞으로 인간이 갖춰야 할 것들은 더더욱 인간적인 것들이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동의다.
둘째는, 엉뚱할지 모르겠지만 다시 일어설 기회다. 리질리언스(회복탄력성)의 중요성이라고도 하겠다.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학생, 학부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비밀 공간에 퍼부어 놓은 한민아 선생님. 좋아했던 선생님에 대한 배신감, 원망, 그리움이 혼재된 아이들. 그리고 해킹하고 앞장섰던 그 아이.... 모두가 성찰할 기회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건 회복의 기회다.
이경화 작가님의 책은 두번째 읽는다. 찾아보니 13년 전에 <장건우에게 미안합니다>를 읽고 썼던 서평이 남아있다. 두 편 다 교사의 처신을 고민하게 만든다. 작가는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아래에 그 서평을 이어 붙이고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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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우에게 미안합니다 / 이경화 / 바람의아이들>이 책의 장점을 꼽으라면 단연 현실성이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교무실로 부르는 것과 선생님이 교무실에 있다가 종례를 한다는 점만 빼고...(그건 중,고등학교에서나 있는 일이다) 이걸 보니 작가분이 현직에 계셨던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의 풍경과 아이들의 심리를 이토록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가 있나? 때론 몰래 카메라에 찍힌 나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쪽팔려 게임’ 그것 참 징하면서도 안 없어지는 골칫거리 게임 중의 하나다. 이 이야기의 발단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반듯한 모범생 반장 건우가 문제아 여자애들 무리가 했던 쪽팔려 게임 벌칙의 희생양이 되어 난데없는 뺨따귀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반응이 정말로 의외다. 피해자인 건우에게 보내는 따뜻하지 않은 시선, 교무실에 불려온 가해자 여자아이들은 있었던 일을 종이에 썼을 뿐, 한마디 훈계도 듣지 않고 돌려보내진다. 오히려 남아야 하는 사람은 건우다. 남겨진 건우에게 선생님은 여자아이들의 가정형편을 상기시키며 이해할 것을 은근히 강요(?)하신다. 모범생 콤플렉스의 장건우. 치밀어 오르는 말들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예, 선생님.”하고 돌아선다.
이 선생님은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생님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하시는지는 십분 이해하고도 남겠다. 선생님은 소외된 아이들, 부족함이 많은 아이들을 감싸고 채워 주시고자 하는 것이다. 짐작컨대 사명감은 투철하되 경력은 다소 부족한 선생님일 것이다.
이 선생님을 통해 작가는 사명감이 투철한 교사가 빠지기 쉬운 역차별의 함정을 지적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따뜻한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학교에서도 인정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이 여자아이들은 선생님이 베풀어주시는 전폭적인 사랑과 인정에 고무된다. 자신감도 생기고 당당해지고 웃음도 많아진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그늘이 드리워졌으니 바로 건우 같은 아이다. 선생님은 넌 부족한 것이 없으니 많이 가진 사람이 나눠야 한다며 건우에게 주실 사랑마저도 떼어다 그 아이들에게 부어주실 테세이지만, 인간은 자기 몫의 사랑까지 남에게 양보할 수는 없는 존재인가보다. 건우가 이토록 상처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흔히들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 엄마들이 관심 있게 챙겨주는 아이들을 편애한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차별은 그것에 대한 반작용일까? 나를 돌아보니 이 책의 김진숙 선생님 같은 쪽은 아니다. 가정형편과는 상관없이, 난 게으르고 양심 없고 남을 괴롭히고 말을 함부로 하는 아이들을 예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부모님의 보살핌을 못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이리될 개연성이 매우 높으니 나도 편애를 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겠다. 김진숙 선생님처럼 하는 것,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쪽팔려 게임이나 하며 만만한 남자아이 불러세워 빰따귀나 때리고 낄낄거리는 여자애들을 감싸고 예뻐하라고? 그거 보통 인내심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다음은 이 부족한 교사가 나보다는 조금 덜 부족한 김진숙 선생님께 드리는 글이다. “선생님, 마지막에 선생님이 아이들과 화해하는 장면을 보면서 선생님은 조금 서투르긴 했지만 그래도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불리지 않는 이름부터 불러주려고 했던 선생님의 마음 잘 알겠습니다. 중간에, 건우엄마가 와서 따졌을 때 아이들 다 있는데서 건우에게 약간의 감정을 드러내신 것은 조금 미숙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때 저의 모습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신념은 타성에 젖은 저보다는 훌륭하십니다. 그런데요, 아이들 중에 선생님 관심 밖에 두어도 되는 아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싸는 것만이 사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몫을 할 수 있는 바른 아이로 키우는 것도 우리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우리로 인하여 마음 다치는 아이들이 이젠 없도록, 모두가 웃을 수 교실을 만들도록 함께 노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