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없는 뽑기 기계 - 2020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곽유진 지음, 차상미 그림 / 비룡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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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 분량의 짧은 동화인데 그 안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한다. 화자인 희수의 상황을 처음에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면 알게 된다. 이야기가 짧으니 물론 금방 알게 된다. 그 상황은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상황 중 가장 슬픈 것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롭게 전개되며 마침내는 희망을 보여준다. 살아있고 살아가야 하니 어찌하든 희망을 붙잡아야 한다. 그 희망은 내면에서도 나오고, 주변에서 보내주는 마음으로 함께 완성된다.

 

희수가 아빠 바지를 헌 옷 수거함에 넣는 장면이 첫 장면이다. 평범한 일상일 수 있는 이 행위가 희수에게는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난 이상한 마음이 들었어. 바지가 내 배 속에서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거든.”(5)

 

분명히 확인했던 주머니에서 이상하게도 500원짜리가 떨어지고, 희수는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걸 가지고 문구점 앞으로 간다. 거기에는 뽑기 기계가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인 꽝 없는 뽑기 기계는 아니다. 그건.... 판타지의 공간에서 나온다. 희수 앞에 나타난 남자아이는 희수 손을 잡고 문구점 앞으로 데려간다. 그 앞에 있었다. 꽝 없는 뽑기 기계!

 

희수는 1등을 뽑았고, 상품은 문구점 안 상자에 담겨 있었다.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다이노폴리스 로봇 같은 값나가는 물건이 아니었다. 아주 후줄근한 헌 물건.... 희수는 그걸 가져와 서랍에 넣는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희수의 상황이 파악되고 독자는 소름이 돋게 되지.....ㅠㅠ

 

두 번째 꽝 없는 뽑기 기계로 간 날에는 처음의 남자아이는 없고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유쾌했고, 크게 웃어 주었고 용기를 주었다. , 그때 알아버렸다. 판타지 공간에서 만난 두 아이는 누구인지. 가슴이 먹먹하다.

 

선택적 함구증에 걸린 희수에게 전처럼 따뜻하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이웃집 영준이와 영준이 엄마. 교대로 희수 자매와 함께 지내 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함께 아픔을 겪은 언니. 이들과 함께 시간이 흐르며 희수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간다. 그리고 드디어 등교하게 된 날, 열어젖힌 교실 문 안쪽에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친구들의 모습이 눈부시다.

와아~ 희수 학교 왔다!

영준이와 아이들이 내게로 몰려왔어.” (66)

 

66쪽짜리 짧은 저학년 동화에 어쩜 이렇게 무거운 인생의 아픔을 담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픔과 슬픔이 어른들의 전유물이던가? 그렇지 않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과제는 치유다. 그건 본인의 몫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몫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여러 사람들에게 참 소중한 책이 될 것 같다.

 

아주 흔한 활동이지만, 우리반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 보라고 하고 싶다. 발신자와 수신자는 마음이 가는대로 정해서. 독자가 희수에게, 희수가 판타지 속 남자아이에게, 판타지 속 여자아이가 희수에게 등 여러 방향으로 쓸 수 있겠다. 문학작품을 읽는 가장 큰 목적이 공감과 이해라면, 그것으로 우리 사는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거라면, 이 책은 그 몫을 훌륭히 한다. 엄혹한 추위가 아닌 따뜻한 봄날의 슬픔. 안 슬플 수는 없지만 함께 해서 견딜 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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