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황지영 지음, 백두리 그림 / 우리학교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지영 님도 이제 무조건 읽고보는 작가님이 됐다. 이 책을 읽고보니 더욱 그랬다. 전작 <우리 집에 왜 왔니> 리뷰에서 심리묘사와 긴장감을 장점으로 꼽았는데 이 책에서도 그 두 가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정말 큰 힘이다. 한 번도 끊지 않고 한 호흡에 끝까지 가게 만드는 힘.

차분한 색채의 표지와 제목은 초등용 동화라기보다는 청소년소설 정도 되는 느낌을 준다. '대나무숲'이라는 소재도 그렇다. 하지만 본문의 삽화에는 원색이 많이 사용됐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6학년 여학생들, 배경은 신도시의 신설 초등학교다.

세 아이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한다. 유나는 아이들말로 '인싸'라고 할까? 팔방미인에 성격도 좋다. 건희는 유나의 짝이다. 지난 학교에서 아픈 기억을 남기고 전학왔다. 일부러 이사 온 것이니 그정도의 어두운 사연이 있는 것.... 민설이는 유나의 5학년때 단짝이지만 지금은 옆반이다. 유나를 잊지 못해 쉬는시간마다 찾아온다. 말하자면 삼각관계인 셈. 그 삼각형은 매끈하진 못해도 어느정도 모양을 유지했지만, 보다못한 건희가 새 반에서도 친구를 사귀어야하지 않겠냐고 한마디 했다가 완전히 어그러져 버린다. 이 갈등을 발단으로 해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며 갈등은 심연으로 소용돌이쳐 들어간다.

등장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대표하여 보여준다. 쾌활하고 이해심 많은 아이가 사건에 휘말리며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거칠게 던지는 말습관 때문에 찬사를 받다가 어느 순간 학폭 가해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정신이 돌아온 아이도 있다. 그리고나서 보니 박수를 보내던 친구들은 모두 모른척 입을 씻고 있다. 물귀신처럼 붙들고 늘어져도 내꼴만 사나워질 뿐이다. 결국 포기하고 이사를 결심해 이곳으로 왔다. 새 학교에선 모든 걸 새롭게 하리라 결심하지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자신의 캐릭터에 낙담한다.
폭력적인 아빠와 이혼하고 엄마와 단둘이 신도시에 자리잡은 아이도 있다. 환경은 새로우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어렵고 내가 잘하고 싶은 것도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고 마음과 다르게 사고는 터지고 관계는 꼬이기만 한다.

이 세 주인공 외에도 생각없이 말 옮기는 증폭스피커들, 고립된 친구를 돕는다는 사명감에 심취하여 어느새 그 포지션을 즐기고 있는 아이, 동네 축구처럼 이리 몰려갔다 저리 몰려갔다 하는 아이들 등 수많은 아동 군상들을 볼 수 있다. 아니 꼭 아동이라 제한할 것도 없겠다. 인간군상이라 하면 되겠다. 그러면 어른 등장인물들도 포함시켜 볼까? 사면초가에 빠진 아이들에게 잠시의 휴식을 제공해주며 과하지 않은 조언도 해주는 보건선생님, 새로운 생활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모든걸 방어하려 하다가 결국 딸 때문에 용기를 낸 민설 엄마 등.

그러고보니 이 책에서 그려낸 어른들은 모두 평균 이상이구나. 그래서 이 책은 갈등의 토네이도가 잠잠해질 무렵 훈훈한 결말로 끝맺을 수 있게 된다. 초중반의 올라가는 피치에 비해서는 좀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일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긍정적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상처를 겪었다. '흉터'는 이 책의 키워드이며 중의를 띤 상징이기도 하다. 나는 상처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상처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미 난 상처라면 어떻게 봉하고 치료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몸에 난 상처는 의사선생님들이 워낙 잘해주시니 믿고 따르면 되지만 마음과 관계에 난 상처는.... 미련스럽게도 인간은 상처를 헤집고 나을만하면 또 헤집어 키우고 키워서 결국 회복불능으로 만들어 놓을 때가 많다. 그걸 옆에서 부추기고 같이 헤집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부모가 그러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정말 다행이다. 그 결말을 위해 평균 이상의 어른들이 등장한 것은 필연이다. 물론 그 일을 모두 어른들이 한 것은 아니다. 어른은 조연일 뿐이다. 아이들이 이 토네이도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제야 나는 하루 종일 흉터를 잊고 지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걸까?" (170쪽)

어른 독자로서의 나는 이 책의 보건선생님 정도의 어른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상처는 단시간에 낫지 않지만 나을 방법과 방향이 있다. 그걸 알고 간다면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좀 멀리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처를 내지 않는 것도 가르쳐야 하지만 났을 때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도 교육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일단 재미없어서 못 읽겠다는 아이는 없을 것 같고^^, 아이들끼리도 멍석만 깔아준다면 이야기를 꽤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대부분 '흉터'를 가지고 있을테고 어떤 아이는 현재 통증이 극심할 수도, 어떤 아이는 지나간 흉터를 매만지고 있을수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 책 속 친구들이 겪는 이야기는 참고가 되는 한편 위로도 된다.

좋은 고학년 장편이 무수히 많은데, 이 책도 끼어드네. 아 경쟁율이 넘 치열해.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드 스파이 1 : 사라진 보물 키드 스파이 1
맥 바넷 지음, 마이크 로워리 그림, 이재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가 유명한 그림책을 많이 쓴 분인데, 제목만 들어보고 실제 읽어본 책이 거의 없네....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정도만 읽어봤다. 모자 시리즈를 쓰고 그린 존 클라셴 그림작가와 협업한 작품이 많구나. 이 책은 작가의 동화책으로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라고 한다.

그림책 작업을 많이 한 작가라서인지 동화책이라도 그림이 반... 좋다.ㅎㅎ 글자체도 일반적인 명조체가 아닌 조금 더 두껍고 네모진 폰트인데 읽기 편하고 눈에 잘 들어온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자신의 어린시절 실화라며 너스레를 떤다. 미국의 한 평범한 소년이 영국여왕의 전화를 받아 스파이의 임무를 띠고 프랑스를 거쳐 소련(지금이 아니고 작가의 어린 시절이라서)까지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

내가 좀 이해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유머코드에서도 그러한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런 유머다. 요즘 순위권에 올라있는 책이라 아이들의 선호 경향도 알아볼 겸 읽었는데 나한테는 재미가 없었다. 마치 모임에서 엄청 황당한 얘기로 너스레를 떠는데 나 혼자만 안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ㅎㅎ
마지막에 "그래서?"라고 세상 멍청한 얼굴로 질문을 해서 모임의 분위기를 깨는 일은 없도록 하자.^^;;;

어쨌든 맥은 어린 나이에 영국 여왕에 프랑스 대통령에 소련의 KGB 요원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이런 횡재가 있나. 물론 그걸로 얻게 된 건 영국여왕이 보내준 비스킷 선물 뿐이었지만. ("지난번에 먹은 그 맛이었다." 부분에서 한 번 풋, 하고 웃음)

어린이 탐정 이야기는 많지만 스파이 이야기는 처음인데, 결과적으로 맥은 임무를 달성했지만 본인의 역할이 무엇이었나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ㅎㅎ 그러니까 가슴 졸이는 추리물, 어린 주인공의 기지와 활약, 이런 걸 기대해서는 안되는 책이다. 하지만 마지막장에서 영국 여왕에게 또 전화를 받는 걸 보면 맥의 모험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걸 알 수 있다. 시리즈가 몇 권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맥은 점점 성장해 갈테고 맥의 활약 또한 더욱 흥미진진해겠지.^^

영국, 프랑스, 소련 같은 실제 국가들이 배경으로 나오고, 실제 인물이 아닌 주인공들도 나오지만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과 관련 사건들이 언급되기도 한다. 관심있는 아이들은 작가의 관점과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며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물론 그냥 사건만 따라가며 읽어도 되고. 머리에 쥐나지 않고 감정 소모도 없이 가볍게 읽을 만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 - 2020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미래주니어노블 5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 지음,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만 봐도 끌리는데 2020 뉴베리 아너상을 받은 책이라니, 게다가 '무서운 이야기'라니 요즘 읽기 딱이잖아? 나는 무서운 걸 싫어한다. 영화 중에선 공포영화를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이 책의 무서움은 내가 싫어하는 칼질, 도끼질, 피 낭자... 이런 잔인함 쪽은 아니었고 으시시... 귀신... 이런 괴기 쪽도 아니었다. 그런데 무서운 건 맞았다. 제대로 무서웠다.

여우 일곱 남매는 밤마다 엄마한테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데, 엄마는 밑천이 다 떨어졌다. 새끼여우들은 엄마가 잠든 틈을 타 '습지동굴의 늙은 이야기꾼'을 찾아간다. 겁먹어 주저하던 막내까지 함께.

늙은 이야기꾼은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의 전제와도 같은 아주 중요한 말을 먼저 했다.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돌아와보게 되었던 그 말은 이런 것이다.
"모든 무서운 이야기는 두 가지 면을 갖고 있다. 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처럼 말이지. 너희가 끝까지 들을 만큼 용감하고 슬기롭다면, 그 이야기는 세상의 좋은 모습을 밝혀줄거야. 너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고, 너희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겠지."
"하지만 말이야. 너희가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무서워서 끝까지 듣지 않고 꽁무니를 뺀다면, 이야기의 어둠이 모든 희망을 집어삼킬 수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너희는 두 번 다시 굴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야.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영원히 젖내를 풍기며 삶을 허비하게 되겠지."

이야기꾼은 미아와 율리라는 두 어린 여우가 겪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가 한 편 한 편 끝날 때마다 새끼여우들은 한마리씩 집으로 슬금슬금 내뺀다. 마지막 이야기까지 남은 아이는 막내 뿐.) 두 어린 여우는 도와줄 누구도 없는 미지의 험난한 세상에 내팽겨쳐진다. 미아의 스승님은 어느날 '노란악취'에 물든 후, 이빨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여우가 되어 미아 남매들을 물어뜯었고 꼬리털만 물린 미아는 겨우 도망쳐 길을 떠났다. 앞발 하나가 짧게 태어난 율리는 누나들의 괴롭힘 속에 엄마의 사랑만으로 근근히 살다가 어느날 발톱마왕의 출현으로 그 가는 행복의 끈마저 끊어졌다. 그런데 그 발톱마왕은 바로 아빠였다는 사실.

둘의 만남은 미아가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걸 율리가 도와주면서부터다. 그런데 미아를 그렇게 만든 건 그림책 작가인 인간이다. 그녀는 토끼 등의 동물들을 잡아 가두고 그림작업이 끝난 후에는 죽여서 내장을 꺼내고 짚을 넣어 박제로 만든다. 섬뜩한 한 마디. "내가 이야기를 쓰면 넌 그 속에서 영원히 살게 돼."
근데 그 작가의 이름이 베아트릭스 포터? 피터래빗 시리즈를 만든? 아니 실존했던 작가를 이렇게 악인으로 등장시켜도 되는 건가? 무슨 사연이 있는 거지? 어리둥절하다. 인간이 보기에 고상하고 아름다운 인간도 동물 입장에서는 얼마나 끔찍한지 말해주려는 건가? 하여간에 이 장은 여우 입장에서 진짜 숨막히도록 무서움.ㅠ

둘이 만난 후로부터의 이야기는 여전히 잔인하도록 험난한 세계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닥치는 일을 겪어내는 이야기다. 산사태처럼 밀어닥치는 고난에 여유있게 생각할 틈은 없다. 그래도 둘은 서로를 버리지 않았다. 작가 인간에 이어 가장 무서운 존재가 그들에게 다가왔는데, 그는 동족(여우)이었지만 '약한 자를 경멸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폭력적인지 절절히 느낄 수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어 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결국은....

그러니까, 이 책에서의 무서움은 환상 속의 공포가 아니었다.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현실의 두려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의 무서움이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서 '레질리언스'라는 낱말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미도서관사서협회에서 일하는 크리스나 그라디는 이 작품에 대해서 레질리언스(회복탄력성)를 언급하였다.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모든 책을 선택한 후에 깨달았어요. 이 책의 각각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레질리언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 책은 보통의 어린이들이 읽는 무서운 이야기와는 다르다. 이 책은 여우들의 모험과 삶을 통해 인간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극한 상황, 무서운 상황, 두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견뎌내며 사는 율리와 미아의 모습을 지켜본다. 끔찍한 슬픔 속에서도 자신이 그것을 감당해 내면서 책임감 있는 어른 여우가 되어 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이들에게 레질리언스를 기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눈 앞에 닥친 나쁜 상황에서 숨거나 도망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바라보고 견뎌내며 이겨내는 마음을 키워줄 것이다.]

나도 책의 어떤 대목에서 그걸 느꼈기에 해설에 더욱 공감이 갔다.
"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두려움을 이겨내고 꼭 필요한 일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구했다고 생각해."
"너는 오랫동안 싸워 오며 살아남았단다.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를 뿐이야." (329쪽)

인생은 고해라는 흔한 말을 곰곰히 되새겨 봐도 인간의 탄생은 공포영화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또는 아이들의 인생이 두 여우만이야 할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무서운' 이야기임과 동시에 '용기를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4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읽기에 크게 부담은 없을 것 같다. 중간정도 독서력을 가진 고학년이면 무난히 읽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하고 묻는 아이들처럼, 뒷장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장점이라고 내가 생각하는점, 예측이 안된다. 기시감 같은 것도 없고 아 이렇게 끝나겠구나 싶은 느낌도 없다. 마지막장까지 전혀 열리지 않는 상자를 들고 여행하는 느낌이다. 그 상자를 중간에 버리긴 싫고 말이다. 그래서 끝까지 읽게 될 것이다.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한 것이다. 뉴베리 아너라는 묵직한 상은 그래서 주어진 것이 아닐까.

동화를 읽고 가끔 드는 생각.
'이거 애니메이션으로 안 만들어지나?'
이 책은 특히, 머리 속에 영화 속 장면이 그려진다. 무섭고, 휘몰아치고, 벗어나고, 애틋하고, 또 휘몰아치고... 그리고 잔잔한 관조까지. 화면의 주 색조가 바뀌어지는 것까지 느껴지는 이 생생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마블 보름달문고 80
이나영 지음, 유경화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학년 단편집을 오랜만에 읽었다. 히죽 킥킥 웃음이 나는 대목도 있었지만 대체적인 코드는 웃음이 아니었다. 색깔로 표현한다면 이 책의 표지와 같았다. 어두운 푸른색.

6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첫 편이자 표제작인 [블루 마블]의 화자 '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혜나를 동경하고 친해지려 노력한다. 그반에 전학온 은서는 혜나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능력치는 혜나 못지않은 것 같은데 집안 환경은 베일에 싸인 느낌? 혜나는 '나'를 시켜서 은서네 집을 알아내고 놀러가겠고 청한다. 흔쾌히 승락하는 은서. 주소에 쓰인 '초원빌라'는 재개발지역의 허름한 빌라였고 은서네 집은 지하 원룸이었으며 은서는 할머니랑 둘이 살면서 구슬로 머리핀을 만드는 부업을 했다. 이 모든걸 은서는 스스럼없이 공개한다.
이러기 쉽지 않은데 은서가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독자의 상상에 달렸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 자존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한 애를 썼을 것 같은데.... 은서는 친구 손님들에게 '블루 마블' 게임을 제안한다. 가상의 세계 여행에서 은서는 당당하고 모르는 것이 없다. 오히려 "거짓말! 너 미국, 영국도 다 다녀왔냐?"하고 묻는 혜나 얼굴이 벌게졌을 뿐.

잘사는 못된 아이, 못사는 착한 아이를 이분법으로 갈라놓는 구분은 싫다. 하지만 주눅들기보다 자신의 세계를 세워나가는 건강한 아이를 보는 느낌은 좋았다. 이 나라에서 이 아이가 살아나가며 얼마나 좌절을 겪어야할까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그래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긴 싫다. '나'도 살며시 은서와 우정의 눈빛을 나눈 것처럼, 그렇게 부드럽고 친절하면서도 당당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며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두번째 작품 [노란 포스트잇] 노란 포스트잇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열린 결말에 간절한 바람을 얹어 보지만 우리의 트라우마가 먼저 슬픔을 몰고 오는 것 같다.

[봄날의 외출]은 흐뭇하다. 귀엽지만 건사하기 힘든 쌍둥이 남동생들과 아빠차를 타고 춘천에 닭갈비를 먹으러 가.....는 장면은 TV속 장면이다. 아빠는 연예인이 아니고 화물트럭 기사다. 쉬는 날엔 놀러다니기보단 푹 쉬어야 한다. 그런 아빠랑 데이트하러 모처럼 나온 봄날, 부녀는 춘천이 아닌 어디에서 닭갈비가 아닌 무엇을 먹었을까? 마치 첫사랑의 연인들이 보잘것 없는 것을 먹으며 데이트를 해도 서로가 있으면 웃음만 나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현실에서 그건 오래가지 않는다지? 그래도 이 부녀의 행복은 탄탄하다고 믿는다. 그들의 만족에서 나온 에너지 덕분에. 그게 큰 추진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 남자의 그녀] 이게 젤 웃긴 이야기였다. 연수는 동원이에게 반했다. 적극적인 연수는 동원이를 쫓아다니려 하지만 '그녀'에게 번번히 막힌다. '그녀'는 바로 동원이의 기사이자 매니저인 엄마다. 말하자면 동원이는 마마보이였던 것이다.
연수는 위험한 상황에서 동원이 엄마를 구하고, 그 야무짐에 감탄한 엄마는 연수를 여친으로 (적극) 인정한다. 하지만 이 일을 어째? 이제 정이 떨어져버렸으니. 아들 가진 엄마들 꼭 보세요. 아들 장가보내고 싶으시면.ㅎㅎㅎㅎ

[검정 가방] 가장 읽기 힘든 이야기였다. 나는 엄마품에서 온실속 화초처럼 자라나 험한 일을 겪어보지 못했다. 고생 안했으면 좋은거 아니야? 공감능력 면에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화가 나고 답답하지만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유년기 성폭행(추행)은 실제로 상당한 비율로 일어난다고 한다. 이걸 막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이런 인간들은 다시는 세상 빛을 못보게 해주든가 피를 토하며 후회하게 해주면 좋겠다.

마지막 이야기 [어느 날 고래가]도 힘들고 답답하다. 공부 압박이 너무나 심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유유상종이어선지, 내가 서울 변두리 별볼일 없는 동네에 살아선지 주변에서 이런 케이스를 보진 못했다. 하지만 상당히 있는 사례라고 한다. 드라마 못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 이야기엔 상징과 비유도 사용되었지만 민낯의 이야기들은 정말 끔찍할 거 같다.
"왜 저러고 살까."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뭐하고 있냐. 한심하다."
이 간극이 좁혀지기 전까진, 아니 이렇게 유소년 시기를 담보해야만 남을 이기고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런 작품은 계속 쓰여지겠지.ㅠㅠ

이 책을 잘 읽었고 추천하지만, 이런 책을 아이들과 깊이 읽을 자신은 잘 생기지 않는다. 그저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고 깊어지길 바랄 뿐이다. 무슨 말을 보태고 싶지가 않다. 나부터가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답을 아는 것도 아니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책, 교사의 삶으로 다가오다 - 교사에게 그림책이 필요한 순간
김준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 그림책 관련 책들이 이렇게 많이 나오기 시작했을까. 나는 10여년 전, 이제는 몇몇 오래된 이들만 나오는 지역교사모임에서 처음 그림책을 접했다. 우릴 이끌어주시던 선배님이 모임의 동기유발을 위해 꺼내든 카드였는데, 그림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깊은 세계를 알려주시던 그분의 신나는 표정과, 참새처럼 받아먹던 우리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새 이렇게 많은 날들이 지났을까. 나는 그때와 크게 달라진게 없는 것 같은데 도서실에 가득한 그림책 관련 책들은 그동안의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는 것 같다. 너무 많아서 다 읽을 수는 없다.^^

그중에 이 책을 골라든 것은 우연이었지만, 읽다보니 잘 골라졌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일단 소개된 그림책들이 대부분 내가 읽은 책들이라는 점.(안 그런 책도 많아서.ㅎㅎ 그런 경우 그림책을 같이 봐가면서 읽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렵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그냥 이 한권 가볍게 들고 읽기에 좋았다.) 그리고 저자 선생님이 평범한 교사시라는 점(물론 겸손이겠지만), 나랑 너무 닮은 약점을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점에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문학을 제외한 책들에서는 실용성을 첫째로 찾는 사람이다. 수업 아이디어를 주는 책, 유용한 지식을 주는 책.... 이 책처럼 자기고백적인 책은 굳이 찾아읽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의 성격을 미리 알았다면 고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읽다보니 그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게 됐다.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되어 있다. 1장은 '그림책 나에게 말을 걸다' 2장은 '그림책 교사에게 말을 걸다'이다. 1장이 그림책을 통해 자신을 성찰해 가는 이야기라면 2장은 교사로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1장을 보며 저자와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아마도 자연인으로서 저자와 나는 거의 같은 성격이나 기질을 가진 것 같다. 2장에 보면 저자는 교사로서 커다란 변화와 성장을 거치는데, 이부분은 나와 좀 다르다. 저자의 두 배 경력을 가졌어도 딱히 극적인 변화를 겪은 적은 없으니까.^^;;;

일단 처음 소개한 책이 <너는 특별하단다>, 두번째 소개한 책이 <수퍼 거북>이라는 점 때문에 첫인상이 강렬했던 것 같다. 작년에 간혹 나가던 그림책모임에서 "나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라는 주제에서 내가 가져갔던 책이 바로 수퍼 거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토끼를 이기고 수퍼거북이 되었던 적은 없다. 마지막에 승부를 포기한 거북이 집에와서 널부러진 장면, 그게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점이 나에게 위안을 주었을 뿐이다. 저자는 이 장의 제목을 '나답게 사는 행복'으로 뽑았다. 그렇다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을 터이다. 거북이가 경주마가 되려는 몸부림 같은 건 안해도 되니까 말이다. 교사로서도 '클라스가 다른' 교사가 되려고 조바심을 갖지 않아도 될 것이니까 말이다. 이 장에서 저자의 성격검사 결과를 공유했는데 거기에 "대부분의 일을 과제로 생각한다."라는 말이 내게 너무나 딱이었다. 과제보다는 게임으로 생각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신나겠냐만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어.^^;;;

<오늘은 쉬는 날>과 <오늘 하루도 괜찮아>라는 책을 소개하는 장에 나왔던 '케렌시아'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투우사와 싸우다 지친 소가 투우장 한쪽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회복하는 장소'라는 뜻이라는데, 인간에게는 치열한 노력의 장과 함께 케렌시아도 꼭 필요한 것 같다. 그 균형이 필요할텐데 이쪽으로 마음이 확 쏠리는 걸 보니 내가 지금 많이 지쳐있는 상태인듯.

2장에서는 토론수업,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수업면, 관계면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저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성도 존중해야 하지만 교사라는 직무 자체가 요구하는 성품도 없지는 않은지라,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그림책을 통해 성찰하는 과정이 매우 의미있다. 몇가지 인상적인 그림책들을 골라보면 생각(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돼지왕(닉 블랜드), 너에게 난 나에게 넌(송봉주), 빨간 벽(브리타 테켄트럽), 가드를 올리고(고정순) 등이 있었다. 그중 "모든 진리를 학생에게 전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학생들이 정답을 알려달라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내겐 가장 되새길 대목이었고, 그래서 소개된 <생각>이라는 그림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그림책과 더불어 시, 노래가사 등의 좋은 문구를 함께 소개해 준다는 점이다. 앞부분을 보고 국어선생님이신가 했는데 그건 아닌거 같지만, 교사가 문학적 소양과 감수성을 갖는 건 큰 장점인 것 같다.

나도 읽은 책을 기록해 놓는 편이긴 한데, 나의 기록이 이렇게 맥락을 갖고 다른 이들의 생각과 성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으려면 모든 면에서 참 많이 노력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혼자 읽기에 좋은 책이지만 교사모임에서 함께 읽으며 교사의 삶에 대해 성찰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림책을 기반으로 풀어낸 생각들이라 확장하기에 더욱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