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블 보름달문고 80
이나영 지음, 유경화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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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 단편집을 오랜만에 읽었다. 히죽 킥킥 웃음이 나는 대목도 있었지만 대체적인 코드는 웃음이 아니었다. 색깔로 표현한다면 이 책의 표지와 같았다. 어두운 푸른색.

6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첫 편이자 표제작인 [블루 마블]의 화자 '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혜나를 동경하고 친해지려 노력한다. 그반에 전학온 은서는 혜나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능력치는 혜나 못지않은 것 같은데 집안 환경은 베일에 싸인 느낌? 혜나는 '나'를 시켜서 은서네 집을 알아내고 놀러가겠고 청한다. 흔쾌히 승락하는 은서. 주소에 쓰인 '초원빌라'는 재개발지역의 허름한 빌라였고 은서네 집은 지하 원룸이었으며 은서는 할머니랑 둘이 살면서 구슬로 머리핀을 만드는 부업을 했다. 이 모든걸 은서는 스스럼없이 공개한다.
이러기 쉽지 않은데 은서가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독자의 상상에 달렸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 자존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한 애를 썼을 것 같은데.... 은서는 친구 손님들에게 '블루 마블' 게임을 제안한다. 가상의 세계 여행에서 은서는 당당하고 모르는 것이 없다. 오히려 "거짓말! 너 미국, 영국도 다 다녀왔냐?"하고 묻는 혜나 얼굴이 벌게졌을 뿐.

잘사는 못된 아이, 못사는 착한 아이를 이분법으로 갈라놓는 구분은 싫다. 하지만 주눅들기보다 자신의 세계를 세워나가는 건강한 아이를 보는 느낌은 좋았다. 이 나라에서 이 아이가 살아나가며 얼마나 좌절을 겪어야할까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그래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긴 싫다. '나'도 살며시 은서와 우정의 눈빛을 나눈 것처럼, 그렇게 부드럽고 친절하면서도 당당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며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두번째 작품 [노란 포스트잇] 노란 포스트잇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열린 결말에 간절한 바람을 얹어 보지만 우리의 트라우마가 먼저 슬픔을 몰고 오는 것 같다.

[봄날의 외출]은 흐뭇하다. 귀엽지만 건사하기 힘든 쌍둥이 남동생들과 아빠차를 타고 춘천에 닭갈비를 먹으러 가.....는 장면은 TV속 장면이다. 아빠는 연예인이 아니고 화물트럭 기사다. 쉬는 날엔 놀러다니기보단 푹 쉬어야 한다. 그런 아빠랑 데이트하러 모처럼 나온 봄날, 부녀는 춘천이 아닌 어디에서 닭갈비가 아닌 무엇을 먹었을까? 마치 첫사랑의 연인들이 보잘것 없는 것을 먹으며 데이트를 해도 서로가 있으면 웃음만 나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현실에서 그건 오래가지 않는다지? 그래도 이 부녀의 행복은 탄탄하다고 믿는다. 그들의 만족에서 나온 에너지 덕분에. 그게 큰 추진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 남자의 그녀] 이게 젤 웃긴 이야기였다. 연수는 동원이에게 반했다. 적극적인 연수는 동원이를 쫓아다니려 하지만 '그녀'에게 번번히 막힌다. '그녀'는 바로 동원이의 기사이자 매니저인 엄마다. 말하자면 동원이는 마마보이였던 것이다.
연수는 위험한 상황에서 동원이 엄마를 구하고, 그 야무짐에 감탄한 엄마는 연수를 여친으로 (적극) 인정한다. 하지만 이 일을 어째? 이제 정이 떨어져버렸으니. 아들 가진 엄마들 꼭 보세요. 아들 장가보내고 싶으시면.ㅎㅎㅎㅎ

[검정 가방] 가장 읽기 힘든 이야기였다. 나는 엄마품에서 온실속 화초처럼 자라나 험한 일을 겪어보지 못했다. 고생 안했으면 좋은거 아니야? 공감능력 면에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화가 나고 답답하지만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유년기 성폭행(추행)은 실제로 상당한 비율로 일어난다고 한다. 이걸 막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이런 인간들은 다시는 세상 빛을 못보게 해주든가 피를 토하며 후회하게 해주면 좋겠다.

마지막 이야기 [어느 날 고래가]도 힘들고 답답하다. 공부 압박이 너무나 심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유유상종이어선지, 내가 서울 변두리 별볼일 없는 동네에 살아선지 주변에서 이런 케이스를 보진 못했다. 하지만 상당히 있는 사례라고 한다. 드라마 못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 이야기엔 상징과 비유도 사용되었지만 민낯의 이야기들은 정말 끔찍할 거 같다.
"왜 저러고 살까."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뭐하고 있냐. 한심하다."
이 간극이 좁혀지기 전까진, 아니 이렇게 유소년 시기를 담보해야만 남을 이기고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런 작품은 계속 쓰여지겠지.ㅠㅠ

이 책을 잘 읽었고 추천하지만, 이런 책을 아이들과 깊이 읽을 자신은 잘 생기지 않는다. 그저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고 깊어지길 바랄 뿐이다. 무슨 말을 보태고 싶지가 않다. 나부터가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답을 아는 것도 아니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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