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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교사의 삶으로 다가오다 - 교사에게 그림책이 필요한 순간
김준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4월
평점 :
언제부터 그림책 관련 책들이 이렇게 많이 나오기 시작했을까. 나는 10여년 전, 이제는 몇몇 오래된 이들만 나오는 지역교사모임에서 처음 그림책을 접했다. 우릴 이끌어주시던 선배님이 모임의 동기유발을 위해 꺼내든 카드였는데, 그림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깊은 세계를 알려주시던 그분의 신나는 표정과, 참새처럼 받아먹던 우리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새 이렇게 많은 날들이 지났을까. 나는 그때와 크게 달라진게 없는 것 같은데 도서실에 가득한 그림책 관련 책들은 그동안의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는 것 같다. 너무 많아서 다 읽을 수는 없다.^^
그중에 이 책을 골라든 것은 우연이었지만, 읽다보니 잘 골라졌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일단 소개된 그림책들이 대부분 내가 읽은 책들이라는 점.(안 그런 책도 많아서.ㅎㅎ 그런 경우 그림책을 같이 봐가면서 읽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렵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그냥 이 한권 가볍게 들고 읽기에 좋았다.) 그리고 저자 선생님이 평범한 교사시라는 점(물론 겸손이겠지만), 나랑 너무 닮은 약점을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점에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문학을 제외한 책들에서는 실용성을 첫째로 찾는 사람이다. 수업 아이디어를 주는 책, 유용한 지식을 주는 책.... 이 책처럼 자기고백적인 책은 굳이 찾아읽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의 성격을 미리 알았다면 고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읽다보니 그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게 됐다.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되어 있다. 1장은 '그림책 나에게 말을 걸다' 2장은 '그림책 교사에게 말을 걸다'이다. 1장이 그림책을 통해 자신을 성찰해 가는 이야기라면 2장은 교사로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1장을 보며 저자와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아마도 자연인으로서 저자와 나는 거의 같은 성격이나 기질을 가진 것 같다. 2장에 보면 저자는 교사로서 커다란 변화와 성장을 거치는데, 이부분은 나와 좀 다르다. 저자의 두 배 경력을 가졌어도 딱히 극적인 변화를 겪은 적은 없으니까.^^;;;
일단 처음 소개한 책이 <너는 특별하단다>, 두번째 소개한 책이 <수퍼 거북>이라는 점 때문에 첫인상이 강렬했던 것 같다. 작년에 간혹 나가던 그림책모임에서 "나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라는 주제에서 내가 가져갔던 책이 바로 수퍼 거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토끼를 이기고 수퍼거북이 되었던 적은 없다. 마지막에 승부를 포기한 거북이 집에와서 널부러진 장면, 그게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점이 나에게 위안을 주었을 뿐이다. 저자는 이 장의 제목을 '나답게 사는 행복'으로 뽑았다. 그렇다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을 터이다. 거북이가 경주마가 되려는 몸부림 같은 건 안해도 되니까 말이다. 교사로서도 '클라스가 다른' 교사가 되려고 조바심을 갖지 않아도 될 것이니까 말이다. 이 장에서 저자의 성격검사 결과를 공유했는데 거기에 "대부분의 일을 과제로 생각한다."라는 말이 내게 너무나 딱이었다. 과제보다는 게임으로 생각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신나겠냐만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어.^^;;;
<오늘은 쉬는 날>과 <오늘 하루도 괜찮아>라는 책을 소개하는 장에 나왔던 '케렌시아'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투우사와 싸우다 지친 소가 투우장 한쪽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회복하는 장소'라는 뜻이라는데, 인간에게는 치열한 노력의 장과 함께 케렌시아도 꼭 필요한 것 같다. 그 균형이 필요할텐데 이쪽으로 마음이 확 쏠리는 걸 보니 내가 지금 많이 지쳐있는 상태인듯.
2장에서는 토론수업,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수업면, 관계면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저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성도 존중해야 하지만 교사라는 직무 자체가 요구하는 성품도 없지는 않은지라,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그림책을 통해 성찰하는 과정이 매우 의미있다. 몇가지 인상적인 그림책들을 골라보면 생각(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돼지왕(닉 블랜드), 너에게 난 나에게 넌(송봉주), 빨간 벽(브리타 테켄트럽), 가드를 올리고(고정순) 등이 있었다. 그중 "모든 진리를 학생에게 전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학생들이 정답을 알려달라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내겐 가장 되새길 대목이었고, 그래서 소개된 <생각>이라는 그림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그림책과 더불어 시, 노래가사 등의 좋은 문구를 함께 소개해 준다는 점이다. 앞부분을 보고 국어선생님이신가 했는데 그건 아닌거 같지만, 교사가 문학적 소양과 감수성을 갖는 건 큰 장점인 것 같다.
나도 읽은 책을 기록해 놓는 편이긴 한데, 나의 기록이 이렇게 맥락을 갖고 다른 이들의 생각과 성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으려면 모든 면에서 참 많이 노력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혼자 읽기에 좋은 책이지만 교사모임에서 함께 읽으며 교사의 삶에 대해 성찰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림책을 기반으로 풀어낸 생각들이라 확장하기에 더욱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