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육 그 자체 - 교육에 관한 열아홉 편의 에세이 ㅣ 함께 걷는 교육 4
권재원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5월
평점 :
교직 평생 가장 길었던 한 학기를 마치고 힐링과 재충전을 위해 휴식하고 있는데 힐링은 커녕 우울증이 왔다.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으니 평상시 즐기던 책읽기와 리뷰 쓰기에 가장 좋은 조건인데, 입맛을 딱 잃은듯이 책들이 재미가 없다. 교육도서를 읽자니 읽어서 뭐하겠어 어차피 또 원격인데 하면서 부르르 진저리가 쳐진다. 이거 정말 큰일이다. 중증.ㅠㅠ
인기 높은 판타지동화와 이 책 중에서 저울질하다 이 책을 골랐다. 판타지가 날 더 우울하게 할 것 같았다. 그냥 건조한 책을 읽자.
읽다보니 이 책은 건조하다고 표현할 순 없는 책이었다. 끝까지 읽기 위해선 어쨌든 책을 따라가야 하는데 따라가다보면 의식의 흐름이 생겼다. 그게 때로는 위안도 되고 각성도 되고 도전도 주었다. 저자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학자이고 저술가이다. 이 책에도 저자가 정의한 개념들, 해석들, 견해들이 가득 담겨있었고, 500쪽이 넘는 책을 내가 끝까지 읽었다는 건 어쨌든 웬만큼은 이해할 만했단 뜻이다. 내게 각성을 준 개념이나 견해들을 몇 개 골라 적어본다. (요약이나 생략 등으로 본문과 완전히 같은 문장이 아닐 수 있음)
• 교육의 목표는 좋은 삶과 행복이며 이것은 자신의 가능성과 역량의 확장에서 온다. (46쪽)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 개선에 참여하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만 사람은 완전한 행복에 이르며 온전한 의미의 교육이 가능하다. (47쪽)
공론에 참여할 때 배울 수 있는 방법과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교육이란 사람을 민주시민으로 바꾸는 것이며, 민주시민이란 교육받은 사람이다. (48~49쪽)
• 팔방미인과 홈파인 공간에 대한 설명 (62~81쪽) :
교육은 가능성을 확대하고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기쁜 만남을 만들어 가려는 성향, 그리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은 반복 속에 차이를 새기는 존재다. 배움의 즐거움을 복원하는 것, 반복에서 차이를 생성하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을 되살려야 한다.(137쪽)
• 이 외부로부터의 재료가 바로 교양이다. 아동기까지 주어지는 외부자극의 양과 질, 그리고 청소년기의 교양이 이후 인성과 역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야말로 교양을 쌓을 결정적 시기이다. (202~203쪽)
• 창조성을 기르는 교육은 결국 민주시민 교육, 기본교육, 호기심을 북돋는 교육, 그리고 도덕교육이다. 창조적인 교사는 학생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며 학생이 호기심과 도덕심을 바탕으로 지루할 수 있는 인류의 지덕, 문화적 유산을 배우고 익히며, 이를 앞으로 마주치게 될 자신과 동료의 문제를 발견하는데 사용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는 교사다. (312쪽)
• 교육은 가치를 획득하는 방법을 보편화하고, 가치 자체를 다원화함으로써 사회가 전체적으로 평등해지는 데 기여한다. (517쪽)
아니, 이거 다 적고 있다간 너무 길어져서 안되겠다.ㅎㅎ 읽다가 메모해 놓은 부분을 보니 이런 생각들도 나를 지나갔었구나.
■ "믿고 맡겨두고 기다리면 아이들은 스스로 내면의 힘을 발휘하여 성장한다" 와 같은 착하디착한 성장의 교육관에 대한 지적. 나는 한참동안 이런 교육관을 갖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있었다. 나는 왜 아이들을 전적으로 믿지 못할까? 내게 존중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훌륭한 샘들은 아이들은 믿는대로 된다는데 왜 나는 20년을 넘게 해도 안 그런것 같을까?
이 책에서는 인간에게는 성장과 성숙 이상의 무엇이 있기에 교육이 소용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 무엇이란 바로 '발달'이다. 발달은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다. 여기에서 여러 교육학자들의 발달 이론들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해 주었다. 그동안의 저서들에서 그랬듯 쉽고 명료하게 설명해 주어서 정리가 잘 됐다. 확실치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는 '발달에는 의도적이고 사회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즉, 교육자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는 비고츠키의 이론과, 평생을 발달의 단계로 규정한 에릭슨의 이론에 비중을 둔 것 같다. 저자는 전작인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러하다. 매우 공감한다. 아, 이 대목에 오니 비로소 읽기에 탄력이 붙네. 아직 독서를 포기할 나이는 아닌 것이지. 나는 아직도 공부할 기회가 많이 남은 거지. 기회라기 보다는 필요성이.ㅎㅎ
■ 배움에 대해 정의하는 11장에서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다" 라는 문장과 진실성(verisimilitude)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온다. 내 친구 한 명이 "너의 경쟁력은 진정성이야."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 오~ 그럼 나는 배움의 중요 조건을 갖추고 있는거네? 보잘것 없는 삶이지만 나 자신과 연결해보려는 태도는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상당히 중요한거구나. 그걸로 어떤 열매를 맺은 바는 없지만 이게 장점이라니 다행이네.
"앎을 이야기로 진술할 수 있다는 것은 앎을 계속 삶 속에서 활용하여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뜻, 즉 진실하게 알고 그것을 진리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252쪽)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배운 것을 자꾸만 자기 이야기로 만들어보게 하는 시도가 필요하겠다.
이제 향후 약 10년 (되도록 정년까지는 가지 않을 생각임. 아니 내 역량으로는 갈 수도 없음) 남은 교직인생에서 내가 염두에 두고 추구할 것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내 나름대로 나의 교육활동에 적용할 바는 이렇다.
1. 깊이 생각하게 하는 교육
끈기있게 생각한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 나 자신이 끈기있게 생각하지 못한다. 골치아프면 일단 덮기.^^;;;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심하다. 일부 특출한 아이들을 빼고. 이 책을 보면 언뜻 생소하거나 성급한 연결 같아보이는 명제들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창조성 교육이란 곧 민주시민교육이다." 같은. 그런데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설득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의 끈기있는 사유와 그것을 차분히 펼친 전달력 덕분일 것이다. 교사들에게는 이런 면이 필요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으로 이끌고 사유할 시간을 주고 사유의 산물을 건져올리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진을 빼는 과정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그 산물이 쥐꼬리같을 때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크게 마음을 먹어야 이런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수업이 좀더 일상화되도록 잘 안되어도 계속, 던져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생각의 연습. 교사도 필요하고 학생도 필요하다.
2. 감성을 일깨우는 교육
삶의 재미를 알게 하는 교육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이런 교육을 할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다. 내가 삶의 재미를 다양한 곳에서 맛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험도 극히 제한되어 있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안내해주고 싶다. 언젠가 독서교육 연수에서 송승훈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 목표는 이거예요. 아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돈 안들이고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잊고 있었는데 이 책에도 비슷한 뜻의 내용이 나와서 기억이 났다. 소박한 행복거리는 도처에 많지만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감성은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특히 인간이 긴 역사를 통해 남긴 예술적 유산들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소양을 갖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도 나도.
긴 교직경력에도 불구하고 교육 그 자체에 대한 나의 인식은 교대 1학년 첫 교육학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나의 생각 확산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일단 아이들이 공부는 왜 해요? 라고 묻는다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해야지." 보다도
"너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서 하는거야.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이 확장될 때 행복해지는 존재거든." 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난 이 책이 교사들이 읽어야 하는 책인 줄로만 알았다. 왠지 안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교사로서의 삶이 아주 많이 남은 것이 아닌데다가 난 이제 가소성이 많이 떨어져서.... 읽은들 뭐하겠나 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꼭 교사로서만 읽게되진 않았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시민'으로 읽었다고 할까? 교육이라는 개념 하나로 이렇게 구석구석을 비출 줄은 몰랐다. 교육이 이렇게 크고 중요한 개념인 줄 교육자인 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민망함.... 동료샘들과 천천히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20대의 시민인 내 자식들에게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