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동의 비밀 창비아동문고 310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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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지만 이 책이 단순히 무섭기만 한 책은 아니다. 괴기스러운 공포가 아니라 생활의 공포? 현실적인 무서움이라고 하겠다. 추리동화라고 할 수 있지만 명탐정의 대활약 같은 건 없다. 마을의 다양한 인물들, 과거부터 이어져온 그들의 사연들, 그들이 엮어가는 다양한 사건들. 이들이 모여 긴장감있는 추리장편을 만들어냈다. 프로 이야기꾼 이현 작가님의 작품임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책.

정효가 이사오면서 이 마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울시 마포구 영미산로. 구 주소로는 연동동. 아파트보다는 주택과 빌라들로 구성되어 토박이들도 많고 이웃과의 교류도 꽤 남아있는 동네다. 5학년 정효는 할머니댁으로 혼자 이사왔다. 아빠는 어릴 때 돌아가시고 엄마랑 단둘이 살던 중 엄마가 해외근무를 나가게 되었는데 정효는 남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동안 교류도 없었던 친할머니와 함께 살기를 선택한 것은 할머니네 3층집이 맘에 들었던 탓도 있다. 아빠 어릴때 지어졌다는 그 집은 1층에 할머니의 미용실이 있고 다양한 입주자들이 함께 산다.

할머니네서의 첫날 밤, 잠이 안 와 나와 본 3층 테라스에서 정효는 사건을 목격한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1. 방화 사건. 누군가 한밤중에 화염병을 주차된 자동차 밑에 던져넣어 불이 났다.
2. 진돗개 습격 사건. 이웃집 진돗개가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머리가 피투성이 되도록 부상을 입었다.
3. 정효네 반 단톡방 왕따 사건. 그걸 누군가 담임선생님께 밀고(?)했는데 반 아이들은 그 아이를 배신자라 규정하고 찾아내려 애쓴다.
4. 해외입양되었던 분이 3층집의 새로운 입주민이 되어 희미한 사진 속의 친어머니를 찾는다.
5. 정효 할머니 친구분 실종 사건. 50년 만에 실체를 드러내는.... 아,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혹한 일은 많다. 몰라서 그렇지 옛날엔 더 많았는지도.
6. 자전거 절도 사건. 할머니집 창고에 들어있던, 정효가 기대하던 아빠의 자전거가 사라졌다. 누가 가져간 건가?

이런 모든 사건들이 주변 인물들과 함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조금씩 조금씩 실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의 이야기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 구조를 가져서 남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추락해가는 자존감에 몸부림치다 거짓말과 범죄로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인간들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가엾은 인생도 있다. 이런 측면을 보게 되면 세상은 태어나지 않는게 복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기에 세상엔 아직 희망이 있는 것 아닐까. 연동동 사람들, 명탐정도 없고 영웅도 없고, 부끄러운 과거나 현재의 약점도 다 가진 사람들이지만 손내밀고 잡고, 함께 겪어나가는 과정에 무서움이 점점 밀려오다 와락 달려들다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

정효를 비롯한 학급 친구들, 할머니 3층집에 사는 사람들, 이웃 빌라 주민들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설정에도 공을 들인 느낌이 든다. 전형적인 인물도 없지만 과하게 튀는 인물도 없이. 어쩌면 엄마와 떨어져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도 멘탈이 나가지 않고 성장해가는 정효가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인지도?ㅎㅎ

세상은 공포영화일 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총집합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긴박하게 읽으며 온실 속 밖을 좀 내다보는 것도 괜찮겠지. 그리고 적당한 오지랖을 가지면 그 밖도 꽤 살 만하다는 것도.

참 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창조하고 빈틈없이 엮으신 작가의 수고에 박수를. 탐정없는 추리동화는 더욱 쓰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모두가 탐정이고 모두가 용의자인 이야기. 추리동화에 한 획을 긋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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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맨 북극곰 그래픽노블 시리즈 2
박서영 지음, 이루리볼로냐워크숍 기획 / 북극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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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에서 다른 책을 사다가 이 책이 떠서 눌러보고는 바로 충동구매를 해버렸다. 도착한 책을 휘리릭 넘겨 읽고는 당황하고 말았다.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

나이 탓도 있지만, 내가 원래부터 시각 이해력이 좀 떨어진다. 그래서 난 글자없는 책이 좀 그렇다.... 딸래미를 불러앉혀 놓고 "이게 뭐래는 거냐? 그래서, 이게 그렇다는 뜻이야?" 이러면서 두번째 읽으니 좀 알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다.^^;;;;;

아이가 길을 가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빠뜨렸다. 아이는 깨진 액정을 상상하며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폰을 집어든다. 뒤집어본 폰의 액정은?! 다행히도 무사하다. 그런데 이어서 들어간 화장실 거울에서, 아이는 기절초풍할 듯이 놀란다. 깨진 것은 액정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었다! 여기에서 제목의 의미를 알것 같다. 스마트맨.

뛰쳐나온 스마트맨은 달린다. 달리다 발길에 뭔가 채인다. 그것은 스마트맨에게 욕지거리와 비명을 쏟아낸다. 스마트맨은 그걸 집어 삼키고 또 달린다. 병원의 자동문에 들어선 스마트맨의 얼굴에서 뭔가가 후두두둑 떨어진다. 스마트맨은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눈코입이 뻥 뚫린 유령 같은 모습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다가오는 소리, 점점 커지는 소리.....

.........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아이는 그 소리가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인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근데 어째? 소풍 날인데 늦었어!! 우다다다 뛰다보니 그놈이 폰이 주머니에서 또 빠진 거지. 허억.... 이번에도 액정이....??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간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스마트기기에 매여 사는 현대인들에 대한 우려와 경고는 계속 있어왔다. 특히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 대한. 그런데 그게 그들에게 먹힐 리가 없다. 아예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허억, 안돼~~ 엥? 오우, 아하... 하면서 단숨에 끝까지 읽을 것 같다. 딸이 말했다. "엄마, 이 책, 애들은 그냥 읽을거야. 걱정 마. 우리처럼 이게 뭔 뜻이지? 안 따져. 걔네들은 바로 읽어.ㅎㅎ"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마트맨의 문제가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아날로그 중의 아날로그이며 신문명에 뒤처진다고 자처하는 나도 스마트폰을 거의 손에서 놓지 않는다. 폰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출근길 교통카드를 찍고, 날씨를 보고, 톡으로 지인들과 소통하고, sns로 좀 모르는 사람들과도 소통하고, 정보를 검색하고, 뱅킹도 하고, 쇼핑도 하고, 음악도 듣는다. 자려고 누워서 잠이 바로 안오면 유튜브로 이것저것 보다가 폰을 안고 잠든다. 한 몸이 되는 경지? 바로 스마트맨이라 하겠다.

작가는 굵고 단순한 선에 채색도 거의 하지 않은 그림으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처음 접하는 젊은 작가의 상상력과 주제를 형상화하는 표현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도 샀는데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네. 영상으로 읽어주면 저작권에 걸리겠지? 그것도 그렇지만 읽어주고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스마트폰 없으면 원격수업도 못하는데. 매일 단톡으로 잔소리하고 앱으로 알림장 보내는데. 수업은 말할 것도 없고.ㅠ

세상이 스마트맨이 되라 강요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룰루랄라 걸어가는 마지막 장의 아이가 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뛰어놀고, 노래부르고, 둘러앉아 함께 그림책을 보고,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일단 그런 거라도 빨리 하게 되면 좋겠어. 그이상 생각은 그 다음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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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의 세계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양지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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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라는 생각이 들 땐 고개를 흔드는 게 좋다.
페북을 쭉 내려보다 보면 사연글들의 미끼제목이 보이는데 무심코 그걸 눌러서 얼마나 기막힌 사연인지 읽어볼 때가 있다. 어제 본 제목은 로또 당첨금 받은 대학생? 뭐 그런 제목이었다. 로또 1등의 말로가 좋은 적이 없다던데 어떤 사연일까 했더니 이 학생은 아주 규모있고 안전하게 쓰고 있어 앞날이 탄탄하고 행복하다는 얘기였다. 받은 당첨금이 20억이 넘었다고 한다. 자동적으로 '만약에'가 시작되었다. 일단 누구누구 얼마씩 주고, 이집 리모델링 하느니 조금 나은 집을 사서 이사가고....ㅋㅋ 이쯤에서 머리를 털어 '만약에'를 쫒아낸다.

'만약에'는 후회스러울 때도 나타난다. 학생때로 돌아간다면.... 시간을 더 알차게 쓸거야. 영어동화책을 통째로 한 권 외운 후에 체계적으로 영어공부를 하면서 더 많은 책을 읽어볼거야. 엄마를 졸라 피아노를 배울거야. 이것도 부질없어 곧 머리를 털어내야 한다.^^

그런데 여기, 요시타케 신스케는 '만약의 세계'를 상상하고 책으로 만들었다. 그는 상상력이 기가 막히게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손에 잡히지 않는 상상을 마치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질 듯 형상화해내는 데 천재인 것 같다. '만약의 세계'를 그려낸다니 그걸 이분 말고 누가 또 할 수 있을까.ㅎㅎ

주인공이 자고 있다. 머리맡에 놓인 존재(인형? 장난감? 무엇인진 중요하지 않고 하여간 어떤 존재)를 창문 넘어온 고양이가 물어가버린다. 이제 그 자리는 비었다. 잠에서 깨며 주인공은 뭔가를 감지한다. 돌아본 자리에 그는 없다.

만약 이것을 아껴주던 이와의 이별이라고 한다면 이 장면을 보며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많으리라.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렇지만 작가의 상징에는 수많은 경우의 대입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위의 경우를 상상해 보았다.

"나, 만약의 세계에 가게 됐어.
만약의 세계는
네가 살고 있는
매일의 세계가 아닌
네 마음 속에 있는 또다른 세계야."

"네가 아무리 해도 할 수 없었던 일,
늘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
변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그런 모든 것이
만약의 세계에 모여 있어.
나도 이제 그곳으로 가려고 해."


흑흑 너무 슬프다. 인간은 왜 변하는 것인가. 애틋한 마음을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너와 나는 이미 예전의 그들이 아닌 것을. 그 감정은 너무나 소중하지만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것을.

그렇게 소중한 존재는 '만약의 세계'로 가버리고, 홀로 남은 내게 그 존재는 말한다.
"어떤 물건도 어떤 일도
어떤 사람도 어떤 마음도
사라지거나 없어지지는 않아.
매일의 세계에서
만약의 세계로
있는 곳이, 머무는 곳이
바뀔 뿐이야."

"너의 미래가 될 뻔했던 모든 것이
거기에 있어."


그렇게 소중한 것을 '만약의 세계'로 보내버린 주인공은 아주 좁은 '매일의 세계'에 위태롭게 서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주 희망적인 메세지를 우리에게 준다. 매일의 세계는 다시 커질 거라고. 만약의 세계가 큰 사람일수록 매일의 세계도 커다랗게 만들 수 있다고.

만약의 세계로 보내버린 것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가버린 것들. 나의 후회이자 아쉬움이며 부러움이고 회한인 것들. 때론 소중함을 미처 몰라 놓쳐버렸던 것들. 그것들이 이루고 있는 나의 '만약의 세계'.

만약의 세계가 있기에 지금 발을 딛고선 매일의 세계도 있는 거겠지. 그러니 그 둘을 모두 소중히 잘 다루라는 작가의 조언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물론 "말이 쉽지."에 해당하는 것이라 해도.

나의 '만약의 세계'를 상상해보면 그리 크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 버릴 건 버려주고 싶은 마음.ㅎㅎ 아서라, 이미 그곳은 내가 손댈 수 없는 곳이야. 내가 손댈 수 있는 곳은 이곳 매일의 세계 뿐. 그런데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어 있는 두 세계의 그 미묘한 관련성이 알듯말듯하다. 작가의 철학적 상상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다음의 주제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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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힘
김현경 지음 / 엠앤키즈(M&Kids)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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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미술감상책을 아주 오랜만에 읽었다. 10여 년 전에는 꽤 여러 권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주헌 님의 <느낌 있는 그림 이야기>가 그 시작이었다. 이주헌 님은 그 책 이후로도 여러권의 어린이 대상의 미술감상책을 쓰셨는데, 그 책들을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뭘 하든지 글을 잘 써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ㅎㅎ 요즘엔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검색해보니 요즘은 어른책 위주로 쓰시는 듯.... 이후 장세현 님이나 우리 옛그림 쪽으로는 최석조 님 등의 책들을 흥미있게 봤다. 엊그제 같은데 꽤 지난 일이네.

나는 도서실 활용 수업에 관심이 있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꺼리가 있으면 시도해보는 편이다. 미술 감상수업도 그렇게 했었다. 미술관에 데려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도서실에는 위에서 얘기한 저 책들 외에도 탐스러운 책들이 잔뜩 있으니까. 사실 실물을 보는 걸 제외한다면 책보다 좋은 자료가 어디 있을까. 요즘 어린이책들이 얼마나 잘 만들어져 나오는데.

근데 슬프다. 올해는 코로나가 도서실까지 개점휴업 상황을 만들어놔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은.... 아쉽고 아깝다. 2학기엔 괜찮아지겠지 기대하며 2학기 미술 단원을 훑다가 이 책을 샀는데, 샀으니까 읽었는데, 그냥 나만 읽고 끝날수도 있겠다.ㅠㅠ 일단 읽었으니 기록은 해두자.

이 책은 외적인 면에서 그닥 눈을 사로잡는 구성이 아니다. 오히려 10년 전에 봤던 봤던 책들보다 더 오래된 책 같다.^^;;; 표지나 글씨체도 평범하고 줄간격 등도 가독성이 높지 않고 눈에 쏙쏙 들어오는 세련된 편집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높이 산 것은 내용의 구성이다. 저자의 필력이라고도 하겠고 신선한 관점, 흥미있는 설명이라고도 하겠다.

저자는 소설가라고 한다. 소설을 잘 안읽는 나는 저자의 이름도 처음 들었고 작품도 읽어본 게 없다. 그런데 흥미롭다. 애니어그램을 소재로 심리실용소설도 쓰셨다고 하고, 유튜버도 하시는 것 같고... 궁금해서 이분의 소설 한 권 읽어봐야 될 것 같다.^^ 새로운 시도에 거부감이 없는 성향(내 짐작)대로 문학인이지만 미술 감상에도 조예가 깊고, 나름대로의 자유로운 감상으로 이 책을 쓰신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자유롭기만 하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미술사의 기본적인 내용은 알려주되, 작품의 선정과 감상에는 작가의 주관이 들어갔다고 보면 되겠다.

목차는 종교화, 르네상스, 인물화, 풍경화, 상징주의, 인상주의... 등 종류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순서가 시대 흐름과도 대략 맞는다. 그런데 수록된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화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소개하는 감상책들과는 다르다. 철저히 저자의 눈과 마음에 '꽂힌' 작품들을 소개했고, 내용도 주관적인 감상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눈을 따라가다보니 나도 그 작품이 좋아지는 일도 생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반만 맞는 것 같다. 감상 전에 해설부터 주입하려는 어른들이 있다면, 저자는 그걸 적극 말리는 쪽이다. 제목 정도만 알면 충분하다고. 그리고 마음에 다가오는 작품을 천천히 깊이 감상한다. 그리고 애정이 생기면 그 화가와 배경 등을 알아보고 공부한다. 이 방법을 강추하는 것은 저자가 그런 방식으로 감상하며 이 분야의 소양을 쌓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실 '아는 만큼' 쪽이 더 강한 사람인데.... 그런데 아는 게 별로 없다....^^;;;; 저자의 감상법에 동의한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저자와의 감상 동행이었다. 흥미로웠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고 더 알아보고 싶은 화가를 한 명 정하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실제로 더 알아보는 거다. 그건 원격수업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활동이다. 그리고 그 화가의 작품 중에서 한 점씩을 골라서 올리고 설명을 해주는 거다.(이미지 다운받거나 캡처해서 업로드하는 정도는 아이들이 거뜬히 잘한다.) 친구들은 댓글을 달고... 좋은 감상수업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을 어떻게 읽힌다지? 난관이 많다. 고민을.....

개학을 앞두니 무슨 책을 읽어도 수업 생각이네. 이런저런 궁리를 할 수 있는 책을 읽어서 보람있었다. 그림을 마음으로 보는 법을 살짝 맛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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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그 자체 - 교육에 관한 열아홉 편의 에세이 함께 걷는 교육 4
권재원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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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평생 가장 길었던 한 학기를 마치고 힐링과 재충전을 위해 휴식하고 있는데 힐링은 커녕 우울증이 왔다.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으니 평상시 즐기던 책읽기와 리뷰 쓰기에 가장 좋은 조건인데, 입맛을 딱 잃은듯이 책들이 재미가 없다. 교육도서를 읽자니 읽어서 뭐하겠어 어차피 또 원격인데 하면서 부르르 진저리가 쳐진다. 이거 정말 큰일이다. 중증.ㅠㅠ

인기 높은 판타지동화와 이 책 중에서 저울질하다 이 책을 골랐다. 판타지가 날 더 우울하게 할 것 같았다. 그냥 건조한 책을 읽자.

읽다보니 이 책은 건조하다고 표현할 순 없는 책이었다. 끝까지 읽기 위해선 어쨌든 책을 따라가야 하는데 따라가다보면 의식의 흐름이 생겼다. 그게 때로는 위안도 되고 각성도 되고 도전도 주었다. 저자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학자이고 저술가이다. 이 책에도 저자가 정의한 개념들, 해석들, 견해들이 가득 담겨있었고, 500쪽이 넘는 책을 내가 끝까지 읽었다는 건 어쨌든 웬만큼은 이해할 만했단 뜻이다. 내게 각성을 준 개념이나 견해들을 몇 개 골라 적어본다. (요약이나 생략 등으로 본문과 완전히 같은 문장이 아닐 수 있음)

• 교육의 목표는 좋은 삶과 행복이며 이것은 자신의 가능성과 역량의 확장에서 온다. (46쪽)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 개선에 참여하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만 사람은 완전한 행복에 이르며 온전한 의미의 교육이 가능하다. (47쪽)
공론에 참여할 때 배울 수 있는 방법과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교육이란 사람을 민주시민으로 바꾸는 것이며, 민주시민이란 교육받은 사람이다. (48~49쪽)

• 팔방미인과 홈파인 공간에 대한 설명 (62~81쪽) :
교육은 가능성을 확대하고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기쁜 만남을 만들어 가려는 성향, 그리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은 반복 속에 차이를 새기는 존재다. 배움의 즐거움을 복원하는 것, 반복에서 차이를 생성하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을 되살려야 한다.(137쪽)

• 이 외부로부터의 재료가 바로 교양이다. 아동기까지 주어지는 외부자극의 양과 질, 그리고 청소년기의 교양이 이후 인성과 역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야말로 교양을 쌓을 결정적 시기이다. (202~203쪽)

• 창조성을 기르는 교육은 결국 민주시민 교육, 기본교육, 호기심을 북돋는 교육, 그리고 도덕교육이다. 창조적인 교사는 학생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며 학생이 호기심과 도덕심을 바탕으로 지루할 수 있는 인류의 지덕, 문화적 유산을 배우고 익히며, 이를 앞으로 마주치게 될 자신과 동료의 문제를 발견하는데 사용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는 교사다. (312쪽)

• 교육은 가치를 획득하는 방법을 보편화하고, 가치 자체를 다원화함으로써 사회가 전체적으로 평등해지는 데 기여한다. (517쪽)

아니, 이거 다 적고 있다간 너무 길어져서 안되겠다.ㅎㅎ 읽다가 메모해 놓은 부분을 보니 이런 생각들도 나를 지나갔었구나.

■ "믿고 맡겨두고 기다리면 아이들은 스스로 내면의 힘을 발휘하여 성장한다" 와 같은 착하디착한 성장의 교육관에 대한 지적. 나는 한참동안 이런 교육관을 갖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있었다. 나는 왜 아이들을 전적으로 믿지 못할까? 내게 존중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훌륭한 샘들은 아이들은 믿는대로 된다는데 왜 나는 20년을 넘게 해도 안 그런것 같을까?

이 책에서는 인간에게는 성장과 성숙 이상의 무엇이 있기에 교육이 소용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 무엇이란 바로 '발달'이다. 발달은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다. 여기에서 여러 교육학자들의 발달 이론들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해 주었다. 그동안의 저서들에서 그랬듯 쉽고 명료하게 설명해 주어서 정리가 잘 됐다. 확실치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는 '발달에는 의도적이고 사회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즉, 교육자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는 비고츠키의 이론과, 평생을 발달의 단계로 규정한 에릭슨의 이론에 비중을 둔 것 같다. 저자는 전작인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러하다. 매우 공감한다. 아, 이 대목에 오니 비로소 읽기에 탄력이 붙네. 아직 독서를 포기할 나이는 아닌 것이지. 나는 아직도 공부할 기회가 많이 남은 거지. 기회라기 보다는 필요성이.ㅎㅎ

■ 배움에 대해 정의하는 11장에서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다" 라는 문장과 진실성(verisimilitude)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온다. 내 친구 한 명이 "너의 경쟁력은 진정성이야."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 오~ 그럼 나는 배움의 중요 조건을 갖추고 있는거네? 보잘것 없는 삶이지만 나 자신과 연결해보려는 태도는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상당히 중요한거구나. 그걸로 어떤 열매를 맺은 바는 없지만 이게 장점이라니 다행이네.
"앎을 이야기로 진술할 수 있다는 것은 앎을 계속 삶 속에서 활용하여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뜻, 즉 진실하게 알고 그것을 진리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252쪽)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배운 것을 자꾸만 자기 이야기로 만들어보게 하는 시도가 필요하겠다.

이제 향후 약 10년 (되도록 정년까지는 가지 않을 생각임. 아니 내 역량으로는 갈 수도 없음) 남은 교직인생에서 내가 염두에 두고 추구할 것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내 나름대로 나의 교육활동에 적용할 바는 이렇다.
1. 깊이 생각하게 하는 교육
끈기있게 생각한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 나 자신이 끈기있게 생각하지 못한다. 골치아프면 일단 덮기.^^;;;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심하다. 일부 특출한 아이들을 빼고. 이 책을 보면 언뜻 생소하거나 성급한 연결 같아보이는 명제들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창조성 교육이란 곧 민주시민교육이다." 같은. 그런데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설득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의 끈기있는 사유와 그것을 차분히 펼친 전달력 덕분일 것이다. 교사들에게는 이런 면이 필요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으로 이끌고 사유할 시간을 주고 사유의 산물을 건져올리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진을 빼는 과정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그 산물이 쥐꼬리같을 때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크게 마음을 먹어야 이런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수업이 좀더 일상화되도록 잘 안되어도 계속, 던져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생각의 연습. 교사도 필요하고 학생도 필요하다.

2. 감성을 일깨우는 교육
삶의 재미를 알게 하는 교육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이런 교육을 할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다. 내가 삶의 재미를 다양한 곳에서 맛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험도 극히 제한되어 있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안내해주고 싶다. 언젠가 독서교육 연수에서 송승훈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 목표는 이거예요. 아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돈 안들이고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잊고 있었는데 이 책에도 비슷한 뜻의 내용이 나와서 기억이 났다. 소박한 행복거리는 도처에 많지만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감성은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특히 인간이 긴 역사를 통해 남긴 예술적 유산들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소양을 갖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도 나도.

긴 교직경력에도 불구하고 교육 그 자체에 대한 나의 인식은 교대 1학년 첫 교육학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나의 생각 확산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일단 아이들이 공부는 왜 해요? 라고 묻는다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해야지." 보다도
"너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서 하는거야.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이 확장될 때 행복해지는 존재거든." 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난 이 책이 교사들이 읽어야 하는 책인 줄로만 알았다. 왠지 안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교사로서의 삶이 아주 많이 남은 것이 아닌데다가 난 이제 가소성이 많이 떨어져서.... 읽은들 뭐하겠나 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꼭 교사로서만 읽게되진 않았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시민'으로 읽었다고 할까? 교육이라는 개념 하나로 이렇게 구석구석을 비출 줄은 몰랐다. 교육이 이렇게 크고 중요한 개념인 줄 교육자인 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민망함.... 동료샘들과 천천히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20대의 시민인 내 자식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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